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대본을 썼던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이 작품의 대본도 맡았다. 다 폰테는 1787년 5월 중순에 대본을 완성했으며, 모차르트는 그 해 여름 내내 오페라를 작곡했다. 10월 초, 모차르트는 거의 대부분을 완성한 〈돈 조반니〉 악보를 들고 프라하 여행길을 떠난다. 본래 10월 14일에 상연될 예정이던 초연은 29일로 미뤄졌지만, 프라하에서의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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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시기에 작곡된 오페라
이 오페라를 작곡할 무렵, 모차르트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음에도, 주변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모차르트가 31세가 되는 1787년 5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났다. 콘스탄체와 결혼한 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그의 삶은 더욱 불행해졌다.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에 가담하면서 빈 도시 전체가 얼어붙었고, 예술에 대한 황실의 보조금도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모차르트의 음악회를 찾는 관객의 수가 줄었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더욱 불안했다. 모차르트가 빈에서 가장 부유한 거리에 집을 얻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이 불과 7년 전의 일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제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보다 수입이 줄어든 모차르트는 빈 외곽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아내의 병 치료를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을 위해,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