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 11. 28. 일요일.
오후에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나갔다가 길 건너편 석촌동으로 내려갔다.
석촌동 재래시장으로 가려고 걷는데 대로변 가로수 곁에 심었던 줄사철나무를 모조리 뽑은 현장을 보았다.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처리할 터. 쓰레기봉지가 꽉꽉 찼다.
줄기 몇 포기를 골라서 손에 들고는 집에 와서 큰 화분에 심었다.
살려서 내년 봄에 고향인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 심을 생각이다.
인터넷으로 '화망마을'을 검색하니 '카페'에서 아래 글이 떴다. 퍼서 여기에 올린다.
많은 글감이 떠오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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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고등학교 6회 2019년 송년회에 다녀와서
2019. 11. 28. 목요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 2층 아젤리아홀
충남고등학교 6회 재경, 대전 동창 합동모임이 18 : 00 ~ 시작되었다.
참석한 남학생 : 곽기욱 김규봉 김만중 김종관 문철호 박계원 배정현 백선기 손선웅 안경호 이길선 이영화 이정석 전기우 전철환 정희태 주종운 최윤환
여학생 : 강경숙 임영혁 정정숙 허명희 (임영숙 이선원 등 대전에서 올라온 여동창생의 이름은 나는 잘 모르겠다)
전기우 회장의 년말 송년회 개최 선언과 함께 회비 내역에 대한 경과 보고가 끝난 뒤 참석자 전원에 대한 인사소개가 있었다.
은행통장 계좌번호가 변경되었다고 알렸다.
KEB하나은행 299- 910091- 4XXX...
대전 김규봉은 금일봉을 냈으며, 대전 성심당의 빵을 가져와서 여동문한테 선물했다.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 문철호 외 여자 동창생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정말로 고마운 동창은 전기우 회장이다.
회장직을 수행한 지도 오래 되었다. 후임자가 없어서... 지금껏 재경충고 6회의 모임을 잘도 이끌었다.
앞으로도 전 회장한테 빚을 더 져야겠다. 대신 각종 일이 있으면 모두가 적극 참석해야 할 게다.
고마워유. 전 회장님.
맛있는 식사 뒤에 여흥시간이 이어졌다.
가곡의 밤, 문학의 밤이다.
김만중 동문의 간이 색스폰 연주, 전철환(목사)의 '가고파' 노래가 내 마음을 울렸다.
- 나한테는 꿈만 같은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기에.
3학년 2반이었던 전철환 친구한테 같은 반이었던 최인환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고교졸업 후 다음해인 1969년 8월에 서울에서 시골집에 내려왔다가 밤중에 뱀 물려서 다음날에서 죽었다고.
고교 졸업생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을 떴던 쌍둥이 동생. 벌써 만50년이 더 지났다.
위 '가고파'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쌍둥이 형인 나는 눈물이 살짝 나왔다.
노래가 끝난 뒤 전철환 친구한테 가곡이 고마웠다며 칭찬한 뒤에 그의 손목을 오래 잡았다.
※ 고등학교 앨범 속에는 전철환 친구의 앳된 얼굴이 있다.
사진 아래에 연필로 '노래'라고 표시되었듯이 그는 고교시절에서도 가곡을 잘 불렀다는 뜻.
가고파
(이은상 작곡, 김동진 작곡, 이범진 노래)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자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작사 이은상 : 1903. 12. ~ 1982. 9. 경남 마산 출생.
마산 노비산, 산화공원에서 바라보던 마산 앞바다를 그리워하며 20대에 작사했다.
해외 선교활동으로 유명한 전철환 목사.
전기우 회장은 고교졸업 후 전철환과의 재회에 대한 일화를 잠깐 소개했다.
해외 선교활동하는 목사의 이름이 아무래도 고교 친구의 이름 같기에... 전화를 먼저 걸었더니...
'맞다. 너 어느 전씨여?'
※ 우리나라 성씨에는 '田, 全 등이 있기에. 고려조 왕씨네는 고려 멸망 후 1392년 개국한 조선조에서는 위험을 피하려고 姓를 바꿨기에.
전철환이가 대답 겸 질문해서 서로를 확인했다고 한다.
해외 선교활동으로 유명한 목사가 고교 친구인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
아무런 종교가 없는 나는 전철환 친구의 근황을 몰랐고...
조용필의 '허공'
작사/작곡 정풍송, 노래 조용필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누마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 이하 생략
올드랭사인의 노래.
나훈아의 '사랑'
노래가 이어지면서 강경숙과 정희태는 한 쌍이 되었고, 이용화와 정정숙도 한 쌍의 파트너가 되어서 사교춤으로 분위기의 흥을 돋궜다.
충남고등학교 남녀 동창생들은 예능의 끼가 많다.
강경숙 여학생은 나태주의 시 '선물'를 낭송했다.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나태주 시인 : 1945년 3월 충남 서천 출신
※내가 사는 충남 보령시 바로 아래 지역...
마지막에는 곽기욱의 선창으로 충남고등학교 교가를 불렀다.
'보문산 내달아온 용머리 언덕은
청운에 오르면 계룡이 날아든다.
.... ...
충남고교 영원 무궁히 젊음아 모여라'
교가에 나오는 대전 중구 목동 '용머리 언덕은 청운령 고개'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마음 속에만 남았다.
충남고등학교는 그 이후에 도마동으로 이전되었다가 지금은 둔산동으로 또 이전되었다.
내 마음에는 대전 목동에 있던 교정만이 그려진다. 고교 앨범 속에 나온 학교이다.
고교동창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운동이 필요로 할 터.
파크골프 모임에 대한 전기우 회장의 설명이 있었다.
골프모임의 대표자는 김만중, 박계원, 전기우 등이다.
매월 2째주 토요일, 4째주 수요일에 파크골프 모임이 있다고 소개했다.
더 많이 참석할 게다.
이정석은 텃밭 농사300평 쯤을 짓는다면서 재배하는 작물 이름을 무려 25여 종이나 헤아렸다.
도라지 더덕 호박 배추, 돼지감자(뚱딴지) 등이다.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이기에 자가소비용이란다.
유나니 형님한테 택배 부치기 싫어서.. 그럴 게다.
그래도 형님인 나는 기대를 해야 되는데...
손선웅한테 '올해 농사 잘 지었지?' 하고 물으면서 부탁했다.
'형님인 유나니한테 택배 좀 보내라.'
그는 주먹을 쥐어서 때리는 흉내를 내고는 '벌써 다 처분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유나니 형님 몫으로 남겼어야 하는데...
내년에나 기약해야겠다.
3학년 2반이었던 박 교장(박계원)은 정이 많은 친구이다.
※ 고교시절의 별명은 샤일록.
오늘도 그는 작은 종이에 3학년 2반 친구들의 이름을 다 적어서 나한테도 보여주었다.
정말로 고마운 친구다. 3-2반 속에는 운명을 달리한 친구도 무척이나 많을 터.
3-4반에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동창생들이 제법 많다.
나는 지금 고교 졸업 앨범을 펼쳐서 앳된 학생, 까까머리 위에 교모를 쓴 얼굴들을 본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 얼굴이다. 앳된 고교생으로만 남아 있는 그 시절 그때의 얼굴이다.
대전 친구 김규봉의 얼굴이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다.
지난해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서 내가 은근히 기뻤다.
나는 고교시절에 인동에 사는 김규봉네 집으로 이따금 놀러갔다.
규봉네의 인동 소재 재산은 오래 전에 정리했다고 한다. 조금은 아쉽다. 내 추억이 다소 깃든 장소였기에...
규봉이 친구는 별명이 '꺆시'이다. 오늘 행사가 끝난 뒤 대전 내려가는 찻속에서 나한테 문자 보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당뇨로 인하여 너무 말랐구먼.
친구도 이젠 농사일 그만 하시고 푹 쉬면서 안식구에게 잘 좀 해 드리시고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즐거웠고 반가웠습니다.
건강하시구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요!
나는 이래서 '꺆시'가 이쁘다.
내 동생친구인 규봉이가 형님인 나를 알아서 모시기에.
핸드폰으로 이렇게 안부를 전했으니 기특한 동생이다.
앗.. 뭐야. 김규봉은 3학년 4반? 내가 3-4반이었는데...
서울 송파구 잠실로 귀가하면서 백선기와 함께 전철을 탔다.
백선기는 서해안 보령지역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그는 웅천국민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대전으로 전학갔다고 한다.
나는 4학년까지 다니다가 대전으로 전학갔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에 있는 웅천국민학교 동창생 가운데는 충남고교 3학년 1반 조하연도 있다.
그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고교 동창생이 4명.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전학 간 백선기 조하연, 초등학교 4학년 말에 전학 간 최윤환 최인환.
백선기의 친척 가운데 백치균 씨가 계셨다고 한다.
내 이모네는 백씨이며 돌림자는 낙字, 이종형제들의 돌림자는 남字이다. 그 밑이 기字 돌림이다.
백선기가 어린시절에 살았다던 감나무골 뒷편(내 시골집에서 보면 앞산 너머)은 2016년부터 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지형이 많이 변했다고 내가 덧붙였다. 내 고향(화망마을) 앞산의 뒷편은 감나무골(장마, 장좌울)이다.
선기의 사촌형인 백치균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1957년) 이모네 동네인 장마마을로 에둘러서 집으로 돌아올 때 담임선생님의 뒤를 따랐던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은 장마마을에서 사셨기에.
나는 지금도 꿈꾸는 것 같다. 60년도 더 오래 전인 과거를 헤매고 있으니..
고교 3-4반에는 김기철이 있다. 그의 형님은 김기방 선생님. 기철이는... 1968년 1월 13일 졸업 이후에 만났을까, 못 만날을까?보고 싶은 얼굴이다. 고교 앨범 속의 앳된 얼굴만이 기억될 뿐...
지난해인 2018. 10. 31.
고교 졸업(1968. 1. 13.) 50주년 행사를 대전 '유성스파텔'에서 가졌다.
점심 뒤에는 서울과 대전 동창생들이 한데 어울러서 경남 남해바다로 단체여행을 떠났다.
10월 마지막 날 밤.
경남 거제도 구조라해수욕장 '바다그린 팬션'에서 노래와 춤을 추면서 여흥을 가졌고, 다음날에는 거제도 소매물도 등대섬에 올라서 동해바다 쪽을 내려다보았다.
통영케이블카를 타고는 통영 앞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장군의 전적 유적지를 떠올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뒤 미륵산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1박2일의 길고도 짧은 여행.
서울과 대전의 고교친구들이 함께 했던 만남도 벌써 만1년이 지났다.
그 당시에도 대전 친구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번 서울 재경동창회 년말 모임에도 대전에서 올라온 친구들한테 정말로 고마워 한다.
무사히 안전하게 대전으로 다시 내려간 친구들이여. 늘 건강해서 다음에 또 만나세.
사진작가인 정희태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두어 차례 반복해서 찍었으니 이 사진은 오래 보존할 게다. 일생에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자꾸만 희미해지는 기억과 추억 가운데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사진이다. 그것도 단체사진이다.
- 얼라? 백선기, 김종관 그새 또 샜어? 얘들은 3-4반 녀석들, 그 당시에도 늘 말썽 피웠던 녀석들인데... 왜 단체사진 속에 없어?
- 사진 위 줄 왼쪽에서 세번 째 유나니형님은 많이 연노하시다. 키도 작고, 당뇨약을 너무 오랫동안 먹고 있기에. 살이 많이 빠졌네.
전 회장이 사진 보냈기에 여기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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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위 글에서 나오는 '쌍둥이'는 바로 나(나는 형).
이 글을 다시 올리면서 눈물이 또 글썽거린다.
쌍둥이 동생이 뱀 물려서 죽은 해는 1969년 여름이니 지금으로부터 벌써 52년 째이다.
동생이 죽은 뒤 형인 내 인생관은 뒤바뀌었다. 나는 하나뿐인 아들이 되었기에 일생동안 '조용히... 안전하게... 소심하게...' 처신해야 했다.
위 글을 쓴 지도 벌써 만2년이다. 그런데 왜 나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무척이나 빠르게 감퇴된다. 때문에 글과 사진을 꼭 남겨야 한다.
2021. 11. 28.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