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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송계계곡 한송초등학교앞 슈퍼
아침에 한송 초등학교와 명오리 고가에좀 다녀 와서 시장에 나가 보려고 이 슈퍼앞 주차장에 차를 세
워 놓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오는것을 본 저 노인 슈퍼맨이 손사래를 치며 얼릉 나가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갈때 나가더라도 이유나 알고 나가야 될것 같아서 차창밖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는 왜 그러시냐
고 물어 보았다
그래도 노인 슈퍼맨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귀찮다는듯이 손사래만 치는것이었다. 마치 그 모습이 파리
쫓을때 손을 휘젓는...꼭 그 모습이였다. 단 한순간에 존심이 먹칠된 나는 여기 차를 세우면 안 되는 장
소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제서야 노인 슈퍼맨은 기다렸다는듯이 입을 열었는데 이곳은 개인 사유지고 자기 땅이니 어서 냉큼
나가라는 시늉을 번복한다
나는 결국 그곳에서 노인 슈퍼맨과 그 노인 슈퍼맨의 아들인 청년 슈퍼맨에게 떠밀리듯 추방 당해 버리고 말았다. 어쪄 ? 저들은 저 큰 주차장과 공원이 모두 자기네 땅이라는 막강한 슈퍼맨들인데...
저 슈퍼맨들은 원래 이 동네 슈퍼맨들이 아니라고 한다
10여년전에 서울에서 이사를 온 슈퍼맨들이라나...
김세균 판서 고가와 한수 명오리 고가앞 안내 표지판 - 화살표는 60m 지점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결국 나는 도로옆 안전지대에 차를 세워놓고 한송초등학교와 김세균 판서 고가, 그리고 명오리 고가
로 들어갈수 밖에 없었다
김세균 판서 고가와 한수 명오리 고가, 그리고 한송초등학교는 이곳 송계계곡에서 약 60m 지점인 아주
까가운곳에 위치해 있다
한송 초등학교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한송 초등학교와 한수 명오리 고가, 그리고 김세균 판서 고가로 들어가는 입구는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송계3리 시내버스 간이 정류장에서 보면 바로 보인다
한송 초등학교 뒤로는 월악산 최고봉인 영봉이 보이고 바로 오른쪽으로는 한수 명오리 고가와 김세균
판서 고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제천시보다 충주시가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행정구역은 제천
시 한수면으로 편입돼 있다
한송 초등학교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한송초등학교는 일제시대인 1932년에 처음 간이학교로 인가 되었다고 하는데 1984년에 이곳 송계리로
이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전인 1998년에 이곳에 중학교를 설립하여 지금은 한송 초, 중학교로
불린다
한송초등학교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한송"은 한수면과 송계리의 첫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인듯 했다. 한수 초등학교 현황을 보면 유치원생
이 13명이고, 초등학교생은 32명, 중학생은 총 14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저 학교는 유치원생과
초등생, 그리고 중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학교이다
월악산 자락의 한송 초등학교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이 한송 초등학교 바로 오른편으로는 충주댐 공사로 인하여 물속에 잠겼던 한수 명오리 옛집을 그대로
옮겨서 재현시켜 놓은 고가가 자리잡고 있다
한수 명오리 고가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한수 명오리 고가 안내 표지판
한수 명오리 고가 (寒水 鳴梧里 古家)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 5호
소재지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이 집은 본래 한수면 명오리 303번지 풍무골에 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에 지금의 자리
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집의 구조는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바깥)채로 되어 있어 거의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안채
는 안방을 기준으로 정남향하고 있으며, 안방, 좌측에 부엌, 우측에 웃방이 있다. ㄱ자로 꺾어 마루방과 사랑방이 있다.
사랑채는 북측으로 안사랑이 있고, 서향하여 대문이 있으며, 남쪽으로 사랑, 외양간, 방앗간, 광이 배열되어 있다. 안채의 구조는 이 지역의 일반적인 3칸 툇집을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어 민가 가옥 구조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예이다.
한수 명오리 고가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그러니까 이 한수 명오리라는 마을은 지금으로 부터 25년 전인 1983년에 충주댐이 완공 되면서 모두
물속에 잠겼던 마을이다. 당시 물속에 잠겼던 마을은 한수 명오리라는 마을 뿐만 아니라 충주댐에서
구단양까지 약 50Km가 넘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모두 물속에 잠긴 것이다
50Km면 100리가 훨씬 넘는 거리다. 그 100리가 넘는 남한강변 마을이 모두 저런식으로 물속에 잠겨
버린 것인데 구 단양은 읍내 전체가 거의 물속에 잠기다 시피 했다
한수 명오리 고가 대문 -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한수면(寒水面) 명오리 고가 (鳴梧里 古家)
어떤 사람은 내가 "명오리 고가"라고 하니까 무슨 옛날 명월이들 살던 옛날 술집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
도 간혹 있는데 한자에서 보시다시피 명오리의 '명' 자는 울 '명'자고 '오'자는 오동나무 '오'자 이다
그러니까 물속에 잠기기전의 명오리라는 마을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던 마을이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수 명오리 고가 - 월악산 송계계곡 송계리
한수 명오리 고가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관리 차원에서 살고 있는듯 했다
송계계곡에서 바라본 한수 명오리 고가
월악산 송계계곡에서 바라본 한수 명오리 고가와 김세균 판서 고가
명오리 고가옆에 있는 기와집은 조선 순조때 이조판서를 지냈던 김세균 판서의 고가인데 원래는 한수
면 북노리에 있었다고 한다. 한데 저 북노리 마을 역시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물속에 잠기자 일부는 충
주로 옮겨지고 일부는 이곳 송계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충주댐 완공으로 거대한 호수(충주호)가된 남한강
지금으로부터 25년전인 1983년 충주댐 완공과 함께 남한강 강변마을이 모두 물속에 잠겼다. 물속에 잠
긴 마을은 충주의 충주댐에서부터 남한강 상류인 구 단양까지 약 50Km 구간의 광범위한 지역이다
때문에 이런 광활한 충주호를 바라보면서 "참 환상적인 풍경이다" 라고 감탄을 자아내기 전에 저 물속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월악산 송계계곡옆으로 옮겨진 한수 명오리 마을과 김세균 판서의 고가도 저 광활한 호수속 어딘가에
잠겨 있을 것이다
첫댓글 추차 때문에 많이 속상하셨겠네요..고향땅인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