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내에 나갔더니 옛 만경관이 있던 자리에 롯데시네마 표시가 되어있었다. 만경관이
없어진다는 얘긴 들었지만 롯데시네마에 넘어갈 줄은 몰랐다.
롯데시네마 같은 대형 극장체인들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경쟁도 중요하지만 문화에 경우는 다양성도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규제와 통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마치 대학입시에서 지역 특별 전형 등 무조건적 경쟁을 보완하는 제도가 있듯이 문화 방면에서 다양성을 위한 통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난 영화관에서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2년에 한 편 정도? 그런데 최근엔 조금 더 자주 본 것 같다. 그런데 전부를 만경관에서
보았다. 조용하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 ‘빈센트’.‘아이캔 스피크’,‘1987’ 등이 내가 가장 최근 만경관에서
본 영화들이다.
그러나 내겐 좋았던 그 조용함이 결국은 만경관이 문을 닫는 조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대구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어쩌면 타이틀 그 자체가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만경관’의 폐관은 가슴 아픈 일이다.
만경관은 1922년에 세워진 유서깊은 극장이다.
대구 최초의 극장은 1910년 대에 등장한 ‘대구좌(대구좌)’란 극장이다.
그 뒤 1920년, ‘조선관’,1922년 ‘대구극장-(대경관, 호락관
등으로 이름이 바뀜, 극장형태를 갖춘 최초의 극장, 곧 없어짐)’이 생기고, 이 시기에 한국인이 세운 만경관, 일본인이 세운 ‘영락관(뒤의 자유극장)’.신흥관(뒤의
송죽극장) 등이 생겼다. 그 뒤 키네마(뒤의 한일극장)가 생긴다.
1994년 옛 한일극장의 모습이다.
지금은 이름 빼곤 남은 모습이 없다. 극장 앞에 대형 광고판이 정겹다...
만경관과 대구중부경찰서 사이 도로
만경관이 있는 주변 일대(서문로, 포정동, 향촌동, 종로)는 일제강점기부터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구의 중심가였다.
사진에 보이는 만경관 북쪽 대구중부경찰서 4거리는 1909년(1912년 확장)에 만들어진 대구 최초의 4거리(십자도로, 폭 약 10.2미터)였다.
지금은 중앙로
동쪽이 대구의 번화가이자 상권의 중심이 되었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만경관 주변 지역은 공공기관이
줄지어 서 있고 유흥가가 밀집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1950년대의 만경관
현 건물의 이 쪽이 원래 정문이 있던 곳이다.
한국전쟁 직후 대구를 무대로 한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에도 만경관이 언급되고 있다.
같이 신문을 돌리던 한주를 정오 싸이렌이 불고 난 뒤 만난 곳이 대구경찰서와 만경관 사이였다.(2005년11쇄,208쪽)
1954년 신문에 실린 만경관의 영화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의 광고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에서는 송죽극장의 것으로 나온다. '입간판 그림도 서양남녀가 껴안고 입을 딱 맞추려는 장면이었다'(39쪽)
'마당깊은 집'에는 송죽극장 일대가 몇 차례 나오는데, 맞은 편에 자유극장이 있던 그 골목은 당시나 70년
대까지 대구의 번화가였다. 지금은 송죽은 이름만 남아있고, 대구 영화관 역사의 산증인들인 자유극장이나 송죽극장이나 모두 사라지고 없다.
골목을 빠져 나와 동쪽으로 더 가면 양키시장으로 불린 교동시장이 나온다. 지금은 호시절이 다 지나간 시장이지만,
만경관은 내 기억 속 최초의 영화관이다.
어린 시절(1961년) 부모님과 함께 최은희 주연,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을 본 것이 내 기억 속 최초 영화 관람이다. 추석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 너무나 많았던 관객들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가 만경관에서 마지막 본 영화는 지난 2월 17일 강동원 주연의 ‘골든 슬럼버’였다.
제목은 번역하면 ‘달콤한 선잠’ 정도
될 것 같다.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伊坂幸太郞)의 2007년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것인데, 일본서도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솔직히 영화 자체로는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메시지가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작품성에 대한 아쉬움은 영화 마지막에 매력적인 미소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강동원의
모습만으로도 벌충할 수 있었다. ㅋ
개인의 평범하고
자족적인 삶이 국가라는 거대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짓밟힐 수 있고, 그 앞에서 개인의 힘은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 그러나 그래도 희망은 일상을 사는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 Golden Slumbers’, 1969년 발매되었다. (앨범 Abbey Road), 폴 매카트니가 곡을 썼고 노래를 불렀다.(존
레논은 이 곡에서 빠졌는데, 당시 부상 중이었다)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는 LP이다.
가사는 1603년 dekker의 것을 매카트니가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번역은 내가 했고 책임은 당연히 못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