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 버스터미널에서 광주로, 다시 구례에서 화개로 버스를 바꾸어 타고 달리는 차창엔 섬진강이 길을 따라 흐른다. 국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로 불린다는 이 길. 어둑한 강가엔 산그림자 짙고, 비산비야(非山非野) 다랑논이 늦가을 갈빛 속에 황량하다.
이윽히 홀로 바라보는 강물, 이내 풍정(風情)은 속절없는 나그네의 심상(心像)을 물들이고, 스산함이 노을 속에 잦아든다. 길을 이어 화개에서 택시로 오르는 곳은 지리산 자락인 하동군 화개면 삼전리 법하 마을 어안동이다. 급경사의 강파른 산길을 달려 찻집(명경다원)에서 차가 멎는다. 차가 되돌아가고, 이제는 메모지를 펴들고 타박타박 산길을 오른다.
‘오는 이 막지 말고 가는 이 잡지 말라’는 이야기는 사실 만남으로 비롯되는데, 그 인연이 가히 무섭다. 아니 오는대로 맞이하는 일이 어쩌면 강물 같은 삶이 아닐까.
한 달째 월출산 구림 마을(영암도기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내 개인전(‘영암의 빛과 바람’)에 스님과 함께 온 한 길손과 하룻밤을 지새운 일이 인연이 되어, 오늘 이 길로 마침내 지리산을 오르게 될 줄이야.
손전등으로 돌길 밝히고 찾아간 마을
길눈이 어두운 데다 해가 저물어 밤나무 가지에 붉은 리본을 달아두었다는 외길을 찾지 못해 산길을 헤매니 등엔 식은땀이 흐르고, 인적 없는 산길은 두려움으로 엄습해 왔다. 겨우 길목을 찾아 손전등으로 돌길을 밝히고 반 시간여를 오르자 어둠 속에 대숲이 울울창창하다. 짙은 먹을 뿌린 듯 쳐올린 검은 대숲에 이는 스산한 바람소리, 천지간의 경계를 허물고 밤하늘로 솟구친다.
무협소설이나 영화 배경 같은 대숲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내려오니, 영암에서 만났던 한(韓) 거사가 오는 이를 맞이하는 지리산의 밤마중이다.
은둔과 수행의 터라는 어안동(於雁洞). 지도를 펴면 화개의 법하 마을 뒤편(서북쪽)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는 산골마을로, 서쪽 등 너머는 구례의 토지면에 걸쳐 있다. 섬진강 치수(治水)를 위한 제방이 쌓이기 전에는 한겨울에 항시 기러기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기러기가 살다간 곳이라 하여 어안(於雁)이다. 은둔처로서 족하다 하여 ‘於安’이라 표기하는 경우도 있고, 떠도는 기러기 같은 운수납자의 길을 최고로 여겨 ‘御雁’이라고도 한다.
주인이 길손을 위해 장작불로 덥힌 방에서 차 한 잔을 나누고 잠든 이튿날 아침, 창호 햇살과 새소리에 깨어나 뜰을 나서니 어젯밤에 보지 못한 풍광이 사방에서 빛을 발한다.
형제봉(1,115m) 줄기 아래의 앞산이 우뚝한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곳에 탑리의 원탑, 가탄, 백혜 마을이 숨쉬고 있다. 그리고 원탑 마을 끝으로 섬진강이 아스라이 흐르는데, 그 너머가 백운산(1,218m)이요, 하류로 내려가면 남해 바다에 이른다. 수 년 전 백운산의 흰 구름 같은 섬진매화마을에서 화첩을 펼쳤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한 거사를 따라 이곳 삶터를 살폈다. 대숲 사이로 낡은 집들이 대여섯 동 숨겨져 있는데, 예전 화전민들이 살던 곳에 수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듯하다. 그이 또한 수행 토굴을 찾아 지리산을 전전하던 중 스님 도반이 비우고 간 공간에 인연이 닿았다는데, 집터는 물론 생활여건으로 보아서도 매우 쾌적하다.
앞산이 한눈에 펼쳐진 뜨락에는 죽은 나무를 잘라 의자로 만들고, 돌절구를 뒤집어 유리를 깐 탁자가 천연스럽다.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선경(仙境) 속에서는 세속의 티끌이 일지 않는다. 십수 년 전 법정 스님의 조계산 불일암 시절, 길손이 암자 뜨락을 서성이니 “나그네도 한잔 받으시오”하며 건네주던 그 은은한 차향, 깔깔하게 엉덩이에 전해오던 통나무의 체감이 기억난다.
무엇보다 이 집터의 전망 중 최고는 뒷간(해우소)이다. 실제 쭈구리고 앉아 볼일을 보며 살펴보는 묘미는 특별하다. 오직 나무로만 엮은 집으로, 앞쪽에 터진 공간은 사시사철 지리산 풍광이 새롭다. 그곳에 앙증맞은 풍탁이 달려 대숲바람에 화음을 더해주고-.
한편, 길섶에서 여문 모과를 소쿠리에 담아놓은 은근한 향그러움. 그 노오란 눈빛은 목재의 낡은 목리(木理)와 더불어 잔잔한 안식으로 젖어들게 한다. 마당 끝에는 언젠가 마애불상이 새겨질 그 날을 기다리며 모로 누운 거대한 바위, 그리고 까치밥으로 남은 감, 바위 샘터로 가는 낮은 대나무 울타리가 정겹고, 손수 가꾼 텃밭 푸성귀는 수행납자의 겨울나기를 지켜주고 있다.
탈속과 은둔의 고향
한 거사가 장작을 패고 참선방의 대나무 횃대를 만드는 사이, 나는 산길을 오가며 화첩을 펼쳤는데, 어느새 해가 산속으로 빠졌다. 산빛이 대지의 침묵으로 침잠한 것이다. 저녁을 마친 다음 방문을 활짝 열고 이불을 무릎에 감싼 채 바라보는 저녁놀의 앞산. 끝없는 산맥이 겹겹 농담(濃淡)으로 노을 속에 번져 흐르는 장면은 마치 탈속과 은둔의 고향 같다. 이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시가 떠오른다.
종일토록 머리 숙이고 붓끝을 희롱하니
사람마다 입 다물어 마음속 말하기 어려워라.
속세를 멀리 떠나고 비록 즐거운 일 견딘다 해도
어찌 아름다운 흥취를 함부로 다투겠나.
맑은 노을과 단풍길에 그림자 어지럽고
비 오는 밤 흰 구름 서린 여울물소리 이어진다.
노래하는 마음 경치에 얽매임 없으니
천하에 깊은 기틀 도안(道安)을 생각하네.
-贈灝源上人(호원 상인에게 주다)
속세의 분노, 번뇌 인연을 끊고 은거의 길을 택한 고운 선생은 진정한 은둔자인가, 수행자였던가. 밤하늘에 별이 이슥하여 식은 차를 비우다가 이번에는 불을 모두 끄고 뜨락에 나와 하늘을 우러르니 검은 대숲 위로 은하수가 쏟아진다. 별똥이 사선을 그리며 사라지는 장엄한 우주의 법계. 익혀온 언어와 관습이 모두 허망해 오는 이 막막함. 태초의 아득한 세계로 빨려가며 명멸하는 억겁의 불빛들.
이런 밤은 꿈자리마저 달뜨는지라 이튿날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서리 내린 뜰로 방문을 밀어제쳤다. 신 새벽 여명 속에 잠긴 검은 산. 그 위로 짙은 먹구름이 층을 이뤄 피어오르며 산속에는 몇 점인가의 불빛이 정적을 밝히고, 새벽 강이 푸르다. 그리고 마침내 터져 오르는 새날의 빛은 화염에 싸인 듯한 붉은 구름 사이로 번져 나간다. 오, 새날의 불꽃!
이 은둔의 터에서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라. 다른 사람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법을 등불 삼고 법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라.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붓다의 경구를 수행자들은 얼마나 실천해 가고들 살까.
한동안 대숲 은둔지에 머물다가 시절 인연이 다했다고 보따리를 싸는 이, 세속의 정을 차마 떨치지 못해 떠나는 이, 곡차(술)가 그리워 한 달에 며칠은 꼭 산을 내려가야 하는 수행자도 있다고 한다. 하긴, 어제 둘러본 곳은 모두 빈집으로 한 거사 외에는 만난 이가 없었으니….
사정이 이럴진대 수행이 어려운 은둔이 현실을 떠나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게 될까. 모름지기 아래의 경구는 청아한 대숲바람 속 은둔이 치열한 수행으로 거듭나야 할 바를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현실에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위대한 깨달음의 진리라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하고 전하여 역사 현실에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 진리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법,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내원재 아래 원강재 골짜기에 둥지 튼 가탄 마을
이제 한겨울 눈이 깊은 날의 해후를 기약하고서 한 거사와 석별한 후 산을 내려가니, 오늘은 앞산마을 탑리 가탄 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탑리에 사는 택시기사(원갑종)는 길손의 부탁에 매우 친절하다. 마을 이장을 수소문하나 집에 없자 대신 가탄 부락 꼭대기까지 차를 몰아 내 사정을 한 집에다 전해준다. 산비탈 다랑이 논 농사와 차밭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탑리 150번지 가탄 마을에 사는 최기동(崔基東)-임주엽(林周엽?) 동갑내기(66세) 부부의 집이다.
“오늘 새벽 3시에 우리 소가 새끼를 낳아 기뻤는데, 또 반가운 손님이 오셨구려. 추운데 어서 방으로 들어오시게.”
방에 들어서자마자 늦은 아침을 차리고 한방차를 내오는 부인의 마음씨 하고-. 3대째 이 마을에 둥지를 틀고 산다는 최씨는 9남매 중 장남으로 하동 출신 부인을 만나 아들 하나와 딸 넷을 두었다 한다. 현재 마을 가구는 11호에 약 36명이 거주하며, 외지인의 건물 3동이 더해졌다.
최씨가 펼쳐놓은 하동군지(河東郡誌)에 의하면 화개면은 13개 읍면 중의 하나로, 동쪽은 지리산 남부 능선의 삼신봉과 형제봉이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섬진강 너머 백운산 자락에 닿아 있다. 그 중 형제봉 줄기의 내원재 아래 원강재 골짜기에 둥지를 튼 마을이 가탄(佳灘) 마을이다. 양쪽 골짜기 너머엔 백혜(白惠) 마을과 원탑(源塔) 마을이 함께 숨쉬고 있고-.
선경과 같은 아름다운 여울이라는 가여울이 가탄(佳灘)이다. 더하여 주민들은 가여울, 개롤이라고도 부른다. 또 신선이 살면서 아름다운 여울에 낚싯대를 담궜다 하여 가탄(加灘)이라 하는데, 여기서 신선은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별호인 수옹(睡翁)으로, 수옹이 낚시한 곳(睡翁垂釣)을 일러 명당이라고 전해온다.
최씨집 재래식 변소는 2층 다락처럼 생겼는데, 허리를 꺾고 들어가 겨우 볼일을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볏재와 땔나무를 뿌려 냄새를 중화시키고 밑으로 퇴비를 얻는 방식은 건너 마을(어안동)의 해우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새로 올린 ㄱ 자 기와지붕에 푸른 양철지붕을 가진 단독 외양간은 너른 마당과 함께 넉넉한 살림이다.
창가엔 한 해 농사를 보여주듯 쌀포대로 그득하고, 뜰엔 거두어들인 콩과 퇴비거름이 널려 있다. 담장 아래 빛바랜 장작과 감나무 아래의 장독대, 그곳엔 곶감이 달려있고, 평상에는 붉은 고추가 빛을 더한다. 재래식 부엌의 검은 솥과 농기구는 산골마을의 삶과 억척스런 역정의 산물을 느끼게 한다. 길손이 이것저것 살피자 신이 난 부인(임주엽)은 오늘 낳은 송아지를 보라며 외양간으로 이끌며 하는 말-.
“사람은 몇 해를 지나도 보살펴 주어야만 하는데, 송아지는 나자마자 일어나 젖을 빠는 것이 참 신기하지 않수?”
뽀오얀 회갈색의 잔털을 보이는 송아지의 눈망울은 새 생명의 경이다. 그런데 송아지가 뒤뚱거리며 어미소 젖을 빠는 모습은 조선시대 화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 ·1686-1761)의 스케치북, 즉 사제첩(麝臍帖)에 나오는 장면 그대로다.
“영감이 집을 비워도 소만 있으면 무섭지 않고 아주 든든하다우.”
또 다시 어미소를 보며 부인이 흐뭇해한다. 최씨는 경운기를 타고 농협으로 내려가고, 부인은 마당의 콩을 까부리는데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리니 딸, 사위들과의 연속통화다. 은근히 자식자랑을 늘어놓는 부인은 효자에다 박사 사위를 두었노라고 묻지도 않는 말을 하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소죽을 끓인 후 빨래를 널고 이어서 갈쿠리로 퇴비 거름을 마저 흩트린다.
집을 그리기 위해 햇살 좋은 평상 위에 화첩을 펴자 부인은 홍시를 담아오고 또 녹차를 끓여 내놓는다. 아마도 저 부지런함 속의 부산함, 그리고 몸에 밴 친절이 산골마을 생활을 이어온 원동력인가 보다.
대숲 바람과 차꽃 향기에 취하다
연거푸 찻잔을 건네며 하는 말이, “첫잔은 임을 부르는 맛이요, 두잔째는 임을 품는 맛이요, 세잔째는 임을 좇는 맛이라는 말 모르시오” 하지 않는가. 하여 길손은 갑자기 이곳 차밭이 그리워졌다.
멀리 갈 것 없이 집터 야산이 차밭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오던 길을 내려가자 온통
차꽃이 만발했다. 무서리가 내린 후에 피어난다는 차꽃은 언제나 내게 그윽한 향기와 함께 시린 겨울나기에 위안을 주었다. 이런 까닭에 지난 화첩엔 차꽃 그림이 많은 편이다. 여리나 강인한 꽃, 해묵은 열매를 달고서도 새잎을 틔우는 차나무의 은덕은 실로 인간에게 칭송의 대상이다.
하늘이 좋은 차나무를
귤나무 같은 덕을 낳게 했네
달콤한 잎, 우박과 싸워
겨우내 푸르고
서리에 씻긴 하얀 꽃
가을 경치를 빛내네
고야산 신선같이 깨끗하고
연부단금 같이
향기로운 열매를 맺네
-초의(草衣)의 동다송(東茶頌) 중 화개차 예찬
아득한 곳에서부터 탈탈거리며 숨 가쁘게 올라오는 경운기 소리. 이제 마을로 돌아온 최씨께 인사를 드리고 마을 전경을 살피러 길을 내려간다. 참으로 강파른 내리막이요, 길에서 돌아다보면 산 아래로 펼쳐지는 겹겹한 다랑논과 푸른 차밭이다.
이미 건너편 어안동에서 내려보며 산마을 원경을 살핀 참이라 이제는 가까이서 올려다보며 산마을을 화첩에 담는다. 마을 중턱 솔숲이 있는 길목 아래로 계곡물이 흘러가는데 사람들이 밭을 매고 있다. 그 위로 드러나는 비탈진 경사와 산골지대의 곤고함에 가슴 짠하다.
그런데 외지에서 새집 짓고 들어온 주택들은 크기도 하거니와 동화 속 그림처럼 하얗게 나무울타리를 두른 풍경이 어째 생경하니 이들의 삶이 마을과 함께 부디 동화될 수 있기를 빌어야겠다.
사흘째 대숲바람과 차꽃 향기에 취한 나그네는 산마을을 내려와 삼층석탑이 있다는 원탑 마을에 이른다. 그런데 우체국과 담벼락 사이에 솟아 있는 탑은 이 땅의 문화유산 중 가장 홀대받고 있는 사례가 될 것 같다. 흩어진 탑재를 모아 석탑을 세웠다는 애달픈 사연에다 사방 건물에 막혀 있는 모습이라니. 마땅히 탑을 옮기든지 주변 건물을 철거하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이곳 지명이 어엿이 탑리(塔里)로 존속하는 한에는-.
마침내 산마을에서 보낸 여정을 접고 내려와 화개장터에 이른다.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며 장터 유래를 새긴 빗돌 앞에 서자 부산했던 옛일이 역사요, 길손에겐 지난 산마을 순례가 기억속의 삶이다. 상행선 버스는 어둠 속 강을 거슬러 달려가는데 초생달은 하늘길을 열고 자꾸만 길손을 따라온다.
작가 프로필
필자 이호신(李鎬信)씨는 1957년 경북 평해 태생으로,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아홉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주로 문화, 자연유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그림과 글로 이웃에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즉, 자연과 인간을 위한 상생의 본질을 찾는 그림 기행을 하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은 영국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이화여대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길에서 쓴 그림 일기>(현암사), <숲을 그리는 마음>(학고재), <달이 솟는 산마을-영암>(현암사), <풍경 소리에 귀를 씻고>(해들누리), 공저로 <동강 12경>(수문출판사), <새천년에 부르는 석굴암 관세음>(연기사) 등의 저서가 있다.
첫댓글 그림만 잘 그리시는 게 아니고 문장도 참 아름답네요. 같이 보입시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