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항하여 야당 에서 신익희 국회의장이 대통령 후보에 출마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캠페인 때마다 수많은 관중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고, 급기야 장충단 공원에 이은, 한강 백사장에서의 30만 청중운집은 당시로는 기록적인 동원이었다.
신익희 선생은 선거유세를 할 때마다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청중을 매료했다. 그는 가끔 호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자연스런 매너를 보여 다정다감을 유도했다.
연설도중에 액센트를 가하면서 강조하는 부분은 있어도 결코 흥분하거나 남을 헐뜯는 언행은 하지 않았다. 잔잔하면서도 확신에 찬 그의 정견 한 마디 한 마디 에 청중은 더욱 큰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그는 원고를 들여다보며 연설을 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그가 캠페인 여행 중이던 호남선 열차 안 에서 급서 하자, 조병옥씨가 대타로 나섰다. 그는 신익희선생의 잔잔한 유머 감각에 비해, 공격적이고 화난 사자와 같은 돌풍으로 청중을 매료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그를 두고 ‘사자후’(獅子吼)란 표현을 썼다.
■ 새삼 그리워 지는 신익희 명연설
그 이후로 한국의 정치인들 가운데서 썩 두드러진 명연설을 남긴 이는 아직도 없다. 그 대신 화난 얼굴, 비정한 표정, 빈정대는 표정 등으로 악쓰고 큰소리로 일관하는 전투형 위인들만 속출한다.
“나는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면, 이 땅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굳게 약속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투가 정치연설의 기본 패턴이라도 된 듯 난발된다. 다음주 금요일인 14일로 다가온 16대 총선거를 앞두고 한국은 온통 선거열풍으로 삼복더위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역 땅에도 매일 같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한국의 정치 열풍은 훈풍처럼 옷깃을 스친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한창 총선 선풍이 일고 있다. 다만 우리와 다르다면 그들은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게 선거권을 주고 있고, 지금 그 유권자 등록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모령석개하는 한국의 재외동포법에 비해보면 우리의 현실로 비쳐 볼 때 부럽기도 하다.그러나 비록 해외 동포에게 선거권은 부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국에서의 나라의 큰일인 총선에 대하여 타산지석일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살던 고장에서 누가 출마하고 과연 누가 당선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누구에게나 조그마한 소망처럼 비쳐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지면 사람들이 풍습과 언행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선거 캠페인 풍속의 변화는 아무리 잘 보아주려 해도 진실성과 품격을 잃어버린 3류 유랑극을 보는듯한 혐오감마저 들게 한다.
■ 치어-리더 활동무대로 변한 캠페인
요즘 한국의 캠페인(선거운동)은 후보자가 가슴띠를 두르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과 일반주택가를 찾는 것은 당연한 행로로 알고 있다. 장터를 누비고 상가를 찾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단란주점이나 하다못해 나이트 클럽까지도 찾는 것이 필수 코스처럼 여기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운동모자(캡)를 뒤집어 쓰고, 앞치마, 티셔트, 흰장갑에다 가슴띠를 두르거나 피킷 등을 든 운동원들이 떼를 지어 유니폼 차림으로 등장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노출 아가씨들이 이상한 몸짓으로 청중을 동원하는 보기 민망스러운 해괴 캠페인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구호나 제스처가 잘 훈련된 로버트 행차(?)로 일관된 공통점을 이루고 있는 것 또한 특징이다. 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치 운동장의 관중을 향해 응원을 지휘하는 치어-리더 컨테스트 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조용하면서도 신의를 굳게 약속하면서, 벽보 하나 붙이지 않는 미국의 대선과 너무도 대조를 이루는 한국 선거 캠페인의 해괴하게 달라진 풍속을 보면서, 빗나간 근대화의 역행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 저마다 변명과 괴변으로 일관하는 공약을 마구 쏟아 낸다.
스스로를 지역과 나라를 위한 ‘일꾼’ 임을 자처하면서 온통 탈법과 불법을 서슴없이 구사한다. 이런 위인들일 수록 당선만 되고 나면, 금배지 달고는 거드름 피우는 귀족 행세하려 들 것은 뻔한 일이다. 이번 총선 캠페인에서 단 한 사람의 후보도 해외 동포의 복지와 권익을 공약으로 내거는 이는 없다손 치더라도, 제발 악쓰고 노한 얼굴로 싸우려 드는 저질 국회의원만은 더 이상 뽑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