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안 학영;安鶴榮)의 생애; 순흥안가 28세손
‘해방직후는 (태평양& 6.25)전쟁을 2번이나 직접겪으며, 그후 전후복구 시대에 가난으로
햄릿의 대사처럼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인 절박한 시대를 사셨다.
1925년 7월 23일 (乙丑生.음) 경북 영주시 안정면 용산동에서 출생...(고향에서 초등학교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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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1세때, 징조부(교원) 별세
1937.07월 13살; (시대상황; 중일 전쟁 발발)
1938년 14세, 경북 영주시 풍기읍 <풍기 초등학교> 졸업,
(시대상황; 일본 전시 총동원령 발동-> 강제노역; 14세미만 남여 어린이도 꼬여 탄광,위안부로 끌려감
피해자 신고; 180만명, 동원현장; 8,000곳이상)
............................................................................(일본에서 고학 약 4년)
1939년 15세 혈혈단신으로 渡日(도일);
1940년(16세)?; 일본 大阪(오사카) 난이와 중학교를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고학으로 다니셨음 (주경야독 시대, 야구선수 ‘장훈’이 다니던 학교)
(<창자 호자>할아버지로부터 "족보를 직접써 보내신 편지"를 일본에서 받아보셨다 함)
1941년 17세, 祖父(창호) 별세
1943년 19세; (시대상황; 12월07일. 태평양 전쟁 발발)
1944년 20세; ?, 일본 오사카 ●나니와 중학교 졸업(;야구선수 장훈이 다닌학교)
........................................................................... 고향으로 돌와와 2년 (?)
1945년 21세 05월 이필례와 결혼하다 (19세, 경북 안동군 풍산면 상리 우곡동 326, 속칭" 우렁골" )
(예안 이씨 21대손, 사직공<안동伯>파, 父; 李在佑, 오빠;李會學; 전 국학대=고려대 겸임교수)
1946년22세, 01월02일 母(45세) 별세, (부;44세, 동생 용근; 13살때, 막내 용수; 4살때)
....................................................................................................(서울에서 고등학교- 신혼 약3년)
1947년(23세) 09월09일 선린상고 5학년에 입학
11월 祖母 별세
1949년(단기4282년, 24세) 06월11일 선린상고 6학년 졸업-> ●서울대 상대 학격하다,
●신탁은행(;한일은행 전신)에서 근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 4년!
.......................................................(6,25전쟁, 제주도 군대생활 4년)
1950년06월 26세때 한국 전쟁(1950-1951) 발발
(서울에서 은행에 근무중 의용군에 징집당해 상주근처에서 탈출하다)
가족은 걸어서 귀향하다
1951년 (부49세) 27세때 서모 별세 (동생 용근;18세, 막내 용수;9세)
1953년07월27일 한국전쟁 휴전협정
1954년(30세); 1951-1954년까지 <서귀포 훈련소;제주도>에서 군복무하다
06월 장남 (중식)출생하다.
..........................................................(고향 영주 안정면에서 면서기; 약2년 ?)
1955년 31세, 경북 영주시 안정면 사무소(면서기) 근무
1956년 32세
...............................................................(대구에서 직장생활 17년)
1957년02월 33세, 둘째 (딸;중임) 출생하다.
(단기4290년) 05월10일; 보병36사단 108연대 부대장 <공로 포창장>받다; 동원예비군 훈련
06월 대구시 <동아염직; 사장이 고향친구> 중소기업 근무하다-> 1975년 01월 (51세)
1958년 34세 07.22 - 1960.12.31.(36세); 단국대학부속 대학통신교육부 학생증 확인
1959년08월 35세, 세째(중철) 출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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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02-1973.02까지 6년; 시집살이에서 해방되어 가장 단란했던 대구6년!)
1967년02월 43세, 아들진학 때문에 온가족이 대구 칠성동으로 이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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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3代가 같이살던 2년)
1973.02월(49세) 父(승구)가 대구로 내려오셔서 3대가 같이살다
1자(중식);재수, 딸(중임);고1, 2자(중철);중2
1974년 50세; 아들(중식) 영남 약대에 입학,
..................................(1975-1979까지 실직생활 5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절 5년)
1975년01월 51세, 대구시 <동아염직 부도>로 빈손으로 실직하다 (17년8개월 근무)
(중식; 대학2년, 중임; 고3, 중철; 고1때)
02월, 부(승구, 73세) 대구에서 조용히 별세하다.
(1975-1976년, 중식;대학2년, 중임;고3, 중철;고1때, 2년동안 집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입에 풀칠하고,
등록금은 영천 논을 팔아서, 은행 학자금 융자받아서 냈다.
1976년 .
1977년(53세)은 더욱 어려워 어머니(51세)이 칠성시장 노상에서 북풍한파 맞아가며 사과장사를 하셨다.
1978년02월(54세) 1子(중식); 영남 약대졸업하다, 女(중임);경북사대2년, 2子(중철); 고3
07월 중식; 군 입대하여 경기도 일산(9사단 29연대)에서 근무하다
1979년 55세; .
..................................................................(서울로 이사- 새직장 시대 12년)
1980년01월, 56세, 친척소개로 서울에 직장얻어 중랑구 중화동으로 전세얻어 이사하다.
-> 1991년(☆67세까지) 서울시 <아세아 볼트; 사장이 처조카의 친구> 11년 근무
03월 2자(중철, 22세), 공무원 발령받아 서울에서 근무시작하다
12월 1자(중식, 27세) 일동제약 취직하여 대구에서 하숙하다.
1981년 08월 57세, 딸(중임,25세) 경기 덕적도 고등학교로 교사발령 첫부임하다
1982년 58세, 서울 중랑구 중화2동에 처음 <단독주택> 매입하다...(서울 중화동 父단독집시대 3년)
(대30평, 방2개/3 사용)
(1984.01월-1988년01월까지 4년; 가장 화목, 희망이 넘쳤던 중화동 시절 4년!)
1983년10월까지; 아들(중식) 경북 상주 <삼강당 약국>에서 근무하다
1984년60세 01월 1자(중식, 31세) 경기 하남시에서 약국 첫 개업하다
02월 딸(중임, 28세) 결혼하다
1985년61세 05월 서울 중랑구 중화동 신축연립(34평, 4500만?) 매입하여 이사하다.
(중랑구 중화동에서 전세2년,단독3년,연립6년 - 총11년 살다)
1986년 62세, .
1987년63세12월, 어머니(61세) 1子(중식, 34세) 결혼하다.& 하남시로 분가하다, 3년 따로살다.
1988년64세05월, 어머니(62세) 2자(중철, 30세) 결혼하다 & 화곡동으로 분가하다
1989년65세, 어머니 (63세)부터 울혈성 심부전증(CHF; 폐부종,숨참)을 앓기시작하여
1992년(66세)부터 심장약을 드시다.
02월. 큰손녀 혜원(예슬) 태어나다.
1990년 66세;
1991년 67세,10월 둘째손녀(지원) 태어나다.
11월 서울시 <아세아 볼트>퇴직하다 (11년 근무); ☆67세까지 직장다니다
-> 2000년(76세)까지; 하남시에서 약 8년간 아들약국도와주다.
...........................(맏며느리와 3代가 2년같이살던 시대; 술,제사시비로바람잘 날 없었다)
1992년(68세)03월; 서울 중화동 <대농연립>팔고,
경기도 하남시 <한진연립>으로 이사가서 아들과 합가하다.
1993년 69세;
1994년 70세 어머니가(68세)이 고부갈등-> 불편하여 거쳐를 <목동 주공A> 작은 아들집으로 옮겼고,
토일은 큰며느리불편해서 (목동)작은 아들집에 가셔서 머물고,
평일은 하남에 거주하면서 약국일 도와주다.(1994년70세 - 2000년12월76세까지 6년간)
☆ 제사도 둘째아들집에서 지내기 시작하다.
1995년 71세;
1996년 72세, 어머니(70세)부터 심장병이 악화되어 2년에 한번씩 입퇴원을 반복하셨고,,,
1997년 73세, 음주후 가끔 길을 잃어 파출소에서 가족이 모셔오다.-> 치매 전단계?...
부인(71세)은 <울혈성 심부전증;CHF>으로 누우면 숨이 차올라서
밤새도록 앉아서주무셔야만하는(기좌호흡) 고난을 돌아가실때까지 4년간 겪으셨다
...............................................................(치매 병환시대 약4년)
1998년 74세; 치매 전단계
1999년 75세부터 치매1기로 약을 드시다.
2000년 76세;
2001년77세02월, 치매2기로 작은 아들집(양천구 목동)으로 완전히 이주하다.
둘째 며느리가 환자인 시부모(식사-청소-목욕,,,)봉양에 마음고생을 더욱 많이하다!!....
(천사표; 긍정적 마인드, 배려, 봉사, 헌신을 실천하다!!...)
05월29일 1자(중식)의 셋째 손녀(규빈)출생하다
06월18일 부인 별세하다.(향년75세; 1989년 63세부터 울혈성심부전으로 12년 고생하다,
작은 며느리집에서 심부전 환자로 앉아서 밤새주무시며 노후7년을 보냈다)
2002년 (향년78세) 10월11일 별세하다. (병명; 폐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 바,
묘소는 고향 용산리 구추골 선영에 있고,
장자는 중식(약사), 딸은 중임(교사), 차남은 중철(공기업 K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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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이 본 아버지;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큰 뜻을 펴지는 못했지만
어려운시기에 언제나 "근면과 검소의 교과서"이셨음
●장남이 본 나의 어머니; 항상 묵묵히 내조하며 본을 보이셨다.
1.효도; 어머니는 맏며느리로서 홀 시아버지의 밥상,청소,빨래를 18년동안 모진세월 묵묵히 모셨다.
(1951.02월-1967.02월까지 고향에서 16년간,
1973.02월- 1975.02월까지 대구에서 2년간)
(작은 어머니는 1967.02월-1973년02월까지 고향에서 6년간 시아버지를 모심)
2.내조,화목; ㉮아버지가 약한 술에 실수가 많아도 당신부부간에 큰소리한번 오간 적이 단한번도 없었다
㉯ 1975-1979; 아버지 실직생활 5년간, 가장 어려웠던 시기;
1975-1976년, 대학2-3학년때 2년동안 (모기장,과일바구니 만들기,,등, 가내수공업으로
입에 풀칠하고, 등록금은 영천 논을 팔아서, 은행 학자금 융자받아서 냈다.
1977년은 대학4학년때 더욱 어려워서, 어머니(51세)가 칠성시장 노상에서 북풍한파
맞아가며 사과장사를 하셨다. (어머니는 가장 약하시면서 가장 헌신적이셨다)
3.교육; 어머니의 헌신으로 3남매를 언제나 자율적으로 반듯하게 키우셨다.
4.노후; 어머니는 힘든 병환중에도 항상 인내하며, 언제나 “다 내탓”으로 돌리셨다
1989년 63세부터 <울혈성 심부전증>을 앓기시작하다.
1996년 70세부터 2년에 한번씩 입퇴원을 반복하고,
1997년 71세부터 누우면 숨이 차올라 밤새도록 앉아서주무셔야만하는
고통을 4년동안 겪으셨다
<장남의 회고>; "행복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다", 배려와 정성과 봉사와 헌신해야만이 찾아온다.
1945년-1950년; 어머니는 아버지가 서울에서 은행다니시던,가장좋으셨던 신혼생활 서울5년,
1967년2월(중1)-1973년2월(재수) 대구 6년간; 대구로 이사와서 시집살이에서 해방되었고
아버지가 직장에 다니셔서, 가난하지만 단란했다.
1980년11월(일동제약 직장생활)- 1987년 12월(결혼직전) 서울 7년간; 내가 직장다니기시작하고,
아버지도 서울로 이사하여 취업하셔서, 희망이 있었고
내가 본 13년간이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평화롭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같다.
어머니는 당신부부간에, 자식간에
그 힘든 세월에도 큰소리하신 적이 단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