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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사랑 "존레논과 오노요꼬" "세기의 사랑"이라 불렸던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1940년 10월 9일 출생. 1966년 오노 요코를 만남"
위의 짧은 글은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단 한 줄로
표현한 자신의 프로필입니다.
존레논이 일본인 아내인 오노요코의 만남에 얼마나 큰 비중
을 두었는지 가늠이 됩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이야기는 '운명적 사랑'의 대표적인
예라 할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영혼의 동반자'로 받아들였으며, 모든 것
을 함께 나누었고,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
습니다.
1966년 11월 9일.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는 런던 인디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존 레논은 친구의 소개로 전시회 프리뷰를 보러왔었는
데, 요코는 그가 그 유명한 '비틀즈'의 멤버인지 전혀 알아보
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요코가 비틀즈 멤버 중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링고스타" 뿐이었다고 합니다.
"링고"는 일본어로 '사과'와 비슷해서요..
전시품 가운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의 열린 틈에 있는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들여다 보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느낀 레논은 사다리를 올라갔고, 작은 글씨로 쓰인 'yes'를 발견합니다.
후에 레논은 이 'yes'가 의미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큰 충격과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관객이 직접 못을 박는 '못박기 회화'를 보고 레논은 "내가 해보고 싶다"고
관심을 보였고. 요코는 "아직 전시회 오픈 전이니, 내일와서 해보라"고 거절하다
가, 그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럼 5실링을 내고 못을 박아보라"고 권합니다.
그러자 레논은 "그럼,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5실링을 내겠으니..
당신은 내가 상상의 못을 박도록 허락하면 된다"며 못을 치는 시늉을 합니다.
아래 글은 후에 이들이 밝힌 소감입니다.
"순간, 나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노 요코
"우리가 진짜로 만난 순간이었죠. 우리의 눈이 서로에게 멈추었는데,
그녀도 그걸 느끼고, 나도 그걸 느꼈습니다."-존 레논
당시 오노 요코는 서른 셋, 존 레논은 스물여섯. 당시 각자 배우자와 자녀를 둔
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끌림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같은 영혼을 나눈 자'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둘은 무척 다른
성장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노 요코는 1933년 2월 18일 일본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부모 덕분에 일찍부터 수준높은 음악,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18세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한 요코는 새러 로렌스칼리지를 나와 전위예술계에 뛰어듭니다.
반면 존 레논은 영국 리버풀의 노동계급 출신으로. 선원인 아버지 알프레드 레논
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이혼했으며, 생모인 줄리아는 재혼하면서 존을 이모에게
떠맡겨버립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레논은 폭력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문제아로 여겨지다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을 보고 기타를 사서 독학, 음악
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아마 오노 요코가 독립적이고 자아가 강한 여성으로
자란 것은 가정환경과 교육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존 레논은 그녀의 이지적인 면에 반했다고 하고,
"주변에 외모가 예쁜 여자는 많았지만, 요코처럼 지적인
여성은 없었다" 고 공공연히 자랑하곤 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르게 자란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요코는 존을 만나기 전까지 무명의 예술가였지만,
비틀즈나 존의 명성에 위축되는 모습은
눈꼽만큼도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예술이 비틀즈의 음악보다 우위에 있다는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자신과 비틀즈를 떠받드는
순종적인 여성들에게 질린 레논에게 이런 요코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이 만약 당신의 '진정한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
해 보라. 더 이상 술집에 가서 다른 남자들과 당구를
치거나 축구를 구경하고 싶겠는가.
물론 어떤 남자들은 사랑에 빠지고도 그런 친분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진정한 여자를 만난 순간, 그 동안 맺어
왔던 모든 인간관계들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John Lennon
예술과 인생을 공유하기 시작한 두 사람은 1968년 함께 [미완성 음악 1번: Two Virgins] 앨범을 발표했고. 이후 각각의 가정을
정리하고, 1969년 3월 12일 지브롤터에서 결혼합니다..
.
요코는 두번째 남편이었던 영화 감독 토니 콕스와 딸 키요코에게 떠나고, 존은 아내 신시아와 아들 줄리안을 뒤로 해야 했습니다.
특히 존 레논은 이혼을 위해 적반하장으로 신시아의 불륜을 이유로 들어 소송을 었었지만. 요코의 임신(이후 유산)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시아가 항소하는 등 질펀한 법정 투쟁이 이어지고. 결국 존이 아내에게 10만 파운드의 위자료와 생활비를 내기로
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비틀즈의 멤버이자 존의 절친한 친구였던 폴 매카트니는 아버지와의 이별으로 상처받은 줄리안을 위해 '헤이 주드 Hey, Jude
(원제는 줄리안의 이름을 줄인 'Hey Jules'였다고 합니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가족을 버리고 결합한 것에 대해 많은 비난이 뒤따랐지만, 둘은 개의치 않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함께 있으면 세상의 다른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던 그들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나는 신에게 감사한다. 네가 내게로 온 것을, 운명이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건 오직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고, 내가 어른이 된 건 너를 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John Lennon
두 사람이 신혼여행 퍼포먼스로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펼친 '베드-인' 반전 퍼포먼스.
존은 1970년 비틀즈를 공식 탈퇴하고 요코와 함께 '플라스틱 오노 밴드'를 결성하고. 서로를 사랑 뿐 아니라 일도 함께 하는
파트너로 여겼습니다.
비틀즈의 해체를 오노 요코의 탓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요코는 존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 계기로 작용한 것 뿐.
존 레논은 "그녀는 내가 가정보다 더 숨통을 조이던 비틀즈와의 결혼에서 뛰쳐나올 용기를 주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부와 명예, 매스컴의 관심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음악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되어버린 비틀즈가 존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요코는 그의 손을 이끌어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고.
두 사람은 반전 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비틀즈 시절의 존이 꿈과 사랑, 희망을 노래했다면,
요코와 함께한 존은 전쟁반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
했습니다. 대중스타에서 탈피해 전쟁과 자본주의의 왜곡에 도전하는 반사회적 기수로 떠오른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변화시켰지만, 존이 요코를
따라간 부분이 분명 더 많았다.
그에게 요코는 연인 뿐 아니라 어머니이자 정신적 스승
이기도 했고. 그의 음악은 물론 성격과 가치관도 요코를
따라 변해갔습니다.
페미니스트 운동을 주도했던 요코의 영향으로 자신의
가운데 이름인 '윈스턴(Winston)'을 '오노(Ono)'로
바꿔 '존 오노 레논'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견고하던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진 시기도 있었습니다.
레논의 마약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예술가로서 요코의 자존심이 문제의 계기였습니다. 존은 반전운동가로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 떨어지지 않는 '존 레논의 부인'이란 꼬리표는 요코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나는 존 레논의 부인이라는 고정 이미지로부터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그 전에는 가난하더라도 예술가라는 자부심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존과 살게 되면서 사생활이 없어졌어요.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오노 요코
재미있는 것은 존과 메이 팡의 동거가 요코의 허락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요코는 존을 홀로 둘 수 없다고 판단, 그를 돌보기에 메이 팡이 적격자라고 여겼습니다.
이 시기의 존은 폐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폭음과 난동을 일삼았고, 클럽에서 시비를 걸다가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후에 존이 요코를 떠나 메이 팡과 보낸 1년 반은 '잃어버린 주말 Lost Weekend'이라고 불려지게 되는데.
메이 팡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존과 나는 숨어있는 것이 아니었고. 요코는 우리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알고 있었고,
매일 우리와 통화를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나쁜 길로 빠진 아들을 버리지 못하듯, 요코는 별거 기간에도 존을 돌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상식적인 연인 관계를 넘었던 것입니다.
결국, 서로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은 재결합하게 되고, 1975년 요코는 마흔두살의 나이로
아들 "숀"을 낳읍니다.
마침 아이가 태어난 날은 10월 9일, 존의 35번째 생일
이었습니다.
존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아들을 돌보며 전업주부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였기에,
아들과 모든 일상을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5년간, 존은 음악과는 거리를 두고 오로지 가족을 위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요? 세계평화,
나 그리고 우리 엄마(요코)입니다."
-존의 아들 숀 레논
오노요코의 노래
1980년, 존은 긴 칩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아내와 공동으로 앨범을 제작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80년 12월 8일, 요코와 집으로 돌아오던 존은 광적인 팬이었던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의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5년간의 공백을 딛고 새 앨범 <더블 팬터지’>를 발표한 지 20일 만이었습니다.
존의 죽음을 돌이켜보며 오노 요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끔은, 그의 죽음이 꼭 꿈만 같아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느껴지죠.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냥 나 자신이었어
요. 하지만, 그가 나에게 다녀간 후로,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게 됐죠. "너는 변했어. 네 삶이 모두 변했어" 라고요....
존은 나를 감싸는 커다란 우산이었어요. 나는 아직도 그를 향한 감정이 살아있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이제 그를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혼자서 꾸는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해요.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서로를 세상의 전부로 여겼던 두 사람.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극적인 러브스토리로 회자됩니다.
만75세인 오노 요코는 지금도 미술 전시회를 열고
레논 재단을 운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작가 "애니 레이보비츠"가 찍은 유명한 컷입니다. 존과 요코가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사람들 눈에 요코가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는 최고
의 여성이다. 비틀스를 시작할 때부터 내 주변에
예쁜 애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들은 없었다.
난 늘 ‘예술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꾸어 왔다.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난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
"비틀즈 아니면 오노 요코,
나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 존 레논
위의 사진은 침대 시위 사진이 아니라 존 레논이
죽기전, 애니 레보비츠라는 유명 사진가가
이 두 부부를 찍은 사진이랍니다.
레보비츠가 존 레논에게
"요코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을 포즈로 보여줘요"
라고 말하자,
레논이 옷을 다 벗고 나와서는 저런 포즈를 취하며
말했대요.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랍니다"
라고요
↑오노 요코와 존 레논. 다코타 빌딩 집에서. 뉴욕. 1980년 11월 8일
"인생 자체가 예스입니다. 긍정적이란 뜻이죠. 세상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평화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겠습니다."
-오노 요코-
Write by..당신의... Stranger
Song is.. Imagine
* 세기의 사랑이라 불리는 존레논과 오노요꼬의 사랑이야기를
출석부에 올립니다.
즐감하세요...... ^*^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상큼한 가을 아침입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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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존 레논 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오노요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몰랏던 사랑 이야기![~](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었네요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오후에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건 시간 되소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수고 만으셨어요 ^*^ 루드베키아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보내고 계시죠? ^^
루드베키아님
오늘도 쿨한 수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남은 시간 쿨하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러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74.gif)
한 그영혼이 왠지 부러운 오늘입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가성으로 흉내내어봅니다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그 어느의 외부세계에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유인으로
감미로운 목소리에 점심은 안먹어두 배부른 점심시간
아
점심 정말 굶으신 거 아니죠? ^*^
남은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시길요.
와~우 멋져요..
저런 영혼의 교감을 느끼며 사랑한 사람들 참 행복하겠죠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wanting to be loved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Love is asking to be loved
Love is you, you and me
Love is knowing we can be
Love is free
Free is love
Love is living, living love
Love is needing to be loved
루드님의 깊은 정서와 사색을 보고 갑니다
남은 시간 편한 시간 되세요....멋진 출석부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
두 사람의 범상치 않은 사랑에 호기심과 함께 부러움을 짙게 느낍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가온 사랑 같지만 이성적인 의지가 깊이 작용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자세한 이야기와 사진 등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뵙는 듯하네요.. ^^
잘 지내시죠? 태풍피해는 없으신지...
요즘 시골 풍경은 정겹고 아름답겠네요. ^*^
그친구들 이해할려면 수준이 높아져야겠죠.......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희망적이지 않습니까...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 특이하지요...수고 많이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
아~~ 음악뿐아니라 사진도 예술이군요..
자유로운 생각들이 창작활동에도 많은 역할을 하나봅니다. 예술가적인 기질이 다분한 둘의 사랑이야기 잘 읽고갑니다..
Hey, Jude의 탄생이야기도 새롭군요..이노래를 처음 들었을때는 Hey,Joo로 잘못알고 DJ에게 신청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네요 ㅎㅎ 루드베키아님 감사~~
네. 감사합니다.
Hey,Joo 일화담 재미있네요. ㅎㅎ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