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요코스카 미군기지 근무하는 배경민 중령
작년 이라크에 있을 땐 함께 일했던 동료 잃기도 마지막엔 주한미군 오고파
"2009년 5월 이라크에 있을 때 일입니다. 현지인의 호감을 얻기 위해 팔루자에 만들 하수처리시설 현장을 답사하던 동료가 폭탄 테러를 당해 즉사했습니다. 다른 동료 두명과 함께…. 10년 넘게 함께 일해온 중령 진급 동기였어요. 그 소식을 듣고 둔기로 머리라도 맞은 듯 멍했습니다. 게다가 나도 다음 날 바그다드 시내로 현장 답사를 가기로 돼 있었어요. 정말 긴장되더군요. 바그다드가 훨씬 위험하거든요."
-
- ▲ 2009년 이라크 바그다드 파병 때의 배경민 중령.
일본의 요코스카 미군기지 해군시설대에서 복무 중인 배경민(49) 중령은 올해로 미군 생활 20년째다.
현재 잠시 한국에 와 있다.
그는 미군치고도 이력이 특이하다.
근래 10년은 미국 안에서가 아니라 국제적 분쟁지역에서 주로 근무했다.
2009년 바그다드 재건부대 공병장교,
2003년 미 유럽사령부의 발칸지역 공병작전 책임장교,
2002년 코소보 나토사령부 공병 참모
그리고 지금까지 10차례 넘게 팀스피리트 및 을지훈련과 같은 한·미 연합훈련에도 파견돼 참여했다.
"저의 미군 생활은 미국서 태어나 시민권을 가진 애인과 1985년 결혼하면서 함께 미국으로 간 것이 계기가 됐어요. 게다가 저 스스로가 ROTC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고, 아버지가 공군 장성 출신인 점도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는 미국서 석사 학위를 받고 어떤 직업을 택해야 옳을지 한참 고민하다가 군(軍)을 택했다고 한다.
1990년 미군에 첫발을 들였을 때 가장 난감한 것은 이질적 군인 문화가 아니라 역시 언어였다.
"종일 황당하데요. 미국서 이미 몇 년 살았는데도 절반 이상 알아듣기 힘들었어요.
이래저래 소외감과 후회가 컸죠….
그렇지만 기왕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가보자고 늘 다짐했죠.
신분은 미국인이지만 부대 안에서는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각오로 살자고 했어요."
그는 "지금은 모든 게 많이 익숙해졌지만 영어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한국의 실정, 한국군의 정서를 아는 그는 팀스피리트 파견에서부터 빛을 발했다.
그리고 이후 주요 분쟁지역을 포함해 각국의 현장을 섭렵하는 '지구촌 미군'의 하나로 적응해갔다.
"작년 가을부터는 일본에서 복무하고 있어요.
고국과 가까워선지 아니면 문화가 비슷해서인지 과거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하네요."
배 중령은 "일본 근무를 마치면
마지막 군 생활은 완전히 귀국해서 몇년이건 주한미군으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