▲시집 [☆인연지기☆]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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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지기]
조현곤 시집 / 오늘의문학시인선 425 / 오늘의문학사(2018.06.30)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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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지기
조현곤
산과 산을 이어주는 것이 메아리인가 구름인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것이 새들의 몫인가?
소중한 인연들을 이어주는 자기들이 고마운 오늘
속내를 다 들여다보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은 안다.
연연이 아니면 스쳐 지나갈 뿐
신랑과 신부를 이어주는 것이 진정 사랑이던가
글쟁이들을 이어주는 것이 펜촉이던가
내 어머니는 몽은蒙恩의 인연지기였다
통通하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뿐
오늘, 그대의 선한 눈빛과 몸짓이
온정을 기대게 하는 인연지기로다.
낙화
조현곤
봄바람이 겨울을 밀어내니
이제 봄비가 내린다,
화려한 꽃잎들이
생을 마감하며
기어이 떨어지며 하는 말
‘내 생명 불 꺼진다 해도
탐스런 너를 놓지 않으리.’
파장波長
조현곤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너의 말과
자유 분방스런 행동에
실망하거나 상처받거나
모과 열매가 못났다고 흉보지 마라.
너는 얼마나 고운 향기 발하며 살아 봤느냐.
물릴 장도로 과욕을 벗는 것도 네 할 바이니
호수에서 함부로 물수제비 뜨지도 마라.
가만히 있다 날벼락 맞는 생물이 있을 지니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너의 말과
무참스러운 행동에
실망하거니 상처받거나.
가닥찾기
조현곤
마트에서 쌀 한 포대를 구입했다.
관건은 박음줄을 풀어내야 하는 것
시도 끝에 끊어지고 또 끊어져
결국은 쌀 한 포대를 북~ 찢어 버릴 때도 있다.
실오라기 하나 잘 찾으면 쉽게 풀어지는데…
인생의 문제도 가닥을 찾지 못하여
풀려지지 않을 때가 있으니
그렇다고 뜬금없이 주위 사람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을까?
꼬임을 풀어내어 숨통이 트이게 하는 것은
한 가닥 희망 찾기에 몰입하는 것
그것은 나를 지으신 이를 만나는 것
그리하여 박음질이 술술 풀려
환희의 행복양식을 만끽하는 것이리
그림자
조현곤
앞이 화려하지만 뒷모습은 우울한 사람아,
뒤에 있는 사람도 앞이 있다오.
앞에 있다고 뒤에 쓰레기와 꽁초를 버린다면
뒤에 있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앞뒤 서로 살펴보아 양면을 깨끗하게 한다면
동전과 같이 서로가 좋을 텐데
혼자만 생각 말고 옆과 뒤에 있는 사람도
생각하며 더불어 살면 어떻겠소.
아침
조현곤
엊저녁
하도 그렇게
모진 비바람
몰아치더니
오늘
눈부신 아침을
맞이한다
하도 두려울 만큼.
갈꽃
조현곤
갈대가 속을 비우는 것은
향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인가
내음은 곧 갈꽃으로 피어
가을 밤 바람소리와 함께
별꽃으로 피기 위한 선물인가.
시의 숲으로
조현곤
코는 맥맥하고 입은 텁텁하고
가자미눈을 뜨고 걸어야 할 때는
시의 숲으로 가자.
미세먼지 우굴거리는 매서운 바람 그 추위
잊어버리자 깨끗이 잊어버리자.
명치 끝 얼룩진 아픔의 과거가 있기에
오늘 진주처럼 빛나는 것
삶이 맥맥할 때는
무조건 시의 숲으로 가자.
한나절 시향의 초록빛에 마음이라고 씻어보리.
개망초
조현곤
앙증맞은 꽃
흔들림 속
지독한 생명력
아무 관심 없어도
재할 바 다하는
소신 있는 꽃
너도 그러길….
바람의 길
조현곤
소나무 한 그루 멋지게 뽐낼 때
어느 날 하늘 바람으로
우지끈 비명에 쓰러졌다
지나가는 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러니까 평소에 머리 좀 숙이지.
꽃무릇
조현곤
눈부시다 우아하다
가까이 갈 수 없는 너에게
내가 어떻게….
가냘픈 몸매에
옷을 벗어야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니
그것은 슬픈 것이다.
만날 수 없다면
아름답지나 말 것을
내가 널 어떻게….
고향집
조현곤
솔 숲 오솔길 따라
안골로 가다보면
미루나무 서 있는
집 한 채가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비록
우렁이 등처럼 생긴
움막이지만
미주알고주알
살붙이들의 정이 흐릅니다
정성이 있고
사람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 곳이 좋습니다
마냥 사랑스러워
하염없는 그리움이 내립니다.
키 선물
조현곤
지인으로부터 키 선물을 받았다.
알곡을 모아서 안으로 들이고
쭉정이는 밖으로 내어 버리는 것
키 선물을 받고 난 후
하염없이 손실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쭉정이었단 말인가?
아직도 애면글면 키를 까부는 중이다.
오늘도 내 것이 안니 것은
찬란히 날아가 버린다는 진리 앞에서
무소유의 혹독한 애증을 경험하는 중이다.
*애면글면: 약한 힘으로 몹시 힘에 겨운 일을 해내느라고 온갖 힘을 다하는 모양
달팽이
조현곤
짐을 업고 다니니
힘들만도 한데
참으로 묘하다.
약한 것 같은데 강하고
가난한 것 같은데 부富하고
느린 것 같은데 빠름을 훈화하니
속살이 보인 흔적으로
삶을 깨우치게 하누나.
안개 끝에 있는 그 집
조현곤
끝도 보이지 않는 그 집
얼마나 가여 보일까
희뿌연한 조명처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절
가라! 두렁 끝에 있는 집으로
오늘 나무 멍에를 지고
내일 쇠 멍에를 진다해도
안개 젖히며 가라!
그리고 심히 그리워하자
안개 걷힌 선한 그 집
징두리 너머로 들려오는
눈물겨운 웃음 빛깔 내음을
환하게 얼굴 맞대고
그리워하자.
* 장두리: 집채 안팎 둘에의 밑동
불씨
조현곤
철부지는 불씨로 초가삼간 태우고
섣부른 중년은 불씨로 가정을 파탄 내니
아서라, 그대여 자중하시게나.
이제부터는
화목의 불씨를 지르자.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불시가 이웃으로 번져
온 세상 환하도록,
생명이 있음에
조현곤
가슴이 펄럭인다
피가 달음질한다
가슴은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상큼한 내음을 피우라고,
마취를 하여 잠시
신경이 잠든다하여도
맥박이 뛰면 살아있는 것 아니겠는가?
맥이 뛰지 않은 내 아우는
구름처럼 살며시 날아올라
하늘에 별이 되었다.
나를 만들어가는 움직임에
감사기도 드릴 때 하늘음성 들린다
상큼한 내음을 피우며 살라고.
마음 펴기
조현곤
한산 모시옷도 다림질로
주름을 펴야 제 멋이 난다
인생의 실패로 체면이 구겨지면
아연히 앙당그러진다
심한 상처를 받은 자는 마음이 구겨져
절절한 통증을 호소한다
그들의 아픔이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 주름을 펼칠 때에
환한 기쁨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너희는 아느냐
냉수 한 그릇
조현곤
하루에도 몇 번씩
악몽을 꾸어
땀이 송글송글 맺는
몸뚱아리를
양껏
시원케 하는 것은
오직
냉수 한 그릇.
기도
조현곤
닦아 놓은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깊은 눈물이
있어서입니다.
바람 불어도
안락을 원하는
마음의 길은
다시금 눈물로 열립니다.
새벽강을 건너는 자만이
꿈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선다는 것을
어찌 모른답니까?
비밀
조현곤
벧엘에서 잠지는 야곱이
하늘 길을 보았다.
그리고 돌베개 하던 그 자리에서
축복을 빌며 서원을 했다.
가련한 인생들은
땅에서 무엇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희미한 삶의 여정에서
진정 보화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지
그 비밀을 하는 자는
오늘도 감사의 눈물로 엎드린다.
그분과 소통할 때
문제가 풀리고
매듭들이 풀어진다는 로고스를 믿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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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바람 앞에 풀들이 눕는 것은 순리대로 살기 위함이다.
눕지 않는 모든 것은 꺾이든지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저항 속에 참 진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옳지 않은 일애 눈감거나 완력과 불의에 굴복하라는 말이 아니다.
똑바로 가는 길이 편리하고 좋긴 하지만 그보다 굽이돌아가는 길은 더 멋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인연의 좋은 지기로서 서로를 보듬으며 인생길을 간다면 세상이 좀 더 사람향이 물큰한 풍미風味가 있지 않겠는가?
문학의 길로 들어선 지도 강산이 변했다. 원컨대 처음 색이 변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좋은 환경에서는 글 보석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를 흔들어 놓는 모진 바람이 있기에 몸부림으로 문향을 일으켜 본다,
신앙의 뜨락에서, 믿음의 눈으로 사물을 관조觀照한 시안詩眼을 주신 하나님께 열광을 돌립니다.
2018년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 문방 正平齋에서
은강 조현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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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곤 詩集 [※인연지기※]
[ 작품해설 ] -
신앙의 신실함과 정서의 오롯함
-조현곤 3시집『인연지기』를 읽고
리헌석. 문학평론가. 충청예술문화협회 회장
1. 정서의 오롯함을 찾아
조현곤은 2005년에『서울문학』의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후, 1시집『그리움의 시작(2006)』, 2시집『행복의 영토(2012)』를 발간한 시인이다. 그는 지치고 아파하는 영혼을 지키는 목회자의 사명을 다하면서, 시를 통하여 신앙의 신비와 서정의 물결을 독자들과 나누는 시인이다. 이스라엘 선조들이 시편(Psalms, Psalter)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듯이, 그 또한 시 창작을 통하여 오롯한 정서와 신앙의 신실함을 투영하고 있다.
조현곤 시인의 3시집『인연지기』에 수록된 작품을 독자들보다 먼저 정독하면서, 물결처럼 밀려오는 감동을 공유하게 되었는바,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특정 종교의 성직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신봉하는 신앙의 여러 요소들을 노래하되, 집중적으로 몰입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정서적 공유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조현곤 시인은 신앙을 노래한 작품과 함께, 순수 서정시도 많이 빚어 정서적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그 서정시들이 담결淡潔하고 정갈하다.
솔 숲 오솔길 따라
안골로 가다보면
미루나무 서 있는
집 한 채가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비록
우렁이 등처럼 생긴
움막이지만
미주알고주알
살붙이들의 정이 흐릅니다
정성이 있고
사람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 곳이 좋습니다
마냥 사랑스러워
하염없는 그리움이 내립니다
-「고향집」전문
시인은 고향인 충남 서천의 고향집을 노래하였을 터이지만, 시골에 고향을 둔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하여 아늑한 향수鄕愁에 젖게 마련이고, 시인과 동일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은 필자 역시 고향인 충남 공주의 산천과 사람들이 그립고, 때로는 고향에 임재臨在한 듯하여 가슴이 먹먹함을 느낀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처럼 아름다운 고향은 찾아보기 힘들게 변모하였다. <우렁이 등처럼 생긴/움막>도 거의 사라졌을 터이고, <나는 그 곳이 좋습니다/마냥 사랑스러워/하염없는 그리움이 내립니다>라는 절창은 부재不在에 의하여 생성된 그리움으로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끝도 보이지 않는 그 집>을 그리워하는 것이며, <징두리 너머로 들려오는/눈물겨운 웃음 빛깔>까지 그리움의 대상이다. 이러한 그리움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로 확장된다.
자줏빛 목련이 꽃등으로
마당을 환히 밝힙니다
마음 그늘 없애려고
환히 웃어 보이는 어머니 얼굴
지난 세월
밟히고 상처받아도
질경이처럼
억세게 살아왔는데
자줏빛 털모자를 쓰고
가엾게도 몸져누운
어머니
오늘도 어머니는 창문 밖
삶의 뒤안길을 바라보며
마음에 등불하나 켜 놓았습니다
-「목련이 필 무렵」전문
홀로 남은 아버지에게 새 장롱을 사드리는 과정을 노래한「장롱 들어오는 날」에서는 어머니가 소천하시고 아버지만 생존해 계신다. 그러나「목련이 필 무렵」에서는 어머니까지 생존해 계신 상황으로 그려져 있다. <자줏빛 털모자를 쓰고/가엾게도 몸져누운/어머니>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자줏빛 털모자’와 ‘자줏빛 목련’의 교집합交集合 이미지가 작품의 본질을 이룬다. 이 바탕에서 <마음 그늘 없애려고 환히 웃어 보이는 어머니 얼굴>도 떠오르고, <삶의 뒤안길을 바라보며/마음에 등불하나 켜>놓으신 어머니를 애잔하게 그린다. 독자들도 이러한 그리움과 사랑에서 가슴 먹먹한 정서를 공유하리라 믿는다.
그는 <지난 세월/밟히고 상처받아도/질경이처럼>살아온 어머니를 통하여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낸「빈처貧妻」역시 오롯하고 안타까운 정서를 표출한다. 이렇게 안타까운 정서가 발발되는 날이면 그는「시의 숲으로」들어간다. <삶이 맥맥할 때는/무조건 시의 숲으로 가자/한나절 시향의 초록빛에 마음이라도 씻어보리>라고 노래한다. ‘맥맥하다’는 ‘기운이 막혀 답답하다’‘대처할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아 답답하다’‘막혀서 숨쉬기가 힘들고 갑갑하다’는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인데, 이런 상황이 닥치면, 그는 시 창작에 나선다. 시 창작이야말로 시인에게는 정신적 피난처이지 영혼의 안식처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2. 신앙의 신실함을 찾아
조현곤 시인이 드리는 ‘기도’는 신앙의 다양성을 담보한다. 그는 단순히 손을 모은 기도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신앙의 꽃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3시집의「기도」에서 이와 같은 그의 진심이 보인다. <닦아 놓은 꽃길을/걷는다는 것은/누군가의 깊은 눈물이/있어서입니다//바람 불어도/안락을 원하는/마음의 길은/다시금 눈물로 열립니다>라고 노래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땀과 정성과 눈물로 만든 꽃길을 걸어간다. 또한 그런 꽃길을 만드는 누구인가는 수많은 타자他者들이 이용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마음으로 조현곤 시인은 새벽강을 건너는 자만이 꿈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선다는 진리를 작품에 투영한다.
양들을 이끄는 목바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영혼의 꽃길은 만들어진다.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름다운 그 길을 걸어가려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는「주의 일에 힘쓰겠습니다」에서 <주의 자녀가 된 것도 감사한데/목사의 직임까지 주시다니/놀라운 주의 사랑에 감격할 뿐입니다>라고 주를 찬미한다. 그리하여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가난한 마음 주시사/더 낮은 자세로/뜨거운 새벽 무릎으로/열방을 향한 열정의 가슴으로>거듭나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분과 꽃길을 걷고 싶다면
가진 것을 내려놓아라
때때로 내 열정과 상관없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인생길이란
심한 가뭄 끝에 쩍쩍 입 벌리는
골다공의 고통을 안고서 오는 길
지금도 뒤돌아보면
여전히 작살을 들고
공격해 오는 이들이 있다
무슨 수로 피할까?
걱정을 삼켜버린 들꽃과 새들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입안에서 절망의 독한 냄새가 피어나고
어깨는 하염없이 무너져 내릴 때
그분과 함께
생명의 길을 순탄히 걷고 싶다면
마땅히 짐을 내려놓아라
-「꽃길로」전문
이 작품의 서두와 결미는 동일한 유형이어서 수미상관首尾相關 기법을 원용援用하고 있다. 서두에 주제를 담은 두괄식 내면을, 결미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양괄식 구성이다. <그분과 꽃길을 걷고 싶다면/가진 것을 내려놓아라>와 <그 분과 함께/생명의 길을 순탄히 걷고 싶다면/마땅히 짐을 내로놓아라>에서 ‘내려놓아라’라고 명령형 어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에게 당부하는 자성의 의미를 띤다. 나아가 이 작품을 읽을 불특정 독자들에게도 권고하는 중의성을 띠고 있다.
이 작품에서 ‘짐’은 ‘욕심’과 통하는 것 같다. 마태복음 19장 24절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성경 구절에서 보는 것처럼, 또는 마태복음 5장 1절의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저의 것이요>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것과 내려놓아야 할 ‘짐’이 일치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인연지기」가 되기를 자원한다. <소중한 인연들을 이어주는 지기들이 고마운 오늘/속내를 다 들여다보지 않아도/통하는 사람은 안다><오늘, 그대의 선한 눈빛과 몸짓이/온정을 기대게 하는 인연지기로다>라고 자신의 소명을 되새기는 시인이다.
벧엘에서 잠자는 야곱이
하늘 길을 보았다
그리고 돌베개하던 그 자리에서
축복을 빌며 서원을 했다
가련한 인생들은
땅에서 무엇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희미한 삶의 여정에서
진정 보화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지
그 비밀을 아는 자는
오늘도 감사의 눈물로 엎드린다
그분과 소통할 때
문제가 풀리고
매듭들이 풀어진다는 로소르를 믿기에
-「비밀」전문
서두의 ‘벧엘’은 창세기에 나오는데, 하나님과 야곱의 소통과정에서 만나는 지역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야곱이 만난 지점의 새로운 이름이며,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단壇을 쌓은 곳이다. 이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으며,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에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축복을 받은 곳이며,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하며 서원한 곳이다.
시인은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보화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하여 <먼 길 돌고 돌아 이곳(한내순복음교회)에 오기까지/은혜로운 동산에 머물러/에벤에셀로 함께 하신/주님께 영광 돌릴지어라>라고 감사하는 목회자의 자세를 취한다. <선한 목자는 아름다운/열매를 맺어야 할지니/진리를 분명히 알아>영적 포도원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목회자 직분에 헌신할 것을 야곱처럼 서원한다.
3. 문학적 표현을 찾아
시는 ‘무엇’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노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같은 주제를 드러내거나, 독특하고 개성적인 제재를 찾아 완성하더라도, 표현의 수준에 따라 예술성은 다르게 평가된다. 철학에서의 직설적 서술, 문학에서의 비유와 상징, 두 문제의 특성은 판이하게 다르다. 말하자면 같은 사물에 대한 작품이라도, 표현의 특성에 따라 감동의 색채가 달라진다. 빛이 유리를 투과할 때, 평면에서 투명하게 통과하기도 하고, 프리즘에 따라 빛의 굴절로 인해 다양한 색채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 조현곤 시인은 주제를 중심으로 빚는 신앙시에서도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순수 서정시에서 더욱 예술성 높은 형상화를 추구한다.
(가)
소나무 한 그루 멋지게 뽐낼 때
어느 날 하늘 바람으로
우지끈 비명에 쓰러졌다
지나가는 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러니까 평소에 머리 좀 숙이지
-「바람의 길」전문
(나)
그대 가는 길은 어디가 끝이더냐
도꼬마리 열매가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듯
인정사정없는 빚쟁이들의 입방아에
가을 잎처럼 물들어 말라가는
-「고독에 물들다」일부
(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도시들이 부스스 일어나니
충청의 상서로운 기운이
내포로 몰려온다
-「내포의 울림」일부
(라)
유혹의 싱크홀에 빠져
수없이 서로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상처와 흙범벅이 되어 비칠거린 세월
-「빈처貧妻」일부
임의로 뽑아 본 4편 모두 비유와 상징에 의하여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다. (가)에서는 바람이 불어 비명에 쓰러진 커다란 소나무와 안하무인으로 살아온 사람을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까 평소에 머리 좀 숙이지>라고 맺은 결미가 절창이다. (나)에서는 표현의 멋이 일품이다. <그대 가는 길이 어디더냐>고 물으며, 그 사람이 진 빚이 많은 것을 고도의 은유를 통하여 <도꼬마리 열매가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듯>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애향심을 환기하려는 목적시 (다)에서도 활유법이 뛰어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도시들><도시들이 부스스 일어나니><상서로운 기운이/내포로 몰려온다>등의 의인법 역시 개성적이다. 그리고 가난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행복하게 살고자하는 (라)에서도 <유혹의 싱크홀>이라는 고도의 은유가 확인되며, <서로의 가슴에/대못질을 하고>있다는 의유와 과장, <비칠거린 세월>에서 보이는 고도의 활유 등 비유법의 다양한 양상을 확인하게 된다. 조현곤 시인은 이처럼 다양한 표현법을 적합하게 원용하는데 비상한 자질을 보인다.
누군가 들어갔던 갈대숲은 헤치고
백악기 시대로 들어가니
들려오는 공룡과 익룡의 소리 쟁쟁하다
연흔과 퇴적층은
어머니가 지어주던 시루떡처럼
오랜 세월 곱게도 다져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끄러운
공룡의 소리가 귓전에 맴돌 때
나의 연수가 자랄수록
저 연흔과 퇴적층처럼
남길 만한 그 무엇이 있던가
한 시대를 주름잡던
강한 자의 후예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리고 저 발자국은…
흩어진 바람을 모아
흔적을 만들어 볼 일이다
공존과 동행의 자국들을
-「공룡 화석관에서」전문
이 작품은 서두에서부터 흥미와 관심을 환기한다. <누군가 들어갔던 갈대숲을 헤치고/백악기 시대로 들어가니/들려오는 공룡과 익룡의 소리 쟁쟁하다>에서 발상의 신선함을 만난다. 물론 ‘공룡화석 전시관’에서 들려오는 공룡의 울음소리일 터이지만, 물결무늬 화석인 ‘연흔’과 퇴적층은 <어머니가 지어주던 시루떡처럼/오랜 세월 곱게도 다져졌다>에서 보여주는 비유가 놀랍다.
특히 지층에 남아 있는 ‘연흔’과 ‘퇴적층’에서 자신이 <남길 만한 그 무엇>을 탐색하는 자세가 오롯하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강한 자>의 말로末路를 점검하며, 공룡과 자신의 시대차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는 ‘공존하며 동행’했던 흔적을 찾으려고 <흩어진 바람>을 모은다. 이와 같은 구성과 표현을 통하여, 조현곤 시인은 주제와 제재의 특성을 유지하는 한편, 표현의 예술성 확보에도 집중하고 있다.
4. 조현곤의 뜰을 나서며
조현곤 시인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실천하는 시인이다.「지금」에서 <오늘 당장 먹거리와/쓸거리가 없어도/그대를 만난 지금/난 세상을 다 가진 셈>이라고 한다. <차별과 공평을 따지기 전/지금 이 순간에/그대와 함께 한다는 것이/나에겐 금보다 더 소중>하다고 밝힌다. <이 좋은 날, 지금/행복을 물어다 주는 그대가 있어/비록 시간을 깨무는 삶이라도 난 바꿀 수 없소/사양할 줄은 더욱 모른다>고 현재의 삶에 충실한다.
또한 그는 표리부동한 사람을 비판하는 작품「그림자」를 통하여 상징적 의미를 형상화한다. <앞은 화려하지만 뒷모습은 우울한 사람아/뒤에 있는 사람도 앞이 있다오/앞에 있다고 뒤에 쓰레기와 꽁초를 버린다면/뒤에 있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앞뒤 서로 살펴보아 양면을 깨끗하게 한다면/동전과 같이 서로가 좋을 텐데/혼자만 생각말고 옆과 뒤에 있는 사람도/생각하며 더불어 살면 어떻겠소>라며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촉구한다. 즉 마음이 맑고 순수하기를 바라는 내면의 염결성廉潔性을 지향하고 있다.
한산 모시옷도 다림질로
주름을 펴야 제 멋이 난다
인생의 실패로 체면이 구겨지면
아연히 앙당그러진다
심한 상처를 받은 자는 마음이 구겨져
절절한 통증을 호소한다
그들의 아픔이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 주름을 펼칠 때에
환한 기쁨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너희는 아느냐
-「마음 펴기」전문
시인의 고향은 충남 서천군이다. 서천의 대표적 물산物産에 ‘한산모시’와 ‘소곡주’가 있다. 그 중에서 내면의 염결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재로 그는 ‘한산모시’를 선택한다. 한산모시의 외면적 단아함, 그리고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내면적 염결성, 양면兩面이 비유적으로 결합된다. <한산 모시옷도 다림질로/주름을 펴야 제 못이 난다>고 시작하여, <성령의 능력으로/마음 주름을 펼칠 때에/환한 기쁨으로/회복된다>고 노래하는 결미의 교집합이 절묘絶妙하다.
조현곤 시인은 앞으로 <어둠을 가르는/광명한 빛줄기처럼/고됨도 즐기고/아픔도 버성겨 맞아/먼 훗날 그분 앞에 설 때/면류관을 받>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소망은 산과 신을 이어주는 메아리처럼, 소중한 인연들을 이어주는 지기知己처럼, 어머니와 같은 몽은(은덕)의 인연지기로 나설 것을 작심하게 한다. 그리하여 <명치 끝 얼룩진 과거가 있기에/오늘 진주처럼>빛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시에 담아낸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시기 좋을 신앙’을 노래하기도 하고, 고운 서정을 담아내기도 할 터이며, 비유의 멋을 산뜻하게 표출하는 작품을 빚으리라 확신한다. 조현곤 시인은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시인과 목회자로서 바쁜 세월을 엮으리라 기대하며, 그의 3시집『인연지기』의 작품 감상 여로旅路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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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바람 앞에 풀들이 눕는 것은 순리대로 살기 위함이다.
눕지 않는 모든 것은 꺾이든지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면서 인연의 좋은 지기로서 서로를 보듬으며 인생길을 간다면 세상이 좀 더 사람향이 물큰한 풍미風味가 있지 않겠는가?
― 「시인의 말」중에서
이스라엘 선조들이 시편(Psalms, Psalter)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듯이, 그 또한 시 창작을 통하여 오롯한 정서와 신앙의 신실함을 투영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시기 좋을 신앙’을 노래하기도 하고, 고운 서정을 담아내기도 할 터이며, 비유의 멋을 산뜻하게 표출하는 작품을 빚으리라 확신한다. 조현곤 시인은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시인과 목회자로서 바쁜 세월을 엮으리라 기대하며, 그의 3시집『인연지기』의 작품 감상 여로旅路를 접는다
― 「작품해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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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책소개]
2005년에『서울문학』의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후, 1시집『그리움의 시작(2006)』, 2시집 『행복의 영토(2012)』를 발간한 조현곤 시인이 3시집『인연지기』를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조현곤 시인은 시인이자 영혼의 감동을 시로 빚는 시인이자, 충남 보령시에서 보령생명샘교회에서 시무하는 목사님입니다.
특정 종교의 성직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신봉하는 신앙의 여러 요소들을 노래하되 집중적으로 몰입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정서적 공유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현곤 시인은 신앙을 노래한 작품과 함께, 순수 서정시도 많이 빚어 정서적 공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서정시들이 담결(淡潔)하고 정갈합니다. 조현곤 시인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실천하는 시인이다. 「지금」에서 [오늘 당장 먹거리와/ 쓸거리가 없어도/ 그대를 만난 지금/ 난 세상을 다 가진 셈]이라고 한다. [차별과 공평을/ 따지기 전/ 지금 이 순간에/ 그대와 함께 한다는 것이/ 나에겐 금보다 더 소중]하다고 밝힌다. [이 좋은 날, 지금/ 행복을 물어다 주는 그대가 있어/ 비록 시간을 깨무는 삶이라도 난 바꿀 수 없소/ 사양할 줄은 더욱 모른다]고 현재의 삶에 충실한다.
또한 그는 표리부동한 사람을 비판하는 작품 「그림자」를 통하여 상징적 의미를 형상화한다. [앞은 화려하지만 뒷모습은 우울한 사람아/ 뒤에 있는 사람도 앞이 있다오,/ 앞에 있다고 뒤에 쓰레기와 꽁초를 버린다면/ 뒤에 있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앞뒤 서로 살펴보아 양면을 깨끗하게 한다면/ 동전과 같이 서로가 좋을 텐데/ 혼자만 생각 말고 옆과 뒤에 있는 사람도/ 생각하며 더불어 살면 어떻겠소.]라며 배려심을 촉구한다. 즉 마음이 맑고 순수하기를 바라는 내면의 염결성(廉潔性)을 지향하고 있다.
한산 모시옷도 다림질로
주름을 펴야 제 멋이 난다
인생의 실패로 체면이 구겨지면
아연히 앙당그러진다
심한 상처를 받은 자는 마음이 구겨져
절절한 통증을 호소한다
그들의 아픔이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 주름을 펼칠 때에
환한 기쁨으로
회복된다는 것을 너희는 아느냐.
―「마음 펴기」 전문
시인의 고향은 충남 서천군이다. 서천의 대표적 물산(物産)에 ‘한산모시’와 ‘소곡주’가 있다. 그 중에서 내면의 염결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재로 그는 ‘한산모시’를 선택한다. 한산모시의 외면적 단아함, 그리고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내면적 염결성, 양면(兩面)이 비유적으로 결합된다. [한산 모시옷도 다림질로/ 주름을 펴야 제 멋이 난다]고 시작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 주름을 펼칠 때에/ 환한 기쁨으로/ 회복된다]고 노래하는 결미의 교집합이 절묘(絶妙)하다.
조현곤 시인은 앞으로 [어둠을 가르는/ 광명한 빛줄기처럼/ 고됨도 즐기고/ 아픔도 버성겨 맞아/ 먼 훗날 그분 앞에 설 때/ 면류관을 받]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소망은 산과 산을 이어주는 메아리처럼, 소중한 인연들을 이어주는 지기(知己)처럼, 어머니와 같은 몽은(은덕)의 인연지기로 나설 것을 작심하게 한다. 그리하여 [명치 끝 얼룩진 과거가 있기에/ 오늘 진주처럼] 빛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시에 담아낸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 신앙’을 노래하기도 하고, 고운 서정을 담아내기도 할 터이며, 비유의 멋을 산뜻하게 표출하는 작품을 빚으리라 확신한다. 조현곤 시인은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시인과 목회자로서 바쁜 세월을 엮으리라 기대한다. - <리헌석(문학평론가)의 해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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