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가령 성선설과 성악설이 동양식 논쟁이라면, 원죄설과 타락설은 서양식이었다. 동물학자의 표현을 빌려 인간은 침팬지적 속성(서열, 폭력, 이기주의)과 보노보적 속성(평등, 사랑, 협력, 이타주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에게 묻고 싶다. 인간은 늑대인가, 양인가?
인간이 늑대인가 양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러 해답이 가능하다. 가령 인간은 늑대다, 인간은 양이다, 인간은 늑대도 아니고 양도 아니다, 인간은 늑대인 동시에 양이다, 인간은 양도 늑대도 아니지만 늑대나 양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등등. 그러나 인간이 늑대인지 양인지는 나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인간의 본성보다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전략에 더 큰 관심이 간다. 특히 상호협력의 메커니즘과 조건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물론 정치학자로서 인간의 본성 문제를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리처드 도킨스 같은 진화생물학자의 '이기적 유전자' 입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행동, 그리고 상호작용의 결과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서양학문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생물학의 진화론과 경제학의 게임이론이다. 사회생물학의 유전적 측면이 아니라 행동경제학의 전략적 측면에서 협력이론을 설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 때문이다.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상호협력이 가능하게 되는 필요충분조건을 찾아낼 수 있다. 게임이론은 협력과 비협력처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 문제로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비제로섬 게임을 포함한 상호작용을 살필 수 있다. 이런 전략적 접근법은 진화생물학과는 다르게 이기주의나 합리성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개인관계나 국제관계의 차원을 떠나 참여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유리한 조건에서 어떻게 상호협력행위가 나타나는지 설명할 수 있다. 반면에 진화생물학은 이기주의, 유전자, 합리성, 경쟁과 도태 등에 근거한 생존법칙을 제시하고, 개체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유전자 입장에서 해석한다. 이런 유전적 접근은 사회적 행동을 선택이 불가한 결정론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 협력의 진화나 호혜주의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죄수의 딜레마 이론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한가지는 내재적인 본성과 외재적인 환경간의 관계로 해석하는 경우다. 개인적인 차원의 합리적인 결정이 결국 그 당사자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손해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조한다. 간단히 말해서 죄수의 딜레마 이론은 개인에게 좋은 것이 집단에게도 좋다는 통념을 깨뜨렸다. 개인이 선택한 최선의 방책이 결과적으로 집단에게는 최악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생물학적 이기주의에 대한 수정이다. 상호협력과 상부상조 같은 이타성도 진화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반드시 이기적인 환경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설사 이기주의자가 들끓는 세상이라도 결론적으로 이타적인 상황이 나올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협력이 일어나기 위해 우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외부의 압력이나 상부의 강제가 없어도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간 도움을 주고받는 호혜주의에 기초한 협력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걸음 더 나아가, 협력의 진화이론은 결국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넘어 인간 사회의 이타적인 진화가 가능하다는 긍정론을 과학적 모델로 증명한 케이스다.
■ 경쟁과 이익이 지배하는 정글사회에서 최상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바로 팃포탯(tit-for-tat) 전략이다. 팃포탯 전략은 맨 처음에는 신사답게 무조건 협력으로 시작하고 그 다음부터는 상대가 전 수에서 선택한 대로 선택하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상대방의 배신은 즉각 응징한 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한다는 점이다. 이런 팃포탯의 유효성과 강건성은 컴퓨터 체스 대회와 비슷한 '컴퓨터 죄수의 딜레마 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토론토 대학의 아나톨 라포포트 교수가 제출한 프로그램이 '팃포탯'이었는데 총 6회 경기에서 모두 우승하여 가장 훌륭한 전략으로 드러났다. 팃포탯은 개인, 단체, 국가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이다. 팃포탯으로 재현된 협력의 진화는 에리히 프롬이 강조한 '변증법적 휴머니즘'의 조건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 작 가 소 개
미국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게임이론, 인공지능, 진화생물학, 수학적 모델링, 복잡성 이론 등에서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대표 저서 [협력의 진화]는 1984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2006년 개정판이 출간되기까지 과학, 사회, 정치, 경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뉴콤 클리블랜드 상과 맥아더 펠로 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이해의 갈등 Conflict of Interest](1970), [결정의 구조 Structure of Decision](1979), [억제에 관한 여러 가지 전망들 Perpectives on Deterrence](1989, 공저), [협력의 복잡성 The Complexity of Cooperation](1997), [복잡성 제어 Harnessing Complexity](2001, 공저) 등이 있다.
첫댓글 철학적인 물음을 제시하는 책이네요~ 답은 없지만 논의의 가치를 가지는...
협력은 최고의 생존전략이라..역시 사람은 어울려야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