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천당이라는 제목의 글을 쓸려고 생각하면서
문득....저의 쓰는 글을 설교로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설교로 할 수 없는 성경의 이해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설교는 성경의 진리를 사실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라기보다
웰빙 건강 복음의 비전과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마저 강단의 설교에서 사라졌습니다.
언젠가 전에 봉사하던 교회에서 유명 강사를 초빙해서 부흥회를 하였는데
몇 일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참담하게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란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도
부흥회는 성공적이어서 목표한 금액의 비전 헌금이 작정되었습니다.
그나마 예수님의 십자가와 웰빙 건강복음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던 양심적인 부흥회 설교였던 것 같습니다....ㅜ.ㅜ
일반적으로 부흥회 설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웰빙 건강 복음을 한데 섞어서
화인맞은 양심의 설교를 하는 사이비 행각이 대부분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은혜 충만받고, 성령충만 받았다며 기쁨 가득한 신도들은
이미 뼈속까지 중독되어 마약 주사 맞듯 설교만 들으면 해피하게 됩니다.
웰빙 건강 복음의 중독성과 전염성은
슈퍼 박테리아와 같습니다.
오늘날 웰빙 건강 복음과 기복적 무속신앙으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다원주의 이상으로 오염시키며 파괴하고 있습니다.
참된 복음에 깨어있어 건강한 면역성을 가진 성도는
예루살렘 거리의 의인을 찾았던 예레미야의 목마름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천국과 천당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몇 자 적어볼려고 합니다.
가끔 이동하다보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듯
광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적 광신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가 종교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사람들입니다.
한 때 "도를 아십니까"로 길가든 사람들을 붙잡아 접근해 오던 사람들.....
이제 무료 심리 테스트와 도형 상담 점성술로 접근해 옵니다.
광신의 이데올로기에서 조금더 지능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여전히 종교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교회가 .....
천국과 천당에 대한 광신적 이데롤로기로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국과 천당은 같은 비슷하지만
완전 다른 의미입니다.
천국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나라요,
천당은 좁은 의미로 천국에 있는 개인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신앙의 비전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로 받는 선물이지만
천당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왜곡되고 편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믿음의 실적으로 만들어 가는 신앙의 비전입니다.
성경에는 천당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아마도 지옥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만들어진 말인 것 같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은
성경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과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천국,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은
불교적 샤마니즘 무속 신앙으로 지옥 가지 않는다는 반대 개념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통치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구원 개념과
천당간다는 무속개념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천당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한 미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불확실한 사후 세계에 관한
불교의 극락과 같은 환상적인 이데올로기일뿐입니다.
무속신앙의 허상에 진실을 녹여내는 영성가는
스스로 하나님이 된 사람입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
눈에 보이는 썩은 치아는 고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암덩어리는 안수 기도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을 기만하는 종교 사기꾼들입니다.
천국 곧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천당을 올바로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영성의 최고 경지인 입신을 통한 지옥과 천당 갔다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속 신앙의 끝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지옥에 뱀이 있고 흉칙한 괴물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이야기는
저승사자라는 의식을 가진 무속 신앙의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형체를 가진 지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뱀과 흉칭한 괴물이 사는 지옥은 존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생물이 숨을 쉬고 살아 갈 수 있는 지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적화된 지구의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옥에서 살아 있을 때 가졌던 사람의 형체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허상의 극치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산 사람의 형제를 볼 수 있는 경지는
오직 하나님의 경지입니다.
성경의 놀라운 사실은
구약 성경에 지옥과 천당 개념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복은 가나안 땅의 복이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복입니다.
구약의 저주는 질병과 죽음이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어떤 위대한 신앙의 인물일찌라도
천당에 대한 신앙의 비전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어떤 악한 사람일찌라도
지옥의 형벌을 심판으로 받은 사람, 역시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약 성경에는 영생의 구원은 있지만
지옥과 천당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알지 못하고 설교로만 아는 사람들은
아주 혼동스러울 것입니다.
오늘날 기형적인 유사 기독교로 성장한 맘모스 교회들이
얼마나 성경적인 본질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깨닫게 되면 예수 헛 믿었다는 허상가를
탄식으로 부르게 될 것입니다.
유사 기독교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이단의 사설에서 빠져 나올 수 없고,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들어 가서 가혹한 매질을 당하고 나면......
찬물을 끼얹은 정도의 정신은 차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글을 쓰는 저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지겠지만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빛을 빛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둠으로 빛을 조망할려는 몸부림은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억새기만합니다.
성경의 복음을 진리의 빛으로 이해하기보다
박학다식한 주변 학문으로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지성은
지성을 가진 젊은이들의 일그러진 초상화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바른 성경적인 이해를 진리의 빛으로 깨닫지 못하고 .....
어둠의 빛을 양심의 부정으로 왜곡하는 지성은 자칭 현자일 뿐입니다.
가끔 불교 방송을 통하여 스님들의 설법을 듣고,
또한 상생 방송의 개벽 강의를 들어 봅니다.
뿐만 아니라 신부들과 수녀들의 열강하는 모습을 들으면서
참과 거짓이라는 진실게임을 스스로 해보았습니다.
열강으로 토해내는 수 많은 진실한 외침들.....
그러나 거짓의 네게티브라는 사실을 곧 바로 올바른 성경적인 이해로 분별되었습니다.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수 많은 설교들 ......
듣고 또 듣으면서 분석되는 사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위 천당에 가기 위한 믿음의 실적을 종교적 열정으로 쌓아가는 데 .......
참으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상을 그려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비통하게 느꼈습니다.
설교로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
기독교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지 못하고 기형적으로 성장하여 유사 기독교로 변질된 모습은
하나님의 탄성을 가졌던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탄식으로 가졌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풍요와 다산의 바알 신앙으로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 버렸듯이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상을 잃어 버리고 천당을 성공과 번영의 금장색으로 채색되었습니다.
천국을 잃어 버리고 천당을 비전으로 성취하기 위한 종교적 열정은
종교적 포풀리즘을 통하여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를 현세적 무속신앙의 늪으로 가졌습니다.
신약의 복음서와 서신서는 한결같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으로 가득하고 충만한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 버린 에베소 교회처럼 촛대가 옮겨질 것이라는 강한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질문하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 동안 얼마나 성경의 본질에서 왜곡되었는가를 말해줍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이해하는 기본에서 너무나 멀리 있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구원의 본질마저도 에덴 동산의 하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흐려져 있습니다.
무슨 설교를 듣고...무슨 기도를 하고....
무슨 큐티 모임을 종교적 열정으로 가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믿음을 신념으로 가르치고.....천국을 천당으로 사모하고.....십자가 복음을 성공과 번영의 영매로 변질시키고....
계시의존 신앙을 인본주의 무속 신앙으로 종교적 바벨탑을 쌓은 결과를 가진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서 어른과 제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거짓을 좋아하고 행하며.....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노아의 때와 예레미야의 떄처럼 행하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천국으로 가진 사람과 천당으로 가진 사람은
실제로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천국으로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 상급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천당으로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 상급의 차등을 주장합니다.
하나님 나라 상급의 차등을 말하는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단과 시이비의 주류를 유사 기독교로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 상급의 차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천국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개혁주의 신학의 틀을 가졌어도 천당으로 믿음의 실적을 쌓는 인본주의 신앙의 늪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천국에 개털 모자를 쓴 사람들이 있고.....
천국의 우체통을 말하며 이 땅에 살 동안 기도하지 않아 쌓여 있는 개인의 보물 창고가
그대로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천당으로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자기 백성을 삼으시는 인류의 구원 계획과 역사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성취"라는 성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을 주변으로 아는 사람들은
"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로 망하는도다"는 호세야의 탄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상급을 천당의 크기로 가지는 구원의 차등이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공로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립니다.
죄인의 괴수로 오직 예수님의 의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도 바울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거하는 처소인 성전으로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아가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 원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논리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교회 조직으로
하나님 나라 이상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프렌차이즈식의 시스템화된 복음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마케팅 전략을 가진 인본주의 신앙의 포스트 모던의 종교입니다.
천국의 모형을 프렌차이즈식의 시스템화된 복음으로
자본주의 방식의 성공과 성장을 지향하였던 유사 기독교는
인본주의 현세적 무속 신앙의 본질을 가졌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주권적인 성령의 세례로 진리의 복음을 메시야 사역으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 베푸는 것을 메시야 사역으로 예수님을 증거한 세례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약대 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복음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천국이 가까왔다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광야의 소리로 메이리쳐야 할 것입니다.
풍요와 번영은 세상 나라와 종교가 욕심으로 이루는 것으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 베푸는 메시야 사역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증거한 사도 바울은
복음이 전해진 곳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 영원한 성전인 예수의 하니님 나라를 확장하였습니다.
바울의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전하여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머릿돌 되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믿음으로 성전된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연결된 예수님의 성전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시는 처소인 성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약속과 성취"라는 구원역사로 나타났습니다.
진정한 복음의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영원한 성전으로 존재하는 것은
만상을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역사입니다.
영롱한 아침 햇살을 거부하고 .....
반디불을 모아 어둠을 밝히려는 창의적 신앙의 인본주의 종교적 이상으로
천당을 만들어 가는 종교적 열정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역동적으로 이루어 가지만
인본주의 이상의 신앙심으로 만들어 가는 천당은 잘 해야 개털모자일 것입니다.
칼뱅과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이룩한 하나님의 주권과 믿음의 역사로
믿음의 실적으로 만든 천당이 아닌 진정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천국으로 누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