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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대기실의 초대형 창문을 경계로 주기되어 있는 비행기들, 거북이걸음으로 활주로를 오가는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솔희는 벌써부터 피곤에 쩌든 듯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다.
현재 시각 4시반, 5시에 활주로를 이륙하면 보스톤 시각으로는 밤 10시지만 엘에이 시간은 7시 좀 지나서 공항을 나오게 된다.
결혼한 여자가 원래 둥지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웬지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솔희는 아이폰에 저장된 제이와 시골데이트를 하며 찍은 셀카를 보며 어젯밤과 방금전까지의 제이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어젯밤 솔희가 제이의 콘도에서 지냈고 오늘은 그전처럼 솔희가 둘의 아침식사를 챙긴뒤 제이와 함께 그녀의 아파트로 왔다.
솔희는 점심시간이 되자 바쁘게 행장을 챙기면서도 정성껏 한국식 음식으로 준비하여 제이에게 점심을 해먹였다.
제이와 지내는 하루, 그리고 남편 정균과 지내야할 하루는 같은 날 안에 포함되어 있다.
가끔 솔희는 솜씨를 발휘해서 정균에게 식사를 대접해주곤 했지만, 이토록 의무감이나 이벤트성이 아닌 자발적인 정성을 가미하여 음식을 남자에게 대접해보긴 처음이다.
결혼한 여자에게 부여된 짜증나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 여자가 자발적으로 이렇게 할수 있다는 것에 솔희는 스스로도 놀라고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Jay, 참 너도 싱거운거니, 오지랖인거니? 그런데 그게 네 매력이긴 해”
그녀의 아파트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가진후 짐을 쌌을 때 제이는 그녀의 얼굴을 힐끔 보고 한마디 했었다.
(솔희야, 두달만에 멀리 떨어진 남편만나러 가는데 화장좀 하고 가지? 분명 좋아할 것 같은데)
(휴우.......부부란 편안한 관계여야만 해, 내가 아침에 산발된 머리와 눈꼽낀 얼굴로 침대에서 늦잠을 자고 팬티바람에 그이가 누워 있던 침대 시트에 방귀를 뀌어넣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그런 편안한 관계....그래서 결혼생활에 매리트를 갖고 있는거야. 그 사람한테 화장한 얼굴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해야할걸? 은근히 나한테 바라는게 많아서리)
(난 이래서 누구와도 결혼에 비관적이지, 남녀의 신비감이 해체되어 버리기 때문이야. 하여간 존중한다, 민솔희 선생님.)
마지막으로 쏭(T)팬티 두장을 비닐에 넣어 가방에 담던 솔희는 어이없다는 식으로 제이가 한 말을 반박했는데 내친 김에 정균에게도 말하지 않은 친정 부모의 은밀한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신비감이 안 없어지고 결혼생활을 하는 것 바로 우리 엄빠! 엄마는 집에서 저녁때 늘 화장을 하고 아빠를 기다렸고 잠들때조차도 화장을 안 지웠어. 얼마나 불공평했는지 아니? 아빠는 거만하게 쇼파에 앉고 엄마는 맞은편 마룻바닥에 죄인처럼 무릎꿇고 살았어)
(아아......네 엄마 대단한 정성이시네?)
(정성........! 그게 말이지 아빠는 때때로 엄마를 심하게 꾸짖었고 엄마는 땅바닥에 무릎꿇고 혼나면서 고개숙이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고. 난 보고들은게 그거니깐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자라다보니깐, 에잉? 이건 모?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세상에 그런 일이?!)
제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의 놀라운 관계를 이야기하는 솔희를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솔희는 초탈한 사람마냥 혹은 넋두리마냥 이야기를 잇는다.
(근데 엄마는 당신의 그런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는거였고 여자로 태어난 특권이라고 날 가스라이팅했어. 엄마는 날 5살때부터 피아노 렛슨으로 밀어 넣었고 사사건건 감독하는 독재자였어. 미국오기 직전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날까지 조금만 내가 거슬리면 나한테 회초리를 들었지. 그러다가도 아빠만 보면 확 얼굴색을 바꾸고 천사모드로 스위치! 존경할만한 분이시지)
(그렇게 사는 것 또한 너희 부모님의 선택이었을 뿐이야)
(자기들끼리 그렇게 사는건 내 소관이 아니지, 다만 난 내 엄마처럼 살면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결심했으니깐. 아직도 엄마 아빠는 그러고 사셔. 나도 그분들 생활 존중해,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 인생관에 대해서 절대로 인정을 안하고 당신 사신 모습을 내게 강요하지, 나도 너처럼 엄마랑 연락안한지 좀 됐어.)
(사연은 달라도 엄마랑 사이가 안 좋은 공통점은 있구나, 솔희야)
제이는 솔희를 설득하려 하질 않았고 그들간의 교집합을 끄집어 내며 가방 앞에서 넋두리를 하던 솔희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녀가 원한건 이성적인 설교가 아니라 이런 공감과 위로, 그리고 작은 포옹이었고 이 속에서 솔희는 해방감을 느꼈던 것같다.
넉넉잡고 서부시각으로 7시반이면 공항을 나오게 될거고 정균의 제안에 따라 한정식집에서 외식을 하고 들어가면 9시가 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균은 보스톤에 한식이 귀한 것으로 알아서 솔희를 몸보신시켜 준다고 예약을 걸어 둔 것이지만, 실상 그곳에서도 한식을 사먹을 기회는 많았고 솔희는 엘에이에서 주부살림 할때보다 오히려 자신의 한식단 자체를 더 잘챙겨먹고 있었다.
그래야만이 연습과 연주 스케쥴을 제대로 소화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까짓거 정균씨 앞에서 연기한번 하지. 지금까지 자연스레 그래왔던 것처럼, 낮에는 홈드라마 여주가 되기도 하고 잠깐잠깐 코메디안도 되고 밤에는 포르노 배우가 되는거고, 4박 5일 금방 지나갈거야”
솔희는 이제는 가기 싫어진 집에 가서 좋은 아내 구실을 하는 연기를 하기 위하여 쿨하게 비행기 탑승구로 걸어간다.
정균은 솔희에 대한 숱한 의혹을 가지고 착잡한 심정으로 공항에 나갔지만 출구에서 정균을 발견하고 길게 입술을 늘이며 함박 웃는 아내를 보고 그런 의혹들이 단박에 날아갔다.
아내 솔희가 그를 발견한 뒤의 정말 기쁨과 환희와 반가움에 찬 웃음같았기 때문이다.
찌아약!!
팔로스 버디스 집의 리빙룸에서 홈드레스로 환복하고 쉬고 있던 솔희는 자기도 모르게 온 힘을 다해 오른손바닥으로 남편 정균의 뺨을 올려 쳤다.
하도 세게 때렸기에 오히려 솔희는 오른손바닥이 얼얼했고 손목마저 잘못 어긋난 듯 싶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정균은 얼굴이 잠깐 돌아갔지만 너무나도 황당하고 놀라운 상황, 이 상황이 도대체 뭔지를 파악하지 못해서 놀랜 눈으로 솔희를 바라보았다.
솔희의 눈에는 불빛이 서서 작열하는 태양처럼 이글거렸고 굴곡과 직선과 라인이 조화된 예쁜 입술은 이그러져 있었고 희고 미려한 양미간에는 주름이 일시적으로 잡혀 있어서 아름다운 얼굴이 형편없이 왜곡되어 있다.
“어머, 노려보는 눈빛좀 봐, 뭘 잘했다고 노려봐? 자, 한 대 맞았으니 이제 당신이 날 때릴 차례에요. 태권도 3단이며 전방 수색대에서 살인특공기술 연마하셨다는 남편씨! 경찰 안 부를테니 맘껏 때려보세욧!”
정균은 아내 솔희가 도대체 왜 분노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고 그게 그리도 화를 낼 사건인지 헷갈렸다.
솔희는 정균 앞으로 한발짝 다가서며 고개를 치켜 세우며 계속 정균더러 자기를 때려보라고 도발했다.
그러나 정균은 이런 굴욕적인 가정폭력을 당하고 분노가 솟으면서도 차마 솔희를 때릴수가 없었다.
“여보, 솔희, 내가 어떻게 당신을 때릴수가 있겠어? 차근차근 이야기하자, 사연이 많아”
“어머, 그래요? 저는 감히 하아늘같은 남편님을 때렸으니 저만 나쁜년으로 만들겠다는거군요?! 당신은 착한 남자로 남는거고, 참 편리하고 영리하게 사시네?”
“여보, 당신 신경 섬세한 것 아는데, 내가 주방서 차한잔 끓여올테니깐 마시면서 컴다운하고 천천히 이야기하자. 당신 어디가서 얼굴이나 다른 부위 맞아본적 없지? 어려서 종아리맞던거 말고. 제발 만용부리지마”
“그까짓 차못마셔서 환장한 여자로 아세요?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성가대와 교회를 탈퇴하다니 얼마나 내 앞길에 심각한 걸림돌을 놓았는지 알기나 해요? 거기 음향이 웬만한 콘서트 홀보다 더 좋아요. 나중에 거기서 독주회를 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거기 신도들이 7천명이에요, 그래서 그곳 끈을 놓으면 안된다고요, 솔직히 지금 당신을 한 대 더 때리고 싶어요.”
솔희의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분노를 가끔 터뜨리는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했지만, 그녀의 분노는 계속해서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정균을 한 대 더 치고 싶다는 말은 솔희의 진심이었지만 솔희는 손바닥보다 오른손목의 스냅이 아파오기 시작해서 그를 때릴수 없었다.
그럼에도 끈질기고 포기를 모르는 솔희는 이번엔 왼손을 치켜올렸지만 정균의 오른손에 가볍게 잡혔다.
바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지만 정균은 천천히 그의 왼손을 솔희의 오른쪽 어깨에 얹었다.
조금도 힘을 주지 않은 듯 가벼운 호흡으로 정균은 솔희의 오른쪽 어깨에 얹어 오므린 왼손에 가벼운 기합을 조용히 넣었다.
“아아흐읍”
솔희는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엄청난 바위가 눌리우는 느낌을 받았을뿐 아니라 이상하게 호흡도 딸리기 시작했다.
이 손 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를 치려 하니 헛공기 소리만 신음처럼 그녀의 입술 바깥으로 나갈 뿐이었다.
솔희는 허리와 무릎이 꺾어져 상반신을 숙인 불안정한 자세가 되었지만 어깨에 얹혀진 정균의 손은 강력접착제로 붙은것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제발, 그마안.......아, 아파요.....아, 숨, 숨이 안 쉬어져........”
정균은 여기서 동정심과 애처러움에 솔희를 풀어주면 이내 다시 기어오를것이라 판단했기에 눈을 감고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솔희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도대체 무슨 급소를 잡힌건지 몸부림칠수록 고통이 심해져 움직일수가 없었다.
털썩!
솔희는 그의 단 하나의 손아귀조차 온몸으로 벗어날 수 없자 자세를 본능적으로 낮추기 시작했고 급기야 두 무릎이 땅에 닿았다.
땅바닥에 어쩔수 없이 무릎을 떨어뜨린 그녀는 완전히 무릎을 푹 꿇은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맞은 것도 아니고 꼬집히지도 않고 꺾인 것도 아닌데 알수 없는 이 아픔과 고통을 벗어나는게 급선무였고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것은 경찰 불러봐야 폭력으로 간주되지도 않을 것이다.
솔희는 그 누구도 이 공간, 이 상황에서 그녀를 구출해줄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고 그녀를 구출해줄수 있는 사람은 지금 알수 없는 기술로 그녀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남편 정균이 유일했다.
“아, 아, 여보........잘못, 했..어.요. 제발 저좀 풀어주어요......으”
“내 손 내 의지로 푸는 것이지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냐, 아직 멀었네”
“제발, 아아......용, 용서해 주세요”
“뭘 잘못했는데?”
“다, 당신때리고 화낸거에요.....왜 그랬는지 나도 몰랐어요, 제에발.......하아, 하아”
급기야 솔희의 눈물샘에서 물이 터져 나왔지만 그건 육체적 아픔을 느낄 때 일어나는 생리현상에 불과했다.
정균은 그녀에게서 다른 수상쩍었던 정황까지 이 상황에서 추궁했어야 마땅했지만 그녀의 눈물에 또 약해져서 손을 놓고 풀어주었다.
“당신이 주문한 무술들을 쓰면 당신은 죽던지 입원할거야. 그 과정의 고통은 말로 표현 못할거고. 내가 당신을 치는걸 거부한건 당신은 내 아내이기 때문이야, 내가 사랑하는 연약한 여자이기 때문이야. 내 힘은 당신을 외부 치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거지 당신을 제압하기 위한게 아냐. 당신도 남편에 대한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사람에 대한 존중은 해주었으면 해. 피가 AB형이니깐 이해해 달라던지 예술가라서 특유의 감정표현 이해해 달라는 부탁은 더 이상 안했으면 해”
그가 남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도 지켜달라고 아내 솔희에게 말한 것은 지금까지의 솔희의 차갑고 냉정한 태도와 불성실한 결혼생활에 대한 가슴 아픈 절규나 마찬가지였고 그의 피와 고통스러운 한을 담은 부탁이었다.
정균의 손바닥에 붙잡혀 있던 어깨가 풀리자 그녀의 호흡은 돌아와 안정되기 시작했고 콘크리트에 짓눌리던 것 같던 고통은 사라졌기에 일어설수 있었다.
정균은 솔희의 손목을 잡아 끌고 쇼파 옆자리에 나란히 앉힌뒤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녀는 못 이기는척하고 정균이 이끄는데로 그의 쇼파 옆자리에 앉았다.
“그 성가대 끼기 위해서 목사님이나 힘센 사람들한테 줄대고 기다린다던데 거기에는 십일조 인상같은 조건이 붙어. 십일조를 7백불이나 인상해 달라는데 버틴 나는 눈엣가시일거고. 대신 거길 나오면서 서열 2위목사님에게 직접 당신 두달치 사례비에 해당하는 헌금을 드렸고, 대장님과 지휘자님께도 정중하게 식사대접했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서이고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였어. 당신이 말할 틈을 안 주고 매섭게 나를 들이치기만 해서”
결혼 후 남편 정균에게 처음 당해 보는 이 알 수 없는 무력으로 인한 공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솔희는 이때 계속 남편 정균에게 맞장구치고 편들어주면서 이 상황을 타기로 했다.
“어머어머, 그런 일이?.........잘 하셨어요. 그리고 대장권사님이랑 지휘자 선생 접대한것도 잘하셨구요. 그런데 사람들 참 못됬네?! 어쩜 야비하게 그럴수가 있어요?”
“그게 세상이야, 일반대학 나오고 군대 다녀오고 사회생활하다보면 그런게 다 보여. 아예 뻔한 구구단에서 하나도 안 벗어나는 기초산수더라고”
솔희는 그 고통 상태가 풀렸다는 기쁨에 기분이 오히려 더 좋아진 상태가 되었고 정균의 말을 다정하게 듣고 맞장구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 샤워실로 간 솔희는 아까 정균에게서부터 느껴진 여러 강한 임팩트를 되새긴다.
(당신은 내 아내이기 때문이야, 내가 사랑하는 연약한 여자이기 때문이야)
그녀는 가슴이 애잔해져 올라오고 벅차면서도 잔잔히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에 휩쓸린다.
이토록 좋은 남편한테 그동안 얼마나 못되게 굴었고 또 지금도 몰래 못된 짓을 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게다가 그녀를 단 한손바닥으로 전신을 제압하며 용서 빌 것을 요구하던 정균의 모습에 알수 없는 신비감이 들었고 그녀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잡아주는 남성으로 자리매김되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남편 정균에게서 전혀 보지 못한 카리스마있는 지배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솔희는 5년 가까이 함께 산 남편 정균에게 새로운 모습을 만나고 그에게 이성으로서 새롭게 반한 눈 앞의 상황, 그녀 앞에 놓인 현실과 분위기에 충실하기로 했다.
(미안, 제이. 지금 네 흔적 씻어낼께 난 내 역할은 해야 돼. 그게 남편앞의 고된 의무만은 아닌것도 있기는 해)
솔희는 세면대 아래 설합을 뒤졌지만 질세척제와 도구를 보스톤으로 가져가고 이곳엔 없다는 것을 알고는 결국 탐폰 몇개에 비눗물을 적시는 편법으로 제이의 흔적을 씻어냈다.
무슨 마음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솔희는 파우더룸으로 옮겨 화장을 했다.
정균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잠자리 화장이다.
아무래도 오늘 하지 않으면 평생 그 남자에게 한을 남길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오늘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휩싸면서 울림을 받은 힘으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울 앞의 생얼의 솔희는 풀메이크업을 한 얼굴로 변신해갔고 마지막으로 다크핑크 립스틱과 펜슬로 입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맨 몸에는 챙겨온 쏭(T형)팬티 하나만 걸치고 가슴이 드러난 나이트가운으로 바꾸어 걸쳤다.
처음으로 남편을 위해 화장한 아내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정균을 보며 솔희는 애잔해졌다.
솔희는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그를 감동받게 해줄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솔희가 여태껏 그런 것에 인색했던 이유는 그냥 몸이 귀챦았던 이유가 첫 번째고, 두번째는 정균에게 정을 받거나 주지 않기 위해서였었다.
불이 꺼지자 정균은 솔희의 립스틱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키스를 부드럽고 신중하게 해주었고 얼굴을 부벼댈때도 그녀의 화장이 지워질까봐 마치 아기랑 볼을 부비듯 했다.
솔희가 느낀 정균과의 키스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생각했던 혐오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고 편안함과 아늑함을 안겨주었다.
그는 솔희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빗어 재껴주고 그녀의 몸 위에서 미소를 띠고 그녀의 메이크업이 된 얼굴을 한참 감상했다.
“당신 아내 화장한거 처음 봐요?”
“나와 둘만 있을때 한건 처음 봐”
“호호.......오늘 밤 길어요. 뻔한 마누라 얼굴 실컷 감상하면서 천천히 시작해요, 우리”
(엄마가 이런 식으로 아빠를 다뤄왔던거구나. 부부는 겉으로만 봐선 아무도 모른다더니 진짜 승리자이고 가정의 지배자는 엄마였던거야. 두분 아직 젊으시니깐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는 이런 방법으로 아빠를 쥐고 흔들겠구나. 그래서 엄마가 나한테 당신의 모습을 강요한것일수도 있어. 자식사랑은 하여간 끝내준다니깐)
그녀는 살짝 눈을 감으며 친정부모를 아주 찰나의 순간 떠올리며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옷이 모두 벗겨지고 정균과 본격적인 행사로 돌입했을 때, 솔희는 제이의 그 길고 크면서도 단단하고 끈기까지 있는 물건에 비하면 남편 정균 것은 확실히 못한 것이라 느꼈지만 웬지모를 안락함과 아무 걱정없는 평온함에 휩쌓였다.
정균이 솔희의 목 아래쪽으로 내려가 키스할때는 마치 충신에게 인사를 받는 여왕이 된 느낌을 즐겼다.
계속해서 솔희의 몸 구석구석에 정중히 인사하고 키스했고 솔희는 자기 배꼽 아래로 내려간 정균의 머리카락을 엄마처럼 매만지며 쓸어주고 가볍지만 연기가 아닌 진짜 신음을 내뱉는다.
어느때보다도 정균은 그녀의 몸에 신중하고 부드러웠으며 솔희는 아까처럼 남편에게 지배당한다기 보다는 존중받는 느낌을 즐길수 있었다.
솔희는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그가 주도하는 행위를 그대로 따라하며 받아들였다.
사실 솔희는 절대로 정균에게 허락하지 않은 후배위나 여성상위같은 체위는 이미 벌써 제이와 함께 즐겼기 때문에 그녀도 남자를 리드하는 방법과 그 쾌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섯불리 기술을 걸었다가 되려 의심받을수 있었기에 예전처럼 리얼돌처럼 있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다.
잔잔하고 따뜻하고 평화롭고, 상호간의 일체감을 맛볼수 있는 부부관계가 모두 끝난 뒤에도 정균은 몸을 이탈시키지 않고 그대로 그녀의 몸 위에서 솔희의 얼굴을 감상했고, 솔희는 정균을 위해서 함박 미소를 지어주었다.
솔희의 이때 마음은 진심이었다.
(당신은 내 아내이기 때문이야, 내가 사랑하는 연약한 여자이기 때문이야)
잠들 때까지도 솔희의 귓전에는 정균의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고 톤이 낮았던 이 말이 윙윙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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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즐겨주셔서 고마와요. 저도 더 노력할께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네, 재미지게 연재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