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자 |
성 명 |
강혜원 |
연락처 | |
주 소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신곡1안길 33-4 |
스토리 :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유니세프를 시작하다. |
요즘 세상은 취직이 늦다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취직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했고 남들만큼 늦은 32살, 마침내 첫 직장을 잡았다. 직장생활 초반은 눈 뜰 새 없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산더미 같은 업무가 주어졌고, 이를 해치우기 위해 매일같이 야근을 했다. 업무파악을 위해 주말을 반납한 건 당연한 일이다. 직장이 멀었기 때문에 12살 때부터 살아온 정든 집을 떠나 낯선 지역에서 독립 생활도 시작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난 기뻤다. 더 이상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내게 생겼다는 자긍심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 힘은 남을 도울 수 있었다. 아주 감사하게도. 어린 시절 가끔 집에 편지가 날아왔다. 부모님이 후원하는 아프리카의 아이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 아이는 나만큼 어렸고 신기하게도 피부가 검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분명히 인지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흑인, 백인이 머리 속에서 실제가 되었다. 해당 단체에서 제공하는 안내책자도 날아왔다. 어느 날 그 책자에 담임선생님과 그 분이 후원하는 아이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는 남들 모르게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어른이 되면 이 분처럼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겨난 소망이었지만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느덧 내게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대학원 공부에 매달릴 때도, 논문을 쓸 때도, 취직 후 석 달을 격무에 시달릴 때도 그 목표를 잊은 적은 없다. 마치 소명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취직 후,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후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후원을 하면 좋다는 말인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후원단체가 있었다. 머리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체는 다름 아닌 유니세프였다. 김연아 선수가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기사를 여러 번 읽었고, UN에서 만든 단체이니 내가 기부한 소중한 후원금을 허투루 쓰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갔다. 난 유니세프 홈페이지로 들어가 후원제도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후원제도의 모습은 자연스럽게도 1:1 후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 일까. 유니세프 홈페이지에는 아이를 1:1로 후원하는 제도가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 정기후원, 일시후원 등으로만 나눠져 있을 뿐이었다. 여기 저기 검색을 하다가 자주하는 질문란에서 유니세프에서는 당장 필요한 곳에 지원을 하기 때문에 1:1 후원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1:1 후원제도를 좋게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고민이 되는 답변이었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1:1 후원을 해야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왜 유니세프는 1:1 후원을 하지 않는 걸까. 그러다가 문득 대학원 시절 힘들어서 친한 동생에서 전화했을 때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내 질문에 그 친구가 요새 유니세프에서 교육을 하는데, 그 날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막 나온 참이라고 대답했던 것이 떠올랐다. 바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보다 상세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오늘 날 세계 각국의 정세는 복잡하고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희생되는 아이들의 숫자와 범위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는 것, 유니세프는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1:1 후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 결과 1:1 후원을 하는 것보다 빨리,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방법으로는 내가 한 아이에게 지속적인 후원을 하는 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대신에 그 아이보다 훨씬 더 위급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아이 수십, 수백명을 살릴 수 있는 거에요.” 그녀의 또렷하고 신념에 찬 목소리를 듣고 난 단 한 명의 아이와 깊은 인연을 맺는 것도 좋겠지만, 정말 급한 아이 여럿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고 그 날 바로 유니세프 후원을 시작하였다. 유니세프를 시작했다고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바쁜 일상에 쫓겨 후원한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고 있다가 유니세프 보고서가 날아오면 ‘맞다. 내가 유니세프를 하고 있지.’하고 그제서야 깨닫거나, 은행계좌를 조회하다가 유니세프로 나간 금액을 보고 ‘음, 이번 달도 잘 나갔군.’하고 중얼거리는 정도이다. 그러나 유니세프 덕분에 내 첫 사회생활은 훨씬 부드럽고 윤택해 졌다. 격무에 시달려 돌아온 날, 모든 것에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 문득 유니세프 보고서에 새겨진 아이들의, 흙먼지가 묻었지만 태양처럼 밝게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다음 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 또 붉고 푸른 색실을 꼬아 만든 고운 후원 팔찌를 받았던 날에는 왠지 나에게 ‘힘내!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거야.’하고 팔찌가 속삭이는 것 같아 착용하고 있던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그 날 하루는 직장에서 마주친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활기차게 보냈다. 덧붙여 유니세프에서 보내준 책갈피는-하얀 카라에 푸른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들의 사진이 찍혀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내게 좋은 벗이 되었다. 세상은 추운 겨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햇살을 계속 쬐고 있으면 온기가 스며들고 어떻게든 힘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유니세프는 그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이고, 또 내게 그런 존재이다. 14살에 품었던 누군가에 대한 동경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열망이 32살 늦깎이 사회생이 되어서야 간신히 열매를 맺은 것처럼 앞으로의 여정에도 긴 기다림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이전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