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름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지리산 주릉 천천히 걷기. 일부 발췌-
한때 산꾼들의 로망이었던 코스가 있었다. 장비도 변변치 않던 시절 배낭의 무게 등으로 일시종주가 어려웠던 때 지리의 가장 긴 능선으로 알려진 화엄사와 대원사를 잇는 코스로 이를 줄여서 ‘화대종주’라 불렸다. 44.2km나 되는 그 긴 거리를 당시 꾼들은 1박2일, 2박 3일로 걸었다. 그렇게 난이도 있는 코스로 알려졌다. 아직 ‘extreme'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그 거리를 일시에 종주한다는 건 아무래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으리라. 그런데 체력도 좋아졌고 장비도 좋아진 지금 그 ‘화대종주’를 ‘일시종주’라는 이름으로 ‘한방’에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코스가 됐다. 이 화대종주의 44.2km는 공단에서 측정한 숫자이므로 이제 ‘화대종주 44.2km’는 공식 거리로 못 박으면 되겠다.
주지하다시피 이 코스는 대원사~치밭목대피소~중봉~천왕봉의 대원사 코스와 지리 주릉 그리고 주릉의 코재~화엄사의 이음이다. 생각해보면 산경표가 알려지기 이전인 1990년까지는 중거리 산행을 꿈꾸는 이들이 꼭 한 번쯤은 걷고 싶어 하고 동경하던 그런 종주코스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이 알려지고 정맥, 지맥 산행이 일반화되면서 예전의 명성은 약간 빛을 바란 느낌은 있다. 하지만 매년 시행되는 ‘화대종주 산악마라톤 대회’와 항상 지리산을 그리거나 예전 시절을 꿈꾸는 올드팬들로 꾸준하게 그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지리산 하면 그래도 ‘화대종주’이기 때문이다.
연기조사가 창건한 양대 사찰은 산청군과 구례군을 대표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화엄사는 544년, 대원사는 548년으로 창건 연대는 각 다르지만 화엄사는 화엄사상의 종찰로, 대원사는 선불간경도량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은 비구니 도량으로도 유명한 대원사가 있는 유평계곡은 지리산 중봉과 새봉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은 덕천강이 흐르는 계곡으로 그 길이만 해도 약 12km 정도 되니 그 계곡의 아름다움이란 필설로 다하긴 어려울 것 같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536쪽
현재 노고단에는 호텔시설이었던 석조건물 한 동만이 그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서 있다. 그 후, 1960년 경부터 지리남부의 왕시루봉에도 위 남장로회에서 1차 때와 같은 이유로 장소만 바꿔 휴양지가 조성되었다. 1962년 휴 린튼(한국명 인휴, 1926∼1984) 선교사에 의해 건립된 이 단지는 현재 집 10채와 교회 1채, 창고 1채 등 총 12채가 남아 있다. 이 건물들은 미국·영국·호주·노르웨이 등에서 온 선교사들이 자국의 건축 양식에 온돌과 아궁이를 가미해 지은 집들이어서 건축학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실제 지금도 철제 변기, 세면기, 침대나 벽난로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휴양촌의 설립자 휴 린튼은 현재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국인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인요한 박사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1895년 호남 지역에 파견된 유진 벨 선교사의 사위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일제강점기 때 항일운동에 참여했고 이 공로로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인요한은 1959년 태어났는데 1993년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했고, 26차례 방북해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여 2005년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다. 그는 위 유적지를 보존하기 위하여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의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1984년부터 지금까지 자비를 들여 수양관을 관리해왔다.
그는 한국 개신교의 초기 선교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점을 안타깝게 여겨 노고단 예배당 유적과 왕시루봉 선교사 수양관 등 두 곳을 등록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사실 이곳 왕시루봉 일대는 1300m 정상부에 넓은 초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정상에서 전망하는 수려한 경관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2017년 3월부터 2027년 2월까지 출입금지구간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리산 반달곰의 중요 서식지로 확인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여러 희귀 생물들이 분포되어 있는 지리산의 핵심 보존지역이기 때문에 이런 사업은 환경 관련 단체로부터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312쪽
"여기 이름 좀 바꿔야 하지 않나?"
"무슨 얘기. 이 바로 뒤가 예전 그 심원마을과 연결되는 루트고 거기에는 저연猪淵이라는 멧선생 목욕탕이 있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야. 그냥 집돼지의 豚이나 亥가 아니라는 말씀"
붉은 기운이 올라옵니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납니다.
"피아골 가본 지도 오래됐다. 재작년인가 해밀에서 단풍놀이 왔을 때 내려가 보고는......"
이 샘물은 사실 1969. 8. 10. 중산리를 출발하여 화엄사로 진행하는 이른바 중화中華종주산행을 하던 서울 천호상고 천호산악회 인솔교사였던 초당 정영기 선생님이 이 샘을 발견하여 '천호샘'이라 명명하고는 나무를 깎아 이 이름을 새겨두었으니 이 샘의 이름을 천호샘이라 불러야 하지 않았을까요?
마치 1955. 5. 5. 연하반 산악회에 의해 연하천이나 산희샘이 그 이름을 갖게 되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후배 '몽화'님이 갖다 놓은 국자로 물 한 모금 마시며 자리를 뜹니다.
-“반야봉 뒤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이곳이 경남․전북․전남의 경계점이다. 경상남도에서 전라북도 다음은 전라남도로 순식간에 밟아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 뿐이다.
반야봉(1751m)을 오르지 아니하고 산허리를 따라 내리막 길을 달렸다. 계곡은 깊은 숲속 원시림이었지만 산등성이는 넓은 평원이었다. 이곳이 임걸령이다. 샘물이 언덕에서 수도꼭지처럼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샘이 지도에도 이름이 없다니, 나는 대검을 뽑아서 샘가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루턱을 깎았다. 그리고「천호샘」이라 이름을 지어 칼로 새겨놓았다.
대원들은 모두 손뼉을 치면서 좋아라 하였다. 나무가 썩고 이름이 지워진다면 돌로 새겨놓아야지. 「천호샘」물로 밥도 지어 먹고 등목도 하였다.
임걸령에서 남동쪽으로는 피아골 그 아래는 연곡사가 있고, 북서쪽으로는 심원과 남원이 있다. 서쪽 가까이 노고단(1508m)이 보였다. 이제 14km만 가면 지리산 종주 종점 구례 화엄사가 나온다.
-정영기, 지리산 종주 등산 P.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