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솔직하게 이유 하나만 대보라고 한다면 "이게 다 월드컵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2002년 한나라당이 완전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경이적인 사건과 동시에 벌어졌다. 물론 그 해에는 노무현 열풍이 불면서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일단 형성된 지방자치에서의 특정정파 독점 구도는 지금까지 해체되지 않고 있다.
기초 단위에서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지역은 대부분이 지방 토호들의 이익에 아주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고, 그 기간 동안 역설적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경제가 아주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기초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전라도 지역은 어떤가? 중앙정치에서는 여야로 나뉘어서 민주니 반민주니 갈라져 있는 것 같지만,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면 지역 자치라는 관점에서 이들은 모두 토호연합당이다. '개발연대'라고 부르면 딱 좋은 이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지역에 '개발 호재'를 만들려고 한다. 이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지역에서는 실제로 토호들만 있고, 그 지역을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생태주의자들이나 혹은 문화 프로그램의 옹호자들이 없느냐, 정말로 지역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지역토호와 그들의 추종자만으로 주민들이 구성되어 있는가라고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전국의 모든 지역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는 생태적 지역발전을 희망하는 시민단체들도 있고, 또 "내 고향 지키기"에 나름대로 매진하는 그야말로 '건전한 보수'들도 존재한다.
어쨌든 전체적인 형국을 보자면, 2002년 지방선거에서 시작된 '토호 전성기'가 거꾸로 중앙을 움직여 지금의 정권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흐름이 위에서만 바꾸자고 해서 그렇게 잘 바뀌지 않는다. 지방토호들의 권력을 해체하거나, 해체가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 견제는 할 수 있는 풀뿌리의 새로운 흐름 없이 서울에서의 그 어떤 노력도 '민중적', '대중적' 혹은 '전국적'이라는 수식어를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지 '공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여름의 촛불집회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이 지독할 정도의 중앙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결국 지방 자치 그것도 풀뿌리 자치에서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들 역시 기계적인 계몽주의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98년 IMF 때 발생한 귀농 운동 이후, 크게 간판을 걸지는 않았어도 일종의 브나로드라고 할 수 있는 하방운동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지역에서 토호식 개발정책이 지역발전의 모든 옵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서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진짜 주민대표들이 개발연대의 핵심에 있는 지방토호들의 동토에서 '바늘 하나 꽂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문제투성이 기초자치를 아예 없애고, 어차피 한국은 중앙에서 그냥 통치하는 국가라고 광역지자체로 가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공간은 우리에게 맞지 않으니 치워버리자고 하는 주장도 나오게 된다. 하지만 어려워도 지역에서, 그리고 풀뿌리에서 무엇인가 변화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지방토호들의 땅값 올려주기에 불과한 토건시대가 해체되지 않는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치의 상징이 아니라, 토호들과 외지인들이 결탁된 '개발 연대'에 대한 제어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녹지대비 전구 최고의 골프장 지역, 제주 군사항을 축으로 평화의 섬이 아니라 군대의 섬으로 변하는 추이, 광역 지자체 최고의 유아 아토피 발병률, 그리고 20대와 30대의 60% 가까이가 저신용으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인 지역, 그곳이 바로 우리의 제주도이다.
문제는 자치냐, 특별이냐, 그런 토호들이 갖다 붙인 허울만 좋은 명분이 아니라, 실제로 거주민이 살기에 편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조건을 어떻게 지역 생태와 결합시키면서 만들어 낼 것인가, 즉 토호의 눈이 아니라 주민의 눈으로 그 지역을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런 기초 정치의 지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결국 주민들이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공간이 열리는 시점이 4년마다의 주기인 지방선거 시점이고, 그게 바로 2010년이다. '개발'이라는 말 대신, '정주(human settlement)'라는 말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관광'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정주'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역과 중앙이 공존할 수 있는 선진국 경제로 전환되는 새로운 진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불안하고 미약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들에는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를 믿는 주민들이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2010년 월드컵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 시점이다. 어렵다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버릴 때가 아니라, 지방토호들과 지역경제의 사활을 건 싸움을 한 번 해야할 때이다. 그래야 중앙정치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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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은 꼭 '정치중립' 지켜야 하나 / 심판노릇 이제 그만, 정치주체로 나서야 (오마이뉴스, 09.02.05 12:11 하승창)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③] 오마이뉴스 - '좋은정치씨앗들' 공동기획 최근 시민운동이 옛날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시민운동이 낡은 소통방식과 운동방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예전 같은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예전 같지 않은 시민운동을 정의하는 개념 가운데, 시민운동의 변화를 옥죄는 것이 '시민운동의 정치중립'이다. 이는 시민운동의 정체성처럼 돼 버렸다. 그 배경에는 한국 시민운동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창립이 있다. 경실련은 '시민운동은 기존의 민중운동과 달리 비정파적'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처음부터 시민단체들이 선거참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1991년 지방자치선거 당시 시민단체 인사들이 '지방자치는 시민운동의 영역'이라며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시민운동가들은 이 때 직접 경험한 선거문화의 후진성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주요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공명선거캠페인, 정책선거캠페인 등 선거문화와 정치과정에서 공정한 룰의 확립이라는 과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했다. 시민운동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은 이 때부터 일반화됐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은 1990년대 시민운동의 중요한 특징이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획득한 것도 사실이었다.
별다른 의심이 없던 이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2000년 총선연대의 낙선운동 때문이었다. 서경석, 이석연 등 경실련의 전 사무총장들은 낙선운동에 대해 시민운동의 정체성인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당시 총선연대는 어느 특정정당의 편에 있기보다 낡은 정치문화의 개혁이라는 대의 위에 있었고 그것은 어느 특정 정당에 대한 공격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서경석, 이석연의 문제제기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시민운동이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면 모르지만(이런 문제제기를 할 리 없겠지만) 정치적 편향에 관한 것이라면 틀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시민운동은 낙선운동이 정치적 중립의 틀 내에서 이루어진 정치개혁이었다고 평가했고, 이후에도 정치적 중립은 변하지 않는 원칙인 것처럼 여겨졌다.
낙선운동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래서 일부 시민운동가들이 정부의 성격과 개인적 결단에 의해 정관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는 10년 내내 정치편향 논란에 휩싸이는 단초를 제공했다. 지금도 시민운동은 그 언저리 어디에 있는 것처럼 각인되고 있다. 시민운동은 그간 일관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홍위병' 운운하는 한나라당과 우익인사, 그리고 우익언론의 무차별적으로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하지만 '시민운동 정치중립'의 주창자이기도 했던 서경석과 이석연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또 과거 '정치적 시민운동'을 격렬하게 성토했던 뉴라이트는 지금 현 정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적 발언을 하기는 마찬가지인데, 2000년 이전에는 왜 이런 논란들이 없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정치지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90년대까지 우리 정치는 지역과 보스에 기초한 보수정당들의 각축장이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의 출현은 다른 변화를 보여주었다.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매개로 한 사회개혁에 시민단체들보다 대중이 먼저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시민단체의 출현 앞에 상대적으로 대선유권자연대로 모인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작아 보이기만 했다. 더구나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하면서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은 더욱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정책비교를 해보아도 민주노동당이 훨씬 시민운동에 가까웠지만, 실현가능성이라는 항목으로 다른 정당에 비해 낫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곤 했다. 그러한 시민단체들의 결정 뒤에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족쇄가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사회적 조건이 이미 가치를 중심으로 나뉘어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는 시기에는 사실 정치적 중립이 설 자리가 없다.
시민운동의 요구 자체가 이미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는 만큼 그 행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정치적 중립이란 정치에서 공정한 룰에 관한 것이니만큼 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각종 제도적 요구와 개혁적 요구엔 이미 특정한 가치지향이 담겨 있다.
이제 시민운동은 하나가 아니다. 가치지향이 다양하며, 그에 기반한 행위들을 조직한다. 여전히 정치적으로 중립적 위치에서 경쟁의 룰에 관한 주장과 요구로 운동하는 단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개혁에 관한 각종 요구를 내걸고 활동하는 경우, 이미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향해 움직이는 한 시민운동이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시민운동의 가치지향을 온전하게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부분적으로 대변할 뿐이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정치적으로 심판 노릇을 하려 하거나 아예 관객의 위치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난 총선의 경우에는 늘 하던 심판 노릇도 하지 못했다. 낙선운동 이후 10여 년 가까이 시민운동은 정치개혁에서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지난 총선 투표율 46%가 말해주듯이 시민들은 정치의 관객으로 전락했고, 시민운동도 그다지 다른 처지에 있지 않다. 그러나 시민운동이나 시민이 정치를 외면할 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향한 주장과 목소리는 정치 영역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지상주의를 향한 각종 법률안이 이를 잘 보여준다.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 생태적 위기, 공동체성의 파괴 같은 것이 이처럼 시민들이 배제된 정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은 46%의 투표율이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낙선운동을 통해 사람을 바꾸어 봐도 공동체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정치적 시민단체를 만들어 '내가 권력을 잡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람을 당선시켜 보아도 변화하지 않는 삶의 현실을 보며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만 깊어 갔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촛불시위는 지금의 대의정치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촛불에서 확인된 대의정치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다시 누구를 바꾸고 누구를 지지하면 될까로 움추러들지 않고,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참여할 때만 사회를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시민운동은 더 이상 좋은 정치를 만드는 일을 '우리는 중립이니까' 하고 외면하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해 있다. 좋은 정치세력을 만드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길이기도 하다.
시민운동이 곧 정당이 되고 정파가 되는 일은 없겠지만, 밑바닥에서 좋은 정치인을 뽑고 제대로 된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가를 만드는 일에 영향을 발휘하는 것은 가능하다. 또 그래야만 기존의 정당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정치적 중립을 넘어 제대로 된 정치를 만드는 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민운동의 숙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는 아마도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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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한 '밥그릇'도 다시 봐야 생활이 변한다" (오마이뉴스, 09.02.13 11:29 심규상 (djsim))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④] 김경희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공동대표 인터뷰 김경희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및 대전여민회 공동대표는 지역 생활정치의 전도사다. 그는 우선 지역 정치 현실에 대해 "지방의회는 보수정당이 독점하고 토호중심의 개발연합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은 늘어가고 있는 반면 지역시민사회의 영향력을 감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내린 처방은 한결같다. "좋은 여성후보를 의회에 보내야 하고" 이를 위해 "주민과 함께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는 특히 "시민운동 자체가 정치를 바로 세우는 운동"이라면서도 "시민운동가들이 지방정치 진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시민운동 하듯 정치활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시민운동가들이 주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활동을 해 왔다면 정치운동은 말 그대로 한 사람으로부터 한 표를 얻는 생활밀착형 활동이다. 따라서 시민운동가들이 풀뿌리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준비도, 운동방식도 생활밀착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김 대표가 말하는 좋은 정치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고,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혼자 하는 정치가 아니라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다.
그는 "평범한 주부들이 생활 속에서 가로등과 수돗물 문제가 결국 정치와 맞물려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생활정치의 시작"이라며 "이런 면에서 벼룩시장, 자원재활용운동, 환경보호운동, 의정모니터 등 지역 활동은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 현재 지역정치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나?
"지방의회는 보수정당이 독점하고 토호 중심의 개발연합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은 늘어가고 있는 반면 지역시민사회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 민선자치시대가 도래하면서 생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 여성들이 소수지만 의회에 진출해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지만 지방정치는 여전히 일부의 힘 있는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다. '풀뿌리 생활자치'라는 지방자치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연고와 이권, 부패와 무능이 판치는 구시대 중앙정치의 구습을 옮겨놓은 정치판이 지역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 시민운동가들의 지방정치 진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참여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또한 모든 사안의 정점에 정치가 있다. 시민운동 자체가 정치를 바로 세우는 운동이다. 시민운동가들이 지방정치 진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시민운동 하듯 정치활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시민운동가들의 지방정치 진출에 있어서 개인적 걸림돌과 사회적 걸림돌을 각각 꼽자면.
"개인적인 걸림돌은 시민운동가들이 활동방식이 정치진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운동가들은 주로 이슈와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오다 보니 생활밀착형 풀뿌리 정치활동과 거리가 있다. 즉 시민운동가들은 주로 사무실운동에 능하지 이웃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한마디로 역량 있는 시민운동가도 막상 정치국면 때 선거구에 나가면 지지하겠다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 걸림돌은 시민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와 정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인식이다. 즉 시민운동과 정치를 연결해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과거 여러 차례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가 이뤄졌다. 하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수혈에 그치거나 지역 운동과의 조직적 결합이 미비했다. 어떤 방식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보나?
"먼저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벌이고 있는 '가나가와 네트운동'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가나가와현의 각 기초자치단체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 생협운동을 벌이다 '어떻게 하면 세제를 좀 덜 쓸 수 있을까'를 논의하다 지방조례를 만들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지역 안에서 네트워크를 넓혀 지역 네트워크 조직을 만들고 지방의회 선거에 회원을 보내기 위해 도전했다. 한 명의 지방의원을 만들기 위해 회원들은 회비를 내고 자원 활동을 했다.
지방의원에 당선된 사람도 대리인이라는 생각으로 의정활동을 벌인다. 때문에 의정활동 정보가 철저히 공개되고 지역정치 풍토 개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각 지역에도 정치운동을 하는 단체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적어도 지방정치에 진출하고 자 하는 좋은 후보가 돈이나 자원봉사조직 등 환경적 요소 때문에 뜻을 접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지방의회에 진출한 소수 여성의원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당선을 위해 만든 급조된 조직과 활동은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다. 이보다는 함께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과정을 나눠야 의회에 진출한 여성의원과도 지속적인 지원과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좋은 후보를 지방의회나 국회에 들여보내면 좋은 정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동안 역량 있는 여성 후보자가 국회에 진입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역량 있는 개인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과정을 공유한 사람을 많이 늘리는 일이 보다 소중하다. 지역에서부터, 밑바닥에서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 김 대표가 생각하는 생활정치는 무엇이고 어떻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모두가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문제를 느끼게 된다. 이것이 문제라고 같이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금씩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생활운동의 시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활동경험이 쌓여 지속적이고 재미있게 활동해 나가는 것이 생활정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라고 느끼지 않고 흘러 보내거나 문제임을 느끼면서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거나 함께 해결하기보다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생활정치는 대부분의 문제가 개인적인 것이기보다 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를 바꾸기 위해 벌이는 활동인 셈이다."
- 그동안 지역여성들과 생활정치를 공유하기 위한 현장 활동을 벌여왔다. 여성들이 생활의 문제가 결국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어떻게 깨닫고 있나? "평범한 주부들이 생활 속에서 가로등과 수돗물 등 수많은 문제와 부딪힌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하다가 좌절하면서 간단한 문제지만 자치단체와 지방토호세력, 지방의회 등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면에서 벼룩시장, 자원재활용운동, 환경보호운동, 의정모니터 등 지역 활동은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다."
-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지방의회에서 '여성발전기본조례'를 만드는 데 너무 개념이 없다. 만드는 사람들이 여성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은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생각을 적어 의회에 보냈다. 작은 것이지만 문구가 바뀐 조례가 제정됐다. 중요한 것은 지방의회 의원들이 밥그릇을 놓고 싸우고 있을 때 그냥 '또 싸우고 있구나'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왜 싸울까?' '어떤 밥그릇을 놓고 싸우는 걸까'를 궁금해 하고 이걸 파악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의회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의회 모니터 활동도 벌이게 된다."
- 시민운동가들이 풀뿌리 정치에 참여하면 잘할 수 있다고 보나?
"잘할 수 있지만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시민운동가들은 주로 오랜 생활을 주민과 만나 얘기하기보다 언론을 만나는 데 익숙했다. 때문에 막상 동네에 가면 마을문제를 해결하는 데 곤란해 한다. 시민운동가들이 주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활동을 해왔다면 정치운동은 말 그대로 한 사람으로부터 한 표를 얻는 생활밀착형 활동이다. 따라서 시민운동가들 풀뿌리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준비도, 운동방식도 생활밀착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 좋은 생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단순히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목표를 두기 보다는 일반 누리꾼을 비롯 여대생, 아파트 부녀회, 진보정당 및 기성정당 참여여성 등 다양한 층의 여성들과 소통 과정을 공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출마 후보자와 관련해서는 후보자 발굴, 교육, 캠프활동 지원, 예산확보, 선거 후 네트워크 구성 등 출마후보자에 대한 완결적 지원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만이 선출된 대표자가 혼자 하는 정치가 아닌 시민들이 정책결정과정과 정치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도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소통하는 사람을 늘리는 게 진전이고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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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돈 봉투·승진청탁·성매매 의혹... 당신 무관심 때문에 거덜난 지방자치 (오마이뉴스, 09.02.23 12:35 하승수)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⑤] 4월 선거에서 시흥시·광진구를 주목하자 4월 재·보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특히 4월 선거에서는 부패로 찌든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상징적인 곳에서 투표가 진행된다. 경기도 시흥시장 보궐선거와 서울 광진구에서 치러지는 서울시의원 보궐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곳은 썩고 무능한 우리나라 정치의 축소판이다.
경기도 시흥시에서는 경찰서장 출신인 이연수 전 시장이 사찰로부터 납골당 사용승인 대가로 뇌물 5천만원을 받아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연수씨는 구속되어 재판을 받으면서도 시장직을 놓지 않아 시정공백이 장기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와 관련해서 돈봉투를 뿌렸다가 구속된 김귀환 서울시의원의 지역구가 서울 광진구이다. 이 곳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지방자치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엉망인 곳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수도권을 꼽는다. 최근 고질적인 부패사건들이 가장 많이 터져 나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경기도에서는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시장직을 상실한 시흥시장 외에도, 이동희 안성시장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안성시의원 3명은 골프장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시의회 의장선거와 관련해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작년에 터진 서울시의회 돈봉투 사건 이외에도 김효겸 관악구청장이 친인척까지 연루된 인사비리 혐의로 기소된 상태이다. 김효겸 관악구청장의 친척이 감사담당관실 조사계장을 하면서 승진청탁의 댓가로 뇌물을 받았고, 구청장도 부하직원으로부터 승진사례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공무원 인사비리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공무원 승진자료인 근무평정까지도 조작했다고 한다. 또한 작년에 서울시 중구의회에서는 의원들 6명이 성매매 의혹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수도권 지방자치는 가히 '복마전'이라고 할만하다. 각종 인·허가, 공무원 인사, 예산편성 등과 관련된 부패문제들이 끊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자질이 의심스러운 일들도 계속 생기고 있다. 이처럼 수도권 지방자치에서 원시적인 부패, 최악의 행태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도 기득권 정당들이 정당공천제를 매개로 지역정치를 좌우하는 것이 문제이다. 선거에 나가려고 하는 후보자들 입장에서 보면, 주민들로부터 인정받는 것보다는 중앙당 공천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한 실정이다. 공천에 목을 매고 온갖 노력을 해서 공천을 받아 당선이 되면, 그 때부터는 주민들에게 무소불위가 되고 각종 이권에 유착되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번 선거에서도 공천을 받는 것이 중요하니, 부패를 저지르는 데에도 망설일 게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은 강한데 지방의회는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부패가 쉽게 이루어지는 요인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 내에서 '제왕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 권력을 견제장치 없이 행사하다보니 부패가 빈발하는 것이다.
수도권 시민들의 상대적 무관심도 문제다. 수도권은 이사를 자주 하다보니 지역에 대한 정주의식이 떨어진다. 또한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지다보니 정당기호만 보고 투표를 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있는 후보자들이 공천을 받아도 아무런 장애요소 없이 당선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당선 후에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썩고 표류할 때에 수도권 시민들에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은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마시는 공기의 질도 나쁘고, 집 값은 비싸고, 여전히 부모들은 보육문제, 교육문제로 힘들고, 학교급식도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늘어나는 빈곤층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데도 지역복지정책은 빈약하다. 문화, 교통, 환경, 수돗물 등등 우리 삶의 많은 부분들은 지방자치와 관련되어 있지만, 시민들의 입장에서 정책이 세워지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예산들은 각종 전시성 행사에 낭비되고, 이권과 기득권에 휘둘려서 엉뚱하게 사용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이권과 결탁해서 무리한 개발사업들을 벌이고,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사실 수도권 지방자치가 잘 되면 시민들의 '삶의 질'은 지금보다는 훨씬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많게는 10조가 넘고, 적어도 몇 천억이 넘는 예산을 쓰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언제까지 '시민의 정부'가 아니라 '기득권 정부', '이권 정부'로 타락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만 있을 것인가?
지방자치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는 정당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나라당은 최근의 부패와 전횡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에 부패나 독선, 전횡으로 문제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대부분은 한나라당 소속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이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주당으로 당선되었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 역시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왔다. 민주당 역시 지역정치를 자리 나눠먹기의 장으로 생각했고, 기득권적 속성을 버리지 못했다. 시흥시만 하더라도 민선 1,2기는 민주당(국민회의) 소속 시장이 당선되었지만, 모두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부패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런 민주당이 과연 풀뿌리 지방자치를 책임지겠다고 할 자격이 있는 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시민의 입장에서 지역정치를 펼치고, 중앙당이 아니라 지역 시민들에 줄서는 '시민의 입장에 선'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이 나와야 한다. 다행히 희망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서는 '돈봉투' 시의원을 주민소환하는 운동을 벌인 '주민소환추진본부'에서 독자후보를 추진하고 있다. 역시 '뇌물시장'을 소환하기 위한 주민소환운동을 벌인 경기도 시흥시에서는 주민소환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시민의 입장에 선 시장을 뽑기 위한 운동을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좋은 지방자치 만들기 시흥 희망본부'(cafe.daum.net/shjcgood)가 결성됐다.
4월 보궐선거에서 경기도 시흥시와 서울 광진구에 주목하자. 꼭 시흥시민이나 광진구민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관심을 갖자. 우리나라 정치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썩은 지방자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꼭 시흥이나 광진에 살지 않더라도 새로운 시도에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주자. 비록 지역에서의 작은 움직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움직임이 태풍으로 변할 수 있다. 이제는 한탄을 할 때가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 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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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에게 5천만원 쇼핑백 받은 시장, '업무수첩' 감추느라 바빴던 공무원들 (오마이뉴스, 09.03.04 09:37 김영주 (joo1072))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 ⑥-1] 시흥시장 불법 백태... 소환운동했던 시민들의 4.29 선택은? 시민들이 부끄럽다고 했다. 연일 언론에 경기도 시흥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뇌물수수 혐의 관련한 기사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비단 최근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흥에선 아쉽게도 민선 1, 2, 3기 모든 시장이 선거법 또는 정치자금법으로 사법처리를 받았다. 그러나 4기 민선시장은 해도 너무했다.
시흥경찰서장 출신으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연수 시장은 2006년 5·31지방선거 당선 이후 그해 10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2007년 9월에도 또다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11월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아예 구속 기소돼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시흥시 행정은 거의 올스톱 상태였다.
2006년 10월 10일 이연수 시흥시장은 5·31지방선거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을 홍보하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는 등 사전선거운동 등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죄)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다가 11월 17일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시장직을 유지하는 사람은 조그만 의혹이 있어서도 안 된다"며 "처신에 문제가 있다면 그 밑의 직원들과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연수 시장은 이런 지적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2007년 9월 또다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당선된 뒤 각종 축제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축제 만들기'는 민선시장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기존에 없었던 축제들을 사전 검토 없이 만들어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시민단체 및 공무원노조에서 "즉흥적인 축제를 중단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고를 무시한 이 시장은 '시흥시민 걷기대회' 행사에서 본인의 홍보기사가 게재된 여성잡지 1500부와 자동차 경품 등 총 3천여만원 상당을 행사에 참석한 시민에게 제공해 공직선거법 위반(잡지 등의 통상방법 외의 배부금지, 후보자 등의 기부행위금지) 혐의로 두 번째로 불구속 기소됐다.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두 번 불구속 기소된 이연수 시장은 특히 뇌물수수 혐의까지 더해져 두 건의 재판을 동시에 받았다. 공직선거법 수사를 하던 검찰이 이연수 시장의 5·31지방선거 선거대책본부장, 비서실장, 선거사무장 등이 이 시장의 직위를 이용해 함께 뇌물을 수수한 대규모 '측근비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후 검찰은 몇 차례 더 시흥시를 압수수색해 공직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때마다 검찰은 공무원들의 업무수첩을 가져갔다. 그래서 조직 내부에서는 이런 지침도 은밀히 내려졌다. 일부 공무원들은 연필로 살짝 메모했다가, 지우개로 지우는 등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의 몇 차례 압수수색이 이어지더니 결국 2007년 11월 23일 이연수 시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혐의로 구속기소 됐으며, 직무정지로 인해 부시장 체제로 바뀌었다. 이연수 시장은 2명의 공여자로부터 모두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놀라운 것은 이 시장이 2006년 7월 취임하자마자 사찰 주지에게 5천만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 돈도 집 앞에서 쇼핑백에 담긴 상태로 받는 과감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2007년 12월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흥시장 및 그 주변 인사의 이권개입 등에 대한 비리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이경재 차장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9월부터 시흥시장 및 그 주변 인사들에 대한 이권개입 및 비리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여 이 시장을 비롯해 비서실장, 선거사무장, 개발업자 등 13명을 인지, 7명을 특가법 위반(뇌물) 및 뇌물공여 등으로 구속기소하고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차장검사는 또 "해외로 도피한 시장 비서실장(구속영장 발부) 등 3명은 지명수배했다"고 덧붙였다.
검찰 측은 개발제한구역이 도시 전체 면적의 75%에 이르는 시흥시의 도시 특성상 각종 인허가와 관련된 시장 및 그 주변 인사들의 부적절한 개입, 금품수수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수사 배경을 밝혔다. 검찰 측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비리의 특성을 ▲선거자금 대여 등 편의 제공-당선 후 이권 개입 ▲과다한 선거비용-당선 후 수뢰 ▲지역특성에 기인한 고질적 비리 ▲시정의 투명성 오염 ▲치밀한 범행 은폐로 지적했다.
시흥시장은 확인된 것만 7억원의 선거자금을 주변 인물들로부터 차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선거 후 특정 보직 임명이나 이권 보장 등을 암시했고,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반발 무마를 위해 필요한 돈과 막대한 선거차용금 변제에 충당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수뢰에 이르게 됐다고 검찰 측은 공식 논평했다. 이 시장을 제외하고 구속된 인사들은 대부분이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대부분 올해 4월경 출소하게 된다. 해외로 도피한 비서실장을 비롯해 뇌물공여자들은 아직도 해외에 있다.
시흥시엔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주)한화건설로부터 매입한 군자매립지(일명 한화매립지) 사업이 특히 그렇다. 시의 재정보다 많은 5600억원에 매입해 700억원을 계약금으로 전달하고, 4900억원의 잔금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도시 전체의 70% 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시흥시는 정부의 '임대아파트 100만호' 건설 계획에 따라 '분양 50 : 임대 50'의 조건으로 주공, 토공을 통해 장현, 목감, 능곡지구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날림공사로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능곡지구의 입주예정자들은 각종 불편을 호소하지만,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없다. 목감, 장현지구 또한 마찬가지이다. 보상이 적다며 집회를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이다. 시흥시민들의 숙원 사업인 서울대학교 캠퍼스 유치사업도 결정권자가 없어, 몇 차례 진행되던 협상도 제자리걸음이다. 시민들의 또 하나의 큰 바람인 전철유치 또한 그렇다. 수자원공사의 대규모 시화멀티테크노벨리 공사, 조력발전소 공사에서도 시흥시의 입김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결국 시흥시민단체들이 나서 "40만 시흥시민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시민 대표이자 행정 수장인 시장이 계속되는 재판과 구속으로 지역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시흥시민이 보고 있다"며 이연수 시장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연수 시장은 자진사퇴를 거부했고, 결국 이연수 시장 주민소환을 위한 운동본부가 구성돼 60일간 5만여 명의 주민서명을 받아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주민소환운동은 법의 각종 규제로 기각됐지만, 지난 1월 30일 대법원은 이연수 시장에 대해 징역 3년 6월,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에 따라 시흥시는 4월 29일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수도권에서 치러지는 시장 보궐선거인 만큼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까지 한나라당, 민주당, 무소속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만 10여 명이 넘는다. 모두 '깨끗한 후보'임을 강조한다. 민선 1, 2, 3, 4기 시장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사법처리를 받은 만큼 '능력보다는 깨끗함'이 후보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격도 되지 않는 후보들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깨끗함과 함께 능력을 갖춘 참신한 인물을 원하고 있다. 주민소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들의 자발성이 4월 29일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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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뿌리 뽑은 4만6877과 여름을 건넌 사나이 (오마이뉴스, 09.03.04 09:37 김영주 (joo1072))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⑥-2] 강석환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지난해 경기도 시흥시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날씨 탓도 있지만, 이연수 시흥시장이 각종 개발사업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자 '직무정지로 인한 행정공백을 해소하고 건전한 지방자치 정착'을 위해 7월 21일부터 9월 19일까지 60일 동안 주민소환운동이 대대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비록 주민소환운동이 기각되었지만, 시흥시 유권자 27만3613명의 15%(법적 요건)가 넘는 4만6877명의 서명부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주민소환운동과는 별개로 대법원에서 1월 30일 이연수 시흥시장에 대해 징역 3년6월,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에 따라 시흥시는 4월 29일 보궐선거를 치루게 됐다. 이로 인해 시흥시 내부에서는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부정비리 행정파탄 이연수 시흥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강석환(44) 집행위원장에게 주민소환운동 추진 배경과 성과, 에피소드 등을 들었다.
주민소환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당연히 생뚱맞다는 분위기였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시민들에게는 주민소환이 낯선 제도인데다 지방자치에 무관심한 일부 시민들은 이연수 시장이 구속돼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소환운동이 추진되면서 시민들은 직접 뽑은 시장에 대해 해임권도 행사할 수 있다는 당연한 권리를 알게 됐다. 주민소환운동을 통한 가장 큰 성과라면, 시민들이 직접 나서 '성숙된 주민자치 의식'을 보여주게 된 것.
하지만 주민소환운동은 표면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주민소환법의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운동본부는 소환청구인 서명부 4만6877명를 제출하여 유효 3만5163명(75%), 무효 1만1714명(25%)으로 집계됐다. 무효 사유로 청구권이 없는 자 6037명, 확인 불능 1547명, 이중서명 3787명, 서명요청기간 외 서명 12명, 기타 부정한 방법에 의한 서명이 331명이었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됐던 건 청구권 자격이었다. 주민소환법에 의하면 주민소환을 위해 전·출입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하에 전년도 12월 31일 이전에 전입한 사람으로 청구권 자격을 한정해 2008년 1월 1일 이후 전입한 사람은 모두 '청구권이 없는 자'로 분류 처리됐다.
하지만, 4만6877명의 수치는 운동본부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5만에 가까운 이 숫자는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고,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주민의지가 충분히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60여 일 동안 이 활동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그는 "청구인 대표이자 집행위원장을 맡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가 공개돼 알지 못하는 많은 주민들로부터 전화 및 문자메시지를 통한 격려를 받았다"며 "주민소환운동본부 카페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수임인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힘을 보여주자'는 내용이었다.
이번 주민소환운동에는 각 시민사회단체 회원을 비롯한 일반 시민 400~500여 명이 수임인으로 등록해 청구인 대표자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렇다고 주민소환운동이 늘 활기찼던 것만은 아니었다. 7월 21일부터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날씨로 인한 고생이 상당했다. 7~8월 더위도 더위지만, 휴가철에 도시가 텅 비어 사람들이 없고 폭염 속에서 한 사람의 시민을 만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닐 때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나 혼자, 이 도시에서 뭐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한낮의 뙤약볕을 지난 후엔 장마가 괴롭혔다. 그 기나긴 더위와 장마를 지나 9월 19일 서명부 제출을 앞두고 강 집행위원장의 힘듦도 극에 달했다. 그래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 및 활동가들을 비롯한 수임인들에게 '서명인원을 강제'(?)하며 부담을 주기도 했다.
소중한 성과와 한계를 함께 보여준 주민소환운동본부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선 주민소환운동 과정 중 법률위반으로 8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1명은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를 받았으며, 나머지 7명은 각자 100~200만원의 벌금을 받아 그 금액이 총 1200만원에 이른다. 이들은 결과에 불복, 약식재판 중이다. 모두 수임인 등록 없이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강 집행위원장은 "법률과 절차를 모르거나 무너지는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을 이루려다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재판부에서 선처해 줄 것이라 믿는다"며 "실례로 먼저 재판을 받은 사람에게 벌금 100만원 전액을 감해주는 선고유예를 내린 바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이어 주민소환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주민소환법에 제약조건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각하되고 난 후 이 법이 개정될 필요성을 더욱 실감했다는 것이다. 우선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있는 주민소환투표청구인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작년 12월 이전까지, 즉 주민소환운동이 추진된 해의 전년도에 전입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도록 하는 부분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12월, 1월에 이사 온 사람이 있을 경우 한 달 차이로 청구권이 있는 자, 없는 자가 가려져서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과도하게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민소환투표 청구인수를 유권자의 15% 이상으로 한 것도 과도한 제한이라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일부 수임인이 재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 해산하지 않았다. 당초 목적인 이연수 시장 해임이라는 목표는 이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이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운동본부와 더불어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좋은 지방자치 시흥희망본부'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좋은 지방자치 시흥희망본부'를 통해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고, 왜곡되고 잘못된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첫 사업으로 "4월 29일 보궐선거 적극 참여"를 꼽았다. 시흥시 지방자치 바로 세우기에 동의하는 후보를 지원하고, '시민독자후보'를 선정해 지지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주민소환운동의 성과를 이렇게 정리했다. "주민소환운동 과정 중 주민들의 권리에 대한 이해부족과 정치적인 견해 (차이) 때문에 일부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보냈지만, 지금에 와서는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민의 의지를 보여줬다며 큰 격려를 받았다. 주민소환운동을 하기에는 시민단체 역량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성취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충주, 광주, 파주 등 독단적인 행정이나 부정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자체에 살고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좋은 사례로 평가받았다."
강석환 집행위원장은 시흥YMCA 시민사업부장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시민운동의 원론적,담론적 시민운동보다 시민운동의 가치 실현을 위해 주민과 함께하는 실천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소환운동은 시민들에게 '성숙된 주민자치 의식'을, 시민단체 실무자들에게는 '시민운동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선물을 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