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8
백운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종교계로 흘러들어가는 돈이 매년 수조 원이 넘는다고 했다.
모든 종파들을 다 합칠 경우 그 액수는 통계청에서도 아직 모를 거라 한다. 그 중 무속인 들에
게 들어가는 액수만 해도 일조 원은 족히 넘는데, 작은 굿 한번 하려고 해도 기본으로 500만원
이상이 든다고 했다. 점집에서 파는 부적의 원가는 천 원에 불과 하지만 무속인 능력에 따라
받아내는 액수는 천차만별이라 했다. 자기가 지금 비록 오락실을 털어 먹고 다니지만, 궁극
적인 목적은 뿌리며 줄기가 다른 무속을 한 군데로 통합하는 거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중앙
본부가 필요한테 경기도 감악산 부근에 임야를 이미 수 만평 매입해 두고 있으며 땅이 나오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감악산은 경기도 양주시와, 파주시 연천군에 걸쳐 자리 잡고 있
으며. 지금도 무당 내림굿은 감악산에서 해야 한다고 했다.
감악산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다. “경기 5악" 의 하나로 (양주 감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 가평 화악산) 유명한 산이기도 하지만 내가 군대 생활을 한 곳이 이 부
근이기 때문이다. 의정부를 지나 덕정에서 적성 가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깊은 계곡이 나오는
데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감악산이다. 정상인 장군봉 아래는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관군의 추적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 굴이 있으며, 6·25
전쟁 때는 중공군과의 격전지로 유명해서 설마리 계곡에 영국군 전적비와 대한의열단 전적비
가 남아 있다.
감악산 정상에는, 신라 순수 진흥왕비로 추정되는 비가 있는데, 그 형식이 북한산비와 거의 같
고, 단의 경우, 양식이 똑같으며, 크기도 비슷한데 비문이 다 닳아 판독이 불가능하다. 또 감악
산은 전국 제일의 `영산` 이라고 소문이 나서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여들기도 하며, 봄에는 시산
제를 지내기 위해 전국의 산악회에서 몰려들기도 한다.
자기가 사 들이고 있는 땅은 감악산 아래, 신암 저수지 부근으로 그 주변에 굿 당들이 있고 그
위에는 수월사라는 절이 있는데 굿 당들을 비롯하여 수월사까지 모조리 사 들이려는 계획이라
했다. 흔히 무당하면 미신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무당이 모시는 신은 다름 아닌 한인제석, 한웅
제석, 단군제석 그 위로는 삼신제석, 옥황황제, 천존제석을 모시는데, 제석이란 천제를 뜻 하는
시대적 다른 표현이라 한다. 무속을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복을 불러들이는 행위라 했다. 귀신
을 받들거나 쫓아내고 저주를 해서 남을 해하는 것은 무속이 아니며 참된 무속은 복 그 자체라
했다.
"오 선생"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백운은 자기 목소리 옥타브를 조절함으로써 상대방의 심리를 유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세상에 갈 때 입는 옷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백운이 지그시 눈을 감더니
“서산대사의 입적 시입니다.”
백운이 낭송하는 서산대사의 입적 시는 일반적 시 낭송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스님의
경소리도 아니고 무당들의 주문 소리도 아닌 묘한 이끌림이 있었다.
이 보게 친구! / 살아 있는 게 무언가 / 숨 한번 들여 마시고 /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 / 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 공기 한 모금도 /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 저승길 가는 데는 /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 자네 추억 씨앗 뿌려 / 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 나고 죽고 오고 감이 / 역시 그와 같다네.
천(千) 가지 만(萬) 가지 생각이 / 불타는 화로위의 한 점의 눈(雪)이로다
논이 소가 물 위로 걸어가니 /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오, /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 죽고 살고 오고 감이 / 모두 그와 같도다.
“서산대사께서는 묘향산 원적암에 칩거하며 85세의 나이로 운명하기 직전 위와 같은 시를
읊으시고 나서 많은 제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잠든 듯 입적 하셨다고 합니
다. 당대의 선승이셨던 서산대사께서는 저승길 갈 때는 티끌 하나도 가져가지 못함을 일
찍이 간파 하셨던거죠, 언제 적부터, 수의에 호주머니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실은 살아있
는 사람이 입는 옷에도 주머니가 없었습니다.”
백운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골라서 했다.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생목숨이 입는 옷에
주머니가 없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는 느낌이었다. 듣고 보니 한복에도 주머니가 없다는 그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한복에 주머니가 없어 불편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
었음에도. 한복에는 주머니가 왜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백운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뜨더니
“살아있는 사람이 입는 한복에 왜 주머니가 없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수의에 호주머니가 없는 까닭이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 그랬다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옷에 호주머니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물었는데 솔직히 말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조차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란 걸 미리 알려주고자 그랬는가, 하는 생각이 들
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백운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붉은색과 분홍색, 진주색, 자주색, 푸른색, 담녹색,
흰색, 옥색, 등으로 복주머니라 하여 따로 만들어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설날에 세뱃돈을
받으면 복주머니에 넣어 간수 했다 한다, 그뿐 아니라 복조리를 걸어두기도 했는데 복조리
는 정월 대보름 때, 복조리 장사가 집집이 던져 놓고 나중에 복조리 값을 받으러 다녔는데,
누구 하나 싫단 말 않고 샀다는 것이다. 왜냐면 들어온 복은 내쫓는 게 아니기 때문이란다,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복을 무식하게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가 없었기에, 복주머니를 오
색실로 따로 만들었는데, 오색이라 함은 목화토금수 오행색인 청, 적, 황, 백, 흑을 말하고
조상님들은 오색실로 만든 복주머니를 차고 오색 색동 저고리를 입었다고 했다. 지금도
무당은 굿 복으로 오색 색동 저고리를 입는다 한다.
.
이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서 인간 세상의 복을 기원하는 우리 고유의 문화며 선조의 지혜
라고 했다. 복은 행복이나 좋은 운이 찾아오는 것을 말하며, 그 복을 불러들이는 방법으
로는 자연숭배나 조상숭배 등이 있는데, 미래보다는 현실의 어려움이나 액에서 벗어나고
자 하는 기복신앙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고 했다. 백운은 복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여 주
었는데 그 이유는 모든 신앙의 원초적 기초가 복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 했다. 자기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복을주는 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복 많은 년은 자빠져도 가지 밭
에서 뒹굴고 재수 없는 놈은 오는 복도 발로 차 버린다고 했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속으로 내심 뜨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형"
오 선생에서 오형으로 존칭이 내려갔다. 그런데, 오형이라 부르는 백운의 목소리는 사람을
한 단계 아래로 내리 깔려는 의도로 보이질 않고, 오히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 오랜
만에 만나는 지인을 부르는 듯, 한 다정함이 들어 있는 소리였다.
“네”
나도 모르게 공손히 대답을 했다.
" 지금 세상은 서로가 서로의 등쳐가며 살고 있어요. 이런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겠다는 건
물가에 내 던져진 어린아이 꼴과 다름 없어요. 눈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요, 지금은 입속의 든 고기까지 뺏어먹는 세월입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사기꾼은
들끓을 것이고, 선한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겠지요, 말세가 가까울수록 이런
증상은 더 해 갈 겁니다. 해서 나는 어려움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복주는 사업을
하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자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지요,"
지금 세상이 불신의 세상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한국의 IMF 구제금융 사태를
단순한 `통화위기로 치부했기에, 그걸 극복하려고 했던 노력들이, 지금에 와서는 한국인
고유의 정이 사라져 버리는 부작용을 낳게 하였으며, 돈을 빌리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
어 버렸고, 지인들 조차 담보 좀 서 달라는 말을 듣는 순간, 타인으로 변해 버리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백운은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복주는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고마운 이야기였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오형이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계획대로
일을 추진해 갑니다. 오형이 내일 우리를 따라서 같이 간다면 다른 도시 오락실 몇 군데, 더
들릴 참입니다. 오형은 오늘처럼만 일해 주시면 됩니다. 위험은 전혀 없어요. 오락실 주인들
은 손님들 지갑에 있는 돈만 털어먹을 줄 알지, 자기들 오락실 기계가 왜 오작동을 하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길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까 오락실에서 잭이 터졌을 때 오락실 주인의 표정이 이상해 졌어요, 어디로 전화를 걸고
난리를 치더니 제 기계를 살펴보고 돈을 내주기는 했는데 솔직히 겁이 무척 났거든요,”
무척 무서웠던 건 사실이었다. 오락실 주인은 내가 무슨 장난질을 친 것은 아니가 하는 듯이
나를 살펴보고 기계를 살펴보고 했던 것이다. 백운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내 얼굴
에 겁을 집어먹던 표정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백운이 호탕하게 웃는다.
“어떤 경우에도 오락실 주인은 손님에게 손을 댈 수 없어요, 돈을 딴 손님에게 해를 가했다
는 소문나면 그 집은 그 날로 손님 발길이 끊어지니까요, 그들이 전화한 건 내게 한 겁니다.
기계가 오작동 한다고요, 그때 내가 한 말은 그 손님 그 기계에서 더 이상 못하게 하라고
했지요, 그렇게 된 겁니다.”
이것 또한 뒷날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한번쓰고 버리는 카드였는데 그야말로 운이 좋아
그들의 환심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좋은 운이라는 게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는 내 표정 때문이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쓴웃음만 날 뿐이다. 본시 나는 표정 관
리를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희로애락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으로 해서 순진
하다는 말을 많이 들기도 했다. 백운과의 대화를 할 때 이미 나의 그러한 면모들을 들켰던
것이었다. 이러한 나를 백운은 써 먹을 때가 있다고 느껴기에 그들의 패거리로 삼았던 것
이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던 나는 그 다음날부터 오락실을 털어먹는데 한 부분 일조를 한다.
우리는 관광을 즐기면서 남원을 거쳐 구례로 해서 순천, 광양, 하동, 진주, 마산, 창원, 김해
부산, 울산, 포항,을 지나 속초로 해서, 인제, 춘천, 청평, 가평, 남양주, 퇴계원, 의정부,
동두천을 거쳐 백운이 땅을 사 놓았다는 감악산까지 일주를 했는데 그때까지 번 돈이 2억에
가까웠다. 물론 시비에 휩싸인 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백운이 암암리에 손을
써서 주먹다짐이나 멱살잡이 없이 나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냈던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