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80년 제나이 만 18세때 봉천동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무조건 붙잡혀서
관악 경찰서에 넘겨져서 2~3일후 여러사람들과 함께 어딘지도 모른채 무조건,트럭을 타고 비포장 도로를 타고 포송줄과,수갑을 차고, 대략 2시간 정도 거리를 간곳이 삼청교육대 였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부대에 내리자 마자 벌써 소속 중대와 소대가 나뉘어 졌고 제 명단에도, 몇분대 몇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머리를 삭발시켯으며,부대에서 나오는 매트리스와 전투화와 영내화와 국방부 마크가 찍혀진 속내의 식기 전투복 모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계신 군 간부는 "여기는 우리나라 지도에도 없는 무인도와 같은 곳이니,
혹 탈영을 하면 사살을 해라!!는 명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린나이에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아오지 탄광 같은, 곳에 와 있는가?..... 죽었구나.....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넘겼습니다.
다음날,,. 군대도 안갔다온 어린나이에, 부대에 한편에는 삼청 교육대..라는 간판이 걸려있었고, 교육대 명령이라는 수칙이 있었고 부대에 있는 교육대 교관들 관등 성명과 수련생 수칙을 외워라고 하였고 못외운다면 무차별하게 박달나무 곤봉으로 온 전신을 피멍이 들도록 맞았습니다... 제 심정은 차라리. 죽는게
낮겠다고, 생각 하였습니다. 탈영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보지 사람은 이고통을 모를 것입니다. 같은 동료 수련생들은 부대에서 나누어준 모기약과 바늘도 죽을려고 먹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또한번 무서웠습니다. " 개 보다도 더 못한 짓도 하였습니다. 점오 시간이었습니다.
그것도 유도 점오라는 엄청나게 무서운 특수 점오라고 하였습니다.
침상 3선의 정렬 그리고 나룻배 타기 간물대 발올리고 머리박기 1,2 분대 3,4분대 수련생들 깍지끼고 손잡고 있기 쥐잡기 등..
그런데 쥐잡기는 고무신 물기 였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생생하게 그 지옥같은 훈련들이 잊혀 지지 않고 오직그때 교관이나 조교들이 나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는 분노만 생겼습니다.
또 각계 전투와 즉, 철조망통과 외나무다리 건너기 포박게 수류탄 낮은 포복 높은 포복 말로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훈련들을 매일매일 두려움속에서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산악 나르기 즉..,, 쌀 푸대에 모래를 집어넣고 약 쌀 한가마니
정도 되는 무게를 어깨고 쥐어 메고 뛰어야 했고 봉 체조라는 통나무를 들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통나무 위에에는 엄청나게 무서운 공수부대 특공 유단자 조교가 올라가서 무자비하게 눌렀습니다. 이런(짐승) 소,돼지 보다 못한 인간 대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식 훈련과 유격 훈련등 p.t.(피티)체조 18번 까지 반복구호가 나오면 계속 나오지 않을때까지 시켰습니다. 어디서 반목구호가 나오는지 짜맞추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살아 남기 위해 맨 앞줄에 서서 교관이 쳐다 보는 앞에 어린나이에 열심히 훈련을 꾹 참고 견뎌 냈습니다. 제 팔 다리나 온몸등.. 많이 아팠고 물또한 주지 않았으면 소금만 주었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소금을 먹어라고 하였습니다. 개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무조건 죄인 취급을 하더군요 4주 교육을 맞치고 집에 보내준다고 하였는데 모든것이 거짓말 이었습니다.
집에 보내주는것이 아니라 삼청교육 근로 봉사대라는 곳에 가야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가 있습니까? 제가 어린나이에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지었고,잘못을 잘못을 하였으면 , 얼마나 했겠습니까? 새벽부터 저녁까지 조교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속에서 매일매일을보내야 했습니다. 언제다시 세상에 나아가 살수 있을까 ? 이제는 죽었구나!!! 이곳을 나가지 못하면 죽을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 속에 밤을 보냈고 아침이 되면
한겨울에도 알몸으로 훈련을 받았고 제설작업과 한탄강의 돌주어서 축대 쌓고 빵카 (벙커)작업등 모든 군부대에서 할수있는 일은 시키는 시키는대로 해야했습니다.이모든 현실에서 세상을 올바르게 보아야 하는 사춘기 어린 저는
세상에 대한 적계심과 분노 그리고 원망 밖에는 배울수가 없었고, 어는 곳을 가던지 열심히 살아 보려고 해도 삼청이라는 꼬리표는 항상 저에게 이름과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제 자신은 순간순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을 만큼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 너무나 심한 구타와 고된 훈련때문에 폐 결핵을 얻게 되었고 원인 모를
병이 생겼고 여기 저기 안아픈대가 없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다시금 기억조차도 하고 싶지 않지만, 삼청교육대라는
곳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지금의 제 심정과 똑같은 마음일꺼라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않된다고 생각 했기에 이글을 띄웁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자 고생하신분들과 고통받았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부족한 저의 소견을 올려 봅니다.
답변 하실분들은 추가해서 답변을 달아 주세여~
첫댓글 네 정말 고생이 많으셨군요. 글로 다 표현못할 고초를 당하신님께 어떤 위로의 말을 해드려야할지 모르겠군요 나중에 시간되시면 영화사 사무실로 연락을 주세요.
나는.고2때.5사단에서..훈련받고..근로봉사하고..그랬어여.제일막내였지요.님도.저와비슷한길을걸어온것.같아마음이아픔니다. 영화에서.제가당한고통도..찍어주세여.화장실변을잘못본수련생때문에.그변을다한모금씩먹게하였습니다..인간들이아니죠..할말은많은데여.지면상..건강하세여..
네..안영하세요..이렇게몇자적어볼여구합니다..저는5사단백호육격장그리고근로봉사대..할말은많아요전정배죽음에대회서는.잘알지요..그리고영화관계자에게..한마디만할게요.ㅇ어떻게영화을.ㅁ만들지.몰라도잘신중히해서만들어주세요.ㅇ애기을함면길어서5사단에서1년4개월있어읍ㄴ니다
정말암흑같은1년4개월.자기네강아지도그렇게.ㅁ못할겁니다전정배친구가왜죽었는지폭동B급은순화교육4주.근로봉사대6개월이면보네준다고하고선..일을다끝났는데.연병장에모여서.1년2년3년5년이렇게하길네.약속이틀리지않나고해서,우리가사단장면담을신청해달라고하는데그와중에처음에는20명정도만정문을통해서나갈여고
하는데군인들이.우리을못나가게해서입시름하고있을때소위가선을거놓더니.이선만넘어넘어오면발사한다고그래서.그럼어디해봐라.해던것이소위가사격명령을내렸읍니다.그래서전정배친구다른친구들이죽었고부상을근데다친사람들은주동자라고해서군법에넘어간줄을알고있읍니다
그때 당시 명령을 내렷던 대가리들을 모조리 잡아 족쳐 야합니다~~ 물론 피해자님들이 그들을 처벌 하겟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