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할머님이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옷장사를 하셨다. 이곳 저곳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각 마을간의 후덕한 인심과 수려한 풍경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자라왔기에 내 몸엔 장똘배기의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민학교 5학년때 혼자 전철을 타고 인천자유공원을 둘러보기 시작해서 나름대로 유명한 산하와 명승지를 보는 것이 하나의 생활사가 된 것이다. 특히 영남대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사답사'를 접한 후 그 충격과 기쁨을 통해 문화재에 대한 애착과 국토사랑에 대해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한 감동을 미천한 글이나마 남기기 시작했다.
나의 사랑하는 딸 정수가 생후 6주만에 영하 10도의 강원도 땅을 밟았을 때 이런 갓난아기를 데려왔다고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지금 4살 된 정수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아이가 되었고 특별한 교육 없이 그저 좋은 공기와 맑은 물, 높은 산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독특한 교육방식인 것이다.
어째든 여행을 사랑하고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유럽 배낭여행은 누구나 시도해보고 싶은 꿈인 것이다. 2개월의 여행가이드북을 통한 치밀한 준비, 다양한 일정 짜기, 경험자의 조언등 준비하는 과정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여행사에 모든 일정을 맡겨 수학여행처럼 쫒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루트를 개척하고, 쉴 때 쉬고 다닐 때 죽어라 다니는 그런 알찬 여행을 통해 많은 보람을 느꼈고, 돌아와선 그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자 그리스 로마신화, 서양사 그리고 미술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었다.
현지인과의 자연스런 만남을 통해 알찬 정보도 얻었고 물질적, 정신적 신세를 많이 지었다.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된다. 조금만 노력하면 적은 비용으로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받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 호주, 괌, 사이판, 대만, 중국 그리고 이번 유럽여행이 6번째 해외여행이다. 매달 봉급의 15%를 적립하여 악착하게 모은 돈이니 만큼 매 도시마다 최선을 다하여 돌아다녔다. 아침 7시부터 밤12시까지.... '평생 이 나라는 인생의 마지막 방문'이라 생각하고 말이다. 나는 여행사 단체여행을 혐오한다. 그 나라의 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려고 하려는 그 뻔뻔한 모습, 쇼핑강요, 과도한 팁 요구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모습들이 싫다.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느끼자...
99년 9월 2일부터 9월 12일까지 10박 11일간의 여행기이다.
99년엔 연.월차휴가 사용하라고 난리였다. 심지어 부서별 사용실적도 공문형식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런 회사의 압력이 클수록 나는 회심의 미소지었다. '드디어 유럽의 꿈이 실현되는구나' 학창시절때는 감히 배낭여행이란 것이 없었다. 시간은 많았지만 돈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장생활을 통해 돈은 어느 정도 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회다. 이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지도 모른다.
과감히 부장님께 휴가원을 제출하고 사고를 쳤다. 돌아오면 책상이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과 함께...
다행이 내 책상은 그대로다.
돌아와서 열나 열심히 일했다. 한달간은 말이다. 그 후 또 여행병이 도졌지만 이젠 돈이 없었다.
2. 개요
일정:10박 11일 (프랑스-스위스-이태리):3개국
파리-베르사이유-루째른-융푸라우-베네치아-로마-나폴리-봄페이
경비: 총1백5십만원(나는 아내와 함께 3백만원 들었음-선물대 포함.)
비행기값: 68만원(1인당)타이항공이 가장 싸다. 단지 홍공과 방콕경유
그러나 20시간이 걸려도 유럽현지에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직항로보다 일정 짜기가 매우 편하다. 또한 지구를 반바퀴를 돌기 때문 에 마일리지가 엄청 쌓임.(기내식을 6번 먹음)
유로패스: 30만원(5일:1인당) 전 유럽을 안방처럼 연결해주는 필수품.
유로패스는 1등석 차표이기 때문에 만원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편안한 쇼파의자에 앉아 있으면 파노라마처럼 그림이 펼쳐진다.
숙 박:
프랑스 :2박-3급 호텔 (하루 6만원-트윈):아침제공
스위스:1박-유스호스텔 (4만원-트윈):아침제공
이태리:3박-한국인 민박(3만원-트윈):아침,저녁제공
나머지 2박은 기차에서 새우잠을 잤음. 자고 일어나니까 다른 나라 에 도착하니까 무척 신기함.
입 장 료: 하루 2만원선
아 이: 처가집에 5일간 맡기고, 본가에 6일간 맡겼음.
기 타: 프랑스, 스위스 물가가 비싸고, 이태리가 싸기 때문에 마지막 일정을 이태리로 잡는 것이 유리.
준 비 물: 배낭, 보조배낭
항공권, 유로패스 (유럽에서 구입불가),복대(여권,유로패스, 현금보관 용이), 신용카드(만약대비) 썬그라스(필수:특히스위스의백설에 얼굴이 탈 우려가 있음), 국제학생증(서양인은 동양인의 나이 구별을 못하기 때문에 여행사에 만들어 달라고 사정하길 바람.)고추장, 김(꼭 필요) 술은 방콕에서 한 병 구입하길 바람(비싼위스키를 10일 내내 먹었음. 불쌍한 한국 배낭객에게 한 잔주면 너무 고마와함), 열쇠고리10개(남대문에서 8백원이면 하회탈 열쇠고리 구입가능-무진장 유용하게 써먹었음), 가이드북(여행천하 유럽)가 가장 알찬 내용임. 망원경( 벽화, 조각품 감상하기에 유리) 자동카메라(부담없고 잘나오는 것, 큰 카매라는 짐 만됨)필름10통(남대문 상가에서 코탁 36방10통에 2만2천원구입) 계산기(환율계산시 절대필요) 우비, 목걸이펜,
1. 서울출발
1999년 9월 2일 5시 30분 서울발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장장 6개월의 치밀한 준비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아침에 출근하여 마지막까지 인수인계하고 거래선 증권 전달하고 정신없이 회사를 나섰다. 점심시간엔 직원들에게 볶음밥에 탕수육까지 시켜주었다.
나대신 잘 일하거라. 거래선 끊기면 죽어...
4시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화장실에서 양복 갈아입고 갈아입고 트랩에 올랐다.
얼마 만에 타보는 비행긴가?
2. 타이베이도착
현지시간 9시경 타이베이에 도착했다. 68만원짜리 저렴한 비행기 티켙을 구입했기에 유럽까지는 3번을 갈아 타야한다. 그 첫 번째 기착지가 대만이며 이곳에서 1시간을 머물었다. 기내의 3분의 1가량의 승객이 내렸으며, 1시간동안 면세점에서 아이쇼핑을 했다. 대만은 내가 학창시절 2달여를 머문 곳이다. 거의 10년만의 방문이다.
땅모양이 제주도 세운 모양과 비슷하며 여자의 氣가 매우 센 곳이다. (제주도와 같음) 실제로 여자가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남자가 여자 허리를 붙잡고 타는 모습을 보고 한참 웃었다. 왜 웃었을까? 남성우월주의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편견이었던가
긴 머리를 휘날리는 늘씬한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얼마나 예쁜 얼굴인가 확인차 앞으로 달려가 보았다. 기대를 가지고 .... 그러나 너무나 놀라 기절할 뻔 했다.
얼굴이 못생긴 것이 아니라 저렇게 예쁜 얼굴에 오리 대가리를 맛있게 먹고 있었던 것이아닌가? 그것도 대로변에서.... 이렇게 대만여성에 대한 강렬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탑승하니 대만 친구들이 잔뜩 탔다. 단체로 태국 파타야 해변에 간다고 한다. 역시 중국인이 모인 곳은 시끄러웠다. 내 옆에 앉은 아가씨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이뻬이와 화련등 까오숑에 갔었던 이야기등 못하는 중국어를 구사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데 그 중국 여인중에 내 거래선 여직원과 너무도 흡사한 사람이 있어 한국에 돌아와 혹시 중국인 자매가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몇 달 후 대만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이 아가씨들은 무사했기를 바란다.
밤 12시 드디어 방콕에 도착했다. 아시아의 교통요충지인 만큼 너무나도 큰 공항이었다.
탑승플랫홈이 100개는 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곳 면세점은 상상외로 크고 물건도 저렴했다. 이곳에서 양주 한 병을 구입하고 공항을 둘러보았는데 호텔비가 없어 공항에서 가방을 꼭 쥐고 자는 동남아 사람을 많이 보았다. 우리네 서울역 지하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한 시간후 방콕을 출발했다. 기내는 관광객으로 가득 차있어 단 한 좌석도 여유가 없었다. 주로 프랑스인이 많다. 여름휴가를 이곳 태국으로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제 10여시간을 이 비행기에서 보내야 한다. 탑승하자마자 또 기내식이 나온다. 서울, 대만, 방콕등 중간기착지가 많을수록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기내식도 많이 먹을 수 있으며, 마일리지도 많이 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려 20여 시간동안 6끼를 먹은 것 같다. 좁은 공간에서 무진장 먹기만 하니 소화가 될 리가 없다. 아마 돼지도 이렇게 사육하나보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느끼한 음식과 비싼 값 때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이 곳의 음식만은 천국인 것이다. 먹은 것 만해도 10만원이 넘은 것 같음. 본전 뽑는다고 음료, 양주, 포도주, 과자등 무진장 시켜 먹었다. (그러나 이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명심하길...)
3. 파리도착
20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파리의 드골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 7시 30분. 패션의 나라답게 나선형의 공항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저 멀리 대서양을 2시간만에 주파한다는 콩코드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 나라처럼 세관검사도 없다. 단지 출구에서 의심 가는 사람 1-2명씩 검사하는 정도다. 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는 것 같았다. 70년대 동양사람도 이처럼 대우를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전철을 타야한다. 프랑스는 우리 지하철과 같은 METRO와 수원, 인천등의 교외선과 같은 RER선이 있다. 이곳에서는 RER-B선을 이용해야한다. 35분 정도 파리북역 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프랑스 북쪽지역인 벨기에 독일, 프칸디나비아 방면 기차의 출발점이다. 물론 런던과 연결되는 유로스타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이곳 북역은 몽마르뜨언덕이 근처에 있으며 싼 호텔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북역은 메트로 4개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지하에 도착했지만 도무지 방향감각을 잃었고 프랑스글자에 익숙치 못해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헤메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예쁘고 귀여운 아가씨가 다가와 우리에게 길을 안내했다.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고 한다. 자기 집의 반대방향이지만 친절하게 호텔을 가르쳐주고 흥정도 해주었다. 프랑스의 좋은 인상은 이렇게 시작했다. 남대문시장에서 8백원주고 구입한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파리 에펠탑 매표소에 근무한다고 하는데 자기 근무시간에 오면 표를 꽁짜로 주겠다고한다.
2박3일동안 아침포함하여 12만원으로 싸구려 호텔에 짐을 풀고 파리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1)몽마르뜨광장
북역에서 도보로 10분이면 해발 130미터의 몽마르뜨언덕을 볼수 있다. 19세기 파리의 예술가와 문인들의 주요 무대이다. 뒷편의 묘지에는 드가, 밀레, 벨를리오즈, 스땅달, 에밀졸라. 하이네 등 귀에 익은 세기의 예술가가 잠들어있다.
언덕위엔 세개의 흰돔이 돋보이는 로마 비잔틴양식의 성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샤크레 꾀를 대상당이다. 1876년부터 40여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내부엔 웅장하고 장대한 느낌을 갖게 한다. 여행중 피곤에 지치면 곳곳이 산재하고 있는 성당에 들러 기도하는 척하면서 잠깐 눈 붙이면 피곤이 가신다. 여행의 지혜다.
거리예술인이 곳곳이 보인다. 석고상처럼 분장하고 앉아 있다가 동전을 던지면 씩 한전 웃는다. 우주인으로 분장하고 돈을 던지면 춤을 춘다. 우리의 거지들도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하겠다.
-몽마르트 광장
2)데뜨르트광장
대학로처럼 거리의 무명화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수십명쯤되는 화가들이 서툰 한국말로 초상화를 그리라고 유혹한다. 심지어 "당신 부인 너무 이쁘다. 그림 그리세요" 라고 한국어로 나를 꼬셨지만 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화가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정통햄버거를 사먹었다. 맛은 있지만 비쌌다. 가게 안에서 먹으면 비싸다고 해서 햄버거 씹으며 콜라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3)뽕삐두센타
지하철역에서 티켙 10묶음인 "까르네"를 구입했다. 1장에 8프랑인데 10장 한 묶음에 52프랑에 구입할 수 있다.
레알지구의 한 전철역에서 하차하여 뽕삐두센타에 갔다. 지하 2층 지상 6층건물로 전기 수도배관등이 그대로 나와 있고, 에스컬레이터도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우리네 공사판의 비계공사현장 그대로다. 솔직히 공사중 인 줄 알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원래 그렀 다고한다. 건물 자체가 그렇게 흉물스러워 파리의 외관을 해친다고 반발이 많았던 것이다. 이 곳에는 건물보다는 이노센트분수가 유명하다. 혹시 과천 코오롱빌딩앞에 있는 분수를 본 적 있는가? 바로 이것과 같았다. 형이상학적의 조각이 생동감있게 돌면서 물을 뿜는다. 이곳은 젊은 파리지앙의 약속장소로 애용된다고 한다.
4) 뽕네프다리
노틀담사원이 있는 시테섬을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뽕네프다리다. 광기 어린 '이사벨 아자니' 의 모습을 이 다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영화에서 나온 다리는 다른 장소에 세트를 꾸며서 촬영했다고 한다. 어쨌든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며, 다리근처 강변에는 남녀 쌍쌍이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5) 생샤펠성당
내무는 2층으로 되어있으며 1층은 황금색으로 소박하게 꾸며졌으며 2층은 화려한 빛깔의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로 뒤덮혀 있다. 이 교회는 13세기 루이왕이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을 때 쓰고 있던 가시 면류관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신구약 성서의 1134장면을 연출하고 있으며 햇살이 비쳐진 빛나는 글라스를 보면 황홀경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테인글라스에 있어서 세계 최고 란다.
6)노틀담사원
'노틀담의 곱추' 무대로 프랑스 카톨릭의 총본산이다. 116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345년에 완공된 이 사원은 쟌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을 비롯하여, 나폴레옹대관식, 드골장군의 장례식 그리고 가장 최근엔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등 프랑스 역사의 상징이다.
길이 130미터, 폭48미터, 높이 35미터라는 거대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10여미터의 스테인글라스는 정말 장관이다. 일명 장미의 창이라 불리운다.
69미터의 종탑 2개가 있는데 시테섬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고딕양식의 첨답의 정교함을 가까히 관찰할 수 있다. 69미터 까지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죽는 줄 알았다..
7)뤽상브르공원과 생미셀거리
뤽상브르공원은 파리 학생들의 데이트 코스로 신록이 가득차 있으며 낙엽지는 마로니에 가로수가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원안의 뤽상브르 궁전은 프랑스 국회의 상원의사당으로 이용중이다. 이곳에선 각종 꽃으로 가득차 있으며, 공원 곳곳에 1인용 철제의자가 놓여있어 한가로이 책을 읽을수 있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서 자전거로 배낭여행하는 한국학생을 만나 여행정보를 나누었다.
이곳은 릴케 보들레르의 산책장소이며 문학가 고띠에가 푸른리본을 단 바닷게를 산책 시킨 곳이다. 보들레르, 모파상, 스땅달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찬란한 프랑스 문학을 이끌었고 지금도 사색하는 미래의 시인을 볼수 있었다. 너무나도 귀여운 아이들이 당나귀를 타면서 뛰어 노는 것을 보니 한국에 두고 온 나의 딸 정수 생각이 절로 난다.
공원을 나와 전세계유학생이 모이는 생-미셀 대로 지난다. 근처엔 소르본느 대학이 있어 까페나 서점, 쇼핑점으로 가득 차 있으며, 값싼 음식점이 곳곳이 산재해 있어 저녁엔 인파로 가득찬다. 그릴이나 해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요리와 그리스요리를 맛 볼 수 있으며, 우린 중국식당을 찾았다. 물 한병에 우리돈으로 5천원이며 볶음밥을 시켰으며, 소고기 볶음과 더불어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물을 비싸게 먹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8) 파리 지하철
생미셀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리네 멕도날드 햄버거 집 마크"M"과 지하철역표시와 너무도 흡사하여 몇 번을 속았다. 이 곳 지하철은 보행자 우선 이므로 지하 10여미터만 내려가면 바로 승차할수 있다. 우리처럼 지하 깊숙히 내려갈 필요도 없다. 환승할때도 20여미터를 벗어난 적은 거의 없었던 같다. 어떤 기차는 이층열차로 되어있고, 어떤 기차는 바퀴가 타이어인 것도 있어 굽은 곳도 잘 돌 수 있게 되었다. 전철 4개노선과 지하철 13개 노선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영등포구 만한 파리시내의 지하는 거의 지하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하철 문은 수동이며 직접손잡이를 올리거나 버튼을 눌러야 열린다. 처음에 멍하게 서 있다가 뒷사람이 열어 주어 내린 적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역은 어둡고, 곳곳에 낙서로 가득 차있다. 이런 낙서는 유럽 곳곳이 볼 수 있다. 예술이랄까?
좌석은 4인좌석이 앞뒤로 되어 있는데 우리 앞에서 넒은 남녀가 우리 바로 앞에서 강렬하게 키스를 하는 바람에 시선을 어디에 둘 줄 모른 적이 있었다. 집사람은 부러운 듯이 나를 쳐다본다. 나도 해조..잉.
차내에서 무임승차 검표를 하고 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으며, 개찰구도 우린 봉 하나로 막혀져 있어 붕 뛰어 넘으면 되는데 파리는 무슨 교도소 들어가는 것처럼 살벌하게 2미터의 차단기로 막혀져 있다. 그래도 갖가지 방법으로 무임승차를 시도한단다. 그러나 매표소 직원은 뻔히 쳐다본다. 왜냐하면 자신의 역할은 표를 파는 사람이지 무임승차단속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9) 세느강 유람선
세느강은 폭 50여미터로 넓지도 않을 뿐더러, 물도 그다지 깨끗한 느낌도 받지 않는다.그러나 세계적 유적지를 감싸 도는 유람선을 통해 세느강의 참 멋을 느낄 수 있다. 여러 유람선 선착장이 있지만 에펠탑 옆의 바토빠리지엥에서 운행하고 있는 유람선은 유레일 패스로 50%할인 받을 수 있어 25프랑(5천원)이면 파리의 화려한 다리와 시테섬, 노틀담서원, 루브르박물관, 에펠탑을 앉아서 관광할 수 있다. 특히 저녁 야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왠만한 여자는 이런 분위기에 취해 청혼하면 사랑을 무조건 받아 들이리라. 200여명이 탑승하며, 인근 스페인이나 영국, 미국, 일본인등 국제 인종전시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이 탄다. 6개국어로 유적지 설명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지만 아쉽게도 한국어는 없어 서운했다. 시테섬 근처에서는 폭죽이 온 시내를 덮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20여시간의 비행시간이 피곤한지 나는 골아 떨어졌다. 아내는 창피하고 무드 없다고 다리를 꼬집지만 쏟아지는 졸음은 참지 못했다. 나중에 베네치아 유람선을 탔을 때도 졸았다고 얼마나 구박을 하던지.
10) 사이요궁
에펠탑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에펠탑 배경의 많은 CF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는 야경은 정말 끝내준다. 2000년까지 120일 이 남아 있다고 네온사인이 에펠탑을 수 놓고 있다.
날개를 펼치듯 이 궁은 해양박물관, 인류박물관, 문화재박물관, 영화박물관이 펼쳐져 있다. 우리네 세종문화회관 같은 느낌을 받는다.
11) 개선문
무진장 걸어서 개선문까지 왔다. 밤에 보는 야경 샹제리제 거리와 어우려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파리의 볼 것은 이렇게 밤에 있는 것 같다.
1806년 나폴레옹의 명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여 30년만에 완성된 기념건조물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아탈리아 연합군과 맞서 싸운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개선문은 높이 50미터 폭 45미터로 벽면에 각종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 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올라 갈 수 있으며 , 이곳을 중심으로 12개의 길이 뻗어있으면서도 사고 없이 차가 잘도 다닌다. 최근엔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이곳을 지났다고 한다.
입구엔 꺼지지 않은 불이 영원히 타오르고 있다.
12)샹젤리제 거리
파리엔 곳곳이 노천까페가 있지만 그중 가장 분위기가 나는 곳이 이곳 샹제리제 거리 일것이다, 에펠탑의 영롱한 불빛을 감상하고 세느강의 화려한 조명 그리고 가로등과 인파로 가득찬 상제리제 거리를 거닐며 나는 세계인의 한사람임을 확인한다. 화장품가게도 들려 향수냄새도 맡고, 그러나 무지 비쌈. 극장, 까페를 헤치고 무작정 걷는다. 거리는 끝없이 펼쳐진다. 너무나 힘들어 지하철에 올라 탔다. 내일을 기약하며.....
어제 힘든 강행군을 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유럽에 오겠는가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자 오늘도 일정을 빡빡하게 짰다. 오늘은 주로 파리의 박물관 관람을 위해 일정을 짰다. 그러기 위해 '까르네 뮤제' 라는 티켙을 80프랑(1만6천원)으로 구입했다. 이것은 하루동안 파리의 모든 유적지를 티켙하나로 돌아 볼 수 있다. 물론 본전 뽑기 위해선 강행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파리의 서민슈퍼
어제 콜라 1캔에 3천원씩 주고 사먹는 것이 아까워서 호텔 지배인의 소개를 받아 근처 주택가 깊숙히 숨어 있는 슈퍼를 방문했다. 유적지보다 3분의 1가격으로 값이 쌌다. 프랑스 굵직한 포도와 복숭아 그리고 과자 음료수등 잔뜩 사 가지고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를 마쳤다. 과일과 은은한 커피와 함께 한 아침. 너무나 상쾌하다.
내일 스위스로 향할 기차를 북역에서 예약하고 루브르로 향했다.
2)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이집트박물관과 함께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이곳은 미술책에 나온 익숙한 작품 이외에도 그리스 조각물, 동양의 작품, 이집트 고고학의 귀중한 소장품이 전시되어있다, 30여만점에 이르는 회화 조각작품 그리고 왕실의 보물등을 소장하고 있어 미술관이라기보다 거대한 박물관이라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한 작품당 10초씩만 감상한다 해도 전체를 다 보는데 꼬박 35일 걸리는 만큼 규모가 크다,
이 미술관은 13세기초 루브르성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으며, 왕가의 궁전이자 예술가가 모여 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60%이상이 왕실 컬렉션과 전리품이며,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와 이집트 등지에서 전리품으로 훔쳐온 작품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여름철엔 인파로 가득 차 있어 길게 줄이 늘어 지지만 까르네를 구입했기에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밀로의 비너스, 니케상,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메듀스의 뗏목,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모나리자가 우릴 맞는다.
유럽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를 읽고, 그리스, 로마신화를 준비한다. 그리고 서양사를 읽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술품을 이해하기 쉬우리라, 이는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낀 점이다. 유럽의 유명박물관은 6개국어의 해설 CD를 구입하면 작품마다 번호를 누르면 그에 따른 설명을 들을수 있다. 그러나 중국어, 일어는 들을 수 있지만 한국어는 들을 수 없는 애석함을 가지고 있다. 루브르의 외국인관람인 1-2등을 차지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우리네 문화부는 이를 신경 써야 하곘다. 대략 1천만원정도 기부를 하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한국인들이 항의해야 하곘다.
왜냐하면 우린 TGV까지 구입했는데...
작품이 하도 정교해서 몰래 그림에 손을 대려니까 경보음이 울렸다.. 즉시 직원이 달려온 다. 정말 쪽팔렸다. 한번은 그리스 대리석 조각작품인데, 이불처럼 너무나 푹신하게 생겨서 만지면 푹 들어갈 정도로 정교했다. 그래서 한번 손을 대니까 직원이 달려와서
" WHARE ARE YOU FROM?"
"I'M FROM KOREA"
그 직원 하는말.
한국말로 " 만지지마"
그 사람은 전세계 언어로 " 만지지마" 를 구사하는 것 같았다. 2시간을 걷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 밖으로 나와 분수대에 발을 담그고 과일과 빵등을 먹었다.
너무 피곤해서 졸음이 쏟아진다. 저편에서 젊은이들이 한 학생을 물에 빠뜨리려고 한다.
한국이나 프랑스 젊은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이집트 미이라를 보았다. 조명도 그렇고 으시시하다. 귀족들의 패물이 놓여있는 방을 방문했다.
아내의 눈이 휘등글해진다. 50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 룰비등 아내는 좀처럼 이방을 나서려 하지않는다.
신혼초 도둑이 들었들 때 아내는 결혼반지를 도둑 맞았다. 다행히 그 반지는 큐빅이라 경찰에 신고 했을 때 23만원을 신고했다. 만약 50캐럿 다아아몬드를 도둑맞았다면,,,.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4시간여를 뛰어 니며 작품을 접했다. 나중에 오게되면 꼭 공부하고 오리라.
3) 카루젤개선문과 오랑주리 미술관
뛸드르 공원을 갔다. 이곳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루젤 개선문이 있는 곳이다. 원래 베네차아 전쟁의 전리품인 황금색 말 4마리를 장식했었으나, 1815년 오테를로 전투에서 패하는 바람에 다시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 꼭대기에 올라갔다.
오랑주리미술관은 수리중이다. 그래서 작품은 피카소 미술관 및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 겼다고 한다. 아쉬음을 남기고 세느강을 건넜다. 이충 버스의 관광객이 우릴 보고 손을 흔든다. 파리를 일주하는 관광버스 . 내일은 타야지.. 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서
4) 오르세 미술관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 미술관. 지하철개찰구처럼 된 출입구를 지나면 둥근천장이 보인다. 선로공간을 기점으로 양쪽3층에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작품보호를 위해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니 주의해야 하겠다.
오히려 루브르 박물관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이 많다. 주로 19세기 말 모네, 르누아르, 고호, 세잔, 드가, 루소, 고갱등 후기 인상파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미술책에서 보았던 밀레 '이삭줍기',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고호의 '자화상', '오베르의 교회'등 주옥같은 작품이 일종의 흥분까지 일으키게 한다.
꾸르베의 '세상의 근원' 은 여성의 중요부분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그려 일종의 충격까지 느끼게 한 작품이며 지금까지도 외설시비에 논란이 된다고 한다. 로뎅의 '지옥의 문' 의 석고작품도 볼 수 있으며 로뎅의 제자인 브르델의 '헤리클레스'의 역동적 모습에 감동 받지 않을 수 없었다.
5) 로댕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에서 로댕 박물관까지는 꽤 멀다. 파리의 좁은 길을 감으로 찾는다. 여러 골목을 헤매다가 우연히 한국대사관을 발견했다. 가정집처럼 꾸며졌다. 사진 한 장 찍고, 5시경쯤에서야 로뎅미술관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정문입구 앞뜰에서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금방 튀어 오르려는 근육, 깊은 상념에 빠진 표정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앵발리드의 황금돔과 어우러져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어떤 동양인 커플이 우릴 보고 "안녕하세요"한다. 한국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한국사람인줄 몰랐는데.... 내가 한국사람처럼 생겼는가? 왜냐하면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어요. 저희가 한국인이지...." 그랬더니 "아저씨 T-셔쓰 PRO-SPECS 입었잖아요." 이렇게 브랜드가 중요하다. 그 커플은 신혼여행중이란다.
오늘도 힘든 일정이었다. 도저히 더는 못 걷겠다. 잘 꾸며져 있는 잔디에 주저 앉았다. 아내는 비행기에서 준 고추장을 꺼내 몰래 찍어 먹고 있다. 한국 출발 후 기내식에 작은 튜브형 고추장이 있었는데, 옆에 앉은 중국인은 매워 손도 대질 안길래 달라고 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틀만에 느꼈다. 아껴 먹자고 아내는 찔끔 손으로 찍어준다. 바로 이 맛이야. 정말 개운했다.
6) 앵발리드
루이 14세때 군인들을 위한 휴양소이다. 규모가 엄청나 한번에 5만명을 수용 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 중심부에 돔교회가 있고, 지하에 나폴레옹이 무덤이 있다고 한다. 군사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 6시가 넘어 입장불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교회 위에 있는 황금 돔인데 거대한 목조 연판을 붙인 둥그런 덮개로 되어 있으며 순금으로 도금되어 있다. 저녁에 몽마르트나 개선문에서 보면 이 황금색 돔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인다.
7) 알렉산더 3세 다리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1897년에 기증자인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기공식을 직접 행하였다고 한다. 다리 양쪽 끝에 20미터 주탑이 서 있고, 탑은 황금색 청동으로 장식되어있으며 다리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고풍스러운 가로등이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8) 프랑스식 만찬
파리의 먹자골목은 씨테섬 건너편 생마셀 거리에 있다.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그리고 일식과 중식 등 전세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주말저녁 이어서인지 인파로 가득찼다. 걷는 것 자체로도 재미있는 곳이다.
어느 식당 앞에서 예쁜 여자아이가 접시를 깬다. 너무 놀래 쳐다보니 주변 사람은 박수 치고 사진 찍고 난리다. 입구에서 접시를 깨면 영업이 잘된다는 미신 때문이란다. 여러 곳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싱싱한 해산물, 푸짐한 양고기.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된다.
가장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갔다. 맛있으니까 손님이 많겠지. 난 연어정식을 아내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前食은 홍합과 달팽이요리가 나왔다. 말로만 들었던 프랑스 달팽이 요리... 집게로 알맹이를 빼서 먹었다. 샹송이 부드럽게 귓전에 머물고 보르도 포도주와 함께 곁들인 프랑스요리(2명이 4만원정도). 이제 세계인의 한사람이 된 것이다.
옆 좌석엔 영국인 노부부 2쌍(그중 한사람은 숀 코넬리 닮았음)이 식사를 하다가 우리와 합석을 했다. 잠시 휴가를 내서 유로스타를 타고 온 것이라 한다. 저녁에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너무나도 흥겹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 거지(내가보기엔 세련됐음)가 다가와 구걸하지만 영국인들은 절대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기들은 꼭 단체나 국가에 기부한다고 한다. 거지는 정말 누구하나 도움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간다.
남대문시장에서 8백원씩 주고 하회탈 열쇠 고리를 선물했다. 너무나도 좋아한다. 더구나 엘레자베스 영국여왕이 관심을 가졌다는 하회탈을 보고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생일을 한국에서 보낸 것도 모른다. 어쨌든 영국인들은 너무 좋아서인지 우리에게 고급 삼페인 1병을 시켜주었다. 열쇠고리가 또 한번 힘을 발휘했다.
식당을 나와 보니 집시들이 흥겹게 악기를 두들기며 노래와 춤을 추고 있다. 아내는 넋이 빠져 쳐다보지만 난 보디가드처럼 아내를 경호했다. 집시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9) 에펠탑
다시 지하철을 타고 에펠탑으로 갔다. 높이 320미터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만드는 데에만 2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 기간중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진기록도 가지고 있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 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파리 시민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지금은 오히려 파리의 상징물로 더 큰사랑을 받는다. 꼭대기까지 60프랑(1만2천원)으로 너무 부담이 되어 밑에서만 감상했다. 생각보다 더 크고 아름다웠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잔디에 누어 바라 본 에펠탑. 이 추억 오래 간직하자.
98년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등 빅3테너가 공연한 곳이 바로 이 잔디밭이다. 거의 이 시간 쯤 공연시작해서 어두워질 때까지 화려한 선율을 선사한 곳.
10) 샹제리제 거리
다시금 샹제리제를 걸었다. '걷다가 지치면 호텔로 돌아가자' 라고 다짐하면서 프랑스의 젊음을 만끽하며 걸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두 정거장을 못 가서 지하철을 탔다. 돌아와 보니 발에 물집이 생겼다. 씻지도 못하고 골아 떨어졌다.
셋째날
베르사이유궁전-정원-벼룩시장-몽마르뜨- 스위스
1)베르사이유궁전
아침에 호텔에서 CHECK OUT하고 짐을 맡겼다. 파리 북역에 스위스 기차를 예약하고 지하철을 타고 베르사이유로 향했다. 기차로 40분 정도의 거리다. 요금은 3천원정도. 세느강변을 따라 달리는 전철인데 시내를 벗어나니 아파트촌이 보이고 파리 중산층의 가정집을 볼 수 있다. 파리는 도시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므로 고도제한이 되어 있어 10층이상의 건물을 찾아 볼 수 없다. 로마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시민들 대부분은 이렇게 교외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기차엔 많은 쌍쌍들이 타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 여자들은 너무나 예쁘다. 작은 얼굴에 오똑한 코, 그리고 푸른 눈은 남자를 매혹시킨다. 더구나 담배연기를 내 품는 모습은 모델 그 자체다. 시선을 너무 주니 아내가 경고 한다. "너 죽어" 그러나 곳곳에서 한국여자들이 살 맛났다고 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활보하는데 왜 이리 밥맛인지...
전철에서 궁전까지는 1킬로 정도 셔틀버스를 타라고 유혹하지만 걷기로 했다. 돈을 아껴야지.
부르보왕가의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세력을 가늠해 볼수 있는 역사의 현장 베르사이유, 일본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로 더 친숙한 바로 그 곳이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총동원해 무려 50여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궁전과 광대한 정원이다. 이곳은 원래 늪지대로 건물이 들어설 만한 땅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냥광 루이 14세가 자기가 즐겨 찾는 사냥터 근처에 궁전을 세우고 싶어했고 20여년에 걸쳐 흙을 메웠는데, 이는 순전히 인력만으로 막대한 양의 흙을 운반해 늪지를 메우고, 그 위에 숲을 조성한 뒤 분수와 운하를 만들기 위해 세느강의 흐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막대한 토목공사로 인해 왕가의 재정파탄, 그리고 서민생활의 피폐로 이어져 프랑스혁명을 불러일으키는 최대의 근거를 제공했다. 이곳에서 궁중생활을 한 대부분의 인물은 꽁꼬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민중의 수탈은 기득권세력의 몰락을 역사적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중국의 자금성과 이화원을 보면서 청의 몰락을 그리고 경복궁을 증축을 통해 조선의 몰락을 역사적 사실에서 볼 수 있겠다.
어쨌든 프랑스왕가의 붕괴는 당연한 일이며, 웅장한 건물에는 민중의 핏땀이 서려 있어 서글픔마저 들었다. 이 궁전의 문화가 전 유럽의 문화를 주도 했기에 '에티켙'이란 말도 여기서 나온 말이 란다. 거제도의 외도의 정원도 베르사이유 정원을 참조했다고 하니까 그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궁전입구는 황금의 문으로 치장되어 있고, 조금 지나면 태양왕 루이 14세의 기마상을 접할 수 있었다. 한참을 줄을 서서 '프티트리아농'에 입장했다. 눈에 띄는 것은 '거울의 방'이며 길이 75미터, 폭 10미터, 높이 12미터고, 578개의 거울로 장식되어있다. 17개의 커다란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이 이 방을 찬란하게 한다. 더욱 빛을 발하기 위해 모든 집기와 가구등을 순은으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 1919년 1차대전의 종말을 알리는 베르사이유조약이 이 방에서 체결되었다. 무수히 많은 그림들은 어제 루브르 미술관에서 지겹도록 접했기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대리석과 금도금으로 장식한 왕실 예배당은 너무나 화려했다.
'침실의 방'은 역대 왕비들의 출산장이기도 했는데 왕비가 낳는 아이들은 '만민의 아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분만 되었다고 한다.
2) 정원
베르사이유 궁전의 백미는 역시 정원이다. 궁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거울의 방에서 펼쳐진 정원이 한눈에 펼쳐졌다. 충격이었다. 여의도보다 훨씬 큰 규모의 운하가 저멀리 펼쳐저 있으며 수백년된 조경수가 군대조직처럼 늘어져 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의구심 마저 든다. 북경의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보았을 때의 충격, 호주의 40킬로까지 늘어선 골드코스트과 더불어 내가 느낀 가장 큰 감동들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 한 '라톤의 샘'. 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파충류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렸고, 그 밑에는 '아폴론의 샘' 이 우릴 맞이한다. 인간과 말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운하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도저히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아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돌았다. 한 바퀴 도는데 중간에 쉬지 않고 1시간 정도 걸렸다. 별궁인 그랑뜨리아농과 쁘띠뜨리아농은 아얘 시간이 없어 보지도 못했다.
궁전을 뒤로 한 채 중국식당에 들어갔다. 그래도 서양에서는 중국식당이 우리 입 맛에 맞는다. 볶음밥으로 창자를 채우고 파리로 돌아온다. 그 40분동안 잠을 잤다.
3) 쌩우황 벼룩시장
파리에서 가장 오래 되고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19세기 말부터 장이 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구, 골동품, 도자기, 장신구, 중고 의류등 없는 것이 없다. 사람도 무진장 많다. 너무 늦게 도착하고 비가 쏟아져 철시하고 있는 곳이 많다. 파리의 어느 지하철보다 더 지저분하고 왠 흑인이 이렇게 많은지.. 아프리카 흑인은 모두 이곳에 머무나보다.
4) 몽마르뜨의 슬픈기억
빠리는 몽마르뜨에서 시작했으니 몽마르뜨에서 마치자 성당과 까페를 둘러보고 광장에 앉았다. 여기서 기억하기 싫은 일이 발생했다. 벼룩시장에서 산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며 파리의 석양을 감상하고 있었다. 젊은 청년들이 기계체조를 하며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너무나 멋이 있어 넋이 빠져 있는 상황에서 아내 옆에 놓여있는 캠코더를 누가 집어 갔다. 몽마르뜨를 조심하라고 얼마나 경고를 들어왔던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 청년들이 의심이 간다. 우리의 혼을 빼고... 상주하고 있는 패트롤카에 신고했다. 거기서 인근 경찰서를 가르쳐 준다. 경찰서에서 확인서를 받아야 보험금을 받기 때문이다. 몇 번을 헤메서 찾아간 경찰서에서 "시간이 없다. 내일와라...담당이 퇴근했다." 아니 2시간후면 스위스로 가야하는데.. 막 따졌다. "다시는 프랑스에 오지 않겠다." 그랬더니 한참 후에 담당을 찾아 확인서를 발급 받았다. 나중에 한국에서 30만원 보험혜택 받았다.
파리의 좋은 기억이 이렇게 아픔으로 변했다.
5) 파리여 안녕
3일간의 파리여행을 마쳤다. 베르사이유와 오르세, 에펠 등을 담은 테이프가 너무나 아깝지만 이제는 캠코더에 신경 않 쓰기로 했다. 비디오에 담으려는 욕심에 미술품을 느끼기에 여러 제약을 많이 받았다.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너무나 미안해 했다. 아내가 미국에 있을 때 구입하여 장인께 선물한 것인데.... 아내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녀 표정은 너무나 어두웠다.
열차에 올라 탔는데 너무나 피곤해서 침대차로 다시 바꾸었다. 유레일패스로 추가부담(2만원)만 하면 편안히 누워서 갈 수 있다. 유럽의 열차는 대부분이 '컴파트먼트'라고 해서 6개의 의자가 3개씩 마주하고있는 룸으로 구성되어있다. 쿠셋은 컴파트먼트를 개조하여 4개의 침대가 한 세트다. 우리 룸에는 아내 말고 프랑스인 한사람이 더 있었다. 캠코더를 잃어버린 것을 얘기했더니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창피해 했고, 또한 위로도 해 주었다.
발을 닦고 잠을 청하려는데 너무나도 발 냄새가 진동했다. "저 놈 발도 안 닦고 자나?" 애꿎은 프랑스 젊은이를 원망했다. 그 프랑스인이 화장실에 갔는데도 불구하고 냄새가 너무 심해 아내 발 냄새를 맡아보니 너무나 지독했다.
"야, 당장 발 닦고 와.."
아내와 5년을 살면서 여자는 발 냄새가 없는 줄 알았다.
얼마나 걸었으면 ..
난'젊은이 미안해. 내가 오해해서..' 반면 그 프랑스인도 얼마나 나를 오해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파리여 안녕.
내일이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스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