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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이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일정표와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4월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산행 준비를 하라고 해서 두툼한 파카, 아이젠,
스패츠, 반다나, 판초우의, 장갑, 보온병, 물병, 컵라면 등등…
그렇잖아도 해외여행이라 여벌의 옷들과 세면도구, 카메라, 술안주 등으로도
한 짐인데 겨울산행 준비물까지 더하니 여행가방인 꽤나 무거워 졌다. 화려한
봄날인데 과연 소용이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안챙겨가서 생기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하여 꼼꼼하게 짐을 꾸렸다. 정확히 이틀 후 이들 중 하나라도 빠뜨렸다면
큰 곤욕을 치를뻔 했다. 유비무환!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동해항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 아담한 사이즈다 그 너머로
우리를 사카이 미나토 항으로 데려줄 DBS크루즈가 눈에 보인다.
크루즈는 작년 중국 청도를 갈 때나 제주도 갈때의 배보다 약간 작아 보인다.
숙소에 자리를 잡고 내부 구경을 다녔다. 한 눈에 깨끗하다는 느낌이 든다.
3주간 정비 후 첫 출항이라 그럴꺼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직원들의 친절함과
욕실 화장실에서의 청결함 그리고 저녁식사로 나오는 메뉴를 보니 그동안
산악회를 따라 여행한 중국 청도행이나 제주도행 배와 비교하면 월등히 나아 보인다.
일본행 배라서 더욱 신경을 쓰는가 싶기도 하다.
저녁은 결혼식 부페보다 종류는 적었지만 맛은 비슷하고 깔끔하다.
식사가 끝난 후 잠시 휴식 뒤 우리 회원들만의 조촐한 생신 파티가 있었다.
회원 어머님의 팔순을 기념하여 간단하게 생일 잔치를 해드렸다.
모두들 기뻐하고 흐뭇해 했다. 1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나기도
하고 홀로 계신 아버님을 모시고 올걸하는 후회도 잠시 해보았다.
아무튼 이때까지는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기분 좋게 술한잔 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가 새벽 5시에 눈을 떳다.
항상 이 시간이 기상 시간이라 거의 자동이다.
그때까지도 지난밤의 건너편 숙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어제 팔순을 하신 어머님이 새벽 두시경 화장실을 나서다가 배가 기우뚱하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를 부딪쳤는데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야단이다.
보호자와 같이 잤어야 하는데 팔순이라는 연세와 움직이는 배라는 두가지
리스크를 간과해 버린 것이다. 일단 사카이미나토항에 도착하자마자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여행자 보험이 70세 미만이라 80세는 보험인정이 안된다고 하다가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보험이 된다고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르신들과 먼 길을 나설 때는 꼭 한번 오늘의 일을 생각해 보아야 겠다.
두분을 병원으로 보내고 일행은 다이센산을 향해 출발했다.
가이드로부터 뼈가 약간 금이 갔고 입원을 해야 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쩌면 마지막 해외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데 병원신세를 지게 되셔서
안타까웠다.
다이센은 높이 약 1,700미터로 맞은편 1,500미터의 고려산과 마주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 고구려 이주민들이 일본에 고려산보다 높은산이 있냐고
들고 왔다가 더 높은 다이센을 보고 놀라서 고려산을 두고 도로 고구려로
갔다는 내용을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약간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지역은 고구려 유민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런 전설이
생겨났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이센 초입에 도착했다.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곳곳이 마치 거대한 빙하같이 위풍이 당당하다.
저 멀리 다이센 정상이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하다. 오늘의 험난한
산행의 예고편을 미리 보는 것 같다. 해발 700고지에서 1,700고지를
약 2시간30분 가량 올라 간다. 1키로 미터이면 보통 4시간의 산행 거리인데
2시간 30분이면 엄청 가파르다는 얘기다.
역시 일본의 거리는 항상 깨끗하다. 이 곳 사람들은 적어도
인생의 10분의 1을 청소로 소비하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우스웠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시골은 시골인가 보다. 이제 출발~~
몇보 걷지 않아 왼다리가 눈속으로 쑤욱 오른다리가 눈속으로 쑤욱
눈이 녹아내리면서 마치 빙하지대 크레바스처럼 눈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가져온 아이젠과 스패츠를 신었다 한결 안정감이 있다.
중간쯤에서 쉬었다. 자그마한 신당이 눈에 띈다.
일본인의 종교 혹은 내세관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가 종교계의 대부분을 차지 하지만
일본은 이들 세가지 종교가 거의 번성하지 못했다. 이른바 신도로
대표되는 800만이 넘는 신들로 가득차다. 산신, 돌신, 나무신, 수신 등
자연 만물이 모두 신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한류의 주역 배용준은
신의 경지에 올라 집 안에서 신으로 모시는 아줌마들도 있다고
가이드인 하나비상이 전한다. 웃긴다.
이제 본격적인 급경사 지역을 오르고 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에다가 안개비까지 내리니 힘들기가 배가 된다.
나름 5개월정도 다이어트겸 헬스로 다진 몸이라고 자신 만만했지만
끝없는 오르막 경사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정상이 가까워 오자 점점 추워지고 바람도 세지고 빗방울도 제법 굵어 진다.
지난 밤 짐쌀때 무겁다고 투덜거렸던 파카가 나오고 장갑이 나오고
급기야 판초우의까지 껴 입는다. 참 간사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비바람을 뚫고 가는데 시간적으로는 3시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도무지 정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두막 한 채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냥 중간 대피소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10미터 앞이 정상이었다. 그냥 평지의 능선 같이 완만하게
쭉 이어져 있었다. 올라갈 때의 고생에 비하면 뜻밖이기도 하지만
약간 싱거운 생각도 들었다.
대피소는 아직 3미터 정도 눈에 덮혀있다.
한겨울에는 지붕까지 눈에 덮힌다고 한다. 정말 눈이 많은 동네다.
대피소 입구는 누군가가 눈을 치워 놓아서 마치 토끼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환해 보이지만
실은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이 전부여서 상당히 어두웠다.
미리 오신 회원들께서 식사중이었다. 나도 얼른 도시락을 꺼내
한끼 뚝딱 해치운다.
하산하는 길은 올라갈 때 보다 힘은 덜 들지만 위험은 배가된다.
발목까지 빠지면서 급경사로 인해 미끌리기까지 하니 몸이 뒤뚱뒤뚱
계속 넘어진다.
올라갈 때 넘 힘들어 미처 보지 못한 주목 군락지와 삼나무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법당이 눈에 들어온다. 백제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불교는
이후 천황의 권력까지 위협될 정도로 융성하였다가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에도 시대가 열림으로 수많은 사찰의
승려들이 민간인으로 환속되고 이후로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걸어 왔다.
근래에 일본인들의 종교적 성향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토착신앙인 신도를
믿으며 신사에 참배하고 죽어서는 사찰에서 기원하고 무덤을 관리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나비상(가이드)은 전한다.
하산할 때까지 비는 계속 내린다. 모두들 무사히 출발지까지
내려와서 숙소로 향하였다. 숙소는 다이센에서 조금 떨어진
히루젠에 있는 큐카무라호텔에서 묵었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관광호텔이라 조용하고 아늑하며 사람이 가장 쾌적감을 느끼는 7
00미터 고원에 있는 호텔이다. 한 사흘 정도만 쉬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 질 것만 같다. 아쉽다.
건너편 건물에는 고등학교에서 단체 수학여행을 온 듯 하다.
문득 옛날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이 생각난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당시에는 남녀공학인 학교가 드물었다.
남학생들만 있는 학교였으니 여학생들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80년대 후반 람바다라는 춤이 열풍이었는데 여학교에서 온 학생들이
람바다 춤을 장기자랑으로 추는 것을 담너머로 구경했는데 참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호텔에서의 저녁식사는 이번 여행에서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곳 히루젠의 큐카무라 호텔의 저녁식은 일본 내에서도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지역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과 구이류 튀김류 등 배부르게 먹었다
특이한 것은 유카타라 부르는 샤워가운 비슷하게 생겼는데 알몸으로
가운하나 걸치고 로비며 식당이며 심지어 외부까지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보면 민망하지만 각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이니 따를 수 밖에…
다음날 본격적인 돗토리 현 구경을 나섰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에도시대부터 조성된 옛거리인 아카가와라 거리인데 육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수로를 통하여 천황이나 쇼군에게 진상물을 바쳤다고 하는데
그 물물들을 보관하는 창고를 옛거리와 함께 상점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리 였다.
당시 배가 다니던 수로에는 잉어떼가 노닐고 있다
일본은 남북으로 긴 열도의 나라여서 국화인 벗꽃이 큐수에서
시작하여 훗가이도까지 이르는데 약 두 달간 걸린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이번주가 돗토리 현에서는 벗꽃이 한창이라고 한다.
어젠 비가 왔지만 오늘은 맑은 하늘과 하얀 벗꽃이 우리를 반기는
이 곳은 우쓰부키 공원이다.
이 곳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전설이 내려오는데 다른 것은
우리네는 선녀가 아이둘을 양팔에 안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결말인데
이 곳은 아이 둘을 남겨두고 홀로 하늘로 돌아가서 남은 아이들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엄마를 부른다는 전설이다.
왜 다른지는 알 듯 모를 듯 각자 상상에 맡겨야 겠다.
이 곳의 특산물은 배(먹는배)다. 1920년대 후반 일본 전국 각지마다.
1지방 1특산물 재배 운동을 벌였다. 이 지방의 기후 조건은 배가 자라기
적당한 지역이어서 배 품종을 개량하여 이십세기배 라는 품종을 개발
하였고 이 배를 전시한 곳이 니싯코칸의 배 전시관이다.
전시관 내부의 아트리움에는 커다란 배나무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 배는 40년간 매년 7,000개의 배가 열렸다고 하니 과수원 주인의
애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상상이 간다.
우리나라 나주배, 먹골배 하듯이 그냥 일상적으로 먹는 상품을
훌륭한 볼거리,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이들의 생각과 열정은 가히 본받을 만 하다.
차를 타고 40여분을 달려 그 유명한 돗토리 사구에 왔다.
한국의 매체에서도 여러 번 소개 되어서 익히 알고 있었던 돗토리 사구를
직접 보니 그 규모에 놀라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오아시스도 있고
낙타도 있고, 알라딘에 나오는 자스민 공주처럼 아라비아 전통옷을 입고
화보촬영을 하는 미녀도 만나니 운수 대통인 날이다.
모두들 완만한 경사지를 뒤로 하고 급경사 언덕을 네발로 기어서 오르고 있다.
멀리서 볼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무척 가파랐다.
어제의 다이센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언덕을 올라 서니 대한해협이 눈에 들어온다.
저 바다 건너 나의 나라가 있고 먼 옛날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인들은
이 바다를 건너 이 나라와 교역을 하거나 혹은 문화와 기술을 전수 하였을 것이다.
왜 다이센 옆에 고려산이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이어 일행은 고토부키성을 방문했다. 외관는 일본의 성채이지만
내부는 과자공장과 판매점이 있다.
각 상점마다 시식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누구도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먹을수 있다.
실은 속이 달아 많이 먹지는 못하였다.
끝으로 일행은 미즈키시게루 로드를 걸었다.
일본에서 대단히 유명한 만화가라는데 그가 고향의 발전을
위해 요괴 캐릭터와 사용권을 시에 기증하여 이 길이 생겼다 한다.
곳곳에 요괴들 마스코트와 조각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의 장인정신과 기부문화가 부러워 진다.
저녁이 다 되어 사카이 미나토 항에 다달았다.
병원에 계신 일행의 모친께서도 크루즈 선에 도착 하셨다.
돌아오는 배에서 선장님이 조타실 내부를 보여 주셨다.
이렇게 큰 배를 움직이는 조정실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간단한 자동차 네비 같은 GPS 모니터와 레이다, 방향키 크게 세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 출발지 였던 동해항이 보인다.
여행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가이드 하나비상(한국인임)과 뜻밖의
사고에도 책임지고 챙겨주신 여행사 관계자님 항상 우리 산악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시는 회장님께 감사 드리고 영원한 서포터즈 우리 회원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으로 함께하지 못한 아내와 두딸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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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하루 빨리 완쾌되시길 빌겠습니다..
어이쿠 큰일날뻔 하셨네요 하루빨리 쾌차하시어 만수무강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