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드 시간 (イバラ-ド時間/Iblard jikan, 2007)
애니메이션, 판타지 | 일본 | 30 분
감독 : 이노우에 나오히사
신작 「이바라드 시간」은 「영상 화집」이라는 장르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이바라드의 풍경화 중에서 63 개소의 풍경을 이노우에씨 자신이 엄선. 회화를 디지털 데이타화 해 촬영 기술로 움직임을 붙여 편집. 게다가 밀어닥치는 물결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전철 등을 CG로 추가. 또,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탭이 2D 의 애니메이션으로 캐릭터도 추가하여 이바라드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기분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 되어 있다. 대사는 없다.
이바라드는 고대 희랍전서에 나오는 공중도시 라퓨타로 통하는 거리를 말한다.
이바라드 시간 - 이노우에 나오히사마음을 정화하는 세계이노우에 나오히사의 그림을 보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사실 첫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에 작품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노우에의 작품을 언젠가는 만났을 터. 그 우연한 기회란, 지브리 관련 이야기를 듣던 중 누군가가 많은 영향을 준 그림 작품이 있다는 얘기를 했고, 바로 찾아서 이노우에의 그림을 보게 된 나는 그의 환상적이고도 고요한 세계관에 단숨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바라드'란 현실과는 원근이 표현이 반대로 된 세계를 이야기하는데(고대 히랍의 공중도시 '라퓨타'로 연결되는 거리를 일컫기도 한다), 사실 이것만으로 '이바라드'의 세계를 설명하기는 매우 부족할 뿐더러, '이바라드 시간'은 이것과는 또 다른 확장된 세계라 볼 수 있겠다.
ⓒ 2007 INOUE Naohisa.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그의 작품에 대한 갈증으로 애가 탈 때쯤 그의 그림과 지브리 스튜디오가 함께한 특별한 영상인 '이바라드 시간'이란 작품을 알게 되었고, 곧 이 작품이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참고로 이 타이틀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가운데 블루레이로 출시된 최초의 작품이다). 국내 출시야 어차피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타이틀이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가격 탓에 쉽게 구매를 생각지 못하다가 지난 10월 도쿄 여행길에 아키하바라의 어느 가게에서 덥썩 집어들고야 말았다. 처음엔 이 작품에 대해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영상인지, 그러니까 예전 출시되었던 <이노센스의 정경>처럼 영상이 가미된 사운드트랙에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지브리에서 이노우에의 그림들을 배경으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인지, 이렇다할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바라드 시간'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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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이바라드 시간'을 설명해보자면 기존 화가인 이노우에 나오히사가 그린 작품들에 지브리의 기술과 상상력이 더해져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볼 정도로 움직임이 많은 것은 아니다. 화면 상에 줌인과 아웃, 그리고 포커스의 이동이 주가 되고, 새롭게 추가된 캐릭터들이 움직임을 맡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애니메이션 적인 성격보다는 여전히 회화적인 느낌이 더욱 강한 작품이다. 스크린 샷 들을 통해 엿볼 수 있지만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들은 상당히 화려한 파스텔 색감으로 이뤄진 상상력의 세계다. 하지만 이 판타지에 가까운 세계 속에는 '따듯함'을 베이스로 깔고 있는 것이 이노우에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파스텔 색감이 따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가 창조해낸 세계는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것들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아련함과 추억을 연상시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뭐랄까, 분명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인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 거닐었던 추억이 연상될 듯한 느낌이랄까.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에는 분명 이런 독특한 감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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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스크린 샷을 보면 배경이 되는 그림과 움직이는 캐릭터 간의 작화 차이(혹은 뚜렷한 경계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고보면 이 차이가 이질감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불편한 부분은 아니다. 기존 작화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발생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이라 여겨지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약간의 이질감은 이노우에의 작품과 이 타이틀 '이바라드 시간'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브리의 생각은 아마도 이랬던 것 같다. 보기만 해도 황홀한 이노우에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뛰어놀면 어떨까. 저 신비스러워 보이는 집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오면 어떨까. 저 아름다운 길을 전차가 지나가면 어떨까 식의 생각. '이바라드 시간'은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고 멈춰 있던 풍경은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새로운 영상(혹은 정경)을 만들어냈다.
ⓒ 2007 INOUE Naohisa.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이 장면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온천장 아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히 열차가 터널 형식을 지나는 구조는 매우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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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 C&A 홀딩스.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이 장면 역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센이 가오나시와 함께 제니바를 찾아 떠나는 장면은 '센과 치히로'의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는데, '이바라드 시간'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정류장도, 전차도 이를 떠올리게 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전차씬 역시 연상된다).
사실 이노우에 나오히사의 작품 '이바라드'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저를 포함한) 알려지게 된 가장 큰 이슈는,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귀를 기울이면'의 후반부를 보면 극중 시즈쿠가 쓴 소설 속의 세계가 표현되는데, 이 부분을 이노우에 나오히사가 직접 맡아 기존 지브리 작품과는 다른 영상을 보여주면서 많은 팬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었다.
ⓒ 대원 C&A 홀딩스.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이노우에 나오히사가 맡은 '귀를 기울이면' 속 장면들)
'귀를 기울이면' 속 이바라드의 세계는 소설 속 이야기라는 구조를 빌려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고 있는데, 확실히 '귀를 기울이면'의 전체적인 정서와 동 떨어져 있는 듯 하면서도 이 작품을 떠올려 보았을 때 그 정겨운 '컨트리 로드'와 함께 환상적인 이 세계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바라드 시간'을 보고 나서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면'을 보게 된다면 아마 더 색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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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 C&A 홀딩스. Studio Ghibli. All rights reserved (위의 장면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처음 켈시퍼를 만나던 그 시퀀스(이건 하울을 통틀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퀀스죠 ㅠ)에 등장하는 하울의 집과 매우 닮아있다. 특히 넓은 들판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더욱).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노우에의 일러스트를 처음 보고 매우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아예 본격적으로 그에게 맡겨버린 '귀를 기울이면'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작품에서는 이노우에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장면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이노우에의 작품을 보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인데, '이바라드 시간'을 보고 있노라니 많은 장면에서 지브리의 장면들이 겹쳐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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