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독일 유학을 다녀왔다는 어떤이가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을 아주 나쁜 사람이라며 세종대왕까지 헐뜻는 얼빠진 사람의 헛소리 로 들리는 글을 읽다가 생각나서 이글을 올립니다.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먼저 60여년 전에 독일에 유학가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안호상박사와 최근 독일 유학을 다녀온 신모박사의 얘기를 하렵니다. 안호상박사는 중국유학과 독일유학을 다녀왔어도 제나라 말글을 사랑 하고 민족종교지도자로 활동하고 계신분입니다. 90대 할아버지로서 혼자 몸관리도 힘든데 어제도 한글을 살릴일을 의 논하는 모임을 주재하셨습니다. 어제도 요즘 일고 있는 영어조기교육 을 걱정하셨습니다. 초대문교부장관으로서 이나라 건국에 크게 이바 지 한 분인데 장관으로 있을때 국민들이 너무 영어과목을 중요시 해 서 영어교육시간을 줄이고 선택과목으로 추진하려다 장관 해임되어서 못했다면서 아쉬워하셨습니다.
안박사는 왜정때 일본식민지 국민이면서도 중국과 독일유학을 다녀오 고서도 한글이 우리민족을 똑똑하게 만들고 한국을 세계적인 나라로 만 들 연모라는 것을 깨닫고 일제말기 우리말글을 살리기 위해 한글사전 에 관여하다 조선어학회사건에 걸려 조사도 받고 초대 문교부장관으로 서 한글 전용법을 초안한 분입니다.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이렇게 즐겨 쓰게 한 씨앗을 뿌린분이지요. 안박사님으로 부터 직접들은 이야기인데 국무회의에 한글전용법안을 상정했을때 어떤 장관이 한글은 무식한 사 람이 쓰는 글자로서 한글만 쓰며는 국민이 모두 무식해진다며 반대하더 랍니다. 그때 안박사는 그분에게 "무식한 것이 무슨뜻이냐? 당신이 한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진짜 무식한 것 이다. '좋다'를 '조타'로 쓰고 '책을 읽으며'를 '책을 일그며'로 쓰 는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다"라고 면박을 주고 설득해 한글전용법을 만 들었고 국회에서도 진짜 무식한 사람들이 한글쓰면 당장나라가 망할 것 같이 난리폈으나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겪은 뒤라 애국자가 많아 통과 되었답니다. 안호상박사야 말로 유식한 분이고 선각자이며 문화 문명의 본질을 안분이라 생각이 됩니다. 세계적인 문자가 천대받지 않게 하시고 한국인들을 문맹민족의 대열에서 구제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분의 독일 유학생은 서울공대를 나와 독일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2년전에 귀국한 신모박사얘기입니다. 2년전 조선일보가 국제화라는 구실을 앞세워 한자(漢字)가 국제글자라 며 한자복권운동에 미처날뛸때 한글을 사랑하는 우리들은 조선일보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못된짓을 막기위해 강연회를 열때였습니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이름으로 한겨레신문에 우리뜻을 밝히는 광 고를 냈는데 여러분이 격려와 찬동의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그때 독일에 서 갓돌아온 신박사가 저와 활동을 같이 하겠다고 전화를 해서 만났습 니다. 어떻게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 물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독일 유학중 중국인등 외국인과 함께 생활을 했는데 중국유학생이 우월의식을 가지고 한국인인 자기를 항상 무시하더랍니다.그래서 독일인 과 아프리카인등 외국인이 있는 자리에서 두 민족문제로 토론이 있었답 니다. 그때 자기는 5천년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의 긍지와 자주성을 열심 히 설명했는데 그 중국인은 "한국이 수천년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은 민족 이고 지금도 중국의 정신적 문화적 속국이다. 중국글자 없이는 글자생 활을 못하고 있다. 그 증거가 이 신문이다."라면서 신박사가 구독하는 한자혼용 한국신문을 내 놓드랍니다. 그러니 자기 주장은 거짓말처럼 돼 버렸고 중국인의 말만 믿고 아프리카인까지도 자기를 무시하더랍니다. 그 뒤 중국인은 매사 한국인인 자기를 무시했고 그와 멱살까지 잡는 충돌까지 있었답니다. 그를 이겨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으나 회복불능이었답니다. 신박사는 고민끝에 한자혼용신문을 안보고 한글만 쓴 한겨레신문이 창간 되었다는 말을 듣고 한겨레신문을 신청해 ?い렝만? 그 신문을 그 중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며 우리는 이 글자는 우리가 만든 것이고 이 글자때문에 문맹자가 하나도 없으며 머지 않아 우리가 이 글자를 이용해 선진국이 될 것이라 설명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그 중국인은 아무말 을 몰하더랍니다. 그후 그 중국인은 신박사의 손안에 들어와 기를 피고 지냈답니다.
그런데 한글이 그렇게 훌륭하고 한자나 영어 아닌 우리말 한글로도 첨단 물리학 수학공부도 할 수 있는데 한자를 무시하는 조선일보와 일부 한국 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우리 모임에 들어와 함께 활동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큰박수로 맞이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배가 대학강사자리를 소개할테니 이력서를 써 오라해서 한글만으로 이 력서를 써 같더니 한자로 써야 다시 쓰라고 선배가 말하더랍니다. 독일에서의 이야기와 저를 만난일을 말하니 그 선배가 현실을 모른다 며 설득하더랍니다. 저는 그분께 신박사 선배의 말이 옳다면서 전임강사 가 되기 전에는 내색하지 말고 우리와 활동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어려운 공부가 한글때문에 빛을 못보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긴 얘기가 되었지만 같은 독일 유학생이라도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있 을까 함께 생각해보고 싶고 아무리 국제사회가 영어를 필요로 하고 미국의 속국이라도 터놓고 하늘같은 한글과 세종대왕까지 헐뜻는 한국의 얼이 빠진 핫바지 지식인들이 많은 것이 안타까워 써 봤습니다. 한글은 우리글자이기 때문에 쓰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만든 빼어난 문하유산입니다. 저도 한글을 사랑하지만 내것만이 제일이고 외국을 무조건 싫어하지 안습니다.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이 짓밟혀도 아무말 못하는 젊은이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첫댓글30여 년 전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 공병우 박사로부터 셈틀로 글을 쓰는 것을 배워서 자판을 안 보고 글을 쓰기는 했지만 다른 이의 글을 보고 바쁘게 글을 쓰다보니 오타와 맞춤법 틀린 것이 많습니다. 공병우 박사님이 그해 3월 7일에 돌아가신 뒤 저도 날마다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하이텔이 없어져서 일부를 트스토리와 제 블로그에 바쁘게 볼사해 옮깄습니다. 언제 시간을 내 그 때 글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때 역사요 우리 현실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30여 년 전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 공병우 박사로부터 셈틀로 글을 쓰는 것을 배워서 자판을 안 보고 글을 쓰기는 했지만 다른 이의 글을 보고 바쁘게 글을 쓰다보니 오타와 맞춤법 틀린 것이 많습니다. 공병우 박사님이 그해 3월 7일에 돌아가신 뒤 저도 날마다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하이텔이 없어져서 일부를 트스토리와 제 블로그에 바쁘게 볼사해 옮깄습니다. 언제 시간을 내 그 때 글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때 역사요 우리 현실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