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는 강원도뿐 아니라 한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보기 드문 곳이 하나 있다. 테라로사라는 이름의 커피 공장이다. 그러나 공장이란 말 말고 뭔가 다른 용어는 없을까 고민될 만큼 이곳은 공장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외양부터가 저기 알프스 산록의 통나무 별장처럼 멋지다. 내부는 커피를 볶는 기계인 대형 로스터가 기계 아닌 장식물로 여겨질 정도로 분위기가 카페적이다. 입장료로 3,000원만 내면 오후 7시까지 머물며 고급 커피를 원하는 대로 여러 잔 마실 수 있다. 이런 여러 매력 때문에 이제 개장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강릉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테라로사(terarosa)’란 포르투갈어로 커피가 잘 자라는 보랏빛 땅이란 뜻이라고 한다. 테라로사라는 이름의 상표로 커피를 내고도 있다. 서울의 앰배서더호텔, 코리아나호텔 등에서 그의 커피를 쓴다고 한다. 기존의 국산 커피보다 몇 배 더 비싼데도 굳이 테라로사 것을 사간다. 김용덕 사장은 커피에 몰두한 지 고작 3년이다. 놀랍게도 그 기간동안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커피를 낸 것이다. 국내에 커피 전문가가 여러 명 있지만, 이렇듯 대량으로 상품화에도 성공한 사람은 김용덕씨가 거의 유일하다.
워낙이 마니아적 기질이 강한 사람이기에 그가 몰두한 3년은 그저 3년이 아니다. 요사이는 바빠서 잘 못 가지만, 그는 한때 등산에 빠졌을 때 대청봉을 매주말 연이어 열 번을 오른 적이 있다. 통틀어서는 대청봉 오른 횟수가 180번쯤 된다고 한다. 조흥은행 근무할 때는 배낭 메고 출근하기 일쑤였고, 추석 연휴 때는 택시를 대절 내서 성묘 다녀오고 곧바로 산으로 가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그는 건축에도 음악에도 빠졌고, 이제는 커피에 빠진 것이다. 수많은 커피 서적을 구해 읽고 세계 각지의 커피 산지와 유명 커피샵을 둘러보았다. 일본의 명문 샵에서 종업원으로도 일했다. 그 끝에 비로소 테라로사를 차린 것이다.
그의 테라로사에서는 분기마다 커피와 와인을 무료로 제공하는 연주회를 열어왔다. 3월22일 공연은 재즈라고 하니, 진짜 에스프레소 커피 맛도 보고 강릉 경포 앞바다 구경도 할 겸해서 한 번 들러볼 일이다. 테라로사 주변은 온통 산수유나무 천지인데, 3월이면 꽃이 만발해 별천지를 이룬다.
“여기 커피 맛 보고나면 앞으로 괴로울 것”
김용덕씨는 우선 커피 굽기 구경부터 시켜주었다. 섭씨 200도로 올렸다가 100도까지 내리기도 하며 순간마다 기압도 체크하는 등 온 신경을 집중하기 20여 분-. 어느 순간 그는 레버를 내렸고 흑갈색의 커피가 구수한 커피향을 내며 와르르 통속으로 쏟아져 내린다.
등산동호인들과 가장 친숙한 기호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술과 커피가 첫째 자리를 다툴 것이다. 그러나 술에 비해 커피 문화는 너무도 단조롭다. 술은 소주, 양주, 막걸리에 요즈음은 포도주까지 갖가지로 바꾸어가며 음미하면서도 커피는 대개 ‘봉지 커피’ 단 한 가지로 그만이다. 술에 비할 때 다양함이나 질에서 커피는 거의 유치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커피를 하루 한두 잔으로만 줄이거나 애써 멀리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가 속이 쓰리거나 아니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라고 대답한다. 테라로사의 김용덕 사장은 “그건 싸구려 산패(산화하고 부패)한 커피를 마시고 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커피도 분명 음식물의 한 가지입니다. 오래 두면 상하는-. 그런데 원두 생산 때부터 농약 치고 수입 과정에서 또한 방부제를 뿌린 싸구려 커피를 대개 마시고 있죠. 한국인의 90% 이상이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대개는 베트남산 로부스타(robusta) 커피를 수입해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로부스타 커피는 평지에서 농약을 다량 써서 재배하는 데다 고지대 것보다 카페인이 많게는 4배쯤 되죠. 게다가 우리나라 커피는 유효기간이 무려 2년입니다. 일본은 단 한 달이구요. 요새 서울서 유행하는 스타벅스 커피도 3~4개월이죠. 우리나라 커피, 마시면 속이 쓰릴 수밖에요.”
그러면서 그 자신은 좋은 커피를 제대로 내서 마시는 덕분인지, 하루에 커피를 30잔쯤 마시지만 속이 쓰린 적도, 잠이 오지 않은 적도 없다고 한다. 커피는 볶은 이후 5~10일 숙성시켜야 하며, 그 후 10일에서 보름 사이일 때 맛이 절정이라고 한다.
고산지대에서 나는 고급 커피일수록 카페인이 적지만, 그러나 커피 맛에서 카페인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카페인은 담석증 같은 데엔 오히려 좋다고 한다. 녹차에 카페인이 더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엔 10여 개소에 불과하지만, 일본엔 마니아급의 로스팅샵(직접 커피를 구워서 내는 집)이 무려 2,500개나 된다고 한다. 각 샵마다 경이로울 정도로 커피 굽기와 맛 내기에 뛰어난, 20~30년 경력의 바리스타(barista), 즉 커피 다루는 전문가가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가 지정 기념일로 커피의 날(10월1일)이 있을 정도로 일본은 커피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도 그는 전한다.
“이곳 테라로사 커피에 맛을 들인 뒤엔 이런 류의 커피 맛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고통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내가 잘 났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커피 수준이 아직은 그만큼 낮다는 뜻이라고 그는 부언한다. 요즈음 서울에서 인기인 에스프레소(espresso)커피는? 그는 대답은 않고 씨익 웃고 만다.
“커피는 음식과 같습니다. 과거에 통일벼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들 맛있어 했습니까. 하지만 이젠 통일벼 밥 못 먹습니다. 커피도 똑 같아요. 서울의 요즈음 에스프레소 커피는 쌀로 비유할 때 그 통일벼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르는 도구와 필터 정도는 배낭에 챙겨야
에스프레소란 ‘속성(速成)으로 내렸다’는 뜻인데, 빨리 내리기에 카페인이 거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대개 여러 종류의 원두를 섞어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낸다. 에스프레소 커피는 이탈리아가 워낙 뛰어나다고 한다. 서울서 유행하고 있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일종인 카푸치노(Capuccino)는 이탈리아 카푸친 수도회 수도사의 수도복에 달린 두건인 카푸친과 무늬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커피 1, 우유 1, 우유거품 1 정도의 비율로 섞으며 위에 초컬릿이나 계피 가루를 얹어 마신다. 카페라떼(Cafe Latte)는 커피 1에 우유 3 정도로 섞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말한다.
커피는 숙명적으로 대량 생산한 것은 마니아가 정성들여 구워낸 것의 맛을 당해낼 수 없다며 그는 서울 청담동의 커피미학, 안암동의 보헤미안, 종로구 부암동의 클럽에스프레소, 사당동의 엘빈, 경주의 슈만과 클라라, 울산의 빈스톡, 포항의 아라비카, 대구의 커피명가 등을 추천할 만한 커피 전문점으로 소개한다.
테라로사 커피는 가회동에 있는 서울영업소(743-1643)에서 소량도 살 수 있다. 100g 들이 한 봉에 5,000원(고급 코나커피는 20,000원,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30,000원). 20잔 정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대개 커피는 원두 10g(약 60알)에 한두 잔 빼서 마신다고 한다. 악성 베토벤은 항상 원두 60알을 깨지지 않은 것으로 골라 커피를 내어 마셨다고 한다. 베토벤도 커피쪽에서 말하자면 까다롭고도 뛰어난 바리스타였던 셈이다.
맛은 손으로 내린 것이 최고, 반자동기계로 내린 것이 그 다음이요, 전자동기계로 낸 일반적인 호텔 커피가 최하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그보다는 커피 자체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
커피는 하와이의 코나(Kona)와 자마이카의 블루마운틴(Blue Mountain) 두 가지를 세계 최상급 커피로 꼽는데, 그만큼 가짜가 많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는 와인처럼 커피 생두를 5~10년 숙성시키기도 한다. 코나 커피가 특히 숙성용으로 애용된다. 그러나 다른 커피는 대개 당해년에 생산한 것을 최고로 쳐준다. 블루마운틴은 일본이 총생산량의 80%를 소모한다.
하루 시간대에 따라 어울리는 커피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아침에는 부드러운 케냐산이나 자마이카산 커피가, 점심 때에는 수마트라산, 오후에는 이디오피아산인 시드모(Sidmo)나 이르가체페(Yirgacheffe)가 어울린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구분해서 마시기는 어려울테지만 아무튼 이제 산중 커피도 좀 제대로 된 것으로 우아하게 마셔보면 어떨까.
산에서 좋은 커피를 즐기려면 조금 정성이 필요하다. 거르는 도구와 필터 정도는 가져가야 한다. 원두는 마시기 직전에 가는 것이 좋지만, 아침에 갈아 밀봉해 가져가서 점심 때쯤 마시는 정도는 괜찮다.
커피는 내린 뒤 15~18분 이내 마셔야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내려받은 뒤 보온병에 넣어가서 점심 때쯤 마셔도 좋은 맛을 즐기는 셈이라고 한다. 온도는 70℃ 정도에서 커피 맛을 가장 깊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식었으면 살짝 다시 뎁혀도 좋으며,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프림을 넣는다.
◈ 원두 커피 즐기기
물은 끓기 전 85~90℃가 적절
1 구운 커피들. 같은 종류의 커피라도 굽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므로 전문가가 구운 것을 사는 것이 좋겠다. 가정용 로스터(굽는 기계)를 쓰는 이도 있다.
2 물 준비. 수온은 85~90℃라야 한다. 끓은 뒤 식히는 것이 아니라 끓기 직전에 써야 한다.
3 볶은 원두커피 갈기. 연하게 마시려면 조금 굵게(설탕 입자의 2~3배), 강하게 마시려면 설탕 크기보다 조금 큰 정도(1.5배)로 간다.
4 내리기. 쐐기형으로 생기고 바닥엔 구멍이 뚫린 커피 내리는 도구(드리퍼)에 필터를 끼우고 간 커피를 넣은 다음 밑에 코펠을 받치고 물을 붓는다. 커피 전체가 적셔질 만큼만 일단 부은 다음 조금씩 물의 양을 늘인다. 이 때 위로 거품이 부풀어 올라야 신선한 커피다. 물의 양은 커피 10g(옅게 마시려면 5g)에 물 150cc를 부어서 120cc만 받아서 마신다. 나중에 떨어지는 30cc의 물마저 받으면 카페인과 쓴맛이 너무 강해진다. 김용덕씨는 50g을 굵게 갈아서 물을 빨리 부어 300cc 받아서 3잔으로 나누어 마시기를 좋아한다.
5 각종 커피 분쇄기. 분쇄기(그라인더)는 국산과 대만제가 많이 유통되고는 있으나 날이 별로 좋지 않다는 평이다. 곱게 갈아야 하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어 마시려면 독일제 작센하우스(11만 원선)가 좋다고 한다(사진 3의 제품).
◈ 에스프레소 커피 즐기기
1 에스프레소 전용 용기에 간 커피 가루를 꾹꾹 눌러 담는다.
2 밑 용기에 물을 붓고 위쪽 용기를 결합한 다음 가열한다. 잠시 후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커피 물이 위쪽 용기로 옮겨진다.
3 에스프레소 커피. 아래쪽이 수동으로, 위쪽이 전용 기계로 뽑은 것이다.
4 에스프레소 커피의 일종인 카푸치노. 카푸친 수도사들이 입는 외투 모자의 무늬가 위에 형성되었다.
5 각종 에스프레소 커피 도구들(2~3잔용). 4만~5만 원에서 25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