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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많은 분들이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아 등업을 위해 찾아왔는데
혹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알려주세요. 삭제하겠습니다.
출처는 청문어학원 홈페이지입니다.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과]
<김수연>
<들어가며>
일단 처음 공부 시작할 당시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서울 4년제 대학 영문과 졸업
-해외 체류경험 약 10개월 (미국 교환학생)
-시작할 시기 공인 어학점수 토익 900점 대 초반
저는 그냥 영문과를 나온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과 내에서나 미국에 갔을 때나 그룹 안에서 ‘저 애는 영어를 참 잘한다’라는 말은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달랐던 면은 굳이 꼽자면 말하는 것이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발표도 별 거부감 없이 곧잘 하는 편이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사실 처음 이 공부를 시작 하게 된 것도 어디 가서 다른 건 몰라도 ‘저 영어는 잘해요’ 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해 보고 싶다, 그게 가장 주된 이유였습니다. 지금도 한없이 모자란 데 합격한 거 같아서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영어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말하는 것, 글 쓰는 것,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에 끊임없는 재미를 느끼고 논리적인 사고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작해서 즐길 수 있는 것이 통번역 공부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학원 수강 자체도 난이도가 있기에 ‘내 실력으로 될까’ 라는 생각은 저도 처음에 한 생각이었고, 지금 이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 모두 하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재미를 가지고 공부하면 보람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공부라고 생각하니, 지레 걱정하시는 것 보다 한번 시작 해보고 느껴 보신 다음에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2차 준비>
저는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꼬박 2년을 준비해서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처음 1년 초반 6개월은 은천성 선생님의 길라잡이 반 수업을 두 달 들으면서 대략 통번역 공부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았습니다. 처음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으시는 분들이 들으면 좋은 수업 같습니다. 그 후 약 4개월 정도 은선생님의 시사청취반을 수강하면서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필사와 연설문, 뉴스 외우기, 리딩, 리스닝 정도를 적당한 양을 정해서 공부했습니다. 필사는 꾸준히 하다 보면 영어 스트럭처와 문법을 자연스레 익히게 되어 좋은 것 같습니다.
그 후 양시래 선생님의 기초종합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양시래 선생님은 비교적 여유롭고도 깊이 있는 수업방식으로 ‘아 이런식으로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선생님이랑 영어공부만 하면서 살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영어에 대한 재미를 붙여주신 분입니다. 굉장히 박식하신 분이고 특히 번역에 굉장히 뛰어나신 분입니다. 보통 공부를 하게 되면 언어 고유의 스타일이 있고 이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며 그 본래의 맛까지 살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데, 양선생님은 굉장히 한국어다운 문장을 쉬운 표현을 써서 굉장히 영어다운 문장으로 번역하시는 데 뛰어나십니다. 양선생님과 공부하면서는 한국인이 쉽게 캐치하기 어려운 영어의 뉘앙스나 영어적인 사고로 문장을 만드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 뒤 약 7,8개월 정도 이창용 선생님의 실전반을 수강하였습니다. 사실 수기를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저는 비법이란 게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시키신 거 이외에는 거의 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통대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이선생님은 여러 가지 중에서도 3가지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매일 방대한 양의 자료를 체크하시고 그 중 이슈가 되는 다방면의 기사들과 질 좋은 아티클을 모아서 수업을 진행하십니다. 그래서 수업 하루 하루가 굉장히 힘들고 복습과 숙제만 해도 하루가 다 갑니다. 하지만 그만큼 주어진 양만 소화해도 다른 공부가 필요 없을 만큼 양과 질적인 면에서 소스를 받쳐주는 수업을 진행하십니다. 둘째는, 각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빠르게 파악하셔서 좋은 크리틱을 자주 해주십니다. 크리틱 와중에도 모범 답안을 내주시기 보다 ‘이거 말고 또 더 좋은 표현 없냐’며 끊임없이 생각하는 수업을 진행하시고 학생들에게도 많은 참여 기회를 주십니다. 셋째로, 선생님이 종합반과 함께 여름 즈음부터 진행하시는 모의고사가 정말 질이 좋습니다. LC나 RC 모두 시험경향을 분석하고 나올만한 이슈를 감안해 한 문제 한 문제 모두 직접 만드시는데, LC의 경우 녹음하는 성우가 따로 있고, 시험 난이도나 스타일도 진짜 시험과 매우 유사해 1차 시험을 치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스터디 파트너와 매일 수업에 나간 분량을 복습하였습니다. 신문을 보고 ‘한-한’, LC수업 들은 것으로 ‘한-영’을 두어 개 씩 했고 5월 즈음부터는 수업 때 했던 통역스터디 2시간을 추가했습니다. 그 외에 대 여섯 명이서 주말 스터디를 꾸려 일주일에 1번 문장구역과 통역 연습을 했습니다. LC와 RC는 거의 혼자 했고, 여름 정도 부터는 LC는 ‘길게 잡아 내용을 가능한 한 많이 기억하기’ 에 주력했고, RC는 ‘제한된 시간 안에 한번 빨리 읽고 내용(그리고 뉘앙스, 의도 등) 잘 캐치하기’에 주력했습니다. 모의고사는 점수가 잘 안 나왔지만 연연하지 않으려 애 쓰면서 시험 스타일이나 속도, 단어숙어 등을 공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고 막판 한 두 달 전에는 지난 10년간의 기출을 두 번 정도 풀어보았습니다. 작문은 양시래 선생님의 작문 수업을 일주일에 한번(3시간) 듣고 복습하였습니다.
하루에 수업에서 LC를 9개정도 나가는데 하나당
-일단 듣고, 적당한 데서 끊어서 영한 통역 해보기 (안 들리면 반복청취)
-다 듣고 난 다음 한국말로 전체 내용 요약 (관련 한국뉴스 검색- 좋은 한국표현 익히기)
-그 한국말 요약을 영어로 다시 요약 (외우는 게 아닌 내가 가진 단어, 표현들로)
-유용한 표현, 단어 외우기
-나중에 신문보다 비슷한 내용(한글)나오면 영어로 문장구역 해보기 (이건 가끔)
이런 프로세스로 공부했습니다. RC는 너무 주옥 같은 글이다, 싶으면 가끔 필사했습니다.
<시험문제>
-1차 한국어시험
예년 수준에 비해 난이도가 갑자기 어려웠습니다. 상당한 양의 문제가 한문문제였는데 확실히 알지 못하면 부수로 때려 맞추거나 할 수 없는 문제였고, 속담, 한국어 등 다른 문제도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논문조의 글이 지배적이었고 주제는 문화의 정통성, 언어의 상대성, 구한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게 통탄스럽다는 내용의 한자와 옛말이 섞인 글 등 생소한 글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대부분의 학생이 시간도 넉넉치 않았던 것 같고 해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분들이라면 많이 어려울 수 있었던 시험이었습니다.
-1차 영어시험
작년에 학구적이고 철학적인 글이 많이 출제된 데 비해 이번 해에는 실용문 위주였습니다. 듣기나 읽기 둘 다 풀기에 너무 어렵다 싶은 글은 없었고 시험을 본 사람들의 지배적인 의견이 푸는 내내 “아, 다른 사람들은 잘 보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시험이었다고 합니다. 대신 거의 10년간 나온 적이 없는 문제방식이 듣기 첫머리의 20문제 정도를 차지해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지문이 나오고 마지막 단어가 “띵동” 처리가 되고, 그 띵동에 무슨 단어가 들어가는지 맞춰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성우의 억양이 이상하진 않았고 그 외의 문제도 모의고사나 기출에서 일반적으로 나오는 문제들이었습니다. 읽기는 지문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 7-8개 되는 걸로 기억) 대부분 실용문이었고 대신 여러 가지 성격의 글이 많이 나와 다방면으로 읽어온 사람들에게 유리한 시험이었습니다. 시간도 막 모자라진 않았습니다.
‘맥도날드에서 사용하는 감자 품종에 대한 내용 (일반적인 설명문)’
‘요리 등급 매기는 평론가에게 뇌물을 주는 식당 이야기(평론가가 쓴 사설스러운 글.. 전 가장 까다로웠습니다. 꼬아서 이야기 하는 방식이어서)’,
‘춘분과 추분에 대해 (렉처형식)’,
‘미국 노동자인가?가 잡지에 쓴 기고문’,
‘하지 동맥류에 대해(뉴스?광고기사 형식? 대체로 설명문)’… 정도 생각나네요.
듣기나 읽기 모두 단어나 문장의 뉘앙스를 묻는 내용이 많이 나왔고, 그런 것은 모의고사에서 많이 대비한 편이라 당황하지 않고 풀었던 거 같습니다.
<2차시험>
-한영번역
‘우리 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급속한 현대화가 되었지만 시민 의식은 미성숙하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서 소화불량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단어나 문장 자체가 어려운 것을 요하는 건 아닌 아티클이었고, 전체 길이도 양시래 선생님 번역시간에 한 것 보다 짧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깨끗하게 빨리 다 써야 된다는 압박감에 번역시험 전체적으로 원래 쓰던 실력보다 못 쓴 것 같습니다. 평소에 시간 제한을 두고 볼펜으로 쓰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영한 번역
‘현재 세계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데 사실 불황은 경기 사이클 중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불황시기에 회사를 개혁해서 살아남아야 하고, 불황이 끝났더라도 다음 불황을 견딜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국 정부에서 본 결과 기업은 미국 정부에게 잘 못하고 있다. TF에 사람이 필요해서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면 일개 관료를 보내고, 돈 필요해서 정부에 로비하러 갈 때는 회사 CEO가 온다. 나중에 불황 왔을 때 우는 소리 하면서 올 때 알아서 해라..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라는 글이었습니다.
‘일개 관료’ 가 깔끔하게 단어 해석이 안되어서 공란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쓴 뒤 모르고 제출해버리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시험 마지막 5분 전에는 찬찬히 읽으면서 체크하여야겠습니다.
-영어 에세이
인터넷 해적질에 대한 글이 나왔습니다. 한창 이슈가 되었던 영화 ‘해운대’ 얘기.. 어떻게 생각하는지 써라.. 라고 나왔습니다. 미처 준비 못한 주제라서 일반론으로 풀어나갔습니다.
-한글 에세이
존엄사 합법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 쓰기가 나왔습니다. 전에 봐둔 주제라서 비교적 쉽게 써나갔습니다.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합법화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논리였습니다.
-면접
들어가니 남자 외국인 한 분, 여자 교수님, 남자교수님 총 세분이 계셨고 ‘오래 기다려서 힘들지 않느냐’고 영어로 물어보셨습니다. 어떤 분은 ‘영문과인데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고 이유가 뭐냐’라는 등의 긴 설명이 필요한 걸 물어보셔서, 아무래도 기본적인 질문 몇 가지는 영어로 생각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영한은 여자교수님께서 읽어주셨습니다.
“이제 미국 몬타나 지역에서 늑대 사냥 시즌이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늑대는 동물 중 유일하게 사냥을 유희로 (sport) 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이 사실일까? 아니다. 늑대는 사냥 성공률이 낮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두는 것이다.”
라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엄청나게 듣기 어려운 글은 아니었지만, 육성으로 빠르게 읽어주시고, 생소한 주제라서 마냥 쉽지는 않았습니다. 육성으로 듣고 영한 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한영은 두 개중에 하나 뽑아서 나온걸 자기가 읽고, 영어로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관련 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고 다른 선진국들도 나름의 자전거 정책을 수립, 실행하고 있는데 각양 각색의 자전거 정책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전거 운전자의 시점에서 생각하여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자전거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나와 같은 여성 운전자도 마음 놓고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신문 사설이 나왔습니다. 사설이 그렇듯 한국어다운 표현이 많았고 직접 읽고 해야 해서 빼먹은 것도 꽤 되는 것 같지만 대략의 중심 내용은 전달 한 것 같습니다.
길이는 영한은 보통 아티클 2문단 정도로, 그리 길진 않았던 것 같고 한영은 짧은 사설 하나를 통째로 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진리다~ 라는 기분이 들도록 목소리를 크게 하고 눈을 맞춰가며 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저 분들은 영어를 모르는 분들이고 내가 그냥 늑대사냥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거다.’ 라는 느낌으로 영한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설의 경우 모르거나 표현이 생각이 안 나는 건 과감히 빼고 단순하게, 짧게 돌아가며 역시 설명해주는 자세로 한 게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이선생님의 ‘거짓말은 하지 말고, 불명료한 디테일은 그냥 빼라. 어차피 100% 다 전달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면 편하다. 중심내용과 흐름을 잡는 데 집중해라.’ 이 말씀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두 주제 모두 생소하지 않은 주제가 나와서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이선생님 수업 내내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기 때문에 복습만 잘 한다면 말문이 아예 막혀서 아무 말도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하다가 ‘이런 실력으로 통역사가 되겠다니, 누가 날 써줄까’라는 생각도 수천 번 들어서 좌절했고, 실력이 늘기는커녕 전보다 더 안 되는 날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거 외에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보이진 않아도 하루 하루가 다 내 안에 쌓여가는 거다.’라고 생각하며 컨디션에 좌지우지되거나 너무 우울해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은데 입학의 기회가 와서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들어가서의 공부가 벌써부터 겁도 나지만, 언제나 즐기는 마음으로 열심히 한다면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언제나 학생들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신 이창용선생님, 양시래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과]
<김현아>
합격수기를 쓰려고 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 스스로도 과연 지금 이 실력으로 입학해서 2년을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후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일단 저는 학부 전공은 영어교육이고 해외 체류 경험은 학부 시절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에 1년 다녀온 것이 전부입니다. 그나마도 그 1년 동안 영어는 별로 사용하지 않고 거의 한국어만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해외 체류 경험은 거의 전무에 가깝습니다. 졸업 후에는 영어와 관계없는 직장에서 2년 일했습니다. 그래서 직장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거의 영어는 들리지도 않고 말도 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시험은 작년부터 두 번 봤습니다.
1. 1차 준비
저는 작년 시험을 1차에서 탈락했었습니다. 준비 기간이 6개월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겠지만, 1차에서 떨어지고 보니 기분이 참 허무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1차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히 컸습니다. 계속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부를 조금씩이나마 하는 것이 마음에 짐을 더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8월부터 이창용 선생님의 모의고사 반을 수강하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1차에 따로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는 않고, 1주일에 한번 정도 모의고사를 풀어보고, 속도에 맞춰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는 데에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창용 선생님께서 좋은 지문을 많이 뽑아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시기 때문에 2차 준비하기 위한 자료로도 굉장히 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2주 정도는 GRE 단어들을 공부했습니다. 1차에서는 어려운 단어도 필요하다고 해서 단어장을 만들어서 매일 조금씩 나누어 암기하는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2. 2차 준비
저는 첫 해에는 양시래 선생님과 이창용 선생님 수업을 수강했고, 두 번째 해에는 은천성 선생님의 실전통역반을 수강하면서 2차를 준비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꼼꼼히 복습하고 거기에 나오는 표현들을 열심히 외우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학원 수업자료만 해도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이것만 복습하는 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학원에서 받은 자료를 우선적으로 학습하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서 혼자 공부를 했습니다. 혼자 공부할 때에 reading 자료로는 주로 뉴욕타임즈를 이용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인터넷으로 뉴욕타임즈를 읽으면서 새로운 뉴스들도 보고 쓸만한 표현이 있으면 연습장에 적었다가, 신문을 모두 다 읽고 나면 그 표현들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에는 The Economist를 읽었습니다. 뉴욕타임즈보다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가끔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안 돼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너무 어렵다 싶은 내용은 시간을 퍼붓기 보다는 그냥 가볍게 대의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정도로 공부를 했습니다. listening은 거의 뉴욕타임즈를 이용했고, 가끔은 이코노미스트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억양이라서 알아듣기 어려운 것도 많았고, 내용이 복잡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기가 저하되기도 해서 거의 뉴욕타임즈를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이창용 선생님의 모의고사 listening 파일을 가지고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NBC, CBS 등등의 뉴스 mp3 파일을 다운받아 들을 수 있는 파일들은 다 들으면서 공부했습니다. 수업시간에 하는 것처럼 중간중간 끊어가며 통역해보고 다시 들어보고 들리지 않는 부분은 들릴 때까지 반복적으로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듣기 자료는 주제를 가리지 않고 생소한 주제의 자료도 구할 수 있는 대로 다 들어본 봤습니다. 은 선생님께서 통역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 실력이라고 하셔서 듣기 부분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다들 그러시겠지만, 걸어다닐 때도 항상 영어를 들으면서 다니고 사람들이 별로 없거나 무지 시끄러운 곳을 걸을 때는 중얼중얼 따라하기도 하면서 계속 듣기를 했습니다.
1차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speaking, writing을 따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 스터디
스터디는 9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스터디를 하지 않고 끝까지 혼자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더운 날씨에 혼자 계속 공부하다 보니 게을러지기도 하고, 혼자는 뭔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터디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정말 운 좋게도 성실하고 실력도 좋으신 스터디 파트너 분을 만나서 공부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 스터디는 맘이 맞고 서로 기대치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하면 도움이 크게 될 것 같고, 잘 안 맞는 사람과 억지로 하려고 하면 서로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습니다. 잘 안 맞는 사람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공부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1차 시험 전까지의 스터디는 한-한, 영-영, listening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한-한은 한국어 신문을 두 단락 정도 읽어주면 그대로 따라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가끔씩 엄청 길게 읽어주고 요약을 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읽어주는 대로 따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국내파에게는 한국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지만, 한국어만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스터디를 할 때에 매우 열심히 듣고 따라하며 표현도 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영-영도 마찬가지로 요약이 아니라 짧은 지문을 가져와서 읽어주고 그대로 따라하도록 했습니다. 지문은 거의 Annie's Mailbox (Dear Annie), Dear Abby, VOA에서 골랐으며, 길이는 거의 1분에서 1분 30초 정도로 맞췄습니다. 처음에는 그대로 따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기억력도 조금씩 좋아지고 영어 표현들에 더 익숙해져서인지 처음보다는 훨씬 실력이 향상되었습니다. 그리고 듣기 파일을 들으면서 수업시간에 하듯이 끊어서 통역해보고 다시 들어보고,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고, 그 다음 시간까지 중요 표현들을 암기해와서 묻고 답하는 식으로 스터디를 했습니다. 1차가 끝나고 난 뒤에는 스터디 방식도 약간 바꿨습니다. 먼저 분야별로 단어를 분류해서 (경제, 정치, 군사, 법 등으로) brainstorming을 했고, 하루에 한-영 통역도 두 개 지문 씩 하고 가끔 번역도 했습니다. 그 외에 한-한, 영-영, listening은 예전에 하던 대로 계속해서 진행했습니다.
3. 시험
1) 1차 시험
1차 시험은 한국어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지문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해가 잘 안 되는 지문도 있었습니다만) 그런데 오히려 지문이 어렵지 않아서 그런지, 문제 자체가 좀 헷갈리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를 풀면서 정확히 "아, 이게 답이구나"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문제보다 "아, 이거 두 개 중에 하나가 답인데" 싶은 문제가 더 많았던 것 같아서, 1차를 치르고 나오면서 굉장히 침울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출 문제에 비해서, 빈칸에 들어갈 단어 또는 사람의 태도나 성격이나 어조에 대한 단어 등 단어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제법 많았습니다. 여기서는 GRE 단어를 외웠던 게 조금 도움이 됐습니다. 몇 개는 공부했던 부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부는 했으나 뜻이 기억이 안 나는 단어도 있었습니다만)
2) 2차 시험
- Essay : 한글 에세이는 최근의 김모 할머니의 생명연장장치 제거 이슈를 가지고 "인간답게 살 권리"와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서 논하는 문제였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뻔하면서도 많이 생각해본 문제인데, 또 어떻게 보면 좀 막연한 부분이라서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소생 가능성이 없는 불치병 환자의 경우에는 본인 동의하에 존엄사를 인정해야 하며 이것이 오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논지로 글을 썼습니다. 영어 에세이는 인터넷 상의 지적 재산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전날 비슷한 내용의 통역 지문을 공부했던 덕에, 단어를 어떤 걸 사용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썼던 것 같습니다. 에세이 쓸 때에는 최대한 쉬운 단어만 쓰고 조금이라도 애매한 표현이 있을 때는 무조건 쉽게 풀어서 자신 있는 단어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 번역: 영-한 번역은 경기 상황과 기업경영태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경제는 순환이기 때문에 지금 경기 침체가 끝나더라도 다시 경기 침체가 찾아올 것이니, 그때를 위해서 호황기에 미리 대비를 해 둬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 자체가 난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최대한 우리말답게 쓰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몇 번씩 문장을 만들어보고 번역을 했습니다. 한-영 번역은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서 이제 G20 정상회담을 유치하는 수준에 이른 만큼, 그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가져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말만 하지말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요지의 지문이었습니다. 지문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비교적 평이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에세이와 마찬가지로 가장 쉬운 단어를 사용해가며 어려운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통역: 면접을 보러 들어갔더니 외국인 교수님 한 분과 한국인 교수님 두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들어가자마자 "김연아가 아니고 김현아군요"라고 농담을 해주셔서 웃으면서 면접을 시작했습니다. 첫 영어 질문은 다행히도 시사상식 같은 것은 아니었고, "대학 졸업 이후에 아무 경력도 적지 않았는데, 그동안 뭘 하였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년 간 회사를 다녔다고 했더니 어떤 회사였으며 무슨 업무를 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그에 대해서 간단히 영어로 설명하자 그럼 회사는 왜 그만두었는지 뭐 대강 그런 내용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통역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영어가 더 좋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기로 했다고 했더니 "입학하면 절반은 한국어 공부다"라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작년처럼 직접 읽고 통역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외국인 교수님께서 직접 영어 지문을 읽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조금 당황해서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필 그 때 라디에이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엄청 크게 딱딱 소리를 내기도 했고, 방 자체에 사운드가 좀 울리는 방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면접 끝나고 나와서도 사실 제가 한 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지문은 대학들이 어학 공부를 경시해서 관련 단과대학 문을 닫기도 하고 학생 정원을 줄임으로써 비난을 받고 있고, 정부는 연구비 지원을 줄이고 이공계에만 지원을 함으로써 이와 같은 상황을 부추겼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부적인 내용도 많았는데 어차피 기억도 나지 않고 해서 대의만 두 문장 확실히 말하고 기억나는 몇 가지 덧붙여 말하고 짧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론 총 세 문장 말했던 것 같습니다. 대충만 기억이 나고 확실치 않은 부분은 아예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짧게 한 편이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영은 제가 직접 한국어 지문을 읽고 영어로 통역하는 것이었는데 두 장 중에 한 장을 뒤집어서 읽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제가 뒤집은 내용이 "김연아의 영어실력"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아마 이 글 때문에 제가 들어갔을 때에 김연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은 "김연아 선수가 영어로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김연아의 영어가 완벽하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영어를 받아 적어 분석해 보면 문법적 오류도 있고 완벽한 영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 선수의 영어가 완벽하다고 느끼는 것은, 김연아 선수가 자기 분야에서 기량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학생들도 영어만을 위해서 조기교육을 떠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질을 계발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고, 대충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내용이 날아가거나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통역을 했습니다. 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하고 좀 어색한 단어도 사용했는데 일단은 당당한 표정으로 끝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많이 줄여버리고 확실히 할 수 있는 부분만 통역을 했습니다. 많이 미흡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애매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은 것이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4. 후기
공부를 1년 넘게 하다 보니 물론 지겨울 때도 있고, 전혀 공부하기 싫은 날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날도 억지로 책을 붙들고 앉아있었는데, 머리에는 들어오지 않고, 그렇다고 푹 쉬자니 마음이 찝찝하고 그래서 스트레스만 받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하루 이틀 하다가 끝낼 공부도 아니니 스트레스 받아봐야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정말 하기 싫은 날은 진짜 쉬운 영어 소설도 읽고 팝송도 듣고 영화도 보고 그러면서 즐겁게 공부를 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도 저도 다 싫을 때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시트콤인 프렌즈를 하루종일 틀어두고 그냥 멍하니 보고 듣고 있기도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오늘은 공부는 잊자!"라고 생각하고 시트콤을 보고 있어도 가끔씩 "앗 저 표현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엔 받아 적어 두거나 또는 그냥 입으로 두세 번 중얼중얼 따라 해보고 암기해 두면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억이 되고 써먹을 만 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가 지겨워지지 않도록 즐겁게 공부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공부하다 보면 내가 어느 부분이 모자라고 어느 부분이 강한지 대충 감이 오는데, 입시 전형과 크게 관계없이 내가 모자란 부분에 많이 투자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특히 외대는 자꾸 전형이 바뀌고 있으니까 한해 기준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공부하기보다는 차근차근히 실력을 쌓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것 없는 합격수기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 내년에 꼭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과]
<송영주>
저는 순수 국내파입니다. 외국에 연수나 교환학생은 간 적이 없습니다. 그저 영어가 너무 좋아서 영어에 빠져 사는 학생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팝송을 많이 들려주셨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가 좋아졌습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간 적도 없었지만, 밤새 혼자 팝송을 해석하고 따라 부르고 외우면서 저도 모르게 발음도 교정이 되고, 공부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성공시대라는 TV프로그램에서 최정화 교수님이 나온 걸 봤는데, 그때 통역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꼭 통역사가 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통역대학원 준비를 하기 전에는, 영어공부를 공부라고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재미로 공부를 했습니다. 영화나 미드를 보면서 대사를 따라 하고 외우거나, 궁금한 표현이 있으면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항상(지금도) 이 말은 영어로 어떻게 할까, 혼자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영어로 말해보곤 했습니다. 또 자막 없이 영화나 미드를 보는 것도 공부나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갈 수록 잘 들리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전공이 영문과여서 영어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특히 원어민 교수님들의 영어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어 대학강의 수준의 수업을 영어로 들으면서도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통역대학원 준비를 하기 전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재미있고,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자만감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열심히 하면 금방 늘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토익도 이미 만점을 몇 번 받았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잘 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리스닝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갈수록 내가 얼마나 큰 착각을 했었나 깨닫게 됐습니다. 특히 작년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양선생님 반에 있었는데, 네이트가 불러주는 패시지를 들을 때 마다 땀이 삐질삐질 났습니다. 한 단락이 통째로 안 들릴 때도 많았습니다. 스피킹은 더 어려웠습니다. 영한은 그런대로 할 수 있었지만, 한영을 할 때가 문제였습니다. 실력도 문제였지만, 자신감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도 막상 발표를 할 때면 긴장해서 입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색한 한국식 영어를 하거나, 세세한 문법이 많이 깨졌습니다. 이렇게 발표할 때마다 자꾸 틀리다 보니, 자신감이 점점 더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은천성 선생님 입시반으로 옮겨갔는데, 이 때부터 1차 시험 때까지는 발표를 거의 3번 정도 밖에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기회가 있었는데도 패스를 많이 했습니다.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험준비
작년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입시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4월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는 듣기를 할 때, 항상 통역하는 마음으로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어떤 기사를 듣거나 읽을 때도 어떤 표현을 쓸 때 정관사를 붙이는지, 단수를 쓰는지 복수를 쓰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연습을 할 때도, 영어기사를 듣고 통역하는 것을 녹음해서 들어보는 식으로 목소리나 한국어를 할 때 부족한 점을 가다듬기도 했습니다. 처음 한달 동안은 한한, 영영 스터디를 했습니다. 공부를 몇 달이나 쉬었기 때문에 메모리스팬을 다시 늘리고, 좋은 표현들을 익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5월은 혼자 공부를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기 전에 혼자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듣기를 할 때, 두세 문장 정도를 듣고 따라 하고, 그런 다음 외워서 말해보고, 앵커의 억양과 쉬어 읽는 곳까지 맞춰가면서 연습을 했습니다. 이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좋은 표현도 익히고 그 표현을 쓰면서 플로우도 유지하는게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조금씩 다시 생겼습니다. 6월부터는 이창용선생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 수업이 정말 저한테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거리감이 없으신 선생님 덕분에 특히 제가 발표할 때 긴장되어서 잘 하지 못했던 한영을 더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꾸 발표를 하다 보니, 발표자체 때문에 긴장하는 일은 줄어들었습니다. 스터디는 주로 수업자료를 복습하는 식으로 했습니다. 새로운 자료를 찾아서 스터디를 하시는 분들이 많으셨는데, 제 스터디파트너와 저는 특별히 수업시간에 자료를 다 커버하지 않은 이상은 새 자료로 스터디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한 듣기자료도 남은 자투리 부분을 스터디로 커버하고, 좋은 표현은 서로 의견을 내가면서 했습니다. 한영은 수업자료를 전부다 다시 연습했습니다. 이때 통역을 끝내고 크리틱을 할 때 서로 좋은 표현을 내 놓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 한달 전쯤에는 연습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서로 쉽지만 영어다운 표현을 생각해내고 공유하면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딩과 라이팅도 거의 수업자료를 중심으로 봤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시는 자료만 모두 꼼꼼히 봐도 다른 자료를 공부할 시간이 남지 않을 정도로 양이 방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양질이고 다양한 출처에서 나온 자료이기 때문에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다른 것을 많이 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1차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스터디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하고, 1차 준비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때부터는 제가 아는 영어뉴스, 영어방송 사이트에 있는 듣기에 스크립트가 붙은 자료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루에 최소 스무 기사 정도는 들었습니다. 특히 한번만 듣고 기억해내는 연습을 많이 했고, 한 주제가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모두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VOA사이트가 특히 좋았는데, 독특하고 산뜻한 주제가 많고 길지 않으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PBS도 다양한 주제의 자료를 스크립트까지 같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리딩은 선생님이 주신 자료로 시간을 맞춰놓고 시간 안에 제대로 읽고 파악하는 식으로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출문제를 시험처럼 풀어보고, 틀린 문제를 분석했습니다. 희한하게 한번 틀린 문제는 다시 풀어도 또 틀리게 되어서, 정말 제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정답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왜 그 문제가 틀렸는지 확실히 이해가 갈 때까지 생각했습니다. 한국어는 한국어 문법 100제가 나온 자료가 있었는데, 그 자료를 대여섯 번 정도 보면서 외웠습니다.
시험
1차 시험은 한국어가 예상 밖으로 너무 어려웠습니다. 시간 안에 겨우 맞춰 풀 수 있을 정도였고, 한자가 너무 어려워서 오히려 다들 어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자문제는 큰 걱정을 안 했습니다. 영어시험은 시험지를 받아보니 한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문제가 처음부터 나왔습니다. 대화체였던 것 같은데 대화를 하다가 마지막 단어부분에 “띵” 소리가 나고 거기에 들어갈 단어를 찾는 형식이었습니다. 듣기의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서 집중력을 잃고 한 문장이라도 놓치면 엉뚱한 답을 고르게 되는 문제였습니다. 리딩은 일반적인 주제들이 나왔습니다. 다른 분들은 난이도가 크게 어렵지 않다고 하신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솔직히 시간을 겨우 맞춰 풀 정도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선생님 말씀대로, 확실히 풀 수 있는 지문에서는 정답을 다 맞추자는 생각으로 풀었습니다. 어떤 주제가 나왔는지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잊어버렸습니다. 저를 가장 애먹였던 지문 하나만 생각이 나는데 맥도날드에서 파는 프렌치프라이에 사용하는 감자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과학자들이 감자종을 계속해서 개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큰 성과가 없고 과학자들을 애먹이고 있지만, 좋은 종이 나오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릴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1차를 치르고 나서 불안반 기대반으로 2차반을 등록했습니다. 2차 준비를 할 때 처음으로 다른 파트너들과 연습을 했습니다. 올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단짝과만 계속해서 스터디를 해왔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스터디를 하니 색다르고 또 새삼 긴장도 더 되어서 이것도 2차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2주 동안 준비하는 기간에는 아는 표현들을 확실히 익히는데 중점을 두었고, 또 연설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연설문에 자주 나오는 표현들도 익혔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는 욕심내지 말고 평소만큼만, 그리고 목소리는 또랑또랑하게, 몰라도 자신감있게라는 말을 항상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통역을 연습했습니다.
2차 시험으로 저는 하루에 번역, 에세이, 그리고 통역시험까지 다 보았습니다. 번역시험은 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영어에세이가 의외의 주제가 나와서 좀 당황을 했습니다. 해운대 사건을 통해서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는 것이었는데, 필요한 표현들을 생각해 놓지 않아서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한국어 에세이는 안락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정리가 되어 있어서 시간도 남을 정도로 넉넉히 썼는데, 영어에세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데만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그래서 조금 짧게 쓰는 대신 문법이 깨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데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에세이까지 다 제출을 하고 급하게 통역을 보러 갔습니다. 시험을 보는 건물 2층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이때 우리 반 사람들끼리 같이 대기를 했습니다. 혼자 있었더라면 더 긴장되고 불안했을텐데, 함께 대기를 하고 있으니 긴장도 풀고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 제 바로 앞사람이 통역을 하러 들어가자, 저는 1층 시험장 앞에서 대기를 하러 내려갔습니다. 보조하시는 선배분께서 긴장을 한 티를 내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욕심내지 말고 평소만큼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를 외쳤습니다. 제 순번이 되서 들어가자, 앞에는 외국인 남자교수님, 한국인 여자 교수님, 한국인 남자 교수님 이렇게 세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앉자, 바로 외국인 교수님께서 질문을 시작하셨습니다. 맨 처음에는 가볍게 영문과인지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질문이 심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한국 영문학과생들은 영문학을 싫어하던데, 너도 그러냐고 물으셔서 저는 문학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떤 문학가를 좋아하냐고 물으셨습니다. 갑자기 조금 당황했지만, 제가 평소 좋아하던 시인인 William Blake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또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Blake가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좋아하고, 특히 빈자와 부자를 대비할 때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전에도 인터뷰에 대해서 듣긴 했지만, 이렇게 교수님이 질문을 하실 땐 별생각 없으신 것 같지만, 사실은 계속 심화를 시키시기 때문에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영한 통역을 들어갔습니다. 그 외국인 교수님께서 육성으로 읽어주셨는데, 그렇게 목소리가 크진 않으셨습니다. 옆에 계신 남자교수님께서 읽는 도중에 점퍼를 입으셨는데, 그 바람에 한 문장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내용은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길이는 잘은 모르겠지만 네 다섯 문단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고, 특히나 수상금을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해서 관심이 몰리고 있다. 대통령이 수상 발표가 난지 얼마 후에 입장을 밝혔는데, 그 돈을 모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연봉이 많기 때문에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기부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자선단체를 만들어서 거기에 기부를 하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기부를 했다. 두 번째는 기존의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부를 했다. 예를 들어 엘 고어 전 부대통령은 환경단체에 기부를 했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사회운동 단체에 기부를 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중간에 말이 꼬여 버벅 거렸는데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웃으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표정에 변화가 없으셔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기에, 그냥 교실에 울리는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안정감 있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한영을 했습니다. 한영은 제가 읽고 영어로 통역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세 문단 이었고, 어린이 비만에 관한 주제였습니다. 점점 더 많은 어린이들이 비만이 되어 가고 있고, 이 아이들이 커서도 비만으로 고혈압 등 성인병을 앓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아이들 먹거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좀더 종합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 정부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정부는 아이들이 운동을 하고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도록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뒤에 한 문단이 더 있었는데, 교수님과 눈을 맞추다가 그 문단이 다 날아갔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백지가 되서 그냥 종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끝을 맺어버렸습니다.
2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마음 수양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자만하는 순간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시험준비 기간 동안 영어가 싫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늘지를 않아서 너무 괴롭고 내 자신이 싫을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조금 잘한다고 잘난 기분이 들 것도 없고, 못한 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창용선생님과 양시래 선생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이창용 선생님 덕분에 통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해 주신 조언들, 잔소리들(ㅋ), 정말 실질적인 것들이라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양시래 선생님, 처음 들었던 수업이 선생님 수업이었는데, 선생님을 통해 통역에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내내 스터디파트너였던 단짝 성희언니, 정말 고마워요. 언니를 만나서 고된 수험생활 그래도 잘 버텨낼 수 있었어요.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상세하게 적다 보니 너무 많이 적어버렸네요.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과]
<홍영화>
1. 배경
국내파이고 불문과(영문학 부전공) 졸업 후 계속 중학생 영어 강사로 일했습니다. 2004년도에 10개월 정도 캐나다에서 영어연수를 했고 그중 3개월은 TESL diploma를 따는데 할애했습니다. 다니던 캐나다의 어학원에서 매달 토익시험을 보았는데 맨 마지막 달 점수가 950점 이었습니다. 저는 대학 때 불어만 공부했지 토익시험 및 영어공부를 거의 한 적이 없는 불문학도였습니다. 제 실력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성문기초, 기본을 공부하다가 얻은 게 거의 전부였습니다.
2. 공부시작
2005년부터 다시 주니어 어학원에서 중등 토익/토플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연수 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고 미래가 캄캄했습니다. 성인대상 학원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으니 양심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6년도부터 통대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삼십대 초반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도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2007년도와 2008에는 열심히 했어도 한국외대1차에도 붙지 못했고 他학교 시험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9년도 9월까지 계속 풀타임으로 직장에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3. 학원수강
2009년도 처음으로 은천성 선생님의 토요 독해/번역반을 듣게 되었고 시험 전까지 계속 다녔습니다. 제가 2007, 2008년도에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계속 떨어 진 것은 독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 어떤 수업을 들어도 스스로 노력을 해도 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샘의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초적인 의미군 끊어 읽기도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었고, 영어 읽기에서 제 문제점도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어문장 암기나 필사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2차 시험준비 직전에 4일간 통대 "구술시험" 최종점검반 수업도 들었습니다. 앞에 나가서 선생님 앞에 앉아 발표하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ㅎㅎ 발표실력은 정말 제가 죄송할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한 번도 완벽하게 발표한 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께서 시험 전에 충격 받을 까봐 살살 크리틱 하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하실 말씀은 다 하시지만요.^^ 2차 시험 전 은샘의 구술 시험대비 반을 듣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었고 공부 외에도 여러 조언을 해주셔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4. 공부 및 스터디
(1) 듣기는 스터디를 하지 않고 혼자 듣고 발표한 내용을 녹음해서 확인하고 꼼꼼히 문장을 외우고 따라 읽었습니다. 잘 안 들리는 부분은 한 문장 씩 듣고 재생해 보았습니다. 듣고 발표하는 내용의 양을 점차 늘려갔습니다. 준비하면서, 아침마다 BBC의 월드 뉴스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2) 영영스터디를 계속 했습니다. 코리아타임즈의 통신사 기사나 이코노미스트지의 쉬운 글을 한 두 문단 읽고 즉시 영어로 재생해 보았고 파트너가 크리틱해 주었습니다. 혼자서도 영어를 읽고 즉시 그 내용을 필사해 보거나 영어 기사를 한국어로 전환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가끔 녹음해서 확인도 했습니다.
(3) 토요일마다 은샘 토요반의 작문 숙제(영어 문장 암기하고 한국어를 보며 암기한 것 쓰기)를 했고 독해 복습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차츰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토요일엔 독해와 작문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주중에는 다른 수업복습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공부를 한 후 작문이나 독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4) 일주일에 2번 정도 한두 문단(독해나 한영 자료)을 암기해서 파트너와 체크해 주었습니다.
(5) 단어집으로 스터디를 일년 내내 했습니다. 워드 스마트만 일주일에 3번 정도 계속 반복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단어집으로 스터디를 했는데 일찍 하지 않은 것이 정말 큰 잘못이었습니다. 듣기나 독해자료로 단어를 외우게 되지만 단어집도 별도로 하는 것이 1차 독해시험대비를 위해 꼭 필요 한 것 같습니다. 하루에 2시간 반정도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그 시간을 활용해서 단어암기를 하고 이코노미스트 기사도 읽었습니다.
(6) 한영은 봄부터 계속 꾸준히 스터디 했습니다. 공부한 내용 중 중요표현이 있는 문장이나 문단을 꼭 암기하려 했지만 사실 여름 이후에나 신경 써서 암기했습니다.
(7) 영한 스터디( 파트너가 읽어주고 통역하기)는 여름 이후에 시작한 것 같습니다. 주로 이코노미스트를 이용했습니다. 파트너가 잘 읽어 주는 것이 중요해서 스터디 전에 꼭 읽기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8) 에세이는 시험 한 달쯤 전부터 일주일에 한번 씩 각자 30분 동안 에세이를 써 온 후 파트너와 바꿔서 읽고 크리틱하는 식으로 매우 간단하게 했습니다. 주말에 SAT를 풀었는데 한 권 정도 끝냈습니다.
5. 시험
(1차) 국어는 한문 때문에 좀 걱정이었습니다. 전 한자는 전혀 모르고,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도 완전 수준이하입니다. 1달 전부터 지하철 안에서 간간이 맞춤법에 대한 자료를 읽었습니다. 독해는 신문을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읽은 것이 좋았습니다. 영어는 듣기는 쉬웠던 것 같고, 독해도 이전보다 평이했습니다. 1차 시험 전 은샘이 문제풀이와 번역준비를 시켜주셨습니다. 기출문제보다 전반적으로 올해는 쉬웠습니다. 마킹도 끝나기 2-3분전에 미리 해버렸습니다. 고치다가 더 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마킹하다 실수할까봐 미리 해버렸습니다.
(2차) 토요일에 영어/한글 에세이, 번역시험을 보았습니다. 영한번역은 금융위기이후에 월가가 직면한 비난이라든가 변화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첫 문장이 좀 난해해서 한국어로 옮기기가 애매했습니다. 과감히 의역했습니다. 초반에 한 번 답지를 바꿨습니다. 한영은 매우 짧고 영한보다 간단했습니다. 왜인지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번역공부는 혼자서 한 것은 없고, 시험 전 은샘이 번역대비 문제를 내주셨던 것만 했습니다.
영어에세이는 영화 해운대의 저작권 침해 문제를 예로 들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쓰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에세이 형식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좀 난감했습니다. 작가들의 의욕을 꺾어서 창작 분야를 침체시킬 수 있으며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작권 침해가 만연하게 이루어져서 대중의 의식전환을 위해 활발히 캠페인을 벌이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쉬운 문장으로 쉬운 단어만 써서 유치하게 쓴 것 같습니다. 한국어 에세이는 김 할머니의 안락사 문제를 예로 들고 품위 있게 죽을 권리나 살 권리에 대한 의견을 쓰라고 해서 안락사를 사람들이 악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반대 의견을 썼습니다. 에세이는 모두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 글을 썼습니다.
일요일에 구술시험을 보았습니다. 9시까지 학교에 오라고 했는데 7시 45분에 도착해서 좀 어색했습니다. 새벽부터 계속 뒤척이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빨리 가서 복습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전 스터디 파트너를 곧 만나게 되어 한한을 간단히 하고 각자 복습했습니다. 저는 3번째로 호명이 되었습니다.
중앙에 女교수님이 앉아 계셨고 외국인 교수님, 한국인 남자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女교수님이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마음이 놓였고 편안했습니다. 시험 전 외국인 교수님이 간단히 졸업 후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셔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한 것 같습니다. 영한은 외국인 교수님이 읽어 주셨습니다. 중국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원래 중국이 저작권을 침해하기로 유명한데 최근 오히려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구글이 허락 없이 게재해서 문제가 되었으며, 중국이 국제 저작권 조약에 가입했지만 그 내용이 미국과 다르게 엄격하지 않은 것, 베이징 올림픽기간에 미국과 스포츠 중계 문제로 분쟁이 있었던 내용입니다. 거의 막힘 없이 했지만 한국어 사용에 있어 다소 매끄럽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운 느낌은 없었습니다. 한영은 불량식품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TV에서 불결하게 짜장면을 만드는 장면이 나와서 충격적이었고 환경오염, 농약, 유전자 조작 식품 등으로 식생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야 하고, 소비자도 더욱 신경을 써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이한 내용이라서 막힘 없이 하다가 맨 끝에 몇 마디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멈추니까 교수님들이 갑자기 쳐다보시는 것이 느껴져서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급하게 쉬운 단어로 끝을 맺고 쑥스러운 미소를 보여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사드리고 나왔는데 온 몸이 후들거려서 잠시 앉아서 안내하시는 분과 아는 사이인양 얘기하다 왔습니다.^^;
6. 맺는 말
정말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일하며 공부하느라 언제나 정신이 반쯤은 나가있었던 것 같고, 만성적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저의 모든 가능한 시간과 돈, 정성을 다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아깝지 않고 이 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선생님들(특히 은 선생님), 스터디 파트너들(태경, 주현, 어진, 문경, 보라, 영미씨)을 만나게 되어 너무도 감사합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과 지금의 저는 너무도 다른 인간입니다. 영어 공부를 했는데 세상을 더 잘 알게 되고, 인격적인 면에서 단련이 되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하느님과 제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과]
<홍주연>
저는 이번에 삼수 끝에 합격한 장수(?)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합격수기를 쓰는 날을 상상은 많이 해보았지만, 정말 이렇게 쓰게 되니 쑥스럽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영국에서 어학연수 약 9개월, 미국 1개월 반 갔다온 것이 해외 경험 전부인 국내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부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과를 졸업했지만, 학부시절 통번역 수업은 통번역 대학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충분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통번역 대학원 시험을 쳤던 것은 대학교 졸업을 앞둔 4학년 말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당시 제가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토익점수가 980점 정도 나오고 나름 한국외대 통번역과를 다닌다는 자만심에 자신을 너무 믿고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쳤고 1차에서 낙방하였습니다.
충격은 심했지만, 그래... 내가 공부를 안 했으니... 라고 생각을 하고 다시 도전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졸업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학원생(?)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나름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빨리 시간이 지나서 시험을 빨리 치는 게 속이 후련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작년 내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두 번째로 대학원 시험을 쳤고 또 1차에서 낙방했습니다. 그 때 느낀 감정은 정말 허무하고 내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큰 실망을 하셔서 너무 죄송하고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습니다. 국내파이긴 하나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회화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제게 1차 필기 시험에서 두 번의 낙방은 저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1차에서 낙방하자 부모님도 약간 반은 포기하시고 무엇이든지 삼 세 번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세 번째를 마지막으로 시험을 쳐보고 이번에도 안되면 취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고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공부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가 있어 이렇게 수기를 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이창용 선생님 수업을 올해 초부터 시험 치기 직전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다른 선생님 수업도 들어보고 했지만, 이 선생님의 수업이 저에게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우선 학생 수가 적어서 좋았고, 발표할 기회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이 저에게 무엇을 못한다고 하면 취약점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오히려 포기하는 성격이라서;;; 잘 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잘 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과 관심이 많이 도움되었습니다. 대학원 수험생으로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재미있게 약 1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1차 준비>
저는 1차만 두 번 낙방했기 때문에 1차가 가장 큰 부담이었습니다. 1차가 붙어야 2차 번역 및 인터뷰의 기회도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독해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휘실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워드스마트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주신 독해자료를 재미있게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독해하는 것을 사실 좋아하지 않았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다양한 주제의 자료를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읽으면 오히려 머리에 안 들어오고 집중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의 모의고사 반을 계속 들었고 1차 시험에 대한 감각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필기시험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데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의 고사를 쳐봤기 때문에 실전에서 덜 긴장할 수 있었습니다.
<2차 준비>
스터디를 파트너와 함께 5월 초부터 했습니다. 혼자 공부가 안 될 때 파트너와 한영, 영한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파트너를 3명 정도 여러 명과 따로 했는데 한 명과 스터디하는 것 보다 좋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명의 크리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 및 에세이는 1차 시험 전까지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고 1차 시험 끝나고 이창용, 양시래 선생님의 2차 준비반을 들었습니다. 예상 이슈를 가지고 글을 써보았던 것이 2차 시험 실전에서 많이 도움되었습니다. 또 제 2차 합격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2차 시험 전 날 학원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모의 영한, 한영 시험을 친 것입니다. 이창용, 양시래 선생님께서 봐주셨는데 그 날 너무 제 퍼포먼스가 안나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전날 너무 떨고 걱정한 탓인지 실제 2차 시험에서 긴장을 덜 하고 오히려 퍼포먼스가 좋게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학원에서 시험 전날 2차 시험 준비한 학생들은 다 합격했기 때문에 만약 신이 있다면(?) 시험 직전까지 학원에 나와서 연습했던 노력을 가상히 여기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1차 시험>
1차 시험은 작년 시험에 비해서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모의고사를 풀었기 때문에 1차 시험의 부담은 좀 적었습니다. 1차 시험을 치고 학원에 오니 많은 사람들이 쉬웠다고 해서 시험의 변별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더 걱정했습니다. 2,3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듣기는 짧지만 집중력을 요하는 문제들이 많았고 독해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휘력과 문맥 이해력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2차시험>
번역 및 에세이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큰 부담을 가지고 하진 않았을 겁니다. 구술, 즉 한영 및 영한이 합격과 불합격을 판가름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2차 준비는 학원수업시 발표와 스터디를 하면서 꾸준히 speaking의 감을 잃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2차시험장에 갔을 때 이창수 교수님, 한 분의 외국인 교수님과 다른 여자 교수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영한은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한 내용이었고 한영은 비만아동의 증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은 저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시지 않으셨지만, 제가 영한, 한영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이창수 교수님께서 저를 유심히 잘 바라봐 주셔서 나오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록 제가 저지른 실수들(자선단체라고 해야할 것을 복지단체라고 함;;)이 생각나 괴롭기도 했지만...
두 번 1차에서 떨어지고 나서 정말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사람들이 다 저보고 얼굴이 너무 우울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끝까지 끈기 있게 하면 무엇이든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실 많은 통대 수험생 여러분!
통대 시험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대학원 시험에 합격하려고 재수 삼수까지 하냐고...그렇게 말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말고 정말로 원하고 끈기 있게 도전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화이팅입니다!
이제 저는 정말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물론 대학원에 들어가면 피 터지는 경쟁과 혹독한 크리틱으로 인해 많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힘들지만 재밌게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기도해봅니다.
그리고! 함께 스터디 해준 스터디 파트너분들 (강미경, 양성애, 조진경, 이상은, 박진경, 양재천)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제 합격소식에 정말 기뻐해 주시고 격려 해주신 이창용, 양시래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통역과]
<김정희>
[나이/공부기간/동기]
저는 30대 초반인 2004년 4월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서 30대 후반을 향해 가는 지금에야 합격했습니다. 중간에 조금 쉬었기 때문에 합격하기까지 거의 6년이 걸렸습니다. 2004년부터 2년 동안 full로 공부했고, 그 후 2년 정도 다시 회사에 다니다가, 2007년 후반부터 지금까지 다시 full로 공부해서 합격한 경우입니다. 은천성 선생님 덕분에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신념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보면 많이 답답하셨을 텐데 내색하지 않으시고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막판에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은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방법들에 대해 항상 공감했고 믿었고 따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런 사항을 밝히는 이유는 나이가 입학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입니다. 또 1-2년 정도 준비해서 합격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저처럼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장기간 준비해서 입학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client 입장에서 통역사를 써 봤기 때문에 나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통역을 말아먹는다면 어리다고 용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역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젊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회사에서 4년, 다국적 기업 2곳에서 5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영어에 대해 맹탕은 아니었지만 통역은 정말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직장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통역사나 통대에 대한 환상은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단지 회사를 떠난 후에도 평생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survival tool로서의 영어의 위력을 너무나 크게 느꼈습니다. 어학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 당시 second career로 통역을 비장의 무기로 갖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2003년 후반부터 제가 다니던 다국적 기업이 연구소를 철수시키고 10 여명 정도로 운영되는 사무소 형태로 축소 전환 됐습니다. 그 때 회사를 떠나 통역으로 방향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4년 초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2004년 초에 공부를 시작 을 때 통역 대학원 입학에 all-in하지 않았습니다. 2년 정도 full로 공부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너무 합격에 연연해서 집착하거나 목을 매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집착하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데 공부 자체가 싫어 질 수 있습니다. 직장 경력에 2년 공백이 생기겠지만 어학실력을 upgrade하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통대에 입학하지 못해도 손해 날 게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지만 통대에 입학할 만한 역량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2년 동안 스트레스 받아 가며 공부 열심히 했다는 것이 반드시 통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해도 통대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는 겁니다. 그 후 다시 취직을 해서 통대 공부를 병행하려 했는데,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병행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LC 실력이 확 줄어드는 것을 막아보려고 매일 시사청취 수업을 들으면서 최소한 1 page라도 복습은 했었습니다. 문제는 한번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들어가니 회사라는 조직사회가 너무 싫었습니다. 2007년 후반에 은 선생님 통역 수업을 듣고, 2-3달 간 꾸준히 필사를 하고 나서 이대 1차 에세이 시험을 그냥 시험삼아 봤는데 운 좋게 1차에 합격을 했습니다. 이대 1차 합격이 계기가 돼서 2008년에 다시 full로 통대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이제야 합격하게 됐습니다.
[시행착오와 방향잡기]
1. 수업
모든 자료를 소화하고 철저히 복습하지 않을 거면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면서 수업 여러 개 듣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code가 맞고 복습을 철저히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수업을 꾸준히 듣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도 이거 저거 안 듣고 은 선생님 수업 중에서도 제게 필요한 수업(시사청취반, 실전통역반, 독해/번역반)만 들었습니다.
2. 스터디 파트너
수업만 듣고 혼자서 공부하거나 스터디 파트너와 공부하는 것은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수업만 듣고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초창기에 스터디를 해 봤는데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문제, 공부보다는 잡담을 하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유혹, 30분이면 끝날 거 1시간 걸리는 거 같아서 스터디는 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상대방에 대해 critique를 해 줄 실력도 없었습니다. LC/한한/영영/한영 등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래에 적어 놨습니다.
3. LC(정청/영한/다청)
일단 은 선생님 수업의 내용을 철저히 "복습"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철저한 복습 + α"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는 때가 바로 통대에 입학할 수 있는 역량을 어느 정도 키운 때라고 기준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제 공부의 기본 골격은 "복습" 이었습니다. 지금도 LC가 그렇게 강하다고 할 수 없지만 (LC는 제가 평생 노력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처음 공부 시작할 당시에는 LC역량이 부족해서 시사청취 2 page 복습하는 것도 5-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시사청취/통역/독해 수업을 동시에 들었었는데, 시사청취수업내용을 5-6시간 동안 복습하고 나면 힘들어서, 나머지는 정말 허덕거리면서 숙제를 하거나 복습을 했습니다. 한한 영영 등과 같은 복습 이외의 다른 공부, 즉 α는 할 엄두도 못 냈습니다. LC는 너무 안 되고, 시간은 너무 많이 걸리고, 복습할 분량은 산더미처럼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복습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에 복습을 위한 복습을 하느라고 LC를 하지 않고 transcript만 암기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건 정말 LC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아주 잘못된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복습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서 다 하지 않더라도 일정 분량만 LC를 하면서 transcript를 외울 겁니다. 재취업했다가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느낀 점은 변변치 않았던 LC 조차 공부 중단과 함께 많이 줄었다는 겁니다. 그나마 시사청취로 한 다리 걸쳐놓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면 정말 LC는 원점으로 돌아갈 뻔했습니다. 통대에 입학했건 통역사가 됐건 LC를 놓는 순간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정청과 더불어 다청도 했습니다. 시사청취와 통역 수업 1교시(Family Minutes/Quick and Dirty Tips/The Economist)와 3교시 LC자료(월간 LC교재)를 가지고 정청을 했습니다. 정청을 할 때는 암기에 중점을 두지 않고 들은 것을 잡았냐 못 잡았냐 만을 놓고 분석했습니다. 정청을 할 때 한 문장을 들어보고 잡은 것을 말해 본 후 빠지는 내용이 많으면 그 문장을 부분별로 끊어서 들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따라서 발음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통역 복습 혹은 숙제로 나온 예습 자료들은 일단 일정 분량만큼 끊어서 한 번 듣고 영한을 하고 그 다음에 정청을 하고 다시 한번 통역했습니다. 한번 듣고 통역하고 나서 정청을 하는 이유는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가 빠졌는지 느껴 보기 위한 겁니다. 정청 후에 다시 한번 통역하는 이유는 정청을 하고 나서도 못 잡은 부분을 알아내기 위해서 입니다. 정청을 한 후 통역연습을 했을 때 못 잡은 것은 결국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암기 할 때 조금 더 신경 써서 외워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수 도 있지만 정청은 양을 줄여서라도 꾸준히 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저처럼 힘들다고 transcript만 외우고 대충 타협해 버린다면 통대로 가는 길은 점점 멀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청은 iTunes를 컴퓨터에 깔고 podcast에서 ABC World News, CNN AC360, CBS Evening News, NBC Nightly News, CNN Larry King Live, ABC Nightline, BBC Global News, BBC Documentary, CBS 60 Minutes등 취향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보고 들었습니다. 특히, ABC, CNN, CBS, NBC News와 같은 video news는 죄책감(자신이 현재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없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필사 혹은 독해 자료 선정할 때 방송 4사에서 동시에 떠들어대는 뉴스에 대한 기사를 NTY 또는 VOA 에서 검색해서 뽑았기 때문에 최신 시사 어휘를 계속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iTunes는 Apple 홈페이지에 가면 down 받아 설치 할 수 있습니다. http://www.apple.com/downloads/로 가서 iTunes를 컴퓨터에 설치하면 됩니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subscribe만 하면 설치된 iTunes에 매일 매일 자동으로 download가 됩니다. 저는 이동 중에 다청을 하고 싶어서 iPod를 구입했는데 걷거나 지하철 탈 때 들고 다니면서 보고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청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LC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청도 꾸준히 해야 하고 정청을 못한 날에는 다청이라도 꼭 해야 합니다.
4. 한한/영영
복습에 시달려서 시간 없다는 이유로 한한과 영영을 완전 소홀히 했었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됩니다. 한한과 영영은 LC와 더불어 통역에 있어서 기본 뼈대를 구성하는 공부입니다. 특히 한한은 memory span 향상과 논리적 연결고리를 만드는 중요한 연습이기 때문입니다. 한한은 주로 신문 사설/기사를 활용했는데 국제, 경제, 과학,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가지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못한다 하더라도 2-3일에 한번씩은 한한을 하려고 했습니다. 한한 할 때 사설 한 문단 정도 소리내서 읽은 다음에 덮고, 녹음기를 켜고 제가 한한 하는 것을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녹음기를 틀어 놓고 제가 한 부분을 들으면서 아이디어가 빠진 부분에 대해서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이디어가 빠진 부분을 소리내어 읽어보고, 내 입에서 튀어나오면 좋겠다 싶은 한글 표현과 익숙하지 않은 부분은 암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외 각종 경제 지표"도 좋은 표현이지만 "나라 안팎의 각종 경제 지표"같이 보다 한글다운 표현을 외우려 했습니다. 다시 사설을 덮고 이미 했던 문단에 대해 외운 표현을 사용해서 다시 한번 한한을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사설 1개 하는 데 30분 정도 소요되고, 영한 할 때 괜찮은 한국말이 튀어나올 수 있게 됩니다. 영영은 Dear Abby를 읽고 나서 쉽고 유용하지만 생소한 표현을 먼저 외운 후에 전체를 달달 암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암기 한 것을 녹음 한 후 들었습니다. 녹음한 것을 듣다 보면 자신이 정서 불안 같이 pause 없이 빨리 지껄이고 발음도 얼마나 이상한 지 알 수 있습니다. 한동안은 녹음해서 듣고 말투를 교정했습니다. 쉬운 영어로 영영을 해야 나중에 한영 할 때 "어려운 어휘 + 쉬운 연결어"의 결합이 가능해 집니다. 통대 공부하면서 접하는 딱딱한 어휘나 구문만 가지고 문장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입에서 바로 튀어나올 수 있는 쉬운 문장을 만들려면 Dear Abby와 같은 쉬운 영어가 입에 붙게 해야 합니다. 이것도 매일 매일 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시간이 없으면 2-3일에 한번은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5. 한영
저는 한영을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초창기에는 수업 시간에도 한영만 빼고 발표 신청을 했었습니다. 감히 한영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한과 영영이 어느 정도 된 다음에야 수업 시간에 한영 발표를 했고 은 선생님의 critique를 받고 방향을 잡은 게 전부입니다. 시험 직전까지도 한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영은 은 선생님 말씀대로 한한과 영영이 쌓이면 저절로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테니스 치는 자세가 엉망인 사람이 자세를 교정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처음부터 제대로 테니스 치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설픈 한영 버릇은 고치기 힘듭니다.
6. 한글 신문
모든 기사를 다 보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한글 신문을 볼 때도 대충 넘기면서 자세히 읽어야 할 기사 2-3개에 눈 도장을 찍어 둡니다. 일단 선정된 기사를 자세히 볼 때는 괜찮은 표현에 밑줄을 그어 가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세계 경제의 움직임과 연계돼 있는 우리나라 경제 혹은 국제 경제 뉴스는 항상 봐 두어야 합니다. iTunes나 NYT(The New York Times)를 통해 접한 뉴스가 한글 신문기사로 떴을 때 스크랩 해 놓았다가 한글 어휘와 영문 어휘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지엽적인 국내 소식은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내 뉴스 중에서도 보다 보편적인 것들은 어휘를 익히기 위해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 출산, 이중 국적, 외국인 차별, 환경, 교육, 전기자동차, 광물자원 확보 등등.
7. 필사/어휘 정리
필사 숙제가 있었기 때문에 초창기에 NYT의 사설을 가지고 꾸준히 필사와 암기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방향을 잘못 잡은 겁니다. (속된 표현으로 삽질했습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고 시간 정말 많이 걸렸었는데...) 쓰기와 말하기를 위한 필사와 암기를 위해서는 NYT사설 같이 딱딱하고 활용하기 힘든 자료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딱딱하고 힘든 영어를 잘 하면 쉬운 영어는 저절로 될 거 같은 착각을 했던 겁니다. 딱딱한 영어와 쉬운 영어는 각각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번역학과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필사를 좋아해서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공부 시작 전에 30분간 필사를 하고 나면 마음도 차분해 지고, 공부 시작을 위한 warming-up이 됩니다. 지금은 사설보다 훨씬 쉬운 NYT기사를 필사하거나 VOA News를 필사합니다. 필사 한 후 괜찮은 VOA News는 부분별로 혹은 통째로 암기합니다. VOA News는 빠르게 소식을 전해야 하는 통신사 기사이므로 한영과 번역에 사용해도 좋은 짧고 간결한 문장과 문체입니다. NYT의 괜찮은 어휘, 표현이나 문장에 밑줄을 긋고 한글로 써 놓습니다. 예전에 어휘를 따로 정리한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은 밑줄 그은 기사들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모아 놓습니다. (경제/무역/사회/과학/환경/군사/국제기구 등등...) 나중에 밑줄 그은 어휘만 죽 훑어보면 어휘 정리를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8. 독해
독해는 주말 독해/번역반 수업 자료만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혼자 독해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료 선정에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은 선생님께서 골라 주시는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업을 듣지 않고 혼자 독해 공부를 한다면 한글 번역본이 있는 Newsweek나 학원 site에 링크 돼 있는 WT(The Washington Times) 사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WT 사설이 완전 우파 사설이어서 암기하기 싫었지만, 한글로의 번역은 잘돼 있습니다. 수업을 들은 후 독해 자료를 몽땅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표현만 암기하고 나서 한글 번역본을 보면서 영어 표현을 떠 올려 보는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모든 자료를 다 복습하지 못할 때는 한 문단만 하고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숙제로 나온 번역 자료는 몽땅 암기한 후 한글본을 보면서 암기한 것을 영어로 말하고 녹음해서 들었습니다. 빠지거나 막힌 부분은 다시 암기하고 한글본 보고 녹음하는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9. 연설문
통역 수업 2교시 숙제가 미 대통령 주례 연설문 암기인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외웠는데 앞에 나가 발표 할 때면 허공 속에 산산이 부서진 기억 안 나는 연설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시 주례 연설을 1년 넘게 매 주마다 빠지지 않고 외웠는데도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설문 발표시킬 때마다 심장 박동수가 상승하면서 stress gauge가 최고수치로 올라갔습니다. 문제는 연설문을 기계적으로 순서대로 경직되게 외웠기 때문에 기억이 안 나면 확 막히고 나머지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부시 연설이어서 외우기 싫은 것도 없지 않았습니다. 부시 연설은 항상 부정적이고 남 탓하는 연설이어서 지겨웠습니다.) 신기한 것은 말 잘하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연설문을 알아서 외우고 싶어졌습니다. 오마바 주례 연설문을 외우고 나서 마치 마이크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녹음기를 잡고 연습을 했습니다. 녹음한 것을 듣다보면 어디서 논리가 연결되지 않고, 머뭇거리고, 무엇이 기억이 안 나는 지 걸러집니다. 그리고 구문별로 pause를 제대로 취하는지 발음이나 강세는 이상하지 않은 지 잡아서 고칠 수 있습니다.
10. 시험 한 달 전/Brainstorming/Family Minutes/VOA 사설
시험 한 달 전에는 새로운 것을 하지말고 하던 거 계속 하면서 과거에 했던 것을 한번 들여다 봐 줘야 합니다. 이번 시험 볼 때는 기본 골격으로 삼은 LC/한한/영영/필사는 꾸준히 했고, 주례 연설문 암기도 계속 했습니다. 물론 복습도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거에 분야별로 정리해 놓았던 어휘정리 노트를 쭉 훑으면서 brainstorming을 혼자 했습니다. 스터디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다룬 한영 및 기타 자료에 대한 어휘정리 노트를 2008년에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 노트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LC를 비롯한 기본 골격이 되는 공부를 소홀히 해서 완전히 피를 봤습니다. 어휘 정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순위를 LC에 두고 어휘 정리는 틈틈이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험에는 과거에 정리해 놓았던 어휘 정리 노트 덕분에 brainstorming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휘 정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7.필사/어휘정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읽은 기사에 밑줄을 긋고 어휘를 한글로 정리하고 분야별로 모을 것을 추천합니다. 그렇게 쌓인 기사를 가지고 혼자 혹은 스터디 파트너와 함께 시험 한 달 전에 쭉 훑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시험 한 달 전에 brainstorming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과거에 다뤘던 쉬운 어휘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하려면 바로 안 튀어나오기 때문에 시험 한 달 전에 다시 입으로 중얼거려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2008년 수업시간에 다룬 FM(Family Minutes)음성 파일 1년 치를 download 받아 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틈틈이 FM 통역과 정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FM에는 쉽고 유용한 표현이 많기 때문에 그 표현들을 다시 한번 머리에 각인시키고 싶어서 정청을 하고 transcript에 눈 도장도 찍었습니다. VOA editorial은 뒤늦게 발견한 보석이었습니다. 은 선생님께서 올 10월에 영한 시간에 VOA editorial을 간간이 다루셨는데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대 영한 스타일이었습니다. 발음이 좋고 내용도 어렵지 않은 거 같은데 뭔가 내용 많으면서 다 듣고 나서 말하려고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어쩌다 한번씩 VOA editorial을 가지고 통역과 정청을 했습니다. 3분 정도 분량이기 때문에 두 번에 나눠서 통역하고 정청하면 부담이 없습니다. 물론 내용이 괜찮으면 들으면서 암기했습니다.
[이대 한영 통역학과 시험 진행 방식/분위기]
아시는 바와 같이 이대 한영 통역학과 시험은 1차 시험 없이 바로 영한/한영 통역 시험을 봅니다. 첫날에 영한, 그 다음날에 한영으로 이틀에 나눠서 면접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조교의 안내를 받아 시험장에 들어서면 일단 앞에 세 분의 면접관이 앉아 있습니다. 맨 오른쪽에 앉아 계신, 가장 연륜이 많은 교수님께서 주로 경청을 하시고, 가운데 있는 시험관이 수험생에게 말을 시킵니다. 맨 왼편에 앉은 시험관이 시험 문제를 읽어 줍니다. 영한/한영 둘 다 대략 1-2분 사이로 읽어 줬던 거 같습니다. 수험생이 앉는 책상에는 소형 마이크가 붙여져 있고 통역이 시작되면 조교가 카세트 리코더를 눌러 녹음을 시작합니다. 시험관들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편입니다.
[영한/한영]
이대 교수님들은 뜸들이거나 질질 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영어 원문 읽어주기가 끝나자마자 핵심이라 생각했던 아이디어와 결론을 바로 내 뱉고 그 다음에 이유와 예를 이야기했습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기에 대충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소년들은 추모할 일이 생기면 Facebook과 같은 인터넷 동호회에 가서 자신들의 슬픔을 토로합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에 더 익숙하고 인터넷과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들이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받아 들어지기 때문에 슬픈 일이 생길 때 종교에 의지하기 보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자신들의 슬픔을 나눕니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유명 연예인의 죽음 혹은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종교에 의지하기 보다는 인터넷에 의지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종교가 제공하는 인간적인 접촉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로는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없습니다." 첫 문장을 던지면서 시험관들 표정을 보니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아서 세 분을 번갈아 보면서 좀 자신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pause는 취하되 머뭇거린다는 느낌 없이 당신들을 설득하겠다는 느낌을 가지고 죽 말했습니다. 저는 꼭 막판에 엉뚱한 detail을 건드려서 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detail은 거의 다 빼거나 돌아가며 답했습니다. 예를 들어 "go to church or mosque"를 Catholic church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그냥 "종교에 의지한다"로 돌아갔고, "hug"은 들은 거 같은데 다른 건 기억이 안 나서 "인간적인 접촉"으로 돌아갔습니다. 영한 통역이 끝내고 나니 detail이 부족했는지 추가로 더 할 말이 없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좀 생각해 보다가 괜한 detail 건들어서 자폭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급했던 핵심 아이디어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하고 끝냈습니다. "결론/이유/예" 순서로 군더더기 없이 핵심 아이디어를 잡아야 한다고 수업시간에 누누이 강조하고 연습시켜 주신 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려고 나름 애를 썼습니다. 그런 순서로 했을 때 시험관들이 고개도 끄덕거려주고 표정이 우호적으로 바뀌는 거 같았습니다. 한영도 마찬가지로 결론/이유/예 순서를 지키려고 애쓰고 detail은 많이 버리고 idea를 옮기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script 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생각해 두었던 첫 문장을 뱉고, pause는 취하되 머뭇거린다는 느낌 없이 죽 말했습니다. 이것도 대충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government has released a report. The report shows a vivid account about the current status of the Korean teenagers. Eight out of 10 students don't have breakfast before they go to school. And many students are struggling with stress from private tutoring. But the biggest problem is the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The rich get richer and the poor get poorer. We have to take actions to break the cycle of poverty for teenagers. Unless we take some measures, we cannot have a bright future for this country." 끝나고 나니 맨 왼편에서 관찰만 하고 계시던 교수님께서 영어로 추가 질문을 던지셨는데, 어느 부분에 있어서 빈부 격차냐고 물으셨습니다. 질문의 첫 머리를 놓쳐서 다시 질문해 달라고 영어로 여쭈었습니다. 질문을 받고 나니 추가로 기억나는 부분이 있어서 덧붙였습니다. "There is a gap in learning ability. Students from poor families should have an opportunity to get a proper education. Without education, they cannot get out of poverty that they have inherited from their parents. So we should take steps to correct the situation for students under 18." 교수님께서 살짝 미소 지으셨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올해 한영 시험관이신 교수님께서 작년에는 영한 담당 이셨는데 영한 끝나고 나서 얼굴이 어두우셨습니다.
[시험 당일 mind control]
수면과 컨디션이 당일 performance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시험 전 날 많이 자고 쉬었습니다. 시험 보기 일 주일 전부터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인사하면서 시험장에 들어서고, 시험관과 어떻게 eye contact를 할 것이고, 시험관께서 내용을 다 읽으시고 나면 어떻게 시작 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 속으로 반복해서 그려보곤 했습니다. (제 작년 2차와 작년에 시험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시험장 분위기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너무 대단한 것으로 인식하면 그 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고, 몸에 힘이 들어가면 평소 보다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러 시험 한 달 전부터는 시험이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주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은 선생님께서 과거에 잠시 4개월 간 MBC 위성통역을 할 당시, 전국 방송을 타고 나가는 9시 뉴스의 중요한 돌발 방송통역을 앞두고 있을 때, 너무나 떨리지만 그까짓 것 틀려 버리지 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풀고 임하셨다는 말씀이 도움이 됐습니다. 10월 영한 발표 때도 잘해야지 생각하고 했던 것은 은 선생님의 critique에서 벗어나지 못했었고, 에라 이까짓 것 틀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발표 한 경우에 선생님으로부터 괜찮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험에 붙으면 마냥 좋고 온 세상이 나를 축하해줄 것 같은 착각과, 시험에 떨어지면 온 세상이 나를 패배자로 볼 것 같고, 스스로 너무 비참할 것 같다는 절박함이 입학시험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시험에 많이 떨어져 보기도 하고 이번에 붙어 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떨어졌다고 그렇게 비참하지도 않았고, 붙었다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종교가 있으면 종교에 의지해서 꾸준히 기도하는 것도 자신의 감정을 견디기 위한 좋은 한 방법입니다.
[공부에 대한 생각]
처음에 공부할 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는데 꾹꾹 참고 하다보니 어느 순간에 저항하는 마음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날들도 많았습니다. 공부하기 보다 "공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더 시달렸던 거 같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와 공백 후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땐 스트레스성 천식과 스트레스성 피부염에 시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2-3개월 공부하고 나서 실력이 느는 것 같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저는 1년을 넘게 공부하고도 실력이 느는 느낌이 없었고 재미는 더더욱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출발점이 달라서 시간이 더 걸릴 뿐 어학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 해 낼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에 언급된 공부 방법들은 2009년 들어와서야 제가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2008년까지도 복습에 허덕이고 헤매고 있었는데 실력이 계단식으로 상승한다는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2009년에 접어드니 시사청취 복습도 평균 1시간 정도에서 끝낼 수 있었고, 공부하기가 부쩍 수월해 졌던 거 같습니다. 심지어 공부가 재미있기도 했고, 이제는 second career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시험 4개월을 앞두고 은 선생님으로부터 똑같은 critique를 받고 크게 흔들렸던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내가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방법이 틀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갑자기 몰려 왔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흔들리지 말고 뚝심으로 밀고 나가라는, "JUST DO IT!" 하라는 은 선생님의 조언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던 대로 계속 했습니다. 당황하고 허둥댈 때 시야가 닫히게 되는데 그럴 때 필요한 아주 객관적인 조언자가 은 선생님이십니다. 올해 시험에 떨어져도 통대를 포기해버릴지언정 내 영어 실력이 줄지 않도록 꾸준히 틈틈이 공부할 생각이었습니다. "복습+a"까지 가는데 full로 4년이 걸렸고 공백까지 포함하면 6년이 걸렸지만 이 공부에 대해 지치지도 지겹지도 않습니다. 와락 끓다가 식는 냄비가 아니라 오래 데운 온돌처럼 지그시 데우면서 계속 이 공부를 할 것이고 합격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 공부를 좋아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시고 제가 끝까지 버틸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신 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통역과]
<이주선>
시험을 보고 나서 “선생님 말씀 그대로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1. 영한 시험
그다지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읽어주신 교수님 목소리가 작았고 영국식 액센트였습니다.
첫 문장은 완전 놓쳤습니다. 미련을 버리고 다음문장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스토리는 잡혔습니다. 하지만 중간쯤 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 또 놓쳤습니다. 주제=>왜=> 예 이 순으로 할 수 없었습니다. 다 못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잘 들린 부분을 강조하며 논리적으로 말하려 노력했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아이컨택트는 전혀 못했고 한글로 말할 때 최대한 논리적으로 말하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대 교수님들이 논리력을 많이 본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2. 한영 시험
은 선생님께서 국내파에게서 한영 큰 기대 안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외운 표현밖에 안나옵니다.
많이 못살렸는데 합격된 걸보면 그나마 제 영어
아닌 외운 영어를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역시 아이컨택트는 할 여유도 없었고 한글 불러주기가 무섭게 영어를 뱉었습니다. 그래서 수험번호 얘기하는 것도 까먹었습니다. 영어를 할 때 끊김 없이 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3. 공부방법
선생님 수업을 주로 온라인으로 들었습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부족해 크리틱을받으면 더 자신감이 없어졌기 떄문에 저에겐 온라인 수업이 맞았습니다. 대신 매번 발표하듯이 해보고 발표한 학생과 비교해봤습니다.
Family minute , 대통령 연설 암기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리스닝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이 들으려 했습니다. 점점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생명의 삶 영어 큐티를 아침마다 들었는데 마음도 안정되고 리스닝 공부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4. 시험 당일
첫날 영한 시험은 정말 긴장됐습니다. 선생님께서 시험보기 직전까지 리스닝을 해서 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시험 보기 전까지 수업시간에 한 영어 mp3 를 들으며 한글로 빼는 연습을 계속 했습니다.
다음날 한영 시험은 정리해 놓은 영어구문을 반복해서 보며 입에 익숙해지도록 연습했습니다.
학원 다닌지는 오래됐지만 본격적인 공부는 올해 봄부터 시작했습니다. 부족한데 일찍 붙으면 고생한다는 선생님의 말씀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번역과]
<권혜림>
합격수기 한 번 써보는 게 소원이라며 친구들과 넋두리하곤 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기회가 주어지니 민망하고 송구한 마음이 더 큽니다. 내가 과연 자격이 있을까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지만, 제가 수험생으로서 느끼고 겪었던 것들을 최대한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배경 및 출발선]
다른 분들의 수기를 읽으면서 도움이 많이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제가 주로 느낀 감정은 일종의 '좌절'이었습니다. 다들 어떤 식으로든 수준 높은 영어를 많이 접하거나 사용했던 배경이 있는 것 같았고, 객관적 수치로 측정된 영어실력(토익, 토플 등)도 고득점은 기본인 듯했습니다. 통번역은 또 다른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심적으로 지치거나 남들보다 뒤쳐진다고 느낄 때마다, '아, 정말 내가 너무 무모한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또한 수기에 적힌 가공할 만한 공부방법 및 과정을 보면서,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보다 배로 열심히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실력 뿐만 아니라 노력도 부족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어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머리로는 얼마나 열심히 해야 되는지 알면서도 정작 죽자 사자 독하게 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못나게 느껴졌었습니다. 해서, 다른 분들이 제 수기를 보시면서, 희망과 용기를 충전하시고, 제가 부족했던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캐나다로 1년 가량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 3개월 어학연수를 했으나, 은천성 선생님이 종종 말씀하시는 '어학연수 간답시고 가서 신나게 놀다 온' 케이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영어를 과거보다 조금 더 잘하게 된 줄로 착각했었습니다. 외국인 친구들하고 어쨌든 '소통'은 됐었으니까요(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바디랭귀지와 다를 바 없는 영어회화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 전공이 국어국문학이라 그런지 제 주변 사람들은 영어에 도통 관심이 없어서. 영어에 관심이나 흥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저는 굉장히 이상하고 신기한 존재였습니다(지금은 과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만).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는 제가 영어를 좋아할 뿐 아니라 중간은 가는 수준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제가 졸업을 위해 친 토익시험점수는 780점 정도였는데, 당시 국문과 졸업토익커트라인이 600이었기에 저는 이 점수가 높은 건 줄 알았습니다(이 공부 시작하고 나서는 토익점수 얘기는 창피해서 입 밖에 내지 않았지요). 이처럼 스스로의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우연히 알게 된 통번역대학원의 존재에 겁도 없이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무작정 뛰어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 공부가 이렇게 심오하고 힘든 것인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공부방법과 과정]
저는 한국외대를 목표로 준비했었기에 어떻게 보면 통역공부에 더 비중을 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대번역과에 합격한 것을 보면, 통역이든 번역이든 필요로 하는 기본 소양을 비롯해 그것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하는 공부는 그 맥락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공부했던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 2008년
첫 해는 앞에 언급했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덤벼든,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기였습니다. 보고 주워들은 바대로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은 다했던 것 같습니다. 열정만큼은 남 뒤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돌아보면 그 열정에 비해 효율은 없었던 한 해였습니다. 효율이 없었다고 자평하는 이유는, 선생님 지도대로, 주변 친구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는 하는데, 내 것으로 완전히 습득하지 못하고, 겉 핥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2. 2009년
2009년은 치열하고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두 번째 도전이라는 생각이 이렇게도 저를 압박할 줄 몰랐습니다. 1월부터 흔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필요이상으로 불안해했고, 그래서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지는 못했던 한 해였습니다. 또한 내가 과연 작년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하는 자책과 질문을 수없이 했었습니다. 작년에 비해 '노력과 열정' 측면에서는 오히려 조금은 부끄럽고 당당하지 못한 1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2년차이다 보니 무작정 열심히 하던 때보다는 방법을 인지한 상태에서 알게 모르게 효율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수업
자신에게 맞는 선생님, 수업방식이 모두 다르다고 봅니다. 제 경우에는 다행히도, 처음 선택해 들었을 때부터 은 선생님 수업이 제게 딱 맞았고, 선생님 방식을 믿고 존경했기에 이것만큼은 갈팡질팡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번역은 정영한 선생님 수업을 마지막 3개월 정도 들었는데, 정영한 선생님 수업 역시 제게 흡수가 잘 됐던 것 같습니다.
1) 시사청취
작년에도 이 수업을 들었지만, 그때는 정말 설렁설렁 했던 것 같습니다. 은 선생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는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지요. 2-3번 정도 쭉 듣고 난 다음에 그냥 텍스트를 외우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공부를 한 셈이 됐습니다. 이번 년도에는 정석대로 공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의미군으로 끊어가며 따라 말하고 그렇게 따라하면서 일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입에 붙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체적으로 두 어 번 쭉 들은 후에 큰 그림을 머릿속에 정리한 후, 텍스트를 재차 암기했습니다. 원래 이렇게 해야 하고 다들 당연히 해오던 방식을, 저는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던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정신 차린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시사청취는 매달 한 두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대부분 재밌고 감동적인 내용이라 머리 식힐 겸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리스닝에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2) 외대통대반
저는 은 선생님의 외대통대반을 계속 수강했습니다.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 복습만큼은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한부분은 수업 후 혼자 다시 읽고 한국어로 내용을 말하는 연습을 하면서 복습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고 선생님이 설명해주실 때는 다 알 것 같고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도, 직접 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걸 깨닫고는 웬만하면 혼자 다시 해보는 과정을 거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영부분은 혼자 실전처럼 해보려해도 도저히 잘 못하겠다고 느껴져서, 텍스트를 보면서 표현 맞추기를 하거나 그냥 중요표현 및 문장을 외우고 지나가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영한/한영 모든 텍스트를 그때그때 통째 암기하겠다는 처음의 야심 찬 각오는 올해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수업내용 복습/암기만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천을 잘 못했기에 매번 찝찝했고, 지금도 좀 후회가 됩니다. 은 선생님 수업의 얼굴은 주례연설문암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연설문 암기는 '거의 완벽히' 해야 합니다. 달달 외우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나름 달달 외웠다고 생각해도 발표할 때는 하얗게 날아가거나 유창하게 나오지 않아서 절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연설문은 전체암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나중에 비슷한 데 '써먹을 수' 있도록 표현별로 암기하는 것입니다. L/C 교재(파란 책)는 제가 가장 크게 반성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시사청취방식으로 복습하고 넘어가겠다는 계획을 '꾸준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L/C가 많이 부족함에도 이걸 자꾸 미루고 대충했기에 줄곧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눈 딱 감고 실천하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하고 부담만 느꼈으니 제가 생각해도 참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 선생님 수업의 또 다른 묘미는 '발표'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매섭고 정곡을 찌르는 크리틱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영양가가 풍부해서 이상하게 중독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질책을 받으면서도 발표신청은 매 달 했습니다. 그리 하는 것이 수업 집중도도 높아졌고 잘하든 못하든 앞에 나가서 긴장을 몸소 체험하고 그 상태에서 발표해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취약한 부분, 보충해야 할 부분, 치명적인 단점 등을 정말 예리하게 잘 짚어 주시기 때문에, 자기파악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칭찬하시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런 희소성 때문에 어쩌다 깨알같은 칭찬이라도 한 번 받으면 그것이 큰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제가 칭찬을 들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만, 저는 아주 사소한 칭찬이라도 저 좋을 대로 확대해석해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3) 번역모의고사반
정영한 선생님 번역모의고사반 수업은 마지막 3개월 정도 수강했는데, 번역수업을 수강한 목적은 한국외대 번역이든 다른 학교 번역이든 과락만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번역이 부담스럽고 두려운 대상이었기에 자꾸 피하게 됐고 그럴수록 자신감은 더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은 선생님께서 한국외대 번역은 큰 비중이 없어서 과락만 면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 과락의 대상이 제가 될까봐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미루다가 결국 번역집중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통역이든 번역이든 저의 주적은 ‘속도’였습니다. 통역할 때도 제일 많이 지적 받았던 속도가 번역에서도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자꾸 시간 내에 못쓰고, 그렇다고 쓴 내용이 훌륭한 것도 아니라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욕심 다 접고 일단 시간 내에 마무리하는 것부터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부분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해결하려했던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시간 엄수 외에 지키려고 했던 것은 역시 복습입니다. 복습의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날 문제가 어려워서 잘 못할 것 같으나 하기 싫으면 그 수업 시간에는 그냥 할 수 있는 문장만 뽑아서 번역했습니다. 끙끙대며 안 되는 걸 붙잡고 있을수록 가뜩이나 부족한 자신감이 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대신 나중에 혼자 필사는 꼭 했습니다. 원문 답을 소리내어 읽고 문장파악을 꼼꼼히 한 후에 필사를 하는 과정만큼은 빼먹지 않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편적인 표현이나 문장은 한 번씩 더 써보도록 했습니다. 물론 영어표현 뿐 아니라 한국어표현도 등한시하지 않았습니다. 영어든 한국어든 눈으로 볼 때는 다 쓸 수 있을 것 같아도 직접 입으로 내뱉거나 써보지 않으면 체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수업자료를 그때그때 복습하고 필사했던 것이 저도 모르게 많은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스터디
제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과 스터디를 했던 것이 큰 도움과 의지가 됐습니다. 저의 부족한 점을 제 스터디파트너들이 잘 채워줬기에 얻은 것이 정말 많았습니다.
1) 암기 스터디
애비나 디스아이빌리브 등 쉽고 재미있는 영어를 외우는 스터디를 했습니다. 쉬운 영어를 꾸준히 외우고 뱉어보는 연습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해도 무방하지만, 상대방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더 철저히 외우게 되므로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외우면 스스로를 좀 봐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스터디는 중반쯤 그만뒀는데, 계속 혼자라도 꾸준히 하지 않았던 게 후회됩니다.
2) 메인 스터디
초반에는 월, 수, 금에, 한한은 매번, 영영/영한은 요일별로 번갈아 가며 했습니다. 한한의 경우 처음에는 메모리스팬이 너무 떨어져서 좌절, 짧게 끊어가더라도 디테일 기억하는 연습에 집중했고, 나중에는 디테일을 살리지는 못하더라도 중심내용을 먼저 뱉고 요약해서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연습과 병행해서 했습니다. 영영은 최대한 쉽고, 활용할 수 있는 표현이 많은 텍스트로 했습니다. 영한은 주로 코리아헤럴드의 간지로 연습했는데, 영한번역이 친절히 돼있고, 시사 및 상식도 함께 익힐 수 있어서 유용했습니다. 시험 때가 근접해서는 영한/한영 위주로 했습니다. 영한의 경우 논지가 뚜렷한 내용으로 고르려고 노력했습니다. 스터디의 장점 중 하나는 각자 선호하는 분야나 주제,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혼자 자료를 찾아 하는 것보다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고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입니다.
- 암기 스터디와 메인 스터디 모두, 그 날 했던 것을 다음 스터디 시간에 복습하는 일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였습니다. 혼자 복습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은 선생님 시간에 하듯 각 텍스트 별로 서로 5개 정도씩 물어봐 주는 식으로 복습을 꼭 하고 넘어갔습니다.
3) 단어 스터디
개인적으로 단어가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꼭 필요했습니다. Time/CNN 필수영단어집으로 했는데, 일정 페이지를 암기해서 주로 영한으로 가는 연습했습니다. 사실, 단어암기 자체에 많은 시간을 들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쓰면서 외우거나 하진 않았고, 많은 양을 반복해서 눈으로 보며 입으로 발음해보고 지나가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계속 까먹습니다. 참 희한할 정도로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럼에도 굳이 단어암기 스터디를 계속 했던 이유는, 나중에 그 단어가 텍스트 속에 등장했을 때 정확한 뜻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라 해도 '어, 이거 본 건데'하는 정도는 생각이 나고, 나중에 다시 찾아서 체크하고 숙지하다보면 그 때는 비로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에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어공부는 순간암기 그 자체보다, 노출을 늘리고 문맥 속에서 재확인하는 반복과정을 거쳐야 효과가 있습니다.
4) 브레인스토밍
이 스터디는 최종정리용으로, 막판에 네 명이 팀을 만들어 했습니다. 한 달에 걸쳐, 그동안의 은 선생님 수업자료를 모두 모아 각자 분량을 나눠 정리한 후에 합쳐서 소위 '표현정리본'을 만들었습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어마어마한 양이지만 넷이 나눠서 했기에 할 만 했습니다. 시험준비를 떠나서 앞으로도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고 일주일에 한 번 모여 2시간 정도, 질문하고 답하는 브레인스토밍놀이(?)를 했습니다. 질문과 동시에 무조건 반사적으로 즉각 대답하는 것에 중점을 뒀습니다. 다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한 것도 막상 오랜만에 물어보면 탁 막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머리와 입이 굳지 않도록 기름칠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 마인드컨트롤
제가 올해 제일 못했고, 그러나 사실 가장 중요한 승패요인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덧붙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에든 시험을 보는 순간이든, 언제나 정신 줄을 똑바로 잡고 집중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백 번이라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비교는 금물이라는 것. 자기 자신의 어제와 오늘만 생각하면서 부족한 점은 반성하고 채우려 노력하는 동시에 나아진 점은 스스로 많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필요한 듯 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게 정말 쉽지 않고 저 또한 그런 것에 많이 끌려 다녔습니다. 하다 못해 공부하는 양에 있어서도 남들처럼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떨지 못하고, 친구 만나거나 노는 것을 완전히 끊지 못하는 것들이 죄책감이나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소화할 수 있는 양,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고 인정하고, '내 기준에서 이전보다 더 열심히, 내 기준에서 사람 덜 만나고 덜 놀기'를 목표로 정하고 나서는 조금 나아졌습니다. 이 공부가 장기전인만큼 최대한 덤덤한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열쇠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명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구요.
[시험]
이대번역시험의 경우, 온전히 번역만 보고 뽑는 것이기에 합격은 꿈도 꾸지 않고 있었던 터라, 실전을 경험한다는 마음으로 시험을 봤습니다. 한편, 그랬기에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긴장감 제로 상태에서 불필요하게 경직되는 일 없이 시험을 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지금은 듭니다. 총시간은 100분이 주어졌습니다. 평소 1시간을 기준으로 연습했기에 시간은 넉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지를 받고 영한부터 시작했는데 내용이 작년 기출문제에 비해서는 평이하다고 느꼈습니다. 광고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자세한 건 생각이 도무지 안 납니다...... 전반적으로 난해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중간 중간 단어 뜻이 긴가 민가 한다거나 문장이 뚜렷하게 해석되지 않는 등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참을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국어로 옮길 때 초반에 너무 말을 고른 탓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칫하다가 한영은 백지로 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아무리 기대 안하고 있는 시험이라지만 한 파트를 백지로 내기는 좀 면목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일단 영한에서 막히는 부분에서 중단하고 한영으로 넘어갔습니다. 내용을 보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작게 터져 나왔습니다. 은 선생님 수업 영한시간에 다뤘던 '한국에서 있었던 인도인 차별 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내뱉은 탄식은 반가움의 탄식이 아니라 안타까움의 탄식이었습니다. 하필 마침 복습을 안 하고 넘어 갔던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정말 스스로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매순간 충실해야한다는 진리가 뇌리를 스치면서...... 어쨌든 한영번역을 하면서부터는 시간이 너무 없고 빨리 대충 끝내고 영한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영한도 반 이상이 남아있는 상태) 정말 '미친 듯이' 써 내려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것은, 디테일 다 빼고 마치 통역할 때 중심내용만 전달하듯이 번역했다는 사실입니다(사실, 이 부분 때문에 합격확인 이후에도 합격 사실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았고, 전산오류였다는 등의 문자가 올까봐 며칠 동안은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과연 뭘 잘했을까 쥐어 짜 내가며 추측해보자면, 쉬운 문장을 틀리지 않게 쓰도록 했던 것(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습니다)과 복습은 안 했어도 한 번 다뤘던 내용이라 핵심단어는 몇 개 쓸 수 있었던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영을 빛의 속도로 처리하고 다시 영한으로 넘어가서 이어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탓에, 고민되던 부분이나 아리송한 부분은 과감히 빼고 없는 척 앞뒤문장을 유연하게 연결시키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적어도 틀리게는 하지 말라는 은 선생님의 평소 충고를 되새기면서 확신하는 문장만 적도록 집중했습니다. 영한/한영 모두 완벽하게 번역하기는 커녕 내용을 뭉텅이로 빼먹어가면서 번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한 것을 감안했을 때, 일단 쓴 내용은 틀리지 않게 하는 것, 전체적으로 잘 연결돼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 한국어는 좀 더 공들여서, 영어는 최대한 쉽고 무리 없이 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Thanks To]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고, 또한 어떻게 이 고마움을 표현해야 적절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한결같은 가르침으로 이끌어주신 은천성 선생님, 감사합니다. 통번역 공부뿐 아니라 늘 인생에서 더 큰 것을 보며 살아가도록 깨닫게 해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문법 설명과 더불어 번역에 대한 막막함을 차차 해소시켜주신 정영한 선생님, 고맙습니다. 2년이라는 bittersweet한 기간 동안 내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내 훌륭한 스터디 파트너들, 친구들 고마워요. 내게 늘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는 나의 첫 스파이자 롤모델인 유리언니, 내 이상한 발음 일일이 신경 쓰고 교정해주느라 특히 수고하신 성득 오빠(이담에 순대랑 어묵 많이 사줄게요), 잊지 않고 동생들 늘 따듯하게 챙겨주신 두 명의 소연 언니'들', 잡지제공 및 심리안정에 도움 많이 준 쏘우쿨 하영 언니, 브레인스토밍 스터디의 리더 소화언니(나 끼워줘서 고마웠어요), 정말 많이 의지하고 수다와 고락을 함께 나눈 현정이와 소영이(정신 줄 바통터치 하느라 힘들었어 우리, 그치), 엄마처럼 챙겨준 울 지희언니, 폭소유발 및 오락담당 하정 오빠, 그밖에 함께 공부하고 격려해준 언니오빠친구들, 공부 자체보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도록 해줘서 그게 제일 고맙습니다. 땡큐쏘우머취. 마지막으로, 물심양면 무조건적으로다가 딸을 지원해주신 엄마아빠. 고마워요. 어떤 순간에도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주는 지원군이 있었기에 나가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이상한 언니 심부름, 히스테리 다 받아준 내 동생 유리도 고맙고 미안. 그리고, 묵묵히 곁에서 응원해주고 못된 성질 꾹 참고 견뎌준 민호님. 암쏘리, 벗 알러뷰.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번역과]
<노정원>
저는 82년 생이고, 이대 번역과 만을 위해 공부한지 만 3년 만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합격생들의 수기를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언젠가는 나도 수기를 쓰리라 다짐했었는데 이렇게 합격하고 나니 얼마간은 기분도 얼떨떨하고 실감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책도 그렇게 많이 읽지 않았고(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읽을 때에도 방송 스케줄부터 찾아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어 실력은 토익점수 800점 겨우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통번역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여성에게 괜찮은 직업이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부 방법]
2008년 3월부터 양시래 선생님의 이대 번역반을 수강하였습니다. 그 전 해에는 시험 삼아 응시 했었지만 이 해에는 통대 준비에 올인하겠다는 마음으로 직장도 그만 두고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독해를 충분히 하지 않고 그저 표현 외우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표현들을 노트에 적어서 정리도 해 보았지만 그것 보다는 많은 글을 꼼꼼히 2~3번 정독하는 것이 더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 같습니다.
2008년에 시험에서 떨어지고 나서 2월말까지는 어머니 일도 도와드릴 겸 지방으로 내려가 일을 했습니다. 남은 시간에는 보고 싶은 미국 드라마도 마음껏 보고(장장 500편 넘게 봤다는…) 읽고 싶은 쉬운 영어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트와이라이트’ 전 권 이나 ‘쇼퍼홀릭’과 같은 책들이요. 이 때에는 공부한다는 생각보다는 즐긴다는 생각으로 영어를 접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2009년에도 3월부터 다시 양시래 선생님의 수업을 꾸준히 수강했고 7월부터는 정영한 선생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 해에는 양선생님께서 주시는 수업자료를 표현에 줄을 그어가며 거의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스터디 파트너를 구해서 공부하였습니다. 우선은 영한스터디를 했는데, 이대 영한 번역 시험이 출제 되었던 사이트의 다른 글들, 예를 들어 스캇 런던이나 여러 잡지들의 서평을 중심으로 스터디를 하였습니다. 서평은 글이 짧은 편이고 글 안에 서론, 본론, 결론이 다 있는 짜임새 있는 글이라 스터디하기에 제일 좋았습니다. 스터디 방법은 번역할 글을 정해서 각자 한글로 번역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서로 번역한 글을 복사해 나눠주고 한 단락씩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한글 표현력 보다는 독해를 제대로 했는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빠진 부분은 없는지도 확인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 지자 분량을 조금씩 늘렸고 시험을 약 3달 정도 남겨 놓았을 때에는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각자 영어 원본과 한글 번역본을 구입하여 정한 분량만큼 한글로 번역한 뒤 한글 번역본과 같이 만나서 비교했습니다. 분량은 일주일에 A4 1장 반 정도로 하였습니다. 서로 원본과 번역본, 그리고 제가 번역한 것을 비교하면서 저의 부족함을 깨닫기도 하고 또 ‘아, 이렇게도 번역할 수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뉴스위크 스터디도 했는데 하루 1~2개의 글을 2~3번정도 꼼꼼히 읽고 일주일에 2번 스터디 부원들과 만나 간단한 쪽지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은 각자의 분량을 정하고 그 안에서 영어다운 표현이 있는 문장을 발췌해서 그 표현을 빈칸으로 만들어 복사해 나눠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은 사람이 그 빈칸을 채워 넣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손으로 간단히 써서 복사해 주었고 분량은 작은 공책 1쪽 정도였습니다. 문장 수로는 10 문장 내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연초에는 뉴스위크 글 한 개도 읽기 힘들었는데 시험 볼 때 즈음 되었을 때에는 뉴스위크 글들이 한결 수월하게 다가왔습니다. 시험이 1달 정도 남았을 때에는 뉴스위크의 심층 분석한 글들 보다는 맨 앞부분의 Scope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시험]
100분이라는 시간이 짧으면 짧은 시간이고 길면 긴 시간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1시간 이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시험시간 첫 5분은 영한 글을 눈으로 읽은 데 할애하였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너무 떨려서 글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3번 정도 읽고 나니 글의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마음속으로 ‘이 부분은 이렇게 번역해야지’하고 적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 담아두었습니다. 5분이 지나자마자 한영으로 넘어갔는데, 다행히 올해 시험은 양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다루셨던 주제가 나왔고 한영의 경우 첫 문단은 거의 똑같이 나와서 수월하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적당히 넘어가면서 최대한 문장을 짧게 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통역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는지라 양선생님께서 첨삭하실 때 글이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았습니다. 영한은 첫 문단에 있는 단어를 몰라 ‘몸매’라고 번역했는데 알고 보니 ‘속옷’이었습니다. 이것 외에도 두어 개 정도 오역이 나서 시험이 끝나고 심하게 마음을 졸였습니다.(^^;;)
[마치며]
일단은 저의 가족에게 너무 감사하고 같이 스터디 했던 태선언니와 한나언니, 그리고 주희씨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글들을 꼼꼼히 첨삭해 주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양시래 선생님과 정영한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번역과]
<장희지>
본격적으로 통대 준비를 시작한 것은 작년 봄부터였습니다. 첫 해는 늘 뭔가에 쫓기듯 공부하느라 사실 공부 그 자체보다 마음 다스리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딱 두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느긋하게 하자.” “욕심내지 말자.” 공부를 하다보면 매일같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는데 이 과정이 끝도 없습니다. 게다가 실력이 생각만큼 빨리 느는 것도 아니어서 시시때때로 마음이 조급해지곤 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볶아대면서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까 그게 다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불안해지거나 혹은 반대로 지나치게 의욕이 넘칠 때에도 “무리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이라는 마음으로 공부했습니다. 덕분인지 이번에는 비교적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 방법
저는 1월부터 양시래 선생님의 번역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중간에 잠깐 쉬기도 했지만 그래도 번역과 입시 준비는 양시래 선생님 수업을 토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수업 자료는 주제도 다양하고 양도 결코 적은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자료를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수업 중에 다루는 자료를 어찌나 꼼꼼히 분석해서 설명해 주시는지 매시간 얻는 게 정말 많았습니다. 수업은 제한된 시간 안에 번역을 해보고 나중에 발표를 통해 선생님께서 코멘트를 해주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실전 훈련이 자연히 되고, 무엇보다 학생 본인이 의도한 표현을 다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복습은 선생님의 모범답안, 그리고 제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제가 어떤 부분을 적당히 넘어갔는지, 어디에서 오역을 했는지를 찾아가며 정리하고, 다시 한 번 번역해 보는 식으로 했습니다. 또 저는 이 번역 자료를 활용해서 영어, 한국어 독해 연습을 했습니다. 분석적인 독해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분들이 강조하셨으니 제가 따로 덧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인데, 제 경우는 번역이었습니다. 번역을 하게 되면 그냥 읽을 때보다 꼼꼼하게 읽게 되고,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분명히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수업 외에 또 많은 효과를 얻었던 것은 미국 대통령의 주례연설 번역, 암기였습니다. 우선 현재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가 워낙에 달변가라서 쉽고도 좋은 표현들을 많이 익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오바마 연설문은 매우 논리적이기 때문에 글의 흐름을 파악하는 훈련도 자연히 되었던 듯합니다. 연설문을 번역하자는 것은 제 스터디 파트너의 제안이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원문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암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스터디에 대해 말해보자면, 혼자 하는 것보다는 같이 하는 게 여러 가지 점에서 좋다는 것입니다. 우선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혼자라면 하지 않거나 대충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공부를 꾸준히 해나갈 수 있습니다. 연설문 공부를 하면 좋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파트너를 구하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한 가지 예가 될 것입니다. 또 수개월을 공부하다 보면 슬럼프를 겪기도 하는데 그럴 때 파트너가 옆에서 든든하게 버텨준다면 보다 수월하게 넘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면 스터디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험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평소에 반복적으로 저질렀던 실수들을 적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번역을 하면서도 실수 목록들을 보면서 주의할 수 있었고, 나중에 검토할 때도 참고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 다음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한영 번역부터 시작했습니다. 한영 번역은 인도인 교수를 모욕한 내국인이 최초로 기소당한 사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대시험을 앞두고 마무리 정리를 할 때 시사적인 내용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지라 다소 당황했지만, 그래도 수업 중에 몇 번인가 다뤄본 적이 있어 기억을 더듬어가며 번역을 했습니다. 영한 번역은 현대사회에서 광고 이미지가 여성의 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다루는 글이었습니다. 광고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강박적으로 관리하며 스스로를 구속하게 되고, 남성 또한 여성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됨에 따라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희생자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시험 시간은 총 100분으로 평소 연습했던 시간보다는 더 많이 주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번역하는 연습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공부 분량이나 학습법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만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릿속으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해야 할 것 같아 욕심을 낸 적도 있지만 지속하지 못하고 접어버린 적이 몇 번인가 있거든요. 결국 할 수 있는 만큼만 꾸준히 해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파트너였던 똘똘하고 성실한 문정이. 너무너무 고맙다.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네 덕분에 끝까지 많이많이 웃으면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어.
[서울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번역과]
<박현>
기쁘면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기를 씁니다. 작년 12월부터 통대 공부를 시작하며 막막했던 시절, 다른 분들의 경험이 제게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제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차 시험
1) 한국어 (3문제, 원고지 300자 가량)
총 3개의 LC를 듣고 요약을 해서 쓰는 유형입니다. 메모할 수 있는 용지에 키워드를 적었다가 바로 옮겨 써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평소에 사설을 가지고 한-한을 연습하면 시험 때 수월할 것 같습니다.
2) 영어
LC 10문제, RC 10문제가 출제됐습니다. LC는 디테일을 묻는 상당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노트테이킹을 하면서 정리를 잘해야 합니다. 시험 당시 저는 메모를 잘 못 알아봐서 힘들었는데 대의를 파악하며 한글로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지문은 주로 한국에 관한 것이었는데, 시험 전에 코리아헤럴드의 한국관련기사를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RC는 대체로 쉬웠는데 LC의 충격이 커서 제대로 집중을 못했습니다. 작년은 paraphrasing하라고 했다는데 올해에 그런 지시는 없었습니다.
-2차 시험
1) 한영/영한 번역
시간 조절이 관건입니다. 외대통대반 번역시간에 했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지문은 수업시간에 했던 지문이 그대로 나와서 놀랬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마지막 한 문장은 제대로 번역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영은 금융위기와 록펠러에 관한 글, 영한은 파멜라 앤더슨, 동북아 역사에 관한 글이 나왔습니다.
2) 구술시험
오전에 배정이 돼서, 10시부터 대기실에서 있었는데, 제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라 거의 2시간 반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첫 시험이고 긴장해서 어쩔 줄 모를 때 같은 반 오빠가 진정하도록 도와주시면서 서로 약자를 물어봤는데 후에 실제로 교수님과 인터뷰를 할 당시 하나가 그대로 나왔습니다. (동균 오빠, 고마워요!) 시험은 ice breaking-->약자/시사상식-->한영-영한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ice breaking
총 3분의 교수님이 계셨는데 1분은 해외파 교수님으로 추정됩니다. 자신을 3단어로 소개하기, 최근 본 영화, 왜 통역 일을 하고 싶은지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약자, 시사상식
BIS, GMO 등과 그랜드바겐과 두바이 모라토리엄에 관해 물어보셨습니다. 시험 며칠 전에 약자를 보고 간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한, 한영
한영은 협력의 중요성이 아시아와 전세계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의 협력에 관한 연설문 내용이었습니다. 추상적인 내용이어서 이해가 잘 안됐기 때문에, 한국어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당황했지만 아는 내용만 말하고 끝냈습니다.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우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며 영한을 시작했습니다. 영한은 오바마의 주례연설중 포트후드 총기난사사건에 관한 지문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I'd like to speak with you for a few minutes today about the tragedy that took place at Ft. Hood. This past Thursday, on a clear Texas afternoon, an Army psychiatrist walked into the Soldier Readiness Processing Center, and began shooting his fellow soldiers.
It is an act of violence that would have been heartbreaking had it occurred anyplace in America. It is a crime that would have horrified us had its victims been Americans of any background. But it's all the more heartbreaking and all the more despicable because of the place where it occurred and the patriots who were its victims.
The SRP is where our men and women in uniform go before getting deployed. It's where they get their teeth checked and their medical records updated and make sure everything is in order before getting shipped out. It was in this place, on a base where our soldiers ought to feel most safe, where those brave Americans who are preparing to risk their lives in defense of our nation, lost their lives in a crime against our nation.
운이 좋게도, 2차를 준비하면서 이 내용을 봤었는데 너무 놀라서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한영을 못했기 때문에 영한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시작했습니다. SRP를 임전태세준비센터라고 하자 교수님들이 일제히 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해주셨는데, 이 때부터 자신감이 생겨, 포즈 없이 속도도 빠르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공부방법
청문어학원(구 영어사랑학원) 홈페이지에 은천성 선생님이 써놓으셨고, 수업시간에도 강조하시듯, 암기와 매일 정해진 분량의 LC, RC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걸 100%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복습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었고, 신문도 다 읽지 못한 채 버리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좀 더 잘하자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LC는 시사청취와 수업교재 파란 책을 중점적으로 했고, RC는 코리아헤럴드의 AP, 로이터 기사로 했습니다. 아침에는 집에서 CNN AC360와 CBS Evening News를 틀어놓고 부담 없이 듣기도 했습니다. 그 외 시간은 복습 및 Family Minutes와 연설문을 외웠습니다. 처음에는 암기와 공부방식에 관한 회의적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표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가 없고, 퍼포먼스도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은 선생님 말씀대로 의미군으로 끊어서 외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덜렁대고 성실하지 못한 편이라 지금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들이 너무 많습니다. 연설문도 외우다가 중간에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기가 일쑤였고, 느린 속도 때문에 계속되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은 선생님 크리틱을 처음 받았을 때는 너무 충격적이라 마음이 아팠지만, 제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수업 중 속도 지적을 많이 받아서 라디오로 뉴스 shadowing을 했는데, 표현을 익히고 속도를 내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스터디
처음에 공부방법을 몰라서 헤매던 시기에는 한영 스터디를 했었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표현을 외우거나 영영, 한한 스터디가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후반에는 영영, 영한, 연설문 암기를 했는데 오바마 취임연설문의 주옥같은 표현을 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굳이 스터디를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후기
저는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제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한데 된 것을 보면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신 듯 합니다. 2009년은 저에게 정말 뜻깊은 한 해였습니다. 겸손해질 수 있었고, 영어공부를 한없이 할 수 있었고, 존경하는 은 선생님과 외대 통대반 식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어만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은 선생님 정말 존경합니다. 저와 함께 공부하고 곁에서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처음 공부할 때 방향을 알려준 은희 언니, 취임연설 함께 외운 도환 오빠, 항상 격려해준 희정 언니, 정아 언니, 윤정 언니, 하영 언니, 누리언니, 혜림, 유정, BIS 동균 오빠, 함께 해서 너무 즐거웠고 고마워요. 마지막에 함께 한 아람언니, 솔이 언니, 은실 언니, 혜영 언니 고맙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이란 생각으로 'Live each day to the fullest.'란 목표로 뛰겠습니다.
[서울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번역과]
<이현경>
서울외대 시험을 앞두고 서울 외대 합격수기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던 것과, 심지어 시험 후기에 나온 문제가 저에게도 그대로 나온 뜻밖의 행운을 혹시 다음해에 시험을 보실 분들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 수기를 씁니다.
{시험 후기}
[1차 시험]
(1) 한국어 요약 시험(주관식)
30분 동안 3개의 지문을 듣고 원고지 300자 이내로 요약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사실상 한국어 듣기 시험인 것 같았습니다. 2분 가량 분량의 지문을 듣고 3분 동안 300자를 써야 합니다. 시간이 빠듯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노트 테이킹 용지를 주기 때문에 들으면서 핵심 아이디어랑 그 근거를 간략하게 적어놓고 답안지에는 적은 내용들을 완결된 문장으로 쓴다는 기분으로 옮겨 적었습니다. 문제의 내용은 무척 시사적이었고, 시험 보는 날까지 꾸준히 신문을 읽은 사람이라면 생소하단 느낌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대통대 준비 반에서, 요약할 때는 'So what?' and 'Why?' 만 생각하라고 하신 은천성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요약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2) 영어 듣기 시험(주관식)
듣기 10문제와 독해 10문제를 한 시간 동안 풀었습니다. 듣기는 지문 당 한 문제 인 것도 있었고 2, 3개인 것도 있었습니다. 독해는 한 지문당 3개에서 4개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듣기에서 살짝 난감했습니다. 주제를 묻는 내용인지, 디테일을 기억해서 적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트 테이킹 용지에 뭘 받아 적을지 모르고, 적다 보면, 괜히 중요한 것을 놓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1교시 한국어 요약 시험을 할 때처럼 먼저 핵심아이디어와 그 근거로 등장하는 나열식 항목들을 받아 적었습니다. 다행히 지문이 끝나고 문제를 불러줬을 때 제가 적었던 내용을 물으면 그대로 썼고, 디테일을 질문하면, 제가 받아 적은 항목들을 그대로 답으로 썼습니다. 시간이 빠듯해서 고민하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한편, 독해는 듣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습니다. 작년 수기에는 paraphrasing 하라는 문제도 출제됐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문에서 찾아서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됐습니다. 독해문제를 다 풀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듣기시험에서 노트 테이킹한 것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며, 듣기시험 답안을 검토했습니다. 많지도 않은 주관식문제들을 채점해서 변별력을 내려면 아무래도 부분점수가 있을 것만 같단 생각에, 확실히 잡은 내용이라면 백 점은 못 맞아도 50점이라도 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화자가 언급한 네 가지를 쓰라는 질문이었다면, 제가 잡은 두 가지를 적는 식이었습니다. 솔직히 시험보고 나오면서 듣기를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1차 합격을 했고, 아무래도 최선을 다해 답안을 작성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2차 시험]
일요일 오전에 번역을 보고 수험 번호에 따라 나뉘어서 한 팀은 오전에, 다른 팀은 오후에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수험번호가 빨라서 번역 시험을 마치고 한 시간 후에 구술시험을 봤습니다.
(1) 한영/영한 번역
한영 2개, 영한 2개였습니다. 한 시간 동안 네 개를 하는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정말 중간에 포기하고 싶기까지 했으나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고, 시간을 한 문제 당 15분씩 배분해서 답안을 채웠습니다. 하는 데까지 하자는 생각으로 15분이 넘어가면 다음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한영보다 영한을 빨리 할 수 있겠단 생각에 영한 먼저 하고 한영을 시간이 되는 데까지 했습니다.
(2) 구술시험
순서는 ice breaking, 약어, 시사상식, 영한, 한영 순이었습니다.
-ice breaking
작년 서울외대 합격 수기에 보면 fluency test 라는 게 있었다고 하는데, 막상 면접시험장에 들어가니 교수님께서 그냥 ice breaking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한국어로 질문하면, 한국어로,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답변했습니다. 맨 처음 외국인교수가 저더러 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원서에 썼는데, 관련 서류가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뭔가 따지는 듯한 분위기인데다 이게 시험의 일부인가 싶은 생각도 들어 당황스럽기도 하고, 살짝 난감했지만, 정신수습하고 곧바로, 일부러 내지 않았다, 어차피 입학요건이 학부졸업이라 대학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는 안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약어
ASEM, WTO, WIPO를 물어보셨습니다. 이중 ASEM이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아서 끙끙거리다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시사상식
시사상식은 불러주는 내용을 듣고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IT를 전공했다고 하니 IT 관련 문제를 내겠다고 했는데 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험 끝나고 집에 오면서 생각해보니, 클라우딩 컴퓨팅이었던 것 같았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습니다. 다음 문제로는 Grand Bargain (일괄 타협)이 나왔습니다. 이 문제는 올 하반기 신문에 북 핵 문제와 관련해 계속 나오던 용어라 기다렸다는 듯이 답할 수 있었습니다.
-영한
외국인 교수님이 지문을 읽었습니다. 동독과 서독 통일 이후, 한반도 상황, 남북한 화해 무드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서 관계가 냉랭해져 남북한 통일이 요원해 보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하듯이 아이디어 중심으로 요약했습니다.
-한영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으로 한국의 미래가 위협을 받는다.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보육문제, 퇴직연령 연장,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 정책과 실행이 필요하다가 대략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제가 무슨 말을 뱉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_-; 특히 마지막에 꺼낸 문장을 마무리 못해서 생긴 영원처럼 느껴졌던 pause는 저와 교수님들 모두를 긴장시켰다고 확신합니다. 꺼낸 문장의 앞머리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은 선생님이 일단 칼을 꺼내면 무라도 썰어야 하고,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끝까지, 힘겹게 마지막 문장을 본래 내용과 상관없이 마무리했습니다. 솔직히 영한 시험이 끝나고 한영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혼자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데 한영 시험을 보고 나서 분위기가 급냉해서, 합격 발표하는 날 까지 거의 마음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한영 시험을 그렇게 끝나고 교수님이 왜 통번역 대학원에 오려 하느냐, 그 동안 얼마나 준비했냐고 물으셔서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그럼 1년 반 동안 준비한 거군요, 학원 다니셨나요?' 되물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서 '너 일년 반 동안 시험만 준비했다고 하면서 이 정도냐?'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공부방법}
저는 작년 12월 1월 영어공부 길라잡이 반을 들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부방법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2월과 5월을 빼고는 10월까지 은 선생님의 이대통대 준비반을 수강했습니다. 아기 엄마로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월요일에서 금요일 아침 9시에서 밤 8시까지 뿐이었습니다. 일단 집에 있는 시간에는 공부와 남이 돼 버리고, 주말에는 온전히 가족과의 시간이었습니다. 따라서 공부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꼭 취하자는 모토로 공부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단 스터디는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자료 복습, 연설문 암기, 듣기 숙제로도 벅찼을 뿐 더러, 따로 시간을 내어 자료준비하고, 파트너와 만나서 보낼 시간이 빠듯하다고 여겼으며, 크리틱을 제대로 할 자신도 없고 하여 아예 스케줄에서 뺐습니다. 암기할 때는 다 외웠다 싶으면 노트에 외운 내용을 그대로 쓰고 원문과 대조해 체크했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 원칙으로 세운 게 수업 복습에 충실하자였습니다. 복습은 결국 암기이며, 암기는 곧 반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복습 할 때는 적극적으로 강의 파일을 활용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올라온 강의 파일을 다운받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서 복습했습니다. 남이 발표한 내용, 내가 발표한 내용, 선생님의 크리틱, 설명을 수업 끝나고 나눠주신 자료에 받아 적으면서 정리하고 암기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집중이 안 되는 날은 예전 강의 파일들을 반복해 들으며, 예전에 배운 표현들을 다시 떠올리거나 선생님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듣기, 읽기, 말하기 모두 수업 자료를 기초자료로 활용했습니다. 스터디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해주시는 크리틱은 정말 소중했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삼았습니다. 듣기는 수업시간에 다루는 파란 책(LC용)과 영한 수업 자료를 가지고 복습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듣기가 부족하다고 지적을 당해서, 나름대로 듣기 보강을 위해 PBS에서 파일을 받아 오전에 머리가 맑은 편일 때 정청을 했습니다. 다양한 자료가 iTunes나 여러 곳에 있지만, 다운 로드하는 시간, 고르는 시간, transcripts 찾는 시간이 아까워서 PBS에서만 최신 분석 인터뷰를 중심으로 다운 로드해서 들었습니다. 암기는 오바마 대통령 비디오주례 연설을 외웠습니다. 수업 시간 한영 시간에 연설문만큼은 절대 '통과'하지 말자는 원칙을 정하고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영한 시간에 다루는 Easy English와 한영 시간에 다루는 Dear Abby도 외웠습니다. 한국어는 섀도잉을 하라는 선생님 말씀이 있었지만, 막상 집에 가서 뉴스를 보면, 아기가 놀자고 하고 방해가 되어 못하고, 라디오로 하려니, 시간을 못 맞추고 하여 과감히 포기하고 신문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신문은 중앙일보와 International Herald Tribune(IHT)을 구독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거의 정독했습니다.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정독하자면 꼬박 2시간 가량 걸렸지만, 한국어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생활/ 등등 거의 다 읽었습니다. 읽다가 지겨우면 소리내서 읽고, 목 아프면 눈으로 읽었습니다. IHT는 1면을 훑어본 후 재미있을 것 같고, 한영 수업시간에 다뤘던 내용이다 싶은 것, 혹은 다룰 것 같다 싶은 내용을 골라 정독했습니다. 왠지 잡지도 읽어야 할 것 같은 급한 마음도 있고, 노출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은 우려도 있었지만, 그래도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하자는 생각에 신문 정독과 통독은 신문이 오는 날은 매일 했습니다. 잡지는 거의 3년 전에 이코노미스트를 구독하다가 쌓아 놓기만 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주간지의 비닐을 뜯기도 전에 무섭게 쌓이는 속도는 잡지 구독을 망설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부담 없는 내용, 저렴한 가격, 한 달에 한번 정도만 받아 볼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 찾다가 오프라 윈프리의 O magazine을 구독했습니다. 1년에 45달러 정도면 됐고, 다루는 주제도 부담 없으면서 적당히 진지해서 그냥 머리 식히는 용으로 좋았습니다.
{맺음말}
1년간 은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철저히 해서 서울외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시작이란 생각에 온 몸에 벌써부터 힘이 들어갑니다. 결국 통번역은 실력 싸움이고, 실력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평생 지속될 것입니다. 저는 용띠. 올해 서른 넷이고, 아기 엄마이자 아내입니다. 직장 생활하다가 작년 9월 본격적으로 풀타임 준비생이 됐습니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이 공부에 올인하게 되기까지 겪는 고민과 갈등, 외로움은 일일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만한 분은 다 아실 겁니다. 서른이 넘어도 진로고민은 끝이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흔을 넘고 쉰이 되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공부를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주변인들, 공부를 방해하는 조건들 보다 뚜렷한 목적의식의 부재, 이 길이 나의 길인가에 대한 확신의 부재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게 올해는, 제가 갈 길을 찾았다는 희열과 기쁨, 감사함으로 충만한 해였습니다. 생각대로 실력이 늘지 않아도,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외롭고 고달파도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모든 과정에 두려움과 후회는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저와의 싸움이자 화해의 과정이겠죠. 은천성 선생님, 그리고 맨 처음 은 선생님의 ‘시사청취’를 소개해 준 친구 고니, 믿고 기다려준 남편, 사랑으로 아기와 며느리를 돌봐 주신 어머니, 처음에는 왜 그러니 하셨으나 나중에는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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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지 않아도 이전 링크가 연결이 안된다고 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딱 맞춰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사이로 시간되는데로 몇개 더 찾아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