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있기에 기도와 찬미를 (행16:16-34)
우리나라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슈퍼스타K의 시절이 찾아왔다.
과연 2012년 슈스케4의 주인공은 누가 될지?
단순히 노래 잘하는 가수를 뽑아 낸다기 보다는 그네들의 애절한 사연이 있다.
그 사연에서 절실함이 묻어나와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의 깊이가 무명의 사람이었던 이들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해주는, 인생 역전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프로그램이었기에 공중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임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이루어 내게 했고, 여러 공중파 방송에서는 이에 질세라 아류작들을 흉내들 내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해 슈스케3의 주인공 울랄라세션에 대해 말하려 한다. 팀의 리더의 헤어스타일이 관심을 보이자 그의 병력이 나오게 되었다. 위암 3기. 실제로는 위암 4기였다는 것.
방송에서 뿜어져 내는 퍼포먼스의 열정은 환자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사기극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더 많은 심적 아픔을 겪게 하기도 했다.
수십 차례의 항암 치료로 인해 오게 되는 고통을 참아내며 4개월이라는 사형선고와 같은 의사의 말을 듣고도 무대에서 멤버들간의 각별한 애정과 끈끈함으로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실력은 더욱 빛을 발해서 지금까지 케이블 출신의 슈스케1, 2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진정한 뮤지션으로 자리하는 데에 있어서 거침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위암4기의 환자인 리더 임윤택에게는 사랑스런 아내가 생기고, 하늘이 준 건강한 2세의 출산을 기다리게 되는 더 꿈만 같은 일이 그에게 생긴 것이다.
위암 4기. 수술을 통해 위를 절제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항암 치료를 통해 더 이상 다른 곳에로 전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 가운데 그는 무엇이든 최선이기를 바라며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때마다 울랄라세션 그들에게는 병치레 하는 이를 건성으로 낑겨 준 그룹이 아닌
진정 노래와 춤이 즐거운 프로페셔널한 그룹으로 흥겹고 멋진 무대로 모두에게 기쁨을 준다.
미사리에서 무명으로 있었던 그들에게 스타의 길을 가게 해 준 무대.
암 투병으로 인해 무리가 될 수도 있었던 무대이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그 어려움 보다는 노래와 춤을 통한 자신들의 기대치를 이루고 싶은 그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밤중에 기도와 찬미하는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지하 감옥 깊은 곳에 쇠사슬에 묶인 채 갇히기 전 낮에 맞은 채찍자국의 아픔가운데 있었다. 어찌보면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의 한 밤중은 일생일대의 환란의 때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다.
그들에게 닥친 이 환란과 불행은 얼핏 보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났던 것일까?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에겐 죄나 잘못이 없었다.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한 것밖에는...
바울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시아로 가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오히려 환상가운데 한 사람이 나타나 “마케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주님의 그 명령에 순종하여 마게도니아의 도시인 빌립보에 왔던 것인데 그곳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그곳에서 강가에 있는 기도처로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들린 한 여종의 영혼을 만났다. 그래서 그 여종에게 들었던 귀신을 쫓아내어 그 영혼을 구원하고 자유케 해 주었다. 그랬는데 그 여종이 귀신으로 말미암아 점을 쳐서 그 이득을 봤던 주인들이 물질적 소망이 끊어 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가 거짓고소를 한 것이다. 그래서 매를 많이 맞았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것. 이 얼마나 억울한 일 아닌가?
다시 정리해서 본다면,
첫째로,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마게도니아로 온 것,
둘째로, 그곳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 등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한 일,
셋째로, 기도를 열심히 한 일,
넷째로, 귀신을 좇아낸 일.
말하자면 주님을 위한 일꾼으로써 열심히 일 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는커녕 오히려 곤경에 빠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그곳에서 한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함으로써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불평도 원망도 아닌 기도와 찬미함이라???
찬미할 이유 1-시선의 초점이신 하나님.
문제와 환란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했다는 것은 그들의 시선의 초점이 그들이 당하고 있는 문제에 있질 않고 하나님께 맞춰졌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찬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의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무불 속에 던져진다. 불의 세기를 평소보다 칠배나 더 뜨겁게 했다. 그래서 그들을 집어넣던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불 기운에 타 죽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보려고 그 곳을 들여다보던 느브갓네살 왕이 놀라 말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그리고 그들을 그곳에서 나오게 한 후 말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이와 같이 바울의 조상 때로부터 전래되어 온 그 믿음, 곧 환난의 불구덩이에서도, 지하 감옥에서도 오히려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기대되어지는 믿음이 있다면 문제가 아닌 하나님이 바라봐지기 때문에
탄식이 아닌 찬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찬미할 이유2-예수의 흔적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건강한 상태에서 기도하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채찍에 맞아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여 마음에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죄도 없이 착고에 묶여 갇혀 있었다. 그것은 곧 고난 받은 예수님의 모습.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감사했던 것이다.
감히 죄인의 육신과 성정을 가진 우리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그가 받았던 피 흘림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바울 일행은 그토록 사람들에게 모욕당할 이유가 없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다. 매를 맞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맞았고 모욕을 당했다. 마음에 깊은 상처가 왜 아니 있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피흘림이 내게 있다면 그것은 영광이요, 자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의 찬미가 절로 나온다. 잘 감당하도록 드려야할 우리의 진정한 기도의 제목이다.
몇일 전 심한 복통으로 인해 이저리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혼자서 힘겹게 응급실로 향했다.
지난해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뭔가 큰 병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었다.
병원에서 진통제를 4대나 맞고서-3대 이상 맞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함-겨우 진정된 다음 이런 저런 검사를 마친 결과 요로결석.
난 고통 가운데 찬양할 마음이 없었다.
기도할 마음도 없었다. 어지간히 아프면 기도하며 고쳐주시길 바라기도 하는데
너무 아프니까 도리어 병원에서 어떻게 해 주기만을 바라는 얕은 나의 믿음을 보게 되었다.
심한 복통 가운데 나는 하나님께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질 않았다.
참으로 내 자신이 돌아봐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저 내일 모레 딸아이가 귀국하는데 누가 데리러 가나, 다음주에 요나 선교 학교는 어떻게 가나 하는 인간적 걱정이 앞서면서 혹시 맹장이라서 수술과 동시에 입원하면 어떻게 하지?
더 큰 병은 아니겠지?...그래도 불평과 원망은 안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대하질 않았다.
위암 4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부푼 기대를 안고 무대에 오르는 가수.
그 가수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가수가 되겠다는 기대에 올해도 수많은 사람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난 그 어떤 기대도 없이 흘러가는 목회현장에서 덧없이 지내고 있었다.
큰 기대도 없었고, 부풀어 있지도 않은 영적 상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기대심리도 없었다. 그래서 찬송치도, 기도치도 않는 믿음 없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 찬송하게 하셨다. 기도하게 하셨다.
다시 말해 기대가 생기게 하셨다.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과 은혜의 감격이 다시 기대되어지게 하셨다. 전에 받은 은혜가 기억되어지면서 더 큰 은혜를 갈망하게 하셨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도 그렇게 하실 거라는 믿음이 형성되면서
위축되어 있는 믿음의 연약함에 큰 힘을 불어 넣어 주셨다.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회복되었기에 기도와 찬송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찬송과 기도의 기대치를 직접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셨군요. 설교는 바로 자신속에 녹아진 것을 말할 때 더큰 감동과 은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