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해가 저물어 새날이 오기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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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영혼사랑 07.11.2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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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저물어 새날이 오기 전에 / 영혼사랑
한 해가 저물어 새날이 오기 전에 멀리 사는 우리 벗들을 찾아 손잡게 하소서.
수줍어 손을 못 내밀면 내가 먼저 내밀어 주고 혹여 서운한 마음이 있다면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고 사는 일에 바빠서 서로가 잊고 있다면 안부를 물어주는 마음으로 하나되는 우리 되게 하소서.
세월속에 떼묻은 오늘의 우리가 아닌 빛을 잃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내가 아닌 어린 시절 소박한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가 한해가 저물어 새날이 오기 전에 흩어져 사는 우리의 벗들이 사랑방을 찾아 위로 받고 새해에는 내가 받은 기쁨과 위로를 함께 나누게 하소서.
사랑하는 벗들이여!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평생의 선한 마음으로 추억과 우정으로 웃음과 그리움을 채워가는 고운 동심에 쉼을 누리소서. |
고향 / 영혼사랑
고향을 떠나는 날에 고향은 나를 품고 나는 고향을 품은 연어 한 마리가 되었다.
순간 순간 물밀듯이 파고드는 그리움에 하늘을 바라보며 참으로 깊은 속정으로 엄마를 그리며 친구들을 향하였다.
오늘처럼 이렇게 고운 봄비가 내리면 내 마음은 어느새 고향 들녘에서 쑥과 냉이를 찾아 마음의 샘을 이루고 그 깊은 세월이 영안을 이룬다.
무엇이 그 깊은 사술이 되었을까? 잃어버린 동심은 여전히 고향을 찾는데 세월이 변하고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그 품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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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 안에서 상을 조성하고 나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 일에 주의 성령은 이 새벽을 열고서 나에게 또 다른 지식이라는 옷을 하나 입혀준다. "기"라는 독음이었다. 그런데 그 기는 운을 이루는 율을 만나고 운을 이루는 시를 만나야 아름다운 성을 이룬다. 그 일에 나는 내가 고향을 떠나면서 대성 통곡을 하였던 그 상이 있다. 신작로에 주저 앉아서 그 엄청난 미지의 세계를 품고 고향을 떠나는 작은 아이는 두렵고 무서워서 털썩 주저 앉아서 울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해? 나 어떻하지? 나 공부하고 싶은데.. 그리고 나는 고향을 떠난 사람이 되어 있다. 기억의 실제를 확인하는 날 나는 얼마나 울고 울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내 기억이 그렇게 허울이 되어서 나를 이루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허성과 허체에 나를 시달리면서 나는 그 밤을 그렇게 몸으로 감당하는 인생의 숲들을 이룬다. 인생 25년과 인생 24년을 연합한다. 그리고 인생 14세와 인생 15세를 또한 연합한다. 그리고 내가 "고자"처럼 살 수가 없었던 것은 나는 여성이었다. 나는 여인이었다. 나는 엄마였다. 나는 아내였다. 나는 한 가정의 아름다운 생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삶에 진정으로 사랑이었고 진정으로 감사였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불어온 바람을 내가 누구를 원망하고 부모를 책망하고 나를 미워하는 일은 전혀 해 볼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늘 당하고 당하는 육체의 아름다운 전으로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목마른 자도 오고 배고픈 자도 오라는 정질이었고 물질이었던 것이다. 정이다. 영이다. 성이다. 품이다. 물과 피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아멘! 핵이다. 막이다. 체이다. 포이다. 원핵이다. 진균이다. 설사이다. 고사이다. 고통이다. 배고픔이다. 아픔이다. 진통이다. 암이다. 물이다. 진피이다. 내피이다. 골이다. 추이다. 석이다. 인이다. 코를 통하여 깊은 한숨이 밖으로 발생한다. 갑자기 배가 아프더니 복통이 일어나면서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항문근육을 통해서 혈이 묻어나옴을 확인한다. 이들은 얼마나 정미하게 나를 다루는지 나는 늘 당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조율이 되어지고 있다. 정과 미물이다. 정과 물질이다. 정과 품이다. 정과 예수이다. 정과 마음이다. 정과 생각이다. 정과 나이다. 정과 몸이다. 정과 단백질이다. 정과 사람이다. 정과 세포다. 정과 세포체이다. 아멘! *생명의 활동을 이루는 정혈과 신기라는 한의학으로 대행한다. 그리고 신념과 구음으로 학문과 정질이라는 신체안에서 기를 이루는 물질대사와 비 물질 대사들의 치열한 몸싸움을 연합한다. 설사기운이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일어나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생명의 창에서 일어나는 대뇌피질과 대뇌 반골과 대뇌 운동들이었던 것이다. 속이고 질이고 요이고 결이다. 숨체이고 숨결이고 숨이고 생이다. 그 이름으로 생혈과 생리와 생성의 물결은 리듬을 타고 내 이름으로 주어지고 일어나는 모든 육체의 운동들이었던 것이다. 사고와 의식이다. 생각과 몸이다. 생각의 주머니와 몸의 유성분이다. 그에 연합했던 2007년 3월 19일은 또 다른 흑암의 바람으로 성령의 일들이 역사하는 전혀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이 내 몸을 찾아오는 의식과 불수로 의지와 자아를 이루는 또 다른 성셈들을 이루었다. 대변과 소변 활동과 배뇨와 배변 활동으로 우리 몸을 주장하는 대뇌의 일이나 우리 몸을 다루는 성체의 일에 나는 크고 작은 기운들을 맞이해서 주의 거룩과 주의 이름과 주의 사랑으로 내 인생 45년을 넘어서 일어나고 경험하는 영생의 바람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연대기를 바로 알고 싶어서 영이 주장하고 성이 연합하는 그 허상과 허재들을 일일이 확인을 할 수는 없으나 의식과 불수로 의지와 불멸이 주고 받는 창이기에 고스란히 내 몸은 이들의 영육을 이루어가면서 이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경험하는 또 다른 자셈으로 성셈을 이루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여 그 빛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넘어의 빛들을 수용하는 머리와 몸과 마음과 육체라는 공간에서 한 바탕 몸싸움을 하였다. 크고 작은 일들은 생략한다. 그러나 "영서"가 무엇인지 주의 날에 생명과 삶으로 사랑과 기쁨으로 나의 주 예수가 되어지길 사모한다. 육체가 풀어지기 시작한 사건들이 주어졌는데 상식과 이론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경험들이었다.
이제 그 일에 삼강 오륜이라는 우리의 사고와 전승과 인내라는 우리의 의식을 가지고 구전 전승과 구음과 한음으로 한글과 육체의 아름다운 향들이 바로 세워지고 잃어버린 자성과 초자아들이 바로 나를 수행하고 수족하는 이성의 아름다운 베필들이 되길 기도하고 사모한다. 육체가 장애를 당하면서 생각의 물질은 엄청난 역사를 이루었다. 그 일에 이 카페는 늘 수난을 당한다. 그러나 그 일까지도 내가 이성적인 자아라는 관념에서 주고 받는 화술이 아니라서 이 카페에 무엇이 어떻게 흔적을 이루고 뿌리를 담아 놓았는지도 내 기억은 상을 이루지를 못하고 있다. 연상법에 문제가 생기면서 기억상실증이 가미했다. 그런데 그 일은 이미 내 고질 병으로 내 모든 환각을 이루었던 2006년의 삶에서 역행하여 35년이라는 비밀의 무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게! 그러면서 오른쪽 손이 오른쪽 머리 뒤통수를 긁으면서 말이 목소리를 통하여 주장되고 있다. 내가 몇살이야? 묻는다. 2006년이면 내가 몇살이야? 그리고 생각을 해본다(오른쪽 엄지발가락에서 움찔한다. 신경 전달 호르몬의 체계이다). 그리고 계산기로 계산을 해본다. 46살 - 35년, 11살이네! 9살. 10살. 11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내 기억으로 인쳐져 있는 상들이 우선적으로 연합해야 한다. 그렇지? 생각이 들어왔다. 1974년에 내가 졸업을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졸업앨범). 그리고 내가 26회 졸업생이란다. 아멘! 그러면 꺼꾸로 계산해 보면 네가 몇살에 국민학교에 들어갔는지 확인이 되겠지? 그렇지? 아멘! 왼손가락으로 74. 73. 72. 71. 70. 69 한다. 6년이다. 그러면 내가 60년에 태어났어! 61년에 내가 두살이래? 기가 막혀서! 내 나이 한살은 어떻게 해? 이것이 고자니라! 없는 세월을 음력으로 기준하니 나이가 더불이 되지 않겠느냐? 더블유가 아니라 더블이니라. 따불이라고 그러는데, 그렇지? 다시해봐. 왼쪽 머리를 긁는다. 다시 해봐! 60. 61. 62. "육십이"가 둘이란다. 방언의 소리가 발생하지만 직역 또한 가능하다. 발음은 정확하게 구사되지 않는다. 혀가 마비된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둘이냐고 정확하게 언어법으로 묻는다. 육십이가 어떻게 둘이야? 설명해봐! 다~~디!!다! 육십년에 내가 태어났어? 그렇지? 육십일. 육십이, 하면서 생년. 월. 일을 정확하게 날수로 계산하더니 정수네! 그런다. 그래서 양력이야? 하고 물었더니 몰라 난~ 하고 말이 주장된다. 만으로 환산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수라고 한다. 내 생일을 기준하면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육십이년 사월을 음력으로 넘기면 만으로 2년이 되는 날들이 주어진다. 오. 하나님. 아버지. 왼쪽 눈꼬리에 가득한 이물질이 어느새 연합했다. 눈물이 마르면 고체가 된다. 그런데 그 눈물은 자국을 남기기도 하지만 눈 곱이 되기도 한다. 혹은 부스름으로 변하기도 한다.
"고자"라는 단어부터 해지하고 독음으로 먹어야 한다. 그러러면 이 독음이 시사하고있는 영성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 깊이는 너무 깊어서 이 시의 믿음으로 이곳에서 연합을 해야 할지 선별을 못하겠다. 사건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영과 상이 조성하는 문맥은 맞다. 그러나 이 짧은 영성으로는 예수 이름에 영광이 무엇인지 바로 드러낼 수가 없는 시한이었으므로 "고자"라는 단어는 독음으로 우선 찾아보고 "고. 자. 질" 이라는 문자로 연합한다. '영'이 제어를 당하고있다. 그러나 정석이다. 일단은 "고자와 고자질과 고사와 고므레. 혹은 고물"이라는 단어가 우리 나라 말에도 영성과 복음으로 연합이 되어 있는지 알아 보아야겠다. 그리고 마저 연합한다. 63. 64. ,. 태숙아? 문자가 일어난다. 뭐 어떻게 하라고? 영이 혼성을 하는 것을 보면서 행동과 말이 주장되고 있다. 다시 연합한다.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다시해봐! 61년 4월이야! 6142. 6242. 6342. 6342. 6542. 6642. 6742. 6842. 6942. 7042. 7142. 7242. 7342. 7442. 아멘! 다시해봐! 61. 62. 63. 64. 65. 66. 67. 68 / 69. 70. 71. 72. 73. 74. 아멘! 음력으로는 아홉살이 맞다. 그런데 양력으로는 여덟살이다. 9. 8은 72다. 아멘! 방언이 간섭한다. 그리고 이건 나 잘 몰라! 라고 말이 조성된다. 그리고 12지장에서는 또 화답한다. 우리 몸안에 있는 대장. 소장. 막장이다. 12지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일단 연한부터 확인이 되서 왜 이 어질은 자기의 셈을 놓고 나는 여자인데 "고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고자는 성경책에서는 이사야서에서 발견한 단어이다. 혹은 문자이다. 혹은 생각이다. 혹은 성이다. 혹은 운이다. 혹은 연이다. 혹은 길이다. 혹은 인이다. 혹은 자이다. 혹은 품이다. 혹은 세이다. 혹은 말이다. 샬롬. 주어진 단을 세어보더니 본상이랑 합하여 12체가 주어진 것을 인지하고는 내 영이 참으로 기뻐한다. 그러나 몸은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지를 못해서 가만히 지켜본다. 구동성으로 뇌라는 이큐와 지큐라는 문화와 문물을 이루는 시력을 연합한다. 눈이다. 눈의 역활이다. 이들이 대뇌를 가지고 12지장을 이루는데 그 속은 참으로 무식하게 그대로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뇌는 지시하고 소뇌는 연합하니 육체는 완벽한 곱수와 쌍수를 이루면서 심장과 콩팥의 기능을 이루는 폐를 이룬다. 그리고 "간"이라는 단어적인 성경의 그 무수한 어체들을 돌아본다. 말은 문자를 이루지만 생명과 생령과 생기를 가지고 운혈하는 마음이고 생각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활자본으로 연합하고 있는 성경은 그 엄청난 모순을 이루고 있는데 전혀 그 이면과 측면의 영성들을 감지하고 내제하는 그 허술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란다. 그런데 그 예수는 물로만 온 분이 아니고 피로도 왔단다. 그리고 그 예수는 죽고 살아나서 40일 동안 복음의 증거를 남겼단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으니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내가 아버지께로 가서 또 다른 영을 너희에게 보내준다고 어술이 되어있다. 누구의 품현을 타고 들어온 빛줄기인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기이하고 오묘하고 엄청난 피의 역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 복음의 영성이다. 그런데 그 요한 복음은 예수 이름에 영광으로 창세기를 다루고 있으니 귀신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귀신을 때려 잡겠다고 내 자아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일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 때는 내가 그 일에 적용하고 선택하고 결단하고 행하지만 자아인지 귀신인지 전혀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몸으로 구타를 당하면서 완전한 욥타작을 이루고나서 그래서 정신 병원으로 끌려가지 않고 내 집에서 버티고 믿음의 주를 바라면서 온전히 몸으로 일어나는 증세들을 수용하고 덮어주고 사랑하고 아멘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자셈들이 인성을 이루는 기억의 본주를 꺼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주어진 연한을 세어본다. 그리고 아멘을 한다. 14아멘. 14아멘. 14아멘. 14아멘이다. 14곱하기 4는 56이다. 14나누기 4는 3.5이다. 신경통이 오른쪽 귀 뒷부분에서 감지되고 있다.
*아침 일곱시다. 작은 아들이 학교를 가야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생각으로 들어온다. 감짝 놀라서 아들을 깨우는데 아침을 굶을 생각하고 8시에 나가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엄마로서 아들이 아침을 먹지 않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주먹밥을 준비하려고 쌀을 씻고 있는데 14세가 아멘 3호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멘 65호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니까 인간의 연한이라고 하면서 아담의 나이로 연합한다. 그러나 오늘날에 인간의 연한은 7-8십인데 오십년은 어떻게 하려고 130년을 살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멘 3호는 늘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에 육체법으로 들어오면 늘 아수라장이 된다. 이들이 이루는 문자는 그 해를 넘고 밤을 지나면 또 다른 자셈으로 나를 만나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을 못한다. 8년과 6년이다. 그리고 팔짱을 낀체 혀는 자기일을 돕는다. 입 안 양쪽이 심줄이 돋아나 있다. 내 치아로 인함인줄 알고 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서 치통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 8년과 6년이라고 하면서 왜 6. 8은 4십 8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계산기로 육 곱하기 팔은 사십팔이 맞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거꾸로 팔 육은 사십팔이 맞음도 확인한다. 딸아? 서수니라. 곱수가 아니라! 나는 너의 영을 타고 흐르는 대뇌 물질이니라! 그런데 그 숫자로 해결이 되겠느냐? 몸이니라. 인체니라. 성이니라. 정이니라. 영이니라. 기운이니라. 그리고 기혈과 성물과 기운과 생령과 생기와 생체니라. 두뇌법이라고도 하고 지능 지수니라! 입 몸양을 이상한 동작을 이루면서 주어지는 문자이다. 묵음이다.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다. 오 하나님! 아버지! 칠 팔은 오십육. 눈이 지시하고 나를 찾고 있다. 아멘 삼호이다. 다시 역술하고 구술하고 주술해서 아멘과 아멘을 이루는제 3의 물결이다. 정신과 신경과 정신과 마음과 정신과 몸을 이루는 다양한 영상의 세월이고 영상의 빛들이다. 아날로그라고도 하고 십자가라고도 한다. 아날로그가 아직 뭔지를 모른다고 말이 주장된다. 그러면 십자가는 아느냐? 네 주님! 십자가는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조금은 앎이 되고 있어요! 그러면 아날로그는 그 십자가를 이루는 이면의 영성이고 지성을 이루는 뇌라는 감각체와 뇌라는 운동기관을 조율하는 심장과 콩팥과 신장과 간을 가지고 폐를 이루는 숨과 숨으로 좌심방과 우심방. 우심방과 좌심방의 일환으로 연합하여 들숨과 날 숨이라는 너의 고백에 주숨과 폐숨으로 나를 이루자꾸나! 그건 월경사건인데.. 월경 사건만 있겠느냐? 코피도 있고 하혈도 있고 폐경를 이루는 호르몬도 있지 않겠느냐? 어제 발견한 "냉한 기운을 이루는 '냉'이 있느니라! 우선 사전적인 기능부터 찾아보거라! 액체와 호르몬. '혈'질과 고자. 물과 피와 물과 숨과 물과 체와 물과 영이다. 샬롬
*))* "기"라는 단어가 주어졌는데 찾으려니 '시간'을 잃어버리기에 다시 기록해서 정확하게 인지한다. "기. 간. 폐. 혈. 물. 그리고 호르몬이다. 그들이 기운을 이루고 혈질을 조성하고 주장하는 하늘의 대천사중에 대천사인 예수 이름에 영광이었던 것이다. * 찬송가 136장이 내 영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시편 136장이 연합한다. 2006년 12월 29-31을 생각하면서 그때 연합한 시편 119편을 함께 연합하여 시편 139편을 이룬다. 부족하다. 미읍하다. 그러나 아멘이다. 아멘으로 수용하고 아멘으로 용서하고 아멘으로 적용하고 아멘으로 용서했다. 그리고 아멘3호는 완벽하게 내 안에서 피고지는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나를 일곱별을 안고 일곱남자를 품고 일곱여자를 죽여버린 자아라는 섬에서 초자아를 이루는 대뇌 무질을 이룬다. 주님 생각의 물질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운이 흐른다. 우리나라 "아리랑" 이라는 곡이다. 이 곡은 이유는 모르지만 2007년부터 내 가슴을 파고 들어서 2007년 7-8월의 사건과 더불어 문경 서 중학교 앞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시어머님과 두 아들을 품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그 엄청난 환시와 환각과 환영으로 시달리는 적용과 작용을 이룬 영적 대 문호를 이루었다. 그리고 나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단어를 늘 인지하지만 버리고 버린다. 그들이 이루는 사상이나 내가 이루는 사상은 조금은 다른 벽을 가지고 영을 다루고 인을 치기 때문이다. 다만 아멘 3호에서 아멘 7호로 그 이름에 아름다운 숨을 이루는 영과 혼과 물질이라는 그 충만한 상식을 이루는 이면의 영성들을 품고 돌아본다. "아. 리. 스. 토. 텔. 레. 스" 낱음으로 철자법을 이루더니 고자는 해결했구나! 말이 주장된다. 웃음 인자가 발생하면서 오 하나님 아버지!로 화답한다. 아리랑이다. 싹아. 배리. 물결랑이다. 그래서 이성과 지성으로 대뇌와 소뇌의 운동을 바라보면서 운동 보존의 법칙과 열량으로 대뇌 물질과 대뇌 피질과 대뇌 반구라는 이름에 합하여 준하고 준하여 합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시니라를 고백한다. 와~~ 내 영이 참으로 기뻐하면서 말이 목소리를 타고 주장된다.
"와~~, 혹은 와아, 혹은 "와!," 이다. 그러면서 양쪽 어깨의 근육 운동을 주장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인간의 뇌와 가슴과 흉부라는 배 문화를 연합하여 오장 육부라는 12지장의 일을 기다려본다. 혈질이고 물질이고 물체이고 물건이다. 성질이고 성향이고 성격이고 성품이다. 요한 복음 3장 5절을 더불어 합하여 연합한다. 샬롬(2009년 1월 22일 아침 7시 40분).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혀~~주~~셨~~네~~~~ 아멘! 영이 조성하는 것은 찬송가 3장이다. 그런데 음은 각색하여 "보혈의 사랑"이라는 시가 태어난 "생명의 빛"이라는 시를 가지고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골자를 이룬다. 이렇게 어려운 인간의 속을 어떻게 문자로 글자로 해결 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일에 목숨 걸고 자기를 팔아 버리는 그 힌놈의 골짜기를 이루려고 했다는 말인가? 묵상의 법으로 마음과 생각의 일을 제대로 절재하지 못했던 내 인생과 영생의 작은 숨체들을 돌아보면서 인간의 성세포를 이루는 인자라는 단어에 72라는 숫자와 부호와 문물을 연합한다. 대뇌 물질이니라 딸아! 주의 성령은 내 광대뼈를 살짝 긁어 주면서 글이 작성 되도록 돕는다. 지능이고 지수다. 이성이고 감성이다. 그들이 성과 성으로 영과 혼과 정이라는 배질을 가지고 성문학을 다루는 영혼의 깊은 시셈들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일에는 이면성으로 어둠의 깊은 골수들이 있음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인간의 연한이고 인간의 문물이고 인간의 성을 이루고 다루는 골이라는 두상과 인상과 형상과 물질들이 반비례하는 수한으로 그 연대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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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생명" "바. 영혼의 고백, 26. 27번을 연합한다. 원문을 수정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을 타고 흐르는 "아리랑"이라는 우리 나라 민요를 기록해 본다.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내 영이 주장하고 내 상이 기억을 주장하여 인지하는 그 음과 운들이다. 아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십~~도 못가서 발~~병~~ 난~~다." 다시 기록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대한 민국이라는 복음의 한을 드러내는 인간의 정을 노래하는 성물임을 고백하면서 정확한 악보는 아직 인지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충 리듬을 타보았다. 연합하겠느냐? 네! 말이 조성된다. 3박자 4음이다. 바음이고 도음이다. 3박자 사성이다. 도음이고 구음이다. 3박자 4음이다. 구체이고 음서이다. 그래서 도랑물이라는 그 고운 심성을 노래하는 "알밤. 고백. 버들피리. 아기새. 도라지꽃의 첫사랑."이라는 시심이 주어졌느니라! "붓꽃이 들어오는데 이 카페 어딘가에 적용을 받아 놓은 그림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찾아 보아야겠다. 주님! 감사합니다. 혼자의 길에는 그 모든 것을 감당 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둘이가 하나가 되는 이성과 이성으로 지성과 자성으로 주의 거룩은 성령의 온집으로 온성으로 몸과 혼과 영이라는 그 불멸의 기수들이 연합했나 봅니다. 찬송가 26장으로 "예수사랑"을 노래했던 시편 126편 5-6절을 연합하면서 그날에 있었던 문자와 음성을 돌아봅니다. "사랑이 사랑을 만나면 생명의 샘이 된다. 사랑이 사랑을 발견하면 생명의 샘이 된다. 사랑이니라. 오직 사랑이니라. 사랑이니라. 그럼에도 사랑이니라. 죽어야 사느니라!" 혼절하고 혼체하고 혼물하고 혼숙하면서 주어진 내제성으로 딸아!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물었던 그 주의 음성도 더불어 연합한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하면서 찬송가 260장은 운을 타고 흐르는데 찬송가 제목을 몰라서 그 찬송이 어떤 곡인지 몰랐다. "오직 예수의 사랑"이라는 문자만 기억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7-8월로 같은데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또 이 카페를 뒤져 보아야한다. 연상법에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뇨? 주님이 물었다. 나사렛? 그리고 일. 이 주일이 지나가면서 영은 나를 다루고 이루면서 어느날 찬송가 260장을 만나게 되었고 그 안에 있는 말씀을 찾아보니 시편 126편 5-6절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일어나는 빛줄기는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묻는데 나는 답을 몰라서 버리고 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는 시간이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트(엘레바도-브라질) 앞에서 나사렛에 무슨 선한것이 나겠느뇨? 또 다시 묵상이 주어졌다. 나사렛에 무슨 선한것? 나사렛? 무슨 선한것? 반복하고 반복하더니 나사렛에는 예수가 있다는 곳이잖아? 그리고는 또 생각이 일어나더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요!" 라고 답을 이룬다.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뇨?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요! 그리고 내 영은 참으로 기뻐하면서 "아날로그"라는 단어를 인침 받는다. "전자"로 일어나는 숫자들이다. 엘레베이트 안에서 호수를 드러내는 숫자였다. 그런데 "아날로그"라는 뜻이 정확하게 무엇을 인지하고 있는지 몰라서 언젠가 단어를 찾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나사렛과 나자렛이 연합하여 나를 이루는 주 예수의 창은 브라질과 뽈뚜게스라는 발음법과 소리이다. 그리고 그 이면의 영성으로는 어족이고 어간이고 간자체이고 어품을 이루는 어성들이다. 성세포로 연질하고 성상으로 음질한 그 모든 눈물의 시한들이고 시셈들이다. 난포와 난자라! 아니 나팔셈이 들어와야되! 그런데 나는 수정인자가 없지 않은가? 너의 부모성으로 품을 이루는 정자와 난자라는 세포체로 성물이 되어서 인자하고 예수하고 성자하고 예체하는 예품이 되어야해! 지능과 이성으로 이성과 지수를 이루는 대뇌 반사의 일에 호르몬이라는 여자의 성이야! 여자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여성으로 전환이 되는 신체적인 변화들이야! 14살과 월경을 이루는 생리와 육체의 아름다운 변화산들이다. 초등학문을 지나서 영이 자라고 육이 자라고 생각이 또 다른 생성의 원리들을 맞이하는 인간의 물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한 복음 3장 6절을 가지고 인간의 품과 물질을 이루는 대뇌 반사와 연골과 뼈질과 뼈세포를 이루는 호르몬의 작용들을 연합해놓는다. 자모음의 체계들이 품을 이루어서 주의 얼굴이 무엇인지 바른 인품으로 품격하고 인성으로 지성되길 사모하고 기도해본다. 아멘
봉숭아꽃
하얀 저고리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수줍어 고개숙인 여인의 마음.
해는 서산에 기울어지고
그리움이 까맣게 익어 눈물 되네.
어둠이 깔린 정적에 풀벌래 울음울고
긴 밤 하얗게 지새우며 새벽을 밝혀도
님은 오지 않고 외로움만 더해가네.
*))*선생님 / 아기새
젊은 날의 꿈을 담아서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심어준 선생님
배고픈 아이의 손을 잡고
새까만 보리밥에 김치 한 조각을 떼 주시며
“태숙아 많이 먹어라!” 씨익 웃어주신 선생님
고향을 떠나 이민의 삶을 살면서도
내 안에 고운 품으로 남아
늘 감사의 창을 이루어 주신 선생님
세월은 흘러 선생님은 떠났어도
내 모든 삶으로 심연을 이루며
아름다운 사랑의 품이 되어 주신 선생님.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젠 달려 갈 수는 없지만
따뜻하고 정겨운 마음을 잃지 않고 살도록
나를 지도 하여 주심을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글쓴이: 영혼사랑 07.11.23 21:57
http://cafe.daum.net/tcog/FLdw/123
*))* 오빠의 통곡에 화답하면서 / 영혼사랑
예수! 그 이름은 하얀 도화지에 생명빛으로 형형의 색깔을 담아 놓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방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영광의 보혈로 모두 덮어서 형형 색색의 아름다운 마음들이 살아납니다. 그 빛깔이 너무 고와서 두 눈에 맺힌 이슬 방울은 떼구르르 굴러서 주님의 손바닥에 떨어지고 주님은 조용히 나를 품어 주십니다. 하늘의 생명으로 내 본향에 갈 때까지 주홍같이 붉은 죄을 알게 하시고 나의 주님이 되어 주심을 찬송합니다. 주의 날에 마음껏 하나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아서 고운 빛과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날까지 오라버니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한 이 누이를 죄를 우리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주님여! 혈연의 아름다운 품을 이루고서 그 사랑이 되지 못한 나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주의 날에 내 울음이 해결되어 우리 주의 사랑으로 내 주 예수님의 얼굴 보길 원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온맘 다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인생을 팔아서 나의 사랑이 된 그대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벗입니다. 평생을 기도해도 눈물이 될 그대들을 온전히 품고 주의 십자가에 나를 올려 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생명이 영혼으로 영육의 건강을 되찾아서 내 주의 은혜로 걷고 뛰고 말을 하면서 그대들의 품에 귀속하길 기도합니다. 복음을 알게 하신 하나님! 오라버니의 영안을 넓히시고 예수 이름에 영광으로 그 깊음의 애곡을 평안게 도우소서 생명의 성령의 빛으로 한 형제를 허락하셨으니 주의 의를 이루시고 내 품을 세워주소서 주의 사랑에 화답하며 이민의 삶에서 승리해서 주의 영광이 되길 나를 돌아봅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유품으로 이 땅의 혈족을 이루시고 그 애통함을 받으심을 송축하면서 주의 법에 내가 있길 참으로 소원합니다. 셀라 |
출처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 영혼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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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소리와 생각의 일과 몸의 아픔과 생각의 갇힘을 먼저 발견한다. "영혼 사랑에게 보내는 오라비의 기도" 이 문자가 내제하기 까지는 참으로 아프고 서럽고 고픈 인생의 바람들이 밀물과 파도처럼 넘나드는 내 인생들이 있었다. 물론 결혼 후의 삶이다. 그러나 이민의 바람은 우리를 완전히 옥에 가두는 삶의 질고들을 마련했고 그 영적인 일에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형제들에게 눈물이 되기 시작했다. 이글은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에서 작성이 된 글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운영자" 라는 직위를 상실하면서 내 마음의 고백들을 이곳으로 옮겨 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상함"이었다. 인간의 사소한 만남으로 일어난 상함이 아닌 영과 영이었고 정과 정으로 빚어지는 "복음"이라는 공동체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차단하고 오직 내가 숨 쉴 곳이 그 공간 밖에 없었던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늘 드나들던 내 자리가 박탈을 당하면서 내가 주의 거룩으로 심령과 심성과 심신과 심체라는 공간을 이루면서 적용하고 수용하고 이행하고 직립했던 그 모든 본체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둠의 골짜기를 2007년 봄날에(2006년 12월22일부터 2006년 12월 31일까지의 영성과 복음과 성경과 성령이라는 인간적인 지물과 혼물) 그 비 본질적인 삶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인간의 성과 사람이라는 성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믿음의 물질과 진솔함으로 관계하는 물량만큼 그 이면의 영성들은 봇물이 되어서 상함으로 상처를 이루는 핏줄이 됨을 경험하면서 그 잃어버린 중간 고리들을 감당하고 수용하느라고 나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인성과 지성과 인격과 지격을 모두 쏟아 놓는 즈음들을 맞이하였다.
**))**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혼배하고 성사를 해서 정리가 되지가 않는다고 말이 주장된다. 기억이란 실제와 기억이라는 실체를 드러내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 기억은 우리 몸을 주장하고 우리 몸을 세우고 우리 몸을 다룬다는 것을 전혀 생각을 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 되었던 형제들과 두절하고 멀리하고 단절하고 외면한 시간들이 참으로 깊었다. 내 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내 상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일에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가지고 나는 부부이고 싶었고 한 가족으로 행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가 결혼 후의 이민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1986년 11월 28일을 내 기억이 강하게 인쳐 놓는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브라질로 이민의 삶을 선택하고 온 가족이 모두 모여서 살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였던 때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이렇게 엄청난 내 인생의 모든 바람을 꺾어 버릴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했고 나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브라질 생활을 하였다. 물론 사람 관계이다. 적응을 못하는 남편의 입장도 있었겠지만 그 외에 오빠하고 남편하고 새언니하고의 관계에서 나는 나도 전혀 모르게 고래 등에 새우가 되어서 이 깊은 사술에 말려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자폐증 환자처럼 남편 앞에서는 말을 못하는 실어증을 당하기 시작했고 피눈물은 피의 생명으로 나를 실족하는 일까지 만들었는데 나는 그 일에 적어도 양심이 있는 내가 왜 내 스스로 나를 다스리고 인지하고 기억하고 주장하는 이성적인 일에 나를 방치해 두었는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그리고 그 죽음의 사술을 끊어 버리겠다고 나는 십자가의 예수는 모르지만 내 믿음의 본주를 향하여 온전히 나를 올려 드리고 버리고 썩히고 꺾는 시작을 했다. 그 일이 1946년 생이라고 고집하고 주장하는 내 인새 46살 7월 23일을 가지고 일어나는 5개월의 삶들이다. 그리고 나는 2006년 12월 22일에 그 엄청난 상함들을 완전히 꺼내 버리겠다고 내 안에 울고 있는 어른 아이를 꺼내는 일을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바라고 믿음으로 용기를 내서 단행을 하였다. 그리고 내 미국에서 내가 이루고 행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수용했던 모든 삶의 조각과 내가 실수하고 내가 포기하고 내가 당하고 곡했던 그 상실과 절망의 뿌리를 완전하게 태우겠다고 십자가의 예수를 팔아 버렸다. 그 예수의 실제는 모르지만 내 마음으로 고백하고 내 마음으로 이루고 내 마음으로 행하는 수순들을 밟아가면서 나는 인생에 그 어둠의 바람을 꺾어버리는 시작을 했던 것이다. 영혼몸. 지정의. 의식주를 완전히 내려 놓았다. 그리고 미래진행형과 가족과 사랑이라는 물질까지도 완전히 포기하는 수순을 밟아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내 인생 45년과 내 인생 46년을 믿음의 물질을 바라면서 꺾어 버리는 숨체를 이룬 것이다. 2006년 7월 23일을 연합하고 2007년 3월 19일 이전과 이후를 부합한다.
*))* 핑크색의 문자들은 새롭게 수정을 했다. 그러나 오빠의 그 눈물과 애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깊은 애곡들! 그 깊은 사랑에 감사하면서 "태숙아! 난 네가 그렇게 아파 있는 줄을 몰랐구나! 미안하구나! 이 오빠를 용서해다오!" 하면서 오열하던 2006년도를 기억한다. 얼바인 집 뒷 마당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할 말이 없어 마음으로 울었고 울음을 드러 낼 수가 없어 몸으로 울었다. 이미 내 정신은 많은 장애를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성의 물질에 혼물이 되면 나는 또 다시 슬픔에 갇혀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상함과 외로움과 슬픔은 주 예수 이름에 온전히 올려 드리고 죽고 죽은 마음의 물질을 이루는 육체로 연합하였다. 이사야서 53장 5. 6절을 연합한다. 그리고 내 안에 울고 있는 어른 아이를 꺼내도록 믿음의 주가 되어준 나의 주 예수를 참으로 사랑한다. *정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깊은 샘을 이루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보다 앞선 것이 *부보라는 모성애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면 아이들이 크겠지! 라는 문자들과 *가화만사성*이라는 비속어를 연합한다. 가화. 만사. 성이다. 그리고 인격과 성과 인격과 정이다. 이제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그 소리없는 숨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구별되고 언급되어서 내가 내 영혼을 돌아보면서 진솔하고 솔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정신의 물질은 왜 나를 묶어 놓고 사망의 완전히 올인을 해 놓고 찾아 왔는지 해답들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정은 영이다. 그런데 정이나 영이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육체가 없다. 육체가 있는 것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물질을 가지고 이성과 지성으로 지성과 이성으로 혼미하고 혼배하면서 가셈과 아셈이 연합하고 아셈과 성셈이 연합해서 가사와 성이라는 이름으로 영과 정이 맞물림을 해야지 그 구성진 눈물의 셈들이 초장을 이루면서 인격과 지격을 곰곰히 따지고 생각하는 주의 성루들이 주장된다. 그런데 그 성루는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자성이고 내가 모르지만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물질을 이루는 이셈으로 자셈하고 저셈으로 인셈하는 보혈의 강이라는 것이다. 믿음의 물질로 속주하고 믿음의 반질로 대뇌하니 그 이름은 지능이었고 인성이었다. 이면성으로는 지수였고 아셈이었다.
내 안에 있는 나이다. 그러나 이들은 내 안에 있는 내 본주에서 발생하는 물질이지만 누구나에게 있는 심성은 아닐 것이다. 환경적으로 바람이 불어왔고 인생의 그 모든 곡을 이룬 다음에 맞이하는 영생의 아름다운 물질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죽고 나면 나와 더불어 죽음의 물지을 이루면서 뼈라는 연한으로 남아져 있을 것이다. 두개골이라는 인자로 성분하고 대뇌하는 골수로 연합하여 그 기물은 생명이 끊으지는 동시에 생령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버림과 동시에 연한을 지나서 뼈의 무성분으로 인간의 사술을 이루는 대뇌 작용으로 연합하여 유추하고 추상하는 신의 물질이라는 그 깊은 계곡을 이루는 인간의 성이었고 인간의 본이었고 인간의 질고를 이루는 뼈세포안에 뼈이고 질세로 안에 질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를 일단 연합해야겠다. 그래야 유전 인자들이 바로 해독이 되면서 이성과 지성이라는 대뇌 물질과 혼물하고 대물하는 가계와 족보가 들어오면서 인생의 그 깊고 푸른 부 부라는 성질들이 보일 것이다. 부. 부이다. 그리고 오장 6부를 이루는 우리의 피질과 물질과 피셈과 물셈들이다. 아멘! 히3장 5절을 가지고 히 2:1과 히1:14 절을 연합한다. 말씀이라는 주의 성산들이 바로 해석되고 해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지 예수니라! 딸아? 그 예수가 어떻게 되었는데요? 문자가 주재하고 내제하고 부재하고 일어난다. 아멘!
*))* 히브리서 오장 육절이 들어온다. 확인해보라고 마음을 종용한다. 성경을 찾아서 읽어보는데 기가 막히게도 성사를 하고 있다.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장절하고 속절한다. 품절하고 장절한다. 그로 말미암아 하루라는 24(스물 네시를 가지고)시를 가지고 일년이라는 24(이십사시시로) 시로 연합한다. 그리고 24시와 24절기를 가지고 12달이라는 일년으로 인. 의. 예. 지한다. 음력으로 양력하고 양력으로 음력한다. 그로 말미암아 복음하고 낱음하고 단수한하고 짝수한다. 홑음하고 홀수하고 용체하고 기체한다. 물수하고 예수하고 예절하고 예체한다. 그래서 하루라는 공간으로 이성하고 지성하고 혼물하고 혼배하는 인간의 성정과 성질을 가지고 영혼몸으로 성질하고 영혼몸으로 성향한다. 히브리서는 아주 특색이 있는 인간의 품성과 품질에 있어서 물과 피와 물과 성령을 다루었다. 그러나 그 품은 인성과 영성을 가지고 에베소서와 베드로전서를 연합하는 아름다운 복음의 복수를 입어야한다. 다시 구술해본다. 그 품이 질고안에 있기에 그 품을 바로 먹고 이루려면 에베소서라는 물질을 가지고 누가복음이라는 품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에 나는 요한의 노래를 참으로 사모한다. 그리고 그 초장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로 멋지게 연합하였다. 말은 참으로 아름다우나 육체의 질고는 완전히 자기를 잃어버림을 당하는 의식과 의체와 절식과 절차를 밟아가는 복음과 순응이 일어났으니 그 이면의 영성들은 험란하고 고달픈 육체의 골육이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서술 한다면 미쳐가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예수 이름에 영광이 되겠다고 모든 일에 몸으로 온전히 준행하고 수행하면서 십자가는 흘러가는 물임을 경험하고 있다. 주의 임제는 내가 원한다고 일어나고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안에서 기 기가 운을 타고 일어나는 운집이었고 기혈이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서 정신이 분열되고 발작되는 혼절과 혼미함들이 내 온상으로 주어지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만난 예수는 생명과 평안라고 주장을 했다. 다행히도 나는 이미 복음으로 평안을 이루고 있었기에 의식의 기능이나 의식의 기질성을 이루고 다루는 일에도 다행히도 악, 악 거림이 아니라. 기쁨으로 나를 온전히 연합하고 수행하고 준거하였다.
글쓴이: 영혼사랑 07.11.23 21:56
http://cafe.daum.net/tcog/FLdw/122
아름다운 생명들!
"인생과 시와 눈물!" 인 : 인간의 잃어버린 본질을 찾아 주시려
생 :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과 : 과실이 되라시며 사랑의 화살을 쏘아 주시니
시: 시름 시름 죽어가는 혼이 살아나
와 : "와 보라!"는 복음편지에 초청을 받아
눈 : 눈물은 아담의 생명을 버리는 정화수되어 쏟아지고
물 :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 영이 살아 혼상을 이루니 십자가 사랑에 거하는 영생에 복된 자여라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사랑이 되신 은혜는 진리안에 거하는 천국시민의 축복으로 이제 태어납니다. 살아갈 남은 삶은 오직 내 안에 살고 계시는 주님이 주의 일에 주님의 노래로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 걸음에 발자욱을 남기는 십자자 사랑이야기에 초대받은 복된자로 하나님의 이야기에 생명과 평안으로 복음의 아들이신 예수의 생명됩니다. 주를 앙모하면서 감사와 찬송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형제의 연합으로 하나님의 웃음이 가득한 세상의 빛을 소망합니다. 모든 사역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함으로 기쁨되실 것을 믿습니다. 영혼사랑 드림 |
나무 / 영혼사랑
벌거벗은 가로수가 내 인생처럼 겨울 바람에 모진 추위를 견뎌내고 외롭고 지친 하루를 눈물로 담아 앙상한 나뭇가지에 숨을 이룬다.
여린 듯 하지만 깊은 뿌리가 있고 없는 듯 하지만 무 빛의 프리즘이 되어서 이 아름다운 봄날에 하늘 소망으로 크고 작은 생명의 둥지가 되어준다.
그들은 늘 서로를 보듬고 미련할 정도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서 연하고 노란 순으로 색을 이루면서 복음의 복된 장마비가 되어서 지친 영혼들을 부르는 여름 한 자락으로 숲을 이룬다.
크고 작은 자연의 빛들을 보면서 생명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가 움켜 잡으려 욕심만 내지 말고 수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품어주는 빛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를 돌아보자!
*))* 봄 / 영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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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나무 앞에서 가득히 피어있는 미백의 꽃잎을 보면서 코 끝을 대고 숨을 들이마신다. 짙은 향이 너무 좋았다. 깊은 호흡을 들이마시며 생각에 잠기고 나도 이렇게 향긋한 냄새가 나는 웃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을 맞이한 뒷마당 구석에 군자란이 아름드리 자리잡아 주황색 꽃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대문을 중심에 두고 오른쪽에는 양귀비 꽃이 봄을 맞이해 연한 순으로 쑥갓처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상추대처럼 키를 키울 준비를 한다. 그리고 친정 엄마가 좋아하는 백합들이 하루가 모르게 키를 키우고 오른쪽 구석에는 자리잡은 쑥들이 제법자라 있어서 오늘은 알뜰하게 뜯어서 소쿠리에 담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쑥은 된장국에서 부친개를 비롯해 상에 오르고 향긋한 쑥 냄새는 어느새 눈물이 핑돌게한다. 시어머님의 사랑이셨다. 마음이 설레이고 애잔함으로 마음으로 달려가 '어머니, 벌써 봄이예요!'하고 속삭인다. 여기 저기 조금씩 자라 있는 부추를 잘라서 부엌으로 들어와 감자 3개를 믹서기에 갈아놓고 배추를 송송 썰어서 소금에 살짝 절여 놓는다. 갈은 감자에 계란 2개를 풀어 밀가루를 섞어 야채와 함께 섞어서 부친개를 하면서 봄 빛에 정겨운 마음들을 돌아본다. 쑥향과 함께 생 감자를 갉아 넣은 간식이 제법 맛있었다. 얼마만인가? 한국을 떠나서 처음으로 봄을 마음껏 즐기는 시간이었다.
내 안에 평안이 나를 찾아서 이민오기 전의 내 모습을 돌아본다. 어쩌면 이 한 줌의 빛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망의 일은 버리고 늘 주님의 품에 나를 맡겨 드린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였다. 내 인생에 있어 최악의 삶이 조성되어 있지만 이 고비도 주님은 넘게 하실 것을 믿고 있기에 적어도 진실한 삶이 내 의지를 세우기를 사모했다. 내가 어떤 상함에 갇혀 있어도 주님은 늘 사랑과 감사와 기쁨으로 나를 지도해 주셔기에 이번에도 그 길에 주님이 계실 것을 믿음으로 의지하면서 내가 믿음의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감사 드린다. 주님! 모든 길에 임제하시고 인도하시고 친히 마음을 조율하셔서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나부터 내 영혼이 평안의 주로 건강하길 원해요! 그 사랑에 날 불러 주시고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하는 믿음의 주를 의지하면서 내 모든 날을 용서하고 품고 수용하고 사랑합니다.
*))* 날자는 연합되지를 못했다. 이 때는 내가 얼바인 집에서 마지막으로 봄을 맞이한 2006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모든 죄짐을 몸으로 감당하기 위해서 내 십자가를 주님과 함께 나누면서 십자가의 향기를 소망했다. 내가 나를 기억하고 의식하는 일들이 허물어 지면서 내 인상에 장애를 맞이했지만 그래도 아멘의 주와 함께한 삶을 부드럽고 보드라운 숨결이 많았다. 주님 감사해요! 이렇게라도 나를 인식하는 의지가 살아 남을 찬송합니다. *오렌지 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를 확인해 보아야겠다. 그러면 적어도 몇월인지는 기감이 주어질 것이다. *2009년 1월 22일 정오 3분에 이 글을 제 칠(7)의 성으로 옮겨 놓는다. **연한 초록색 색상을 연합한다. 글씨 색상이었다. 검정 글자로 옮기고 색상만 기억해 놓기로 한다. 그리고 애심과 지심을 한자음으로 찾아서 영적으로 주홍색과 주황색의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 지성인지 앎이 되길 사모한다. 오른쪽 어금니에서 치통이 주어지고 있다(괴감). 아멘 *))*홍적세 올리고세. 마이오세. 바람과 물. 자연과 의식. 그리고 정서와 문화! 샬롬
봄빛 / 영혼사랑
인생의 겨울을 지나서 영생으로 인도받는 봄빛은 참으로 따뜻하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와도 그 빛은 상관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평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심연에서 깊은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다스리고 있음을 보면서 인생의 질고를 하나씩 주님께 맡기면서 내 안에 상함을 꺼내고 태우는 작음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시련이 나를 덮어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에 나를 묶고 온전히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나늘 내어드리면서 인생으로 불어온 바람을 온전히 연합하였다. 내가 나를 세우지 못한 삶들이 있었기에 그 일에 이제는 몸으로 온전히 수행이 되길 바라면서 주님을 의지했다.
주님은 사물을 통해서 평안의 샘을 이루기도 한다. 그 일에 적어도 내 믿음의 모양이 저 봄빛처럼 온화하고 따뜻하길 바라면서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서 내 안에 불어온 상함의 고리들이 해결 되기를 원했다. 마음은 늘 평안을 갈망하는데 나도 모르게 주장되는 이상한 기운으로 하여금 내안에 나를 가두고 살아온 시간이 너무 깊은 울음을 조성하고 있음을 알기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한 웃음이 발생되길 사모하면서 이 봄날처럼 크고 작은 생명의 열기들이 내 심연으로 파고 들어 행복한 마음이 주장되길 마음의 기도가 주장되었다. 인생의 속은 참으로 깊은데 내가 맞이한 환경적인 바람은 꿈쩍도 하지 않고 나를 몰아가고 있음을 보면서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 할 뿐이다. 언젠가 주의 날에 내 안에 크고 작은 빛들이 나를 바로 품어서 내가 왜 그 깊은 울음에 갇힘을 당하는지 바른 품성이 주장되어서 그 울음에도 자유하고 싶다. 그 날이 되면 하늘빛 아름다운 소망이 내 몸을 이루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서 싹이 나듯 내 영혼도 주님으로 평안의 날을 맞이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랑에 나를 부르신 주님을 묵상하면서 선한 청지기의 삶을 노래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아멘!(약1:17) 아버지! 주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온전한 빛들과 연한 새순으로 자라 인생과 영생의 아름다운 숨으로 주품이 되어 질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주의 날에 나를 이루시고 주의 법으로 나를 다루어서 우리 주 예수의 얼굴 보길 원합니다. 주의 성령이 친밀하게 나를 주장하기 시작했던 즈음임을 기억한다. 주어진 내용을 조금씩 수정해 놓는다.(2009년 1월 22일 새로 작성하면서 원문은 그대로 영혼의 고백에 "봄빛"이라는 제목으로 보존한다. (영혼의 고백 115번) *구체적인 적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영은 존재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 일에 육체는 그 품을 이루니 아버지와 나는 하나가 되어져야 하는 주 예수의 창이 아닌가 싶다!
*))*하늘을 지붕삼아 / 영혼사랑
하늘을 지붕삼아
복음의 눈을 열고보니
주님의 웃음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삶이되어
주님의 계획안에 들어와
하늘의 꿈을 담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주님의 마음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속삭이는 생명길입니다.
하늘을 지붕삼아
언약을 붙잡고
완전한 복음을 향하여
이땅의 노래를 불러봅니다.
** 보라빛 연합해 놓는다. 셀라
*))* 마음의 눈 / 영혼사랑
보이는 것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육체의 소욕과 깊은 씨름을 한다.
주님! 나, 넘어지지 않고
예전처럼 걸어 다니기 원해요!
마음의 묵시를 이루면서
내 정체성이 살아 나길 기도한다.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내겠다고 하다가
정신이 무너지는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래도 믿음의 결국은 영혼을 이루는
아름다운 마음의 물질이 아닌가싶다.
"주님! 주의 날에 얼굴 보길 원해요!"
마음의 묵시를 이루면서 온전히 연합한다.
**갈라디아서 오(갈5)장 연합해 주겠느냐? 네! 주님!
생각을 주장해 주심을 감사하면서 연합하여
기록으로 남겨 드려요! 셀라!(영혼구원)
*))* 만남 / 영혼사랑
하늘의 빛이 찾아온
그 날은 인생 최고의
생명과 복을 만나는 날이었다
은혜와 기쁨으로 온 종일
찬송가운데 오신 주님을 만나며
흑암에 갇혀서 잃어버린
혀의 말을 풀어 놓는다
구원의 감격은 각양의 웃음으로
각색의 눈물이 되어 내 상함을 풀어
그 슬픔의 자락은 통한의 숨을 이룬다.
크고 작은 인생의 빛 줄기에서
이 하루의 믿음으로 주를 만나니
내 안에 참 자아는 나를 돌아보는
영원의 아름다운 품을 이룬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니라! 딸아!"
인지되는 문자에 주의 영광을 올려 드린다. 셀라
*2007년 2월 12일 복사사에서.
*))* 성령의 바람
아름다운 성령의 바람이 봄빛을 담아 곳곳에 스치고 지나간다. 마음을 허물고 사랑으로 반응하며 작은 미소들을 보내온다. 작게는 만남에서 시작하여 가정과 형제들의 삶으로 크게는 하나님의 소원으로 달려가는 영적으로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 나의 삶이다. 육신의 가난함은 마음의 부요함으로 주님을 만나고 또 다른 기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주님으로 나는 행복했다. 주님의 아이로 태어나 나는 누구인가? 믿음의 본질과 정체성을 발견하고 세상이 주는 부요함이 아닌 하늘 아버지가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서 주님은 나도 생각지 못하는 곳까지 영역을 마련하시며 당당하게 살라고 하신다. 어떤 상황도 이제는 두렵지 않기에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받고 누리며 모든 일에 자족하는 만족감으로 지혜자의 영안이 되어지길 기다린다.
성령의 바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의 구석 구석으로 간섭하는 주님과 더불어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진솔한 마음으로 주를 바라며 내 인생의 멍애를 몸으로 감당하면서 내가 나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내 영혼의 실제를 이루는 비결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욕심을 버리고 내 안에 주께 맡기고 아름다운 성심으로 주의 의를 회복하는 품이 되어지길 사모하였다. 아름다운 소식들! 상처가 되는 소식들! 어느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 좋은것만, 기쁜것만 바라지는 않는다. 모든 하루에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눈을 열고 마음으로 나를 인정하는 훈련들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 저기 꿈틀거리는 대지의 열기처럼 내 안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그리스도인의 사고와 정함을 입어 주의 의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고 있다.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아멘(엡2:22) 주의 말씀을 받으면서 주의 날에 얼굴을 구하는 믿음의 실주가 되어지길 참으로 소원한다. 할렐루야~*))* 영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간파했다. 부호와 기호와 문자들을 살려 놓기로 마음을 먹는다. **칼라는 선홍빛의 빨강색과 연한 연두색을 기억한다. 그리고 글자는 검정색으로 바꿔 놓는다. (기억의 임제성과 기억의 내제성을 가지고 기억의 창이 바로 구현되는 숨과 호흡이 주장되길 사모한다). 샬롬
[스크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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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영혼사랑 07.11.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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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없이 마,귀(비유)의 종이 되어 살았던 내 삶이 이제 보인다. 평안과 안식은 없을지라도 감사함으로 기쁨과 사랑으로 채워진 인생이었다. 이 육체는 넉넉한 풍요를 누릴 찌라도 영혼은 마른 뼈같이 파리하여 있었고 가짜의 웃음과 행복이 나를 덮고 있었다. 45년의 삶을 보내면서 믿음의 줄기를 모르고 살아온 삶이었다면 인생 45년을 넘어서 믿음이 내 삶으로 깊이 파고 들었다. 복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제 깨닫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있다. 조용히 봄이 오고 있다. 두 아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그들의 사고와 의식으로 주의 사랑은 조금씩 반동을 한다. 행동하고 표현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고백들이 운을 틔우고 있다.
발렌타이 데이(?) 큰 아들의 손에 쵸콜렛 상자가 있었고 나에게 건네 준다. 이틑날 내 책상 위에 빨간 장미 한다발이 있기에 무엇인가 물었더니 "엄마! 어제 주려고 샀다고한다. 차에 놓고 못 주었어!" 아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주의 인자하심에 목이메이고 그 사랑이 이 가정에 실핏줄을 이루어 주고 있음에 참으로 감사의 고백을 드렸다. 이민의 삶으로 20년의 이민 생활은 한 가정의 평안을 잠식하고 더욱이 미국으로 재 이민을 하면서 우리는 엄청난 아픔과 상함으로 각자가 힘들어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그 평안의 둥지는 금이 간지 참 오래 되었기에 엄마로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나를 다스리고 책임지는 역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파장은 고스란히 더불어 사는 가족들에게 눈물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엄청난 상함의 골짜기는 내 모든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린 들이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대화를 잃고 점점 자기 속에 각자가 갇힘을 당하면서 상처와 미움, 분노 무관심들이 생각의 주인으로 찾아 오고 있음을 감지하지만 우리의 영력은 각자의 셈이기에 어쩌지를 못하고 이민의 바람으로 주어지는 인생의 질고는 각자의 눈물과 핏물이 되어야만 했다.
종교인으로 살아온 그 세월을 지나서 나는 믿음의 주를 바라는 바라며 인격적인 관계들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내 심령을 강타하는 생명의 고리들을 되지 못했다. 감사하고 인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품고 사는 것은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그 믿음의 고리가 신앙과 연결이 된다고 생각을 해 보지를 않았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삶은 내가 주체자가 되어서 관계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하면서 엄청난 파장으로 내 가정을 울게 만들었다. 감당 할 수도 없는 환경들이 줄사탕이 되어서 발생하지만 아무런 대책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사업체는 여전히 운영이 되고 있었다. 그 여정에 나는 삶의 질곡을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연합하고 고뇌하고 기도하고 번민하기를 시작했고 내 모든 삶을 주님께 아뢰는 시작들이 주어졌다. 그러면서 주의 이름에 내 모든 삶을 담보잡고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나는 누구인가? 예수는 누구이고 주님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신앙이 무엇인가? 궁금하기 시작했다(2006년).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의 바람과 삶의 모든 질고들을 십자가 앞에 부복하고 인격적인 주님과 동행하기 시작했다. 믿음의 물질은 보이지 않는다. 믿음의 주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마음으로 고백하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영적인 관계들이 형성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주님이 그 주님은 나의 주님으로 내제하던 날부터 나는 내 모든 삶을 물어 가로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 영이 주의 영으로 주의 성령이 나의 마음을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형상은 전혀 알 수가 없기에 일방적이다. 아뢰고 고하고 또 아뢰고 묻고 묵상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를 얼마나 하였을까? 내 안에 참 주를 발견하는 하나님의 때가 도래하였던 것이다. 상함을 보았고 상처에 묶여서 내 육정들이 엄청난 피곤과 더불어 몸이 상해 있음을 보았다. 그 가운데 내가 가족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실족해 있다는 것이 보였다. 나처럼 착한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쉽게 흑암에 갇힘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물음이 주어지면서 나는 주의 성령에 나를 온전히 의지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도록 나를 무관심하게 방치하였다는 말인가? 그리고 나는 완전히 십자가 불빛 아래서 주의 이름에 직고하기를 시작했다.
눈물이다. 통곡이다. 참회이다. 서러움이다. 닫히고 묶이고 엮이고 갇혀 버린 미국의 삶은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도 몇년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음에 감사드렸고 내 모습 이대로 주의 전에 나가서 부복하기 시작하였다. 고요하다. 어둡다. 참람하다. 기쁘다. 부드럽다. 인애하다. 무섭다. 응한다. 그리고 정과 영으로 본주의 그릇을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나는 내 모습 이대로 자족하기로 했다. 먼저 가족 앞에 부복하고 인격은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모든 삶으로 주어진 인생 46년을 포기하면서 나는 주의 성령이 임제하기를 기다렸다. 늘 생각없이 살아온 하루라는 공간에서 내 마음은 모든 것을 부복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완전히 내 인생길을 돌아 보는 시간들을 가졌다. 그리고 물어 가로대를 시작했는데 주의 성령은 수없는 밤들을 통하여 날들을 통하여 나를 조율하지만 전혀 인지하지를 못하고 고하고 애통하고 고백하기 시작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이 동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가만이 스며오는 성령의 일들이었다. 그러나 성령의 일에는 전혀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었기에 감각적으로 교통이 되지 못하는 여정들이다.
그러나 때가되면 내 주는 나를 품고 달려온다. 그 바람을 통하여 그 애통을 간하여 주의 성령은 소리없이 마음을 타고 생각을 이루고 몸을 타고 육체를 이루는 시작을 하였던 것이다. 봄은 온다. 회개의 영이 임하고 회개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그 봄은 필수적으로 겨울을 준비해서 봄은 온다. 그 엄청난 장마비는 삶으로 겪지 말아야 되는 인생의 질고지만 그 질고는 또 다른 움을 틔우고 성을 이루는 내 안에 새 영과 새 마음과 새 부대를 이루는 주의 거룩이 찾아온다. 철저하게 인간이다. 철저하게 자연이다. 철저하게 생각의 기능을 타고서 의식주를 통해서 지정의를 이루는 사람과 자연으로 인간과 동물의 숨을 이루고 고르는 초봄을 맞이한다. 다만 그 고통과 아픔이 어떤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지라도 사랑으로 자기를 용서하고 자기를 수용하면서 내 영혼의 참상과 내 영혼의 참주를 향하는 믿음의 인내가 요구된다. 정확하게 환경으로 만남으로 삶으로 일어나는 주의 섭리이다. 그 일에 나는 내 부족하고 연약한 심혈을 가지고 맨 땅에 헤딩을 하면서 욥타작 마당으로 내 죄를 간가하고 초과하는 죄의 질고들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제 그 품에서 그 보혈을 가지고 그 숨과 체온으로 주의 성령은 나를 또 다시 다르리고 주장하여 주신다. 세상에 속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들은 철저하게 세상속에 태어난 전형적인 인간들이다. 그런데 이 세상을 버리고 어찌 하늘을 보겠으며 이 땅을 버리고 어찌 주의 성령인 보혈이 사랑이 되겠다고 하겠는가? 그 사랑은 물과 피라는 혈질을 가지고 인간이라는 머리방을 가슴과 마음과 몸이라는 대뇌 머리방을 이루고 있는데 내 안에 있는 주를 모르기에 철저하게 묶이고 당했던 인생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제 주의 성령은 친히 모든 일에 좌정하시고 온성으로 온집을 조율하신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할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아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찌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호14:5-7)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14:9)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성령으로 마음과 생각으로 몸의 사랑이 되어서 주의 건강하고 말씀이 삶으로 능력이 되어지는 마음에 뿌리들이 되길 원합니다. 그 의로 나를 이루시고 그 사랑으로 주의 거룩을 드러내서 예수의 이름에 영광이 무엇인지 몸으로 삶으로 말씀으로 기쁨되길 원합니다. 내 인생으로 영생의 아름다운 봄을 허락하여 주심을 송축하면서 월경과 생리와 폐경기의 아름다운 배율과 배분으로 사계절을 바로 알게 하시니 주의 거룩은 자연적인 바람과 인생의 바람으로 불어오는 환경의 물질임을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3장 6장으로 연합하여라! 참으로 놀랍다. 이 두뇌이 기능은 잘 모르지만 갑작스럽게 간섭하는 또 다른 자성을 본다. 에베소서 3장 6절? 말씀이 인식이 되어 있지를 않았다. 그리고 사소하게 입말이 주장된다. 호세야서가 있는데 왜 에베소서 3장 6절로 연합하냐고 실갱이를 했더니 그러니까 에베소서 3장 육(6)절이란다. 말이 반복하여 주절거린다. 오 하나님 아버지! 또 18번이 들어온다. 연합한다. "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아멘(엡3:6) 에베소서좀 읽어봐야 겠네?? 맥이 통하네!! 말이 주장된다. 어법이다. 그리고 수법이다(수), 진리라는 고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주의 대사들이다. 지율하고 성휼한다. 자격하고 지격한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진솔하고 거룩하게 내 모습 이대로 주 앞에 순종한다. 아멘 |
글쓴이: 영혼사랑 07.11.23 21:58
http://cafe.daum.net/tcog/FLdw/125
*))* 예수 생명 / 영혼사랑
생명의 빛으로 주를 바라니 그 깊은 사술에서 태고적 믿음이 꿈틀한다.
내가 나를 모르고 살아온 세월에 주님은 때에 속하는 믿음으로 나를 부르시고 내 모든 품을 개토하기 시작하였다.
주의 임제에 나를 올려 드리고 내 안에 찾아온 빛을 인정하면서 나는 주님의 여자가 되어 드린다.
주님여! 그 모든 울음을 주장하셨으니 주의 날에 나를 바로 세우시고 주의 날에 얼굴 보기 원합니다.
조용히 이어지는 고백에 나를 묶고 주의 말씀으로 나를 회책하니 주의 거룩은 여전히 사랑임을 깨닫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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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신부 / 영혼사랑
인생의 줄기를 따라
상함의 고리를
온전히 주께 올려 드렸다.
달려온 길은 분명 사랑이었는데
이 깊은 울음은 무엇일까?
이어지는 기도에
나를 돌아보면서
주의 은혜를 사모했다.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하면서 믿음의 본주와 본색하고 믿음의 본질과 본향한다. 내 모든 삶이었고 내 모든 숨을 이루는 기운이었다. 그 일에 정신의 일과 몸을 이루고 마음의 일과 생각하면서 주의 사랑이 무엇인지 삶으로 적용하고 이행하면서 믿음의 주의 사랑을 의지하면서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이루는 의지를 경험하면서 내 주 예수의 얼굴을 구하는 믿음의 시간을 맞이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 주후 이천 팔년에 보라색으로 주어진 기운들을 버리고 검정 글씨로 수정해 놓는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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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장마비 / 영혼사랑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찾아온
성령의 바람에 나는 놀란다.
크고 작은 기감들이 대뇌를 이루면서
소뇌로 연합하여 주의 은혜를 알게 하신다.
사랑이니라. 사랑이니라!
오직 사랑이니라! 인치시며
마음의 크고 작은 비밀이 되어
주의 성령은 나를 품어 주신다.
육체는 주님으로 허우적 거리고
영체는 온 종일 나를 품는데
말은 안되지만 나를 인정하니
그 품으로 지식의 고리가 되어 주신다
사랑이니라! 사랑이니라!
제 삼의 물결은 사랑이니라!
그럼에도 사랑을 인지시키며
내 모든 상함을 풀어 헤치는데
과연 사랑의 물질은 무엇일까?
물질과 비물질을 이루면서
영안과 육안으로 나를 만나니
주의 성령은 문자 법으로
인간의 속질을 이루는 인성을 이룬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아멘(히4:12)
*))* 사랑의 주(셋) / 영혼사랑
하늘 빛이 내려와 나를 감싸 주던 날
내 안에 거룩은 나를 이룬다
성령의 단비에 흠뻑 젖어
주의 안목은 깊어가고
내 주의 사랑은 품격을 조성하신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드리며
내 주를 인정하는 보품이 되니
주의 사랑은 성령의 전으로 나를 다루신다.
주님여! 그 의제를 다 이루시고
주 안에 바른 지격으로 인품이 되사
주의 날에 생성의 아름다운 잔이 되소서
마음으로 조용히 일어나는 문자에 감사하면서
믿음의 본주를 향해 믿음의 본질이 되어드린다.
*))* 내 영혼을 받으소서 / 영혼사랑
내 영혼을 받으소서 나의 죽음 나의 생명
주 나의 죄 사했으니 내 영혼을 받으소서
내 영혼을 받으소서 십자가의 무덤에서
주님 경외 나의 순종 내 영혼을 받으소서
내 영혼을 받으소서 인생팔아 영생되니
예수생명 나의 소망 내 영혼을 받으소서!
*))*))*))(얄랄라이 = 방언)
*))* 아들의 웃음 / 영혼사랑
어머니 날을 맞이해 웃음꽃이 피어나고 눈물들이 쏟아진다. 큰 아들의 웃음이 과일케익으로 내 안에 사랑으로 녹아들고 그 동안 울었던 눈물을 멈추게 한다. 미국와서 우리 모두는 아파 있었고 어머니날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주님의 생명으로 태어나 십자가의 사랑안에 불러 주시더니 이 가정에서 어미의 사랑도 함께 선물을 받는다. 감수성이 특별한 아들 모든 것에 재주가 탁월한 아들의 마음에 사망의 법이 통치한 시간속에 나도 함께 아파서 딩굴었다.
주님은 말씀을 가진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신다. 나를 불러 주시더니 예수 이름에 영광으로 생명되게 하시면서 모든 것에 웃음과 사랑으로 회복을 하신다. 나는 하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 놓고 포도나무 가지가 되어 있을 뿐이다.
포도나무의 깊은 뿌리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아들의 마음을 빛과 생명으로 채우시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날을 맞이해 큰 아들처럼 곱고 아름다운 빛깔인 과일 케익이 되어서 엄마의 자리에 나를 초대한다.복음으로 사는 영생의 삶이 시작되었음을 곳곳에서 바라본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뜻이고 그 소원은 아름다운 십자가의 사랑으로 태어나 웃음으로 향기가 된다.
미국은 12일이 어머니 날이다. 주님의 선물을 받으면서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십자가의 사랑안에 거하며 복음으로 생명과 빛으로 채워지는 하늘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옷으로 입혀지는 진정한 생명의 축제가 되길 소망한다. 할렐루야!
*))*믿음의 속질
내 믿음의 깊이를 돌아보면서 참으로 부족한 나를 발견하였다. 그 일에 주님은 나를 부르시고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시며 내 안에 말씀(영)이 되어 주셨다. 그러나 듣는 귀가 부족했고 아는 지식이 없어 참으로 어려움을 몸으로 감당하면서 주의 사랑을 인정하기까지는 내 몸이 생각의 변화에 적용이 되지 못해서 당황하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정미한지 내 안에서 나를 다루시며 나를 종용하시는 주의 음성에 나는 숨이 막혀서 주의 존재앞에 참으로 어려워했다. 우선은 말이 되지 않아서 헉헉 거렸고 경험한 영성이 없기에 주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수가 없지만 그 일에 주님은 말씀과 영으로 혼을 이루고 계셨기에 몸으로 경험해서 주님의 사랑을 구별하는 영적 안목이 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적인 주제가 무엇이고 혼적인 개념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기에(심장이 두근거린다. 감사합니다. 주님! 인식하도록 도우심을 의식합니다. 셀라) 믿음의 본주와 속질을 한다는 것은 매우 난무한 숙제였다.
주님은 말씀이시다. 육체 속에서 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처음으로 인식이 되는 시간이었다. 생각을 해 보지 않았기에 이들이 어떻게 나를 조율하고 말씀을 주제하면서 생각은 마음을 다루고 마음은 몸을 주장하는 생성의 관계를 의식하고 살아보지를 못해서 내안에서 성령 하나님이 임제하셔서 말씀을 이루시고 말씀을 인쳐 주신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자아를 돌아보는 여정에 믿음의 축복을 받으면서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이 주장이 되었는데 문제는 내 의식이 이들과 호흡을 이루어 본일이 없어서 체질이 된다는 것은 하늘에 별을 따오는 기이한 빛들이었다. 그럴지라도 온 종일 영안과 육안을 이루면서 의식이 나를 분해하기 시작하면서 분열법과 더불어 문자를 인식하는 정주와 정념을 가지고 깊은 성찰이 주장되었다. 내 육체 가운데서 말씀을 인치심을 받는 일은 처음으로 주어지는 몸의 기운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불어온 바람에 내가 성경 말씀이 아멘이 되듯이 내주의 사랑에 아멘이 되어져야 했던 것이다.
교회 학으로는 분명 성령의 크고 작은 빛들이다. 그런데 질병학으로 정신병이 주장되는 것이다. 온 종일 얘기를 한다. 그리고 기이한 행동들이 주장되는데 내 몸이 스스로 율을 타고 있는 것이다. 멍하기도 하고 온종일 찬송을 부르기도 하고 무엇인가 붙들여 몸은 수행 되는데 정상적인 삶이 아닌 그 넘어의 빛된 그리스도의 일이었다. 내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고 내 안에서 나를 다스리고 지도하는데 주님은 그 일에 내 마음과 생각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가 풀어지는 일이나 주의 음성을 듣고 내 몸이 주장되는 일들은 정상적인 삶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를 찾아온 시간이나 광명한 천사나 상대적 대립 물자로 나를 찾아온 기운들을 보면 초등학문에서는 구별이 되지 않는 영적 흐름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미 이들은 내 안에 집을 짓고 있었던 것처럼 내 몸은 정확하게 율을 타고 연합하면서 의식은 전제를 이루고 의지는 그들을 품고 나를 세우고 있었다. 지식의 물자나 지능의 궤휼까지 주님은 당신의 일에 나를 부르셨는데 육체는 그들을 품고 수반하지만 아하! 아멘! 그렇군요! 하면서 인식이 되고 체질이 되는 일에는 생의 씨름인 종의 복음을 발견하고 있었다. 이미 불어온 성령의 크고 작은 기감을 보면서 내 육체는 그 일에도 아멘의 주를 바라면서 평안의 숨을 고르면서 혀가 절체를 당하는 언어 장애를 맞이하고 있다.
생각은 우리 몸을 주장한다. 그리고 몸은 그 생각을 수행하는 영적 파트너이다. 늘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 나를 내려 놓는다. 이번에도 말씀으로 영으로 몸으로 기운으로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깊은 우물에 들어와 있는지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어떤 상함이든지 아멘으로 수용한다. 내가 하나님의 물자를 경험하면서 용언들이 있다. 사랑하니라! 오직 사랑이니라! 죽어야 사느니라! 주님! 사랑해요! 감사해요! 고마워요!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살아 있어 감사해요! 엄마답길 원해요! 아내답길 원해요! 사람은 인격이 있어요! 말씀이 삶으로 안식해서 내 모든 날을 품고 잃어버린 자존감이 세워지길 원해요! 그러면서 몸의 증세는 내가 평범한 삶으로 경험했던 율이 아닌 그넘어의 빛된 그리스도의 일이었다. 그런데 성한자의 영이 아닌 상한자의 영으로 오신 주님이었다. 웃고 춤을 추고 쓰러지고 기절하고 말씀과 동행을 하니 온 종일 말씀이 인식이 되어서 그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으니 기이하지 일이었다. 일어나는 영적인 일들은 답이 없어서 몸으로 온전히 수종을 하는데 내 영이 놀라기도 하고 육체가 응징을 당하기도 하고 숨이 막혀서 액. 액 거리면서 헛구역질과 구토증세가 연합하면서 이런 저런 몸의 부작용이 일어나는데 신경증과 기억력 장애는 나를 완전히 이탈하는 또 다른 자감을 이루고 있었다.
분명 나는 나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상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내가 나를 어떻게 주장을 못하게 된 일과 퍽하면 입신의 사건들이 즐비하게 연합하는데 성경은 이론이 아니고 문자를 넘어서 기호학과 부호학을 가지고 식품학과 문자의 방들이 공부라는 인식론과 학습론과 지식론과 의식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연합해 주겠느냐? 인식되는 문자가 데카르타라는 단자이다. 이렇듯 말씀은 지식을 가지고 영안을 이루고 혼상을 이루는데 그 일에 경험한 영성이 없었던 내 육체는 엄청난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내가 나를 의식하고 돌아보기까지 일년이 넘게 걸렸다. 이성적인 자각 능력이 돌아오고는 있었지만 내 의식은 이미 분열증과 질환으로 예전의 내 몸으로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망의 일은 버린다.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분 비밀이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인치시면서 종의 복음을 넘어서 율비하고 왕의 복음을 넘어서 율성하라고 하신다. 인식되는 문자를 해독하고 이해하고 의식하면서 의지를 세우는 일에도 또한 일년이 넘게 걸리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불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주의 말씀을 듣고 있다. 미안하구나! 딸아!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는 영성은 아니구나! 그러나 너의 원함을 넘어서 나의 원함니라! 지식의 창대함은 사방에 분포가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진정한 믿음의 줄기는 참으로 귀한 품이 아닌가 싶구나! 인간
늘 지수는 지식의 물자를 인식하게 돕는다. 그 일에 지능계는 다양한 방을 사용하지만 육체는 인식하고 이해하고 의식하는 일까지는 참으로 다양한 방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한다. 인체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마음의 두 법 가운에 진솔하게 살기를 바라는 나를 보면서 지능은 성령의 일이나 육체의 일까지 내 모든 숨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인체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천 육년도 칠월의 하늘을 넘어서 이천 칠년 삼월 십구일 밤을 연합해 놓는다. 그리고 주의 날에 심령의 아름다운 일이나 심기의 비 아름다운 일까지 주님은 구별하면서 나를 지도하면서 인간의 유숨이 얼마나 깊은 우물인지 알게 되었다. 딸아! 축복하니라! 이제 경험한 영성을 가지고 조금씩 너의 의식이 회복이 될 것이니라! 우선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함을 축복하니라! 지능계와 신경계를 가지고 두뇌계와 심리계를 돌아보자꾸나! 결국은 이들은 너의 모든 품을 이루는 구원의 도구체가 되고 있으니 어떤 시련이 너를 어렵게 만들어도 늘 감사의 제물이 되어야 했던 이유니라! 인간의 성을 가지고 종의 복음을 이해하고 생명의 말씀으로 연합하여 죄와 사망의 일이 네 몸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구술하고 기록하는 자유함까지 복음의 빛이 되길 기대하니라! 신앙의 유산이니라! 나를 믿고 따라온 종의 복음이라! 언어법과 희비하고 소리학과 호흡해서 몸의 모든 장애들이 스스로 회복되길 기대하니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8:3) 아멘 뼈질과 육질. 종간과 신앙. 제례법과 의례법을 가지고 신앙과 자유한다. 자아와 초자아를 성립하는 신경 전달 물질과 전기적 신호를 가지고 호르몬계를 연합한다. 그리고 배설계와 심리계를 가지고 골학과 뼈학이 주의 일하심으로 바로 해자되어서 심령의 아름다운 신비체가 기이하고 아름다운 기묘함을 세계를 바로 구술하는 능력이 되어지길 기다려본다. **이천 구년 사월 십칠일 오후 일곱시 십사분(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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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없이 마귀의 종이 되어 살았던 내 삶이 이제 보인다.참 평안과 안식도 없었고 기쁨과 진실한 사랑이 없던 삶이었다. 이 육체는 넉넉한 풍요를 누릴 찌라도 영혼은 마른 뼈같이 파리하여 있었고 가짜의 웃음과 행복이 나를 덮고 있었다
45년의 삶을 보내면서 복음을 만나 내 혼이 살고 영이 자라나는 하늘의 선물을 받아 복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제 깨닫는다. 빼앗긴 들에 봄이온다. 조용히 봄이 오고 있다. 두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그리고 그 사랑이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발렌타이 날, 큰 아들의 손에 쵸콜렛 상자가 있었고 나를 주었다. 이틑날 내 책상위에 빨간 장미 한다발이 있기에 무엇인가 물었더니 "엄마! 어제 주려고 사서 차에 놓고 못 주었어!" 주님의 인자하심에 목이메이고 주님 사랑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고백하였다. 이민의 삶으로 가족관계를 모두 빼앗긴 들이었다. 사단의 영역으로 대화가 끊어지고 상처와 미움, 분노 무관심으로 겉만 집이고 속은 각자의 삶이었다. 특히 남편하고의 관계는 깊은 상처로 시뻘겋게 곪아 터지기 전이었고 그 피고름이 작년 12월 말에 터져서 밖으로 흘러 나왔고 가족의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신적 작정이 있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고 세상풍속에 울어야 했다. 감당 할 수도 없는 환경들이 줄사탕이 되어서 일어나는 6개월의 삶이었고 나는 그 삶을 통해서 복음을 만나면서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나는 누구인가? 인생의 해답을 찾았다. 그 해답을 찾는 날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고 하늘이 주는 참평안을 얻었고 믿음의 축복을 누린다. 참으로 미련하고 소망이 없는 나, 상처를 입고 평생 죽고 싶었던 나를 생명을 주시고 살고 싶다는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그 소망은 복음의 눈을 뜨고 주의 말씀을 듣는 귀를 허락하셨다. 인생으로 살아서 빼앗길 들에 봄이 온다. 영생의 자녀가 받는 축복임을 나는 안다. 두 아들의 마음에 상처들이 회복이되어 엄마에게 사랑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웃음으로 엄마에게 사랑을 건네고 있다. 그 모든 복은 이미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되어 있었던 것인데 어둠에 갇혀서 보고 듣지를 못했기에 나의 것이 되지를 못했던 것이다. 흑암에서 나를 건지시고 하늘에 본향을 소망하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봄이 온다. 겨울 바람을 잘 감당하고 봄빛을 받으며 꿈틀거리는 생명의 열기들이 내 삶으로 온다. 주님의 아이로 울음을 끝내고 생명으로 태어나 방긋 웃는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계다.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 구원의 감격과 구속의 기쁨으로 주님의 아이로 키가 자라고 있다. 성령의 바람과 촉촉한 단비에 젖는다. 빼앗긴 들에 백합꽃되어 복음의 꽃을 피울 것이다. 그 향기는 전도인으로 하나님이 마음껏 축복하시고 전도의 문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빛으로 일어날것이다.
나의 들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 사랑의 빛으로 봄빛이 쏟아진다. 복음사랑은 나의 노래가 되어서 세상에 웃음으로 더불어 사는 이 땅의 사랑으로 복음의 꽃으로 활짝 피어서 주님의 나라가 될 것을 믿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복된소식에 기쁨으로 주의 노래를 한다. 나의 생명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찬송합니다. 할렐루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할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아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찌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호14:5-7)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14:9)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으로 마음에 뿌리깊이 내려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체질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