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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초 4회 정기산행(운길산)때
산행 끝나고 두물머리에 둘렀을 때
동네 사람에게 등산추천 부탁했더니
근방에 부용산이라고 좋은 산이 있다고 하여
42년된 우리 직장입사동기들과 함께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알아보러(ㅎ)
부용산에 갔드랬었었습니다.
우선 맛보기로 ㅎ
중앙선 신원역에서 내려 가는 길에 몽양 여운형의 기념관과 생가가 있습니다.
내 친구의 산행기를 옮겨봅니다.
오늘 서울 강남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제1회 워싱턴에 이어 제2회 “2012 서울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53개국정상과 4개국제구대표를 이명박대통령이 맞이하느라 지하철도삼성역을 통과하는 복잡한 서울을 떠나 물 좋고 공기 맑은 양평 부용산에서 금년 들어 처음 갖는 등산모임을 시작했다.
회원 10명이 상봉역에서 만나 용문행 전철을 타고서 구리, 팔당, 양수리 등 남한강을 거슬러 강줄기 따라 달리는 전철은 이른 봄 쌀쌀한 바람도 이제는 훈기가 숨어있는 봄기운을 가누면서 시원하게 달린다.
산천의 나무들은 아직도 두툼한 겨울 옷 속에서 봄의 아름다운 새싹을 내보이기 위해 땅속의 물을 뿜어 올리느라 분주하는데 생각나무는 벌써 못내 봄기운에 취해 참지 못하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모임 후 3개월 방학 끝에 다시 만난 친구들의 얼굴에서도 추운 겨울을 숨죽여 참아온 매화꽃송이처럼 그렇게 밝고 건강한 기운을 엿볼 수 있었다.
신원역에 내려서 택시운전사에게 부용산가는 초행길 물으니 택시를 앞세우고 친절하게도 길을 안내해 준다.
요즘은 지방에서도 관광객유치를 위해 주민들 마다 친절하고 산마다 입구에서부터 이정표가 어서 오라고 미소 짓고 손짓한다.
산 어구에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생가 기념관이 아늑한 능선아래 자리하고 있었으나 오늘이 하필이면 월요일이라 문을 굳게 닿아 두고 있었다.
여운형(呂運亨:1886-1947)
독립운동가‧정치가. 본관은 함양(咸陽). 아호는 몽양(夢陽). 경기도 양평 출생.
15세에 배재학당(培材學堂)에 입학, 성경공부를 하여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1908년경에는 미국인 선교사와 친분을 맺었으며, 그의 도움을 받아 1909년 사립기독광동학교(私立基督光東學校)를 세웠다. 1914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의 금릉대학(金陵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1918년상해에서 청년 동포들을 규합하여 민단(民團)을 조직하여 광복운동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또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조직하여 총무간사에 취임하기도 하였다.1919년 3월 임시정부 수립에 가담하여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였다.
조선중앙일보사(朝鮮中央日報社)사장에 취임(1933)하여 언론을 통한 항일투쟁도 하였다.조선체육회장직에 취임하였으나 1936년 손기정(孫基禎)선수의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가 폐간되자 사장직을 물러났다(1934)
1945년 광복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를 조직하고 그 위원장이 되었고, 9월에는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을 선포하여 스스로 부주석(副主席)에 취임하였으며, 10월에는 인민당(人民黨)을 결성하여 당수직에 앉았다.그러나 당시의 정치정세로서는 사회노동당에 대한 좌우양쪽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는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이라는 19세의 소년으로부터 2발의 권총사격을 받아 절명하였다.
여운형의 생가가 양평군 신원리에 있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생가 기념관에 직집들어가보지 못하였지만 이렇게 등산길에서 역사적인 현장을 접하게 되면 뜻밖의 횡재라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다.
부용산(芙蓉山:366m)은 이름 그대로 주변이 연꽃으로 가득하다해서, 또 산 푸르고 강물 맑아 연당(蓮堂)에서 얼굴 마주 처다 보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두물머리 세미원에는 다양한 종의 연꽃밭이 양수리의 관광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산이 부용과 같아서 인지 산이 크지는 않지만 흑산으로 산세가 아늑하고 산 남쪽으로 남한강이 길게 흐르고 있어 명당임을 미리알고 비석을 세운 무덤들이 발길마다 많다.
금년 들어 처음 시작하는 등산임으로 힘들지 않고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를 잡아야하는데 어디로 할까 고민하였는데 박영선 친구추천으로 잘 선택한 것 같다.
부용산 자체가 높지 않아 정상이 우뚝 솟은 봉우리도 아니고 편편하게 넓게 잡은 묏자리 잔디밭이여서 정상주 나누기에도 좋았다.
정상에 전망대가 있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또한 일품이여서 오늘 여길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턱 아래 두 물머리 두 줄기 강물이 합수하는 길목은 마치 조그마한 나룻배에서 신선이 낚시를 하고 있는 형상이여서 동양화 한복에서 한가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멀리 새로 난 양수대교가 두 강줄기위로 시원스럽게 걸쳐있고 그 위로 자동차들이 개미떼처럼 분주함은 도시의 지옥으로 가는 길 같아 천국과 속세를 함께 버무는 혼돈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좌로부터 검단산, 예봉산 , 운길산, 등이 눈앞에 가로질러 거기도 한번 다녀가라는 손짓을 마냥 하는 것 같아 그래도 아직까지 큰 죄 짓지 않고 살아왔음을 저희들만이라도 알아주는 것같아
그것으로도 서럽지 않구나.
사실 일찍이 고향 남도 벌교읍내를 품고 있는 포근한 산, 그러나 슬픈 사연이 있는 부용산을 오른적이 있는데 거기에 “부용산 오리 길” 이란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용산 오리 길
1.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 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2.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 시는 해방 후 벌교상업학교 “박기동” 이라는 국어선생이 벌교에서 여동생과 자취생활을 하던 중 열여섯 나이의 여동생이 그만 폐병으로 세상 뜨자 그 주검을 부용산에 묻고 읊은 시(詩)다.
그 후 박기동선생이 목포항도여중하교에 전근되어 당시 안성현 음악선생이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 남도사람들이 즐겨 불렀었는데 음악선생 안성현이 6.25때 월북하자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으나 특히 빨지산 애창곡이 되어 지하로 숨어 구전되고 있다.
이 노래 시비가 목포항도중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다.
남도 사람들은 누구나 이 슬픈 노래를 한번쯤 불러보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늘 여기 부용산과 관계가 없는 사연이지만 옛날 내가 넘었던 부용산은 하얀 치마와 적삼을 입은 청상과부가 어느 봄날 벌교앞 바다 바람에 치마폭을 날리며 잊지 못할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던 애달픈 사연의 길이 있는 산이였기에 한번 여기 적어 본 것이다.
오늘 우리는 봄맞이로 찾아 온 산이 부용산이였는데 얼마 전 춘분이 지났는데도 아직 봄은 봄이로되 봄은 아니 와 있었다. 봄의 여신이 아직 아니 온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봄의 여신, 자하세계의 여왕 페르세포네가 있다. 페르세포네는 마음데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컴컴한 땅속세계을 지키다가 봄이되어야 비로소 땅위로 올라가서 마음껏 세상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새콤달콤 맛있는 석류 때문이다.
어느 날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에게 반한 지하의 왕 하데스는 싫다는 그녀를 억지로 지하로 끌고 간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 제우스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제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도와주겠오. 하지만 만일 따님이 지하의 그곳에서 음식을 먹었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지하의 음식을 먹은 자는 모두 그곳의 시민이 돠고 말지요”
안타깝게도 페르세포네는 이미 석류를 한입 베어 먹은 상태였다. 그래도 어머니의 간곡한 소원에 힘입어 다행히 일 년 중 반은 땅위에서 살수있게 되었다.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하는 힘을 가진 페르세포네가 올라오면 여기저기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코끝에 찬바람이 느껴지면 그녀는 다시 지하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녀가 없는 세상은 모든 활동을 멈춘 채 꽁꽁 얼어 붇게 된단다.
봄에 푸른 잎은 그녀가 푸른색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고 봄꽃이 붉어나 하얀 것은 빨간 석류를 깨문 그녀의 붉은 입술과 하얀 이빨 때문이라 한다.
여기서 유래 되 아마도 봄날을 “봄 처녀” 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옛날 세느강(하월곡동 복개천) 술집에서 옷고름 풀었던 아가씨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 라고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그때부터 봄은 내에게 연분홍색으로 다가왔다. 예나 지금이나 추억속의 봄 처녀는 어김없이 화사한 분홍색으로 단장한다.
정말 여성들은 원래부터 붉은 색을 좋아했을까 ?
일반적으로 남녀불문하고 푸른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좋아 했다고 한다. `
여성이 푸른색 중에서도 붉은 빛이 도는 색을 좋아하는 것은 남성은 사냥하고 여성은 과일을 채집하던 원시시대에 잘 익은 과일을 찾아 경쟁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분홍색에 대한 본능적 선호가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한다.
이런 연유로 꽃피는 봄을 여자에 비유하고 가을 단풍 등 풍류를 즐기는 계절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을런지도 모른다.
어쩠든 봄은 얼어 붙었던 굳은 땅이 풀리고 새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새들 짝짓기 하는 만물이 새로운 희망을 갖는 가슴벅찬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그 뒤로도 고향마을에 벚꽃이며 복사꽃이 화사하게 필 때면 봄 처녀를 생각하곤 했다.
봄은 그렇게 진정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조그마한 보잘 것 없는 풀꽃에서 진달래 살구꽃까지 봄에는 봄이 되면 연분홍빛 색깔로 변하고 있었다.
그 옛날 젊은 날의 새봄은 어느 시인처럼 “봄이 온통 탄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는 꽃잎은 덧없음을 잔인하게 일깨워 준다는 4월 한낮을 “창백한 학살”이라고 탄식한 시인 마음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 탄식한 시인은 봄의 환의와 절망을 “찬란한 슬픔”이라고 모순어법으로 시를 읊었을 것이다.
봄은 온다. 기어이 온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에 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봄은 생명이요 기운이다.
그러나 봄은 항상 내게 생명처럼 기운을 돋지는 못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몸이 늙어지면 마음도 늙어감을 이제야 알게되니 자꾸만 슬퍼진다.
회색빛 아파트 속에서 회색 아스팔트길위에서 하루 종일 회색빛에만 젖어 사느니 언제 연분홍빛 봄날이 오고 가는지 조차도 모르고 사는 인생이 어찌 슬프다 아니 하리까.
그러나 나에게도 다가오는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조그마한 빛의 봄일지라도 그 봄을 찾아 나서야 되지 않을까 싶다. 봄은 언제나 기어이 오고 갈 것이다.
부용산 정상에서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양평만의 “지평” 막걸리로 거나하게 정상주를 하고나니 다리가 후들후들 하산 길 조심해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또 한 번의 하계산 정상 전망대에서 더 가까이서 남한강 두 물머리를 다시 내려다본다.
아직 이른 봄 오후 햇빛이 남한강 물비늘에 반짝이며 나에게 따스한 체온으로 달려든다.
이제는 양수역에서 서울로 가는 전절을 타고서 상봉역에 내려 친구가 말하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순대집에서 순대모듭에 소주 한 잔으로 오늘 하루 품을 내려놓는다.
다음 달은 어느 좋은 산을 정해야 할 것인가 지금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정상 바로옆에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
정상에서 바라본 운길산
정상전망대에서
저 멀리 두물머리가 보입니다.
정상에서 막걸리로 회포를 풉니다.
양수리쪽으로 하산합니다.
중간에 하계산이 있습니다.
하계산 전망대---두물머리가 더욱 가까이 보입니다.
역광이므로 경치는 포기하고 인물위주로
휴식시간에 대책없는 시국토론을 합니다.---여태까지 수십번 햇지만 오늘도 결론이 없습니다.
몬 얘기를 한건지~~~ ㅎㅎㅎ
몬가 모의를 합니다.ㅎ
상봉역에서 내려 뉴욕에도 없고 런던에도 없다고 우기는(ㅎ) 순대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합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잘하는 순대국밥ㅎ
모듭순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죽은 사람은 모릅니다.ㅎ
이 집이 어느집인지는 우리도 어렵게 찾았으므로 보안상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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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듬순대가 쥑여주네요,,,,,,,,쩝,,,,,,,,,,,
다음 산행때 상봉에서 내리면 가차없이~~~ㅎ
선배님 저도 모듬순대 먹고싶어용. ㅎㅎㅎ
산행 무지 힘들었겠당
고소증으로 거의 실태였지.
고소증 그거이 아주 무서분 것인디....
몽양 선생님
전기를 읽어 본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봐야 할듯^^
ㅎㅎㅎ
좋은 하루^^
의외로 건졌지.
번개 한번 해요
벙개치기엔 약하고 양수리역에서 출발하여 부용산-하계산 -형제봉 또는 청계산과까지 연게등산해야 차비라도 나올 듯~~~ㅎ
절절하게 읽혀지는 후기 참 인상적이에요
어느분의 글인지 진한 감동을 받으며
정다운 산행 감사히 즐감합니다 ^^**
이 친구의 글을 몇번에 걸쳐 우리 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지롱.
한결 같으신 모습이 보기 좋아 제 마음도 훈훈해 집니다.
진평막걸리 한번 꼭 마셔보고싶은 막걸리인데,맛이 과연 좋았는지요.....4대째 내려오고있다는데,거기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