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22:24-28(783) 돌덩이 같은 금덩이 2019. 4. 7.
아라비아 사막을 횡당하면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텐트 안에 모여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눕니다. 장사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공유하는 중, 어떤 상인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보석을 자랑합니다. 이 상인은 매우 귀하게 보이는 진주 하나를 끄집어냅니다. 그런데 이 진주가 호두알만 한 크기입니다. 상인은 “이 진주는 가격을 매기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상인이 그것을 보고 “당신의 진주는 덩치만 컸지 품질은 낫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가진 또 다른 보석을 내어 놓습니다. 이 두 사람의 보석 자랑이 끝이 없습니다.
이 때 이 두 사람을 지켜 보면서 말을 다 들은 아랍 베두윈 유목민이 웃으며 말합니다.
“나 역시 당신들처럼 이전에는 보석을 취급하는 큰 보석상이었소. 그러던 어느 날 진귀한 보석을 사러 가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모진 모래 폭풍을 만나게 되었지요. 데리고 있던 낙타도 모진 모래 폭풍 때문에 도망가 버리고, 나만 홀로 남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큰 주머니 하나를 발견했지요. 혹시 음식이나 물이라도 있을까 기대하며 열었는데 그 안에는 매우 크고 귀한 진주만 가득했지요. 그 때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먹을 음식과 물이었지 보석이 아니었거든요”
이 이야기를 들은 두 명의 보석 상인은 머쓱한 표정을 보석 주머니를 거두어 들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모든 인간에게 금이 소중한 것이 사실이지만, 먹지 아니하면 목숨을 이어 나가지 못하는 물이나 음식보다 귀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는 금보다 귀한 것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물 한 모금이 금덩이보다 더 귀하게 취급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금이 귀하지만 생명을 의존할 것은 못 된다는 말입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라운드 제로란 원래 핵폭탄이 떨어지는 ‘낙하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핵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제로(0)가 되어 버립니다. 더 이상 내려 갈 수 없고, 더 이상 잃어 버리 ㄹ것이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곳이 그라운드 제로입니다.
저는 이 그라운드 제로를 영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더 이상 낮아 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산도 다 날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도 다 떠나고, 더 이상 내려 갈 수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갈 때에, 바로 그 사람은 그라운드 제로 상태가 됩니다.
그라운드 제로 상태에 도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사람은 완전히 실패해서 더 이상 재기하기 힘들고,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런 평가와 판단이 올바른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외형적인 모습에만 근거한 이런 비관적인 평가는 성경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이 더 낮아질 수 없는 낙하점에 떨어지게 되는 그 순간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왕자에서 노예로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모세가 그러하였고, 다윗도, 바울도 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24절을 보세요.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여기서 <오빌의 금>이란 “오빌 지역에서 만들어진 금”이란 말이고, 오빌의 금은 당시 중동지역에서 가장 좋은 최상급의 금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시 45:9에도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빌의 금은 최상품 금이었습니다.그러니 왕상 9:28에도 솔로몬이 배를 가지고 오빌의 금을 실어왔다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귀한 오빌의 금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서는 어떻게 취급할까요?
1. 보화는 티끌 같고 금은 돌 같습니다.
24절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하디 귀한 보물을 먼지나 티끌처럼 여기고, 최상급 오빌의 금덩이를 계곡에 나뒹구는 돌맹이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보물을 생명처럼 여기고 금덩이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챙기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말처럼 보여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세상의 물질과 부귀에 얽매이지 말고 초연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보화와 금은 티끌 같고 돌 같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를 판매하는 어떤 회사의 판매 문구를 보니“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말로 다이아몬드 판매를 부추킵니다. 이 회사의 다이아몬드를 사서 결혼반지에 끼우면 결혼생활이 영원하고, 다이아번지를 주고 받는 남녀간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이 말이 사실 그대로 진실일까요? 다이아몬드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하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나,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비록 다이아몬드가 비록 영원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세상의 보화와 금은 잠깐 있다가 없어집니다. 금을 좇아가다가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솔로몬과 욥은 성경에 등장한 여러 인물 가운데, 가장 물질적인 부를 많이 소유하였던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자타 공인하는 최고의 부자였고, 욥 역시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루아침에 완전 빈손이 됩니다. 가장 부요했던 왕인 솔로몬은 많은 재물을 가져본 결과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였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렁뱅이가 “헛되고 헛되”고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나 욥처럼 가장 많이 가져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믿음이 가고 또 우리가 신중히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금전에 대하여 삼가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불의한 이익과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다가 쓰러지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잘나가던 공직에 있던 사람이 뇌물을 받았다가 하루아침에 불명예 퇴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즈음 하는 국회 청문회 보십시오. 다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입니다만, 국회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100에 100은 전부 돈 문제 때문에 낙마합니다.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남미의 페루를 침공합니다. 이때에 코르테스는 페루 임금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금을 모두 내어놓으시오. 우리들은 금이 아니면 고칠 수 없는 몹쓸 병에 걸려 있다.”스페인 정복자들이 걸려 있는 몹쓸 병이 무엇일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금을 더 많이 역탈하여 차지하려는 <황금병>이지요. 현대인들이 심각하게 걸려 있는 병이 바로 이 황금병입니다. 돈이 가장 소중한 것이고,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병입니다. 돈만 있으면 부모나 자식도 필요 없고, 돈만 챙길 수 있으면 나라도 팔아 먹는 심보가 바로 황금병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잠 16:16에는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금을 가지면 금이 그 값어치를 합니다. 하지만 욕심으로만 똘똘 뭉친 사람이 금을 가지게 되면, 그 금은 돼지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우리 덕민 교회 성도님들 중에, 집에다가 쉽게 들고 가지 못하도록 매우 무거운 금고를 들여다 놓고, 그 안에다가 금덩이와 보석을 보관할 정도로 부자는 없습니다. 기껏해 보았자 장롱 속에다가 손수건으로 똘똘 말아서 기념 금반지 한 두개 보관해 놓은 것이 전부 일 것입니다. 통장 잔고가 일~이백만원만 되어도 든든함을 느끼는 다들 소박한 분들이 우리 덕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크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 금덩이를 이야기하고, 다이아몬드를 왜 이야기 하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나에게 금덩이가 없고, 자랑할만 한 다이아몬드가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날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금덩이를 가지고 다이아몬드를 가지게 되는 날이 올 때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시라고 제가 말씀드립니다.
“내 수중에 금덩이가 생기고 다이아몬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마음가짐을 다져 먹고 올바르게 살면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내 수중에 있는 단 돈 몇 만원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하면서, 하나님더러 금덩이를 달라고, 다이아몬드와 차고 넘치는 보석을 달라고 떼를 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기도로 준비하고, 마음가짐이 준비된 자에게 응답하여 주십니다. 줘 보았자 제대로 쓰지도 못할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부어주는 어리석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물질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보화가 되시며 고귀한 은이 되십니다.
25절. “그리하면 네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여기서 전능자는 하나님입니다. 고로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나에게 은금보화 보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귀한 최고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세요. 요한계시록 21:18-21에는 하나님의 나라인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성곽은 벽옥입니다. 성은 정금입니다. 성곽의 기초석은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수정입니다.
기초석이 뭐지요? 기초로 놓은 돌입니다. 그런데 그 돌이 다 진귀한 보석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기초석도 다 보석입니다. 열두 문은 진주입니다.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길고 금으로 포장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보석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보화이시기 때문에 하늘 나라도 온통 보석입니다.
예전에 사상시찰회에서 중국을 여행할 때에 북경에 있는 자금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금성의 규모는 정말로 엄청납니다. 안내하는 가이드가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자금성에 있는 방 하나에 하룻밤을 지내는 것으로 계산하면, 자금성 모든 방을 다 자고 나오면 아이의 나이가 27살 가량 된다”고 말합니다. 자금성의 방 칸수가 9999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염라대왕의 방이 만개라서 하나 모자라게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금성에 사는 황제는 자객이 자신을 헤치려고 땅을 파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 넓은 자금성 전체를 12겹의 벽돌로 깔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지붕은 전부 옥기와로 덮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으리으리한 자금성도 하나님 나라와는 비교불가입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하면 “자금성은 하나님 나라에 깜도 안 됩니다”.
찬송가 94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찬송의 작곡자인 <조지 베블리 쉐어>는 성악을 전공한 유능한 성악가였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 여기저기서 엄청난 계약금을 제시하면서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합니다.
90이 넘는 나이에도 빌리 그레이엄 재단에서 찬양사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어떤 부귀와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세상의 어떤 보석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이 내 보배가 되고 금이 된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God과 황금을 뜻하는 gold는 철자 하나 밖에 차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 하나의 차이가 하나님을 결정하는 단어가 되기도 하고, 황금을 나타내는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God을 소유하게 되면 골드가 따라 오지만, 골드를 소유하고 골드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면, God은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사자성어 중에 “형제투금(兄弟投金)”이란 단어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고려 공민왕 때에 의좋은 형제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줍게 됩니다. 그리고 아우는 그 중의 하나를 형에게 줍니다.
그들이 공암진이란 장소에서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게 됩니다.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아우가 갑자기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버립니다. 놀란 형이 “왜 금덩이를 강물에 던지냐”고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아우는 “내가 평소에 형을 사랑하였는데, 금덩이가 생기고 나니 꺼리는 마음이 생겼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금덩이를 가지고 있는데도, 조금 전에 형에게 건네 준 금덩이가 아까워 보이는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형도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립니다. 이들 형제는 금덩이를 돌맹이처럼 버리고 금보다 더 귀한 형제우애를 선택합니다. 바로 이 이야기가 “형제투금‘이란 사자성어입니다.
금덩어리, 분명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져도 금값은 여전하다고 해서, 금을 투자 목적으로 사다 모으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 것만 보아도, 금은 귀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금보다 귀한 것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생명도 귀하고, 믿음도 귀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귀하고 사랑하는 자녀도 귀합니다. 이집사님과 박집사님에게 하윤이가 가장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은 절대 바뀔 수 없는 가치입니다.
어떤 사람이 1캐럿 크기를 훌쩍 뛰어 넘는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목걸이를 보고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수천만원짜리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있는 그 사람이 귀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몇 만원짜리이면 살 수 있는 가짜 다이아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 그 목걸이를 보는 사람들은 다들 값비싼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이 귀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보석을 차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 따라서 진짜가 가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짜이지만 진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하는 말뜻을 이해하시나요? 중요한 것은 비싼 보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비싼 보석을 몸에 휘감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값비싼 보석으로 내 몸을 치장하지 못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인격과 모습이 고상해지는 것입니다.
“주 나의 모든 것”이라는 아름다운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이 찬양 함께 드리고 설교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금덩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은 쓸모없는 돌덩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나는 값어치 없는 돌덩이 같은 존재이지만, 예수님이 나를 금덩이 같이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나의 보배라는 고백가 생각으로 생활하는 4월의 모든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