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
장옥수
숙성되어간다는 것, 잘 익어 간다는 것은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관대함일 것이다.
세월은 그 모든 다사다난함을 끌어안고 승화시키며 순리의 법칙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다.
봄여름 가을겨울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고 신비롭다.
오늘은 그동안 미루어오던 천일염을 진품으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눔하려고 작정한 날이다.
강산이 두번하고도 몇년이 더 바뀐 해풍을 품은 천일염, 세월만큼이나 투명한 결정체가 수정처럼 반짝인다.
프라이팬에 살짝 구우니 짠맛보다는 달짝지근한 맛이 배어있다.
따닥딱닥 가벼운 소리를 내며 음표를 그린다.
절구와 방망이와의 만남은 아스라한 기억의 저편 유년시절의 오솔길로 나를 데려가고, 망중한의 여유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몇번의 볶고 빻으며 체에서 내리니 하얀 쌀가루처럼 소복하게 소금 눈이 쌓였다.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고 어느새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져 들었다.
눈앞엔 어린시절의 풋풋했던 날들이 쪼르르 달려와 가슴에 와락 안기고, 질펀한 그리움을 한 보따리 펼쳐 놓는다.
고랫도고리(함지박)에 가득한 풋감, 어머니는 무거운 덩드렁마께(방망이)로 감 하나 하나를 힘을 다해 찧으셨다.
파란 껍질을 벗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풋감의 씨는 우리들을 유혹하기에 충분 했다.
어머니의 덩드렁마께의 작업이 빨라질수록 우리들의 손도 바쁘게 움직였다.
감씨를 줏어 입안에 털어넣으면 그냥 즐겁기만 했다.
먹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 초여름날의 연례 행사는 최고의 간식거리 였다.
마당 빨랫줄에는 무명천으로 만든 감물먹은 갈중이가 오뉴월 땡볕에 야금야금 물들어가고 파란 왕잠자리 잠시 쉼하고 가던 호박덩굴엔 노란 호박꽃이 벌을 부르고...
사르륵거리며 내 손 끝에서 미세한 소금의 알갱이들이 유리병 속으로 담긴다.
나의 수고로움과 즐거움이 여덟개의 유리병 속으로 차곡하게 쌓였다.
작은 정성을 받아들고 기뻐 할 그 마음들을 그려보며 미소를 지어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앞뜰에 감나무의 감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진한 맛과 멋으로 숙성되어 만추의 중후함이 바람속에 묻어난다.
첫댓글 가을이 익어가는 정겨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저도
나이들수록 멋지게 익어가는 싶은 욕심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