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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시인이자 실학자인 유금(柳琴, 1741~1788)의 시집 『말똥구슬』.
유금은 유득공의 작은아버지이며 연암 박지원 일파의 한 사람이다.
문학과 예술과 자연 과학에 두루 탁월했지만,
신분적 제약 때문에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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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척(銅尺)과 철규필(鐵規筆)*이라니. 기하(幾何)는 도대체 무덤 속에서 무엇을 제도(製圖)하려는 것인지. 밤새도록 눈이 내리더니 이제는 바람이 분다. 거세게 부는 바람 사이로 눈물이 비치고 흐느낌이 들려온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막막한 슬픔 앞에서 내가 떠올리는 것은 따뜻한 차 한 잔이다. 눈 내리는 밤 나귀 타고 찾아온 벗에게 건넨 난초꽃 차. 그는 술조차 대접할 수 없는 가난을 부끄러워했으나 흰 눈을 다관에 담아 끓인 차의 향내는 술을 향한 그리움마저 잊게 만들 정도로 곱고 아름다웠다. 다정다감했던 기하, 그는 영원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산 남자이기도 했다. 그 큰 꿈이 담긴 공간은 그러나, 매우 좁았다. 작은 돌에 인장(印章)을 새기는 그를 보고 벗은 이렇게 글을 썼다.
그는 돌을 쥐고 무릎을 바치고서 어깨를 비스듬히 하고 턱을 숙인 채, 눈을 깜빡이며 입으로 후후 불면서, 먹 자국에 따라 누에가 뽕잎 갉아먹듯 파 들어가는데 마치 실처럼 가늘면서도 획이 끊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모으고 칼을 밀고 나가는데 눈썹을 찡긋찡긋하며 힘을 쓰더니, 이윽고 허리를 받치고 하늘을 쳐다보며 ‘휴!’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벗은 노고를 마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그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가?”
기하는 벗의 질문에 담긴 안타까움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손잡이 꼭지에다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으르렁대는 사자 한 마리를 새겨 놓으면 그 놈이 내 방을 보호할 것이네. 이 믿음직한 인장에 내 이름을 새기고 서책에다 찍어놓으면 어찌 되는지 아는가? 서책들은 내가 죽어도 흩어지지 않고, 대대로 보전될 것이네.”
그 정도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조용하나 깐깐한 벗은 끝내 그의 속을 뒤집어놓고 만다. “진시황이 화씨의 벽(璧)을 깨뜨려 인장을 만들었다네. 그것을 천자의 상징으로 삼고 자신의 가문이 만세토록 천하를 다스리기를 꿈꾸었지. 그런데 그 꿈은 지금 어찌 되었나?”
황제도 영원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데 그가 뭐라 답하겠는가. 기하는 그저 무릎 위에 앉아 놀던 아이를 밀쳐내며 이렇게 대답한다. “어찌 네 아비의 머리를 희게 만드는 것이냐?”
느닷없는 사태에 당황해 눈을 둥글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기하, 내 주인이여. 벗을 탓하지는 마시게. 벗 또한 평생을 무언가를 기대하며 살았고, 그 기대가 끝내 충족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에 그리 말했을 터이니. 그러므로 벗의 깐깐한 투정은 사실은 그에 대한 속 깊은 애정과 염려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기하 또한 물론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승을 떠나기 전에 끼적거린 문장 속에서도 벗들을 떠올렸을 터.
지금 병들어 누워 있으니
창가의 나무 퍽 청초하여라.
맑은 바람 뜨락의 나무에 불고
장미는 꽃망울이 맺혀 있고나.
몸 굽혀 새로 지은 시를 적다가
고개 들어 피어오르는 흰 구름 보네.
술을 본래 좋아하는 건 아니나
흥치가 이르면 술잔을 드네.
사내자식 어리석어 책 안 읽어도
딸아이는 내 흰머리 참 잘도 뽑지.
벗은 뭐하러 찾아오는지
주인은 이리 오래 누워 있는데.
내리는 눈을 안주삼아
그랬다. 벗들은 기실 그를 무척 좋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한 잔뜩 찌푸린 밤에 막걸리 한 병 사들고 그를 찾아오는 수고로운 일을 하지는 않았을 터. 옆구리에는 이소경 한 권을 끼고, 막걸리 병을 흔들며 호기롭게 그의 문을 열어젖히는 벗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에 기대 앉아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를 웃음 짓게 만든 것은 어린 두 딸의 재롱이었다. 벗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오르는 그 순간 하늘에서는 눈이 똑똑 떨어졌다. 그 눈을 맞으며 벗은 웃음을 슬쩍 지우고는 짐짓 수틀린 척 입을 삐죽 내밀었다. “벗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군. 아이들이 그리 좋은가?”
당황한 그는 아이들을 서둘러 방으로 보내고 벗을 들인다. 좀처럼 화난 얼굴을 풀지 않고 있던 벗은 막걸리를 서너 잔 들이켠 후에야 비로소 편안한 표정을 보여준다.
내리는 눈을 안주삼아 둘은 술잔을 비워나간다. 막걸리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도란도란 이어지던 둘의 대화도 뚝 끊어진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벗의 울분. 이소경 위에 놓인 그의 성난 주먹. 벗보다 연상인 그는 벗의 주먹을 달랠 방법을 안다. 옆에 놓인 해금을 들어 광릉산 한 곡조를 연주한다. 유장한 곡조에 벗은 말없이 술잔을 든다.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 눈과 끊길 줄 모르는 음악. 유한한 생 속에 찾아온 무한의 흔적들에 벗의 울분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마침내 내리는 눈 소리만이 세상을 채운 그 순간 벗은 이렇게 소리친다. “막걸리 맛이 꼭 살구처럼 시기만 하구나!”
그 말을 들은 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뭐가 그리 불만인 게냐? 그냥 마시고 취하면 될 것을!”
벗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농이라도 들은 것처럼 배를 잡고 깔깔거린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그가 한 마디를 더 보탠다. “변덕스럽기는. 이번엔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겐가?”
또 다시 터져 나오는 벗의 웃음.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눈은 쌓여만 간다. 얼굴이 잔뜩 붉어진 벗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짐짓 모른 채 입을 다물고 있자 몸이 단 벗이 먼저 속내를 밝힌다. “올 적에는 달빛이 희미했는데, 취중에 눈은 깊이 쌓였네. 이러한 때 친구가 있지 않으면, 장차 무엇으로 견딜 것인가. 나는 이소 지녔으니 그대는 해금 끼고, 이제 문을 나서 이자(李子)를 찾아가세.”
이자라 하면 인장을 놓고 그에게 깐깐한 투정을 부렸던 바로 그 벗이다. 결국 그 날의 술자리는 눈이 그치고 해가 뜬 후에야 끝이 났다. 술과 눈과 흥은 끝났으나 문장과 우정마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와 벗은 시 너덧 편을 이어 지으며 숙취로 무거운 머리를 달랬으므로.
어둑어둑 저자도 끝난 곳에서
등불 하나 나직이 보이는구나.
북두성은 이마 위에 높이 떠 있고
삿갓 서쪽 초승달이 힐끗 보인다.
손님은 이소경을 품에 지니고
눈 오는 한밤중에 나를 찾았네.
그대의 불평한 마음을 알아
광릉산 한 곡조를 연주하노라.
해금은 가락이 붙지를 않고
막걸리는 시기가 살구 같구나.
한 곡조 연주하고 한 잔 마시며
무예 그리 즐겁냐고 웃으며 묻네.
등불도 스러지고 추위 더해도
술자리 오히려 벌여 있다네.
흘연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창밖의 흰 눈에 술이 깨누나.
여의주와 말똥구슬 사이
기하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기하가 기하인 까닭은 그가 기하에 능통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이 금(琴)인 까닭은 그가 거문고 연주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벗이 묘사한 모습에서 드러난 것처럼 그는 인장을 파는 데에도 능했으며 심지어는 수차를 만드는 재주까지 지녔다. 기하와 금과 인장과 수차는 벗들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였다. 벗들은 늘 그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경외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난했고 쓸쓸했다. 그의 자탄 한 구절.
그렇고 그런 30년 인생
부귀와는 담을 쌓았네.
밤비에 수심이 쌓이고
추풍에 감개가 많아라.
그 이유는 깊이 탐구할 거리도 못 된다. 그의 벗이 그를 찾아와 투정을 부리고 울분을 터뜨린 것과 동일한 사정을 그 또한 지니고 태어났으니. 그는 서얼이었다. 서얼의 괴로움에 깊이 공감하되, 그 자신은 명문 귀족가의 자제였던 또 다른 벗은 그에게 말똥구슬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그러면서 벗이 든 것이 바로 한쪽 발에는 목화(木鞾)를 신고 다른 쪽 발에는 갖신을 신었으면서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했던 임제의 사례다. 사실 같기도 하고 전설 같기도 한 그 사례를 통해 벗이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중(中)이었다. 오른쪽과 왼쪽의 사이, 목화와 갖신의 사이에 진실은 있는 법, 내가 그대를 말똥구슬이라 부르는 것은 실은 여의주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니. 아니 보기에 따라서는 여의주일수도 있고 말똥구슬일 수도 있는 그 사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니.
그렇다고는 하나 결국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여의주보다는 말똥구슬로 본다는 것이 사태에 대한 냉정한 관찰일 것이다. 그는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가 성을 지닌 그의 벗은 명문 귀족보다도 더 단단하게 자신의 정신을 채찍질해가며 평생을 살았으며, 박가 성을 지닌 그의 벗은 예리한 칼날 같은 언사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가며 평생을 살았다. 이가도 아니고 박가도 아닌 그는 그가 쓴 시집에 말똥구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말똥구슬이라는 말이 제 시집 제목으로 너무도 잘 어울립니다.”
덕분에 말똥구슬이 된 나는 그의 심중을 읽었고, 그 독서 덕분에 그의 또 다른 이름 탄소(彈素), 즉 줄 없는 거문고를 탄다는 그의 이름에 담긴 비밀을 왠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벗들도 마찬가지일 터. 그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지금 그리하여 벗은 나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읊는다.
무릎에 기대 놓고 거문고 타니
강개하여 곡조를 맺지 못했네.
한때 즐거웠던 그들의 추억을 기리며 읊었다고 하나 이 구절을 어찌 기림의 뜻으로만 볼 것인가.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분다. 동철과 철규필은 그와 함께 세상을 하직한다. 기하는 이제 아무것도 제도할 수 없다. 오직 그것만이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다.
『양환집(蜋丸集)』 해설
기하(幾何) 유금이 자신의 시를 모아 『양환집』(번역서의 이름은 ‘말똥구슬’)을 엮은 것은 1771년, 그의 나이 31세 때의 일이었다. 시집만큼, 혹은 시집보다 더 유명한 것이 박지원이 쓴 서문이다. 임제의 이야기를 소개했지만 황희 정승의 이야기 또한 무척 재미있다. 이가 옷에서 생긴다고 주장하는 딸과, 이는 살에서 생긴다고 주장하는 며느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황희는 이렇게 일갈한다.
“무릇 이는 살이 없으면 생겨날 수 없고, 옷이 없으면 붙어 있지 못하는 법이니...... 이란 놈은 땀내가 푹푹 찌는 살과 풀기가 물씬한 옷, 이 둘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이 둘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거늘, 바로 옷과 살의 ‘사이’에서 생긴다고 해야겠지.”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와 두루 교우했던 유금의 저서는 모두 산실되고 오직 『양환집』만이 전한다. 그의 인장도 효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의 시를 엮은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은 그가 품 안에 넣고 중국에 갔던 덕분에 문명을 얻게 되었다. 『한객건연집』의 성공을 나는 그가 찍었던 인장 때문이라고 믿고만 싶다.
* 동척은 구리로 만든 자를, 철규필은 쇠로 만든 컴파스를 뜻한다. 유금에 대한 지식은 박희병이 엮은 『말똥구슬』(돌베개)을 통해 얻었다. 인용된 시문들은 『말똥구슬』과 『정유각집』(돌베개)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인장 관련 부분은 김명호가 옮긴 『연암집』(민족문화추진회)에서 인용했다.
- 설흔(『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저자)
- 출처 : 기획회의 298호(2011년 6월 20일)
첫댓글 오래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네요.
배움의 즐거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