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에 사는 선배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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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의 생태적 자립과 유통
내가 사는 봉화 춘양의 30여호 되는 작은 산골 마을은 지난 3년 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다.
귀농자 외에는 관행농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앞날의 희망을 체념하고 관행적으로 살아가던 마을 주민들이 생태농업과 생태적 삶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약 20여호의 농가에서 저농약, 무농약, 유기재배등의 친환경적 농사로의 전환을 꾀하며 마을의 단지화가 추진되어 새로운 농사 방식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
생태 농사를 위한 공동 퇴비장, 저장 시설, 공동 작업장등의 기반 시설도 2006년도엔 들어설 예정이다.
도시 생협과의 농산물 유통이 이루어지고 인근 도시의 학부모회와도 자매 결연을 맺어 도농교류의 다리도 놓았다.
지난 10월에 다녀간 도법스님이 이끄는 생명 평화 탁발 순례에 마을 주민들의 참여와 호의적 태도는 이제 주민들이 생명.생태적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간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그간 혼자만의 고민과 관심이라 생각했던 생태적 자립 공동체의 꿈이 단순한 희망을 넘어서
실질적인 걸음을 걷기 시작했으며 마을 주민들에게 피부로 느껴지는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우리 같이 작은 마을이 생태 공동체로 자립한다는 것은 여건상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많다.
아직 생태농업을 농약을 안치고 지은 농산물을 다소 안정적이고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농사라는 정도의 관심에서 벗어나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기에는 많은 시간과 의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마을 내에 고질적인 불협화음과 몇 농가의 냉소적 태도도 넘어야할 큰 장벽이다.
마을의 대소사가 몇몇의 주먹구구식의 진행으로 이루어지며 주민들내의 민주적인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마을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큰 요인이 틀림없다.
마을의 생태 자립을 위한 젊은 일꾼이 너무 적어 몇 명에게 일이 과중하게 맞겨지다 보니 작업의 효율적인 배분을 어렵게도 한다.
나열하다 보면 너무나 많지만 마을이 생태적인 공동체로 자립하려면 교육의 자립과 경제적 자립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온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두가지 범주는 둘이 아닐 정도로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의료,문화의 문제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다 정리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라 여기서는 특별히 어떻게 농산물 유통을 해야 마을의 생태적 자립에 기여할 것인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그간 여러 농민들과 생태농업 단체(작목반,영농조합.생협)들이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에 뛰어들어 다각도의 활동이 있었다.
주로 도시 소비자 생협에 집중되었고 성당. 교회등 종교.시민 단체에도 직거래가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졌다. 전자상거래에 의한 불특정 다수에게도 일부 유통이 되었으며 어떤 곳은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중간 상인을 통해 납품하기도 했다.
2003년 까지는 생산자와 생산물 증가에 비해 웰빙 바람을 타고 소비자가 급격히 늘어가는 추세에 힘입어 친환경 농산물은 가격도 좋았고 판매에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2004년 여름부터 경기를 타기 시작했고 판로가 없어 남아도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쌀이 대표적이고 감자 고추, 백태등도 단가가 동결 또는 하락했고 그래도 다수가 팔지를 못하고 상인의 손을 통해 일반시장으로 나갔지만 관행농 보다도 못한 가격에 처분했다.
친환경 생산자가 많아지고 생태 농산물의 매출이 각 생협마다 50% 이하 수준으로 내려가자 생협들도 경영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품질 좋고 싼 농산물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생산자들 간에도 경쟁이 치열하게 되었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은 기본적으로 생산자(생산자 단체)는 직접 납품하지 못하고 중간 상인의 손에 의해 유통이 이루어졌다. 틈새를 뚫고 일부 영농조합들이 뛰어들었지만 기업의 유통 방식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었다.
이제 생산자나 생산자 단체는 유통을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적 시장의 틈바구니 속에서 파산하거나 살아남는다고 해도 전문 유통 조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기존 유통 방식을 고집하면 생산자들의 생태적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업적 유기농으로 전락하여 농촌의 붕괴와 농업의 몰락에 대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게 된다.
이대로 간다면 생태적 농업이 자본에 종속되어 생태농업과 삶은 전혀 별개의 문제로 되고
생태적 삶과 공동체는 여전히 극소수의 특이한 사람의 영역으로 될 것은 명확해진다.
지금의 친환경 농산물 유통에서는 농업과 농촌 붕괴에 대한 대안이 없다.
생태 공동체의 자립에 기여하는 유통이 되지 않으면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은 도시민들의 먹거리 제공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인가!
여기서는 친환경 농산물의 유통이 농촌 마을의 생태적 자립과 마을의 공동체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에 그 의미를 두고자 한다.
그간의 친환경 농산물 유통이 시장 기능에 종속되어 이루어져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생협과의 거래도 직거래 의미에서 확연히 자본주의적 시장 형태로 전환했다고 보여진다.
단위 생협과의 직거래 보다는 물류센타의 기능이 강화되고 어떤 생협은 전면적으로 모든 물류를 센타가 배타적으로 행하고 있다.
한살림, 생협연대, 생협수도권연합, 정농생협, 여성민우회생협, 각종 종교생협... 이들 생협들의 운영도 어렵고 어려워지는 만큼 더욱 적자를 줄이고 정상 운영을 위해 시장 기능에 따른 유통방식을 강화해왔다.
어느 곳이든 물류 센타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서 경영합리화를 꾀했고 이제는 물류센타 없이는 단위생협이 유지될 수도 없게 됐다. 단위생협과 생산자(또는 단체)들의 운명이 물류센타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생산자는 이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각 생협의 정책 방향에 맞추어 생산과 가공, 그리고 유통방식을 정해야 한다.
도농 직거래는 없다. 직거래를 상징하는 행사가 있을 뿐이다. 생협에서 더 이상 직거래 의미를 부여하려 하면 생협이든 생산자든 살아남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 거래는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시장 기능에 따른 유통이었으므로 재론할 여지가 없다.
전자 상거래도 그 이용자가 많아지고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넓어지면서 직거래 의미는 소실되고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여 가격과 포장등 상품성을 높이는데 관심이 모아지고 일부 개인 들의 거래만이 직거래의 유의미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마을의 생태적 자립에 기여하는 유통은 자본종속적 시장기능에 따른 유통이어서는 안된다.
시장 경제 원리란 경쟁에 의해 가격과 유통 ,생산과 소비가 조절되는 것이라면 그 시장의
실권 주체인 소비자와 상업자본에 생산자가 종속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장적 기능에 따라 유통을 할 경우 잘 되면 경제적 이익은 있을 수 있지만 생태 공동체성은 설 자리가 없다. 시장 경제는 공동체의 내부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부추킨다. 다수확(효율)과 경쟁에 따른 농업정책이 농촌공동체를 해체시켜 왔는데 다시 생태농업의 결과물을 그 기능에 맞긴다는 것은 처음부터 공동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농사도 이익을 쫒아 단작 중심의 거대 유기농산물 생산으로 변하게 되고 다량의 외부 투입물과 땅을 착취하는 농사법을 반복할 뿐이다. 마을의 자본 종속이 심화되고 공동체성은 회복 불능의 상태로 무너진다.
유통이 마을의 생태적 자립에 기여하려면 생산자가 유통의 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생협 관계에서 생산자들이 형식적으로는 유통의 한 주체로 된다고 해도 사실 단가나 포장, 유통방식, 심지어 자금까지 물류센타에 의존하고 있다시피한 현실에서 유통의 주체로서 생산자는 둘러리일 뿐이다. 유통의 한 주체로 작용할 수가 없다. 심하면 생협 유통망의 위탁사업 정도로 자리잡은 경우도 많다.
초기 직거래 방식은 생산자가 유통의 주체로 분명했지만 어느덧 효율과 경쟁에 밀려나고 말았다.
유통이 마을 공동체의 자립과 지역 사회의 자립에 기여할려면 가급적 지역적 유통으로 되어야 한다.
지금의 유통은 대도시 소비자들의 먹거리를 위한 물류 시스템이다. 따라서 물류 비용도 많이 들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농촌 생산자들이 주체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냉동.냉장이 필요한 농산물이나 가공품의 생산과 공급은 대도시에서 먼거리에 있는 마을 단위에서는 엄두도 못낸다. 농사도 자연적 저장성이 좋은 작물로 한정된다.
지역의 주민들과 학생들, 기업이나 관공서, 식당등에 농산물을 공급하는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근거리 유통이 훨씬 생태적이기도 하고 지역민들과의 연대도 높여 마을과 지역의 자립에 실질적인 도움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지역 유통을 전적으로 하기에는 농촌에서는 그 여건이 성숙해있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지역유통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고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지역 유통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학교 급식 문제일 것 같다.
급식 조례가 지자체마다 속속 제정되고 있고 몇몇 곳은 지역 생산자들이 지역학교에 농산물을 넣고 있다.
급식 문제는 사실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고 아마 생산자들의 지역유통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급식은 주로 상인들이 독점해왔고 일부에서는 농협이 가담하기도 했다.
농협도 철저히 시장적 논리로 급식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농협은 당연히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며 금융사업이 주 사업으로 되어 있는 형편에서 급식자재 납품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농촌 지역에서 급식을 지역농산물과 유기농산물로 채우자면 학부모들의 부담도 꽤 가중될 것이며 재정 자립도가 낮은 농촌 지역일수록 학부모에게 더 크게 부담으로 온다.
그런데 상인이나 농협이 학교 급식 자재를 납품할 경우 유통마진이 이중으로 학부모에게 전가되므로 농촌 가계의 부담은 그만큼 가중된다.
생산자는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학교는 직거래를 통해 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입하여야 학생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급식 조례를 제정할 때 학교와 생산자간의 직거래 규정을 하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직거래 방식을 학교 급식에 도입하는 것은 학생들이 도시로 도시로 진출하여 농촌이 몰락해가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농촌을 알아가고 생태적 삶과 생태 공동체의 의미를 깨우치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준다.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생태적 삶의 현장으로서 마을은 산 교육의 장이다.
마을과 학교간의 교류, 삶으로서 아이들과 농민, 지역민으로서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 간의 유기적 연대는 농촌 마을을 살리고 살맛나는 곳으로 만드는 미래를 당장 이 자리에서 실현하는 장을 제공해 준다.
마을의 생태적 자립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1차 농산물과 가공품간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아직 생태농사만으로는 가계의 자립이 어려운게 사실이다.
품도 많이 들고 가급적 비닐 멀칭이나 농자재의 투입량을 줄일려면 그만큼 많이 일을 해야 하며 그래도 소출은 더 적다.
삶의 양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돈으로 사서 먹는 것을 최소화 하며 교육도 자급해야 하지만 아직 쉽지 않은 현실에서는 일정한 현금 수입이 요구된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스스로 하는 우리집도 가계의 자립이 어려운데 더구나 아이들 교육비에 년 1,0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면 농사로서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간단한 가공을 해야만 되리라 보여지고, 또 생산자가 설비비가 적게 드는 가공을
해야만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좀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가 있다.
가급적 자신이나 이웃의 친환경 농산물로 시설비가 적게 드는 가공을 하면 기업적 가공에 밀리지 않는다.
지역적 유통을 하기 위해서는 생태농업을 마을별로 단지화 하거나 생태마을 공동체에 대한 유통 관련 계획이 분명해야 한다.
마을 단위의 단지화에 대한 계획 없이 유통에 뛰어들게 되면 결국 개별 생산자들의 공동 판로망에 머무르며 마을 공동체의 생태적 변화와는 무관한 유통이 된다. 지금 현재의 대부분의 친환경 유통 조직들이 마을 단위를 기본으로 하지 않고 친환경 생산물 양의 확보에 치중하여 조직되어 있는 형편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여겨진다. 생산자들은 상업적 유가농으로 되고 마을 주민들은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기는 해도 가족 중심의 중소농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농사 방법이라 여기기는 힘들다. 이런 생산자 단체들도 마을 중심의 단체로 재편하거나 사업 중심을 마을 단위를 기본으로 배치해 나가야만 한다.
생산자 중심의 직거래 유통을 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유통 단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본 없는 친환경 생산자들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영농조합이나 생산자 생협을 만든다고 해도 유통 기반 시설을 갖추거나 가공 시설 및 허가,실무자 확보, 운영에 따른 법적.실무적 미숙과 이에 따른 자금 등에서 지자체나 농림부에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아직 요원한 것 같다.
한 대안으로 지역 소비자(학교 교사,관공서의 임원, 학부모 대표,지역 시민운동 관련자...)와 인근 도시 소비자 대표(생협 관계자, 시민운동 단체 관련자,생태관련 교수나 연구원,인증 기관이나 유기농 교육 관련자...)등을 생산자 유통 조직의 대외 이사나 협력자로 적극 유입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생산자가 주체가 되어 직거래 형식의 유통을 지역적 단위에서 실현하는 것이 마을의 생태적 자립에 기여한다는 것이 분명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실제 직거래 판로를 확보하는 일,학교 급식에서 다양한 친환경 식자재를 얼마나 많이 갖출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다.
여기에 지역과 도시에서 생태 공동체의 자립에 관심을 가진 소비자 단체와 개인들과의 연대가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인근 지역의 생산자들간의 연대. 소비자 단체와의 연결과 협조를 통해 서로 물류를 교행하고 부족한 농산물을 교환하여 유통을 해야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여기에서 효율적인 물류를 위해 공동 물류 센타나 대형 물류연대틀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경계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에도 그 역할을 명확히 제한하여야 할 것이다.효율을 중심에 놓다 보면 다시 지금의 생협 사업에서 범한 문제가 재현될 가능성이 많다.
생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서 유통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어 왔던 것 같다. 몇 뜻맞는 사람들의 계획 공동체에서는 아직 큰 비중을 안차지 할는지 모르지만 자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시 조만간 닥칠 문제이고 시급히 관점을 정립해야할 일이다.
더구나 전통적인 마을 속에서 생태 공동체를 꿈꾸다 보면 마을민들의 생계와 자립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고 풀어가지 않으면 발걸음이 진전하기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유통의 문제는 이와같은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과거 4년 동안 생산자 유통을 담당했던 경험이 큰 받침이 되었다.
도시에서는 마을 단위 또는 지역 단위의 공동체를 지원하고 농촌 마을에서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적정한 가격의 안정적인 농산물을 공급하고 생태적 삶을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상생의 길이 될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지 않고 공동체로 자립하며 지속 가능한 이 땅의 생태적 삶의 현장에서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해본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 감사이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