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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청주시 /청주시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로, 한국 중부 내륙의 행정·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최근 중추적인 공업지역으로의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상당구(上黨區)·흥덕구(興德區), 북문로3가(北門路三街)·북문로1가·북문로2가·영(榮)·남문로1가(南門路一街)·남문로2가·문화(文化)·서운(瑞雲)·서문(西門)·남주(南州)·석교(石橋)·수(壽)·우암(牛巖)·내덕(內德)·율양(栗陽)·사천(斜川)·탑(塔)·대성(大成)·사직(社稷)·사창(司倉)·모충(慕忠)·영운(永雲)·금천(金川)·용담(龍潭)·명암(明巖)·산성(山城)·운천(雲泉)·신봉(新鳳)·용암(龍巖)·용정(龍亭)·방서(方西)·산남(山南)·분평(粉坪)·미평(米坪)·수곡(秀谷)·성화(聖化)·개신(開新)·죽림(竹林)·가경(佳景)·복대(福臺)·봉명(鳳鳴)·송정(松亭)·강서(江西)·석곡(石谷)·휴암(休巖)·신전(薪田)·현암(玄巖)·동막(東幕)·수의(守儀)·지동(池東)·서촌(西村)·비하(飛下)·석소(石所)·정봉(丁峰)·신촌(新村)·신성(新城)·평(坪)·신대(新垈)·남촌(南村)·내곡(內谷)·상신(上新)·원평(院坪)·문암(文巖)·송절(松節)·화계(花溪)·외북(外北)·향정(香亭)·지북(池北)·평촌(坪村)·운동(雲東)·월오(月午)·장암(長巖)·장성(長城)·주성(酒城)·외하(外下)·외평(外坪)·외남(外南)·오동(梧東)·정북(井北)·정상(井上)·정하(井下)·주중(酒中) 등 2개구 82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상당구 북문로3가동이다. 면적 153.46㎢, 인구 617,254(2003), 인구밀도 4,023.8명/㎢(2003).
청주시 전경 /청주시 전경
개신동 등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이 고장에 오래전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청주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상당현(上黨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685년(신문왕 5)에 청주에는 서원소경(西原小京)이 설치되고, 757년(경덕왕 16)에는 서원경(西原京)으로 개칭되어 정치·군사상의 요지였음이 행정구역에도 반영되어 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청주(靑州, 뒤에 淸州로 바뀜)로 이름이 바뀌고,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牧)을 둘 때 청주목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전절군절도사(全節軍節度使)가 파견되었다가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바뀌었다. 1018년에 전국에 8개 목(牧)을 설치함에 따라 다시 청주목이 되고,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청주는 주(州)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청주목을 유지하면서 충청도의 정치·행정의 중심지였으며, 1651년(효종 2)에는 충청도의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되어 충청도의 군사적인 중심지도 겸했다.
그러나 역모사건 등으로 1656~67년, 1681~89년, 1804~13년, 1826~34년, 1862~71년 등 여러 차례 서원현(西原縣) 등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청주의 별호는 낭성(琅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공주부 청주군, 1896년에 충청북도 청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비입지인 주안면이 회덕군으로, 덕평면이 전의군으로, 두입지 수신면이 목천군으로 이관되어 청주의 면적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1908년에 충청북도 관찰부가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되어 충청북도의 행정중심지가 되었으며, 1914년 군면폐합에 의해 문의군이 폐지되고 청주군에 병합됨으로써 면적이 확장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청주군의 26개면이 13개면으로, 문의군의 7개면과 회인군 1개면이 5개면으로 폐합되어 총 18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때 동주내면(일부)·북주내면(일부)·남주내면(일부)의 통합된 청주면이 1931년에 청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46년에 청주읍이 청주부(府)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에 청주시로 개칭되었다. 청주시의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1963년에 사주면, 1983년에 강서면이 청원군으로부터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1995년 상당구와 흥덕구 2개구가 신설되었다.
무심천 /무심천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내린 시의 동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랑상의 구릉지가 연이어 있고, 북쪽으로 충청북도 최대의 곡창지대인 미호평야가 펼쳐져 있어 대체로 저평하다. 시의 동쪽에는 선도산(先到山:547m)·상당산(上黨山:492m)이 솟아 있으며, 상당산에서 갈라져 나온 우암산(牛巖山:338m)이 시가지 동쪽에 급사면을 형성하고 있다. 서쪽에는 부모산(父母山:232m)·제전봉(祭典峰:151m)·수타리봉(126m) 등이, 남쪽에는 망월산(望月山:266m)·꽃산·헌병대산 등이 있다. 시가지 중심을 남에서 북서로 흐르는 무심천은 청원군 가덕면 지역에서 발원하여 청주시가지를 지나 원평동 부근에서 미호천에 합류한다.
무심천변에는 곳곳에 범람원이 많아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했으나 수량이 적고 유역면적이 협소하여 하천양안 평지는 대부분 시가지화되었다. 북쪽의 오창들, 미호천 연안의 신대들 등이 절대농지로 남아 있다. 그밖의 하천으로는 시의 서쪽을 흘러 미호천에 합류하는 석남천과 무심천의 지류인 미평천·명암천·율양천 등이 있다. 명암저수지·용정저수지를 비롯하여 소규모의 방죽들이 서쪽과 남쪽에 산재해 있어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기후는 중부 내륙분지에 위치하고 있어 기온의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성이 나타난다. 연평균기온 11.6℃ 내외, 1월평균기온 -3.5℃ 내외, 8월평균기온 25.3℃ 내외, 연평균강수량 1,216㎜ 정도이다. 가을철에는 분지의 지형적 특성과 대청댐의 영향으로 안개가 많다. 식생은 침엽수림과 낙엽수림이 혼재되어 있다.
충청북도의 중심도시로서 시역의 확장과 함께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1963년 청원군 사주면을 편입한 이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1980년대 청원군 지역의 편입이 가속화되면서 증가폭이 더욱 커졌다. 1970년의 인구는 14만 3,944명이었으나 1980년에는 25만 2,985명으로 10년간 75.8%가 증가했으며, 1991년에는 45만 5,148명으로 1980년에 비해 79.9%가 증가해 엄청난 증가폭을 보였다. 1996년에는 53만 1,677명으로 1991년에 비해 16.8%가 증가해, 증가폭이 줄어들고 있다. 1996년 현재 인구이동상황은 전입이 10만 9,956명, 전출이 10만 4,049명으로 전입인구가 더 많으며, 전입·전출 모두 도내이동이 많다. 도심 인접지역인 우암동(2만 117명)과 아파트 단지가 많이 있는 모충동(2만 6,549명)·사창동(2만 570명)에 인구가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도심에 해당하는 문화동·북문로1가동·남문로2가동의 인구는 1,895명으로 상주인구가 가장 적은 곳이며, 서문동(2,066명)·남주동(2,243명)도 인구가 적게 분포한다.
청주시 상당로 /청주시 상당로
충청북도 제1의 도시로 상공업의 비중이 높으나 무심천과 미호천 부근에 일부 비옥한 농토가 있어 1차산업의 비중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총경지면적 45.01㎢ 가운데 논 27.90㎢, 밭 17.11㎢로, 경지율은 29.3%이다(1996). 주요경지는 용암동·용정동·방서동·강서동 등지에 분포해 있다. 쌀을 비롯한 사과·복숭아·포도 등의 과일류와 채소류 및 인삼·잎담배·땅콩 등이 생산된다. 강서동에서는 한우가, 율양동·사천동·강서동에서는 젖소의 사육이 활발하다. 1991년 2개의 금속광이 가행되었으나, 1996년 현재 모두 폐광된 상태이다. 시내의 총 345개 공장에서 3만 6,402명의 종업원이 일하며, 그 가운데 47개소의 공장이 복대동·강서동·송정동 일대에 조성된 청주공업단지에 분포한다. 주로 섬유·식품·피혁·전자 공업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체이다. 청주공업단지의 총면적은 4.05㎢이며, 제1·2·3 단지로 구분되어 1969~88년에 연차적으로 조성되었다.
1987~92년에는 제4단지가 조성되어 제조업체들이 입주하고 있다. 수도권 공업분산정책과 풍부한 시설부지, 편리한 교통 등으로 중부내륙의 중추적인 공업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주요공장으로는 금성계전(주)·(주)럭키·청주방직·(주)정식품 등이 있다. 이곳의 시가지는 일제강점기에 구성읍(舊城邑)을 중심으로 우암산 구릉과 무심천 주변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북문로와 남문로 일대에 중심상가가 발달했다. 최근 시가지가 교통로를 따라 북쪽과 무심천 서쪽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여서 이곳으로 여러 도심 기능들이 옮겨가고 있다. 청주시의 상업은 조선시대부터 청원·진천·음성·보은 등지를 상권으로 하는 농산물의 집산지로 발달했다. 상업활동의 중심지인 영동·문화동·서운동 지역에 각종 행정·금융 기관과 상가·위락시설이 밀집해 있으며, 봉명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비롯해 서문시장·중앙시장·북부시장 등 15개의 상설시장이 있다.
충북선이 시의 북부지역을 지나며,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에서 경부선에 연결된다. 경부고속도로가 시의 남서부를 지나고, 중부고속도로가 시의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청원군 남이면 남이분기점에서 만난다. 진천-대전을 잇는 국도가 시가지를 남북으로 지나며, 충주-공주를 잇는 국도가 시의 중앙을 동서방향으로 지나다가 시 중심부에서 방향을 북서쪽으로 바꿔 통과한다. 그밖에 청주-상주를 잇는 국도가 시의 남부를 지난다. 서울까지는 1시간 30분, 대전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도로총길이 676.68km, 도로포장률 60.8%이다(1996).
단호사철불좌상 /단호사철불좌상(고려), 보물 제512호, 높이 ...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3, 사적 3, 중요민속자료 5),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21, 무형문화재 1, 기념물 10)가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개신동·율양동 등지에서 출토된 타제석기와 내덕동·율양동의 선돌이 있다. 그밖에 청동기시대 유적지로는 사천동·용담동·성화동 등지가 있으며, 봉명동 월명산은 철기시대 유물인 세형동검과 토기가 출토된 유적지이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청주신봉동백제고분군(사적 제319호), 산남동고분군과 산성동의 상당산성(上黨山城:사적 제212호)을 비롯해 정북동토성(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와우산토성·부모산성·당산토성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운천동신라사적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와 용암동 보살사(菩薩寺)의 청주보살사극락보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6호)·청주보살사5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5호)·청주보살사석조이존병립여래좌상(淸州菩薩寺石造二尊竝立如來坐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청주보살사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8호), 정하동의 마애비로자나불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우암동 용암사(龍巖寺)의 비로자나불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호) 등이 있으며, 남문로2가동의 용두사지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국보 제41호), 사직동의 청주용화사석불상군(淸州龍華寺石佛像群:보물 제985호)·칠존미륵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호), 운천동의 청주흥덕사지(사적 제315호), 용정동의 순치명석불입상(順治銘石佛立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모충동의 청화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대성동의 청주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9호)·청안향교(淸安鄕校: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 용정동의 신항서원(莘巷書院:충청북도 기념물 제42호) 등이 있다. 주요건축물로는 남문로2가동의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 북문로1가동의 청주동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수동의 청주성공회성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9호), 신전동의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탑동의 양관(洋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3호), 남문로1가동의 망선루(望仙樓: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남문로2가동의 조헌전장기적비(趙憲戰場記蹟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6호)·영규대사전장기념비, 수의동의 송상현의 묘소, 신도비, 충렬사, 모충동의 모충사 등이 있다. 충북대학교 박물관에는 순성좌리사등공신녹권(順誠佐理四等功臣錄券:보물 제716호)과 많은 민속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남문로2가동 중앙공원에는 수령 900년 된 은행나무인 청주압각수(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가 있다.
청주시는 대청댐, 속리산국립공원 등 주변의 관광지를 연결하는 관광거점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시내에는 명암약수, 상당산성, 3·1공원, 중앙공원 등의 관광지가 있다. 상당산성은 석성으로 산성 밑에 탄산질을 함유하고 있는 명암약수가 있는데 숲이 울창하여 연중 많은 시민들이 모이는 곳이다. 시내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청주목의 관청이 있던 곳으로 청녕각과 조중봉비(趙重峰碑), 청주압각수가 있다. 3·1공원은 수동 우암산 입구에 있는 공원으로 이 고장 3·1운동 발기인들의 동상이 있으며, 그밖에 명암동에 있는 명암저수지는 주위의 산세와 어울려 낚시와 보트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연간 관광객수는 2만 9,412명이다(1996).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대성동의 청주향교, 용정동의 신항서원, 분평동의 구계서원(龜溪書院), 내곡동의 송계서원(松溪書院), 운동동의 운곡서원 등이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청남초등학교의 전신인 광남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1907년에 주성초등학교의 전신인 청주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11년에 청주농업학교의 전신인 청주공립농업학교가 개교했다. 1945년 8·15해방 전까지 충청북도에는 총 7개교의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5개교가 청주시에 설립되었다. 1996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99개소, 초등학교 38개교, 중학교 23개교, 고등학교 22개교가 있으며, 고등교육기관으로 사창동에 청주전문대학, 개신동에 충북대학교, 내덕동에 청주대학교, 모충동에 서원대학교, 수곡동에 청주교육대학이 있다. 특수학교로 탑동의 청주맹학교와 정신박약아 및 지체부자유아를 위한 금천동의 청주혜원학교, 사창동의 청주혜화학교, 신봉동의 청주성신학교가 있다. 총학생수가 16만 4,323명으로 시 전체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며(1996), 중학교 수보다 고등학교수가 많은 전형적인 교육도시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의 문화시설로는 충북문화예술회관·청주예술원·청주시민회관·청주문화원 등이 있으며, 한국국악협회 청주지부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망월제, 단오절에 단오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밖에 청주시립교향악단·합창단·국악단과 청주국립박물관·청주시립도서관이 있다. 이 고장에 전하는 민속놀이는 농악·씨름·자치기 등이 있으며, 구전되는 설화로는 〈남석교전설〉·〈가자골〉·〈천석골 전설〉 등이 있다. 민요로는 〈안팡게소리〉·〈각설이타령〉·〈메밀노래〉 등이 있다. 1996년 현재 종교기관으로는 개신교 교회 395개소, 천주교 교회 18개소, 불교 사찰 68개소, 유교 교당 1개소, 원불교 교당 3개소, 기타 교당 11개소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4개소, 병원 3개소, 의원 204개소, 치과의원 93개소, 한의원 80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신체장애자시설인 사창동의 충북재활원, 신봉동의 충북농아복지회관과 양로원으로 사천동의 천주교성심양로원, 운천동의 청주양로원이 있으며, 그밖에 영아원 1개소, 육아원 2개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