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아침
산에 가려는데 밖이 새카매지더니 ‘와지끈’ 소리가 나며
천둥 번개가 마구 내려친다. 지난 주 삼각산과 수락산에서
벼락사고 생각하니 이런 날씨에 산에 간다는 것은 무리다.
포기하고 아이한테 요즈음 무슨 영화 괜찮은가 물으니 디워 란다.
디워 ? 그게 뭔데..
심형래 운운..
뭐 심형래? 얘 내가 지금 영구와 땡칠이 보게 생겼냐 ?
어어 왜 이러세요.. 그게 돈이 700억에 .. 미국에도 어쩌구..
흐음.. 그래?
해서 간 곳이 KOEX 지하 메가박스 영화관이었다.
논날비가 내려 붓든 하니 다들 영화관으로 몰렸는지 10시 반에 표 사는 줄이
이미 한참 늘어졌다. ‘화려한 휴가’는 심야표 밖에 없고, ‘다이하드 4’는
그런대로 살 수 있고.. 디워는 1시간 반 뒤 입장가능이다.
디워 라길래 The War 를 떠 올리며 .. War 앞에 오는 정관사 the 는
‘더’라고 발음하는 것 아냐 했으나 극장 앞 제목을 보니 D-WAR 다.
워고 뭐고 ‘용가리 속편’ 이라 했으면 이해가 빨랐을 터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이송희일 감독의 평을 보니 (근데 이 사람 성은 이야? 송이야?)
…'디 워'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영화 보면서 계속 뭔가 머리를 맴돌았는데..위 평을 보니 정리가 된다.
필자가 70년대 중반 무역회사 들어가 수출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제품의 질은 엉망에 웬만한 자재는 거의 일본에서 수입이고
디자인은 죄 바이어가 주는 대로 만드는 것이었다.
80년대 초 아이 손 붙잡고 반포 뉴코아 꼭대기 있는 극장에서
용가리 볼 때 질이 딱 그 정도였다. 유치하기 짝이 없으나
애들이 침 질질 흘리고 보는 데서야.
이제 우리나라는 자동차에 첨단반도체 수출국이 되었으나
우리가 독창적으로 뭔가 만들어가는 수준은 아니다.
영화 디워는 정확하게 이 수준을 반영하는 것 같으니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어지간히 다가갔으니 용가리 수준에서 보면
야 드디어 우리나라도.. 라는 말이 나오게끔 되어 있으나
냉정히 말한다면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딴지를 더 걸면 도입부의 500 년 전 조선시대 장면에
웬 도사가 앉아 있는 건물은 경복궁 근정전 같기도 하고
법주사 팔상전 같기도 한데 그 옆에는 또 정체불명의 건물이 있다.
500년 전이라면서 불과 200년 밖에 안된 김홍도의 씨름 그림이 나오고…
또 담배가 나오는 데.. 500년 전 우리나라에는 담배가 있을 수 없다.
신대륙에서 아직 들어 오기 전이니까.
영화 다 끝나고 자막으로 심형래 감독이 국내 영화계에 당한 설움을
구비구비 풀어 내는데, 아마 화면이 4-5번 바뀔 정도로 긴 분량이다.
이건 국내용이겠지? 설마 외국 판매분에 들어가지는 않으리라.
국내용이라도 이건 좀 뭘 한 기분이 드는 것이..
판사는 판결로 이야기하고 의사는 어쩌구 하는 말이 있듯이
감독은 영화로 자기 메시지를 다 전해야지..
상당히 긴 영화 다 틀어 놓고 뭔 소회를 또 하는가?
관객들이 자기 돈 내고 왜 그 소리를 들어 줘야 하는지?
그렇다고 영화 값을 깎아 주는 것도 아니고..
하긴 판사가 꼭 판결로만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오죽 서러웠으면 그러랴 하고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하여튼 세계시장에 먹혀 들어가기를 바라는 데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한국적 부분-조선시대 장면으로
이것이 과연 세계문화의 보편정서에 맞을지?
우리야 감격스럽고 그 때문에 국내에서 관객이 몰리는 것 같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과연 맞긴 한가?
영화에서 한국문화를 가장 자연스럽게 녹여 낸 부분이 용(龍)이 아닐까 한다.
디워에 나오는 용은 Dragon 이 아니고 분명 한국 용이다.
마침 그 전날 폐사지(廢寺址)들을 돌아보며 용가리-비석의 용 얼굴을
찍은 것이 있어 여기 붙이니 디워를 볼 때 비교해 보기 바란다.
고달사 원종대사 헤진탑비 귀부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 귀부의 얼굴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 몸돌 측면의 용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비 귀부
흥법사 진공대사 탑비 귀부
영화 디워의 용 얼굴도 다운 받으려 했으나 인터넷에서 못 찾았음.
이상
아아 하나 더..
영화 중 나쁜 놈들 집단 이름이 ‘부라퀴’ 라고 하여
외래어 특이 일어 부라꾸(部落)를 생각하고 그쪽 계통인가 여겼더니
순 우리말이란다.
부라퀴
(명) (1) 몹시 야물고 암팡스러운 사람.
그는 부라퀴라 대하기에 만만찮다.
그 부라퀴는 아무도 엄두도 못 내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냈다.
모내기를 끝내고 부라퀴처럼 두렁콩을 심겠다고…≪김정한, 축생도≫
(2)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면 기를 쓰고 덤벼드는 사람.
그는 돈이 되는 일에는 부라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