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 hope for the flowers』
(트리나 플러스, 시공주니어)
안 미 영*
여름의 한 복판에서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요. 어린 아이였을 때, 우리는 더위를 기피하거나 여름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있었지요.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한여름의 더위도 어려운 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의 내면에는 즐거움과 경이로움보다는 일상적인 피로와 권태가 더욱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환희와 기쁨을 다시 소환해 보기 위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한 애벌레 이야기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는 두 마리의 애벌레가 등장합니다.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바로 그들입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먹고 자는 단순한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섭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좀더 훌륭하고 멋진 일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애벌레 기둥’에 오르려고 마음먹습니다. 벌써 그곳에는 다른 애벌레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꼭대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에벌레 기둥’에 올라가는 과정에 노랑 애벌레를 만나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들해지자 줄무늬 애벌레는 또다시 ‘애벌레 기둥’에 올라가기 위해 기를 씁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애벌레들을 발판 삼아야 했으며, 잠시도 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줄무늬 애벌레가 ‘애벌레 기둥’을 오르는 동안, 땅에 있는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줄무늬 애벌레가 오르지 못한 곳까지 이곳저곳 날아다닙니다. 결국 노랑 애벌레의 도움으로 줄무늬 애벌레는 호랑나비가 됩니다. 그들은 기어 다녀야 하는 애벌레의 신세에서 벗어나 ‘애벌레 꼭대기’는 물론 어느 곳이나 맘껏 날아다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줄무늬 애벌레’, ‘노랑 애벌레’ 모두 ‘나비’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결론은 모두 똑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까요. 애벌레의 운명이 그렇고 그런 것을,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나비’가 될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일까요. 그런데 이야기의 내용과 이야기의 제목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책의 이야기는 ‘애벌레’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주인공 애벌레를 고려한다면, 이 책의 제목은 “애벌레에게 희망을”이라고 한다든지 “나비에게 희망을”이라고 하면 더 적당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제목이 <꽃들에게 희망을>인데 비해, 실상 이야기 속에 ‘꽃들’은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인 애벌레(나비) 자신이 아닌 꽃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나비가 된 애벌레가 모험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나요. ‘먹고 자는 단순한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뭔가 의미 있는 일’은 ‘애벌레 기둥’을 오르는 것도 아니었고, 실상 ‘나비가 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나비는 바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일을 하지요. 그것은 바로 꽃가루를 통해 꽃들의 씨앗을 건네주는 일입니다. 땅에 붙어 있는 꽃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나비는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해 주는 것입니다. 나비가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지요. 애벌레가 꿈꾸던 ‘희망’은 단순히 자신이 나비가 되는데 그치지 않으며, 나비가 되어 나비 아닌 꽃들의 씨앗을 전달하면서 그들의 희망을 이루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은 애벌레의 욕망(꿈)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애벌레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나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까지 정신적․육체적 통과의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벌레 시절 깨닫지 못한 것을 나비가 되어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생의 한 복판에 이른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희망을 갖고 계신지요.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하늘을 향해 직립해 있는 여러분들은 어떤 희망을 실현하고 계신지요. 날씨가 무더워집니다. 이 더위가 다 가면 어느새 서늘한 가을바람이 찾아와, 남은 한 해의 행보를 더 빨리 재촉하겠지요. 무더운 여름을 잠시 뒤로 하고, 우리의 애벌레 시절을 잠시 돌이켜 봅시다. 혹 지금, 자신이 ‘나비’인줄도 모르고 아직도 ‘애벌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일상에 찌든 여러분들에게 ‘꽃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나비의 이야기’가 어린 시절의 풋풋한 희망을 현실로 소환해 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경남 울산 출생, 문학박사,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저서 『이상과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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