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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스크랩 불멸의프로메테우스 ~ 베토벤교향곡(3번 ~ 9번
김주한 추천 0 조회 91 12.07.31 09: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출처 ::::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userId=saras69&logId=5773636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62825&menuId=265392&listType=1&from=&to=&curPage=3

 

작곡가~1.JPG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월 17일 ~ 1827년 3월 26일

독일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거의 오스트리아 에서 살았다. 고전주의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당당한 자기 확신이며 거칠 것 없는 외침과도 같은 곡이다. 베토벤은 1802년 고질적으로 앓아오던 귓병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거의 들을 수 없었으며, 그해 10월 6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작성하여 두 동생에게 남긴다.

 

“…… 만일 죽음이 나의 모든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기회를 갖기도 전에 찾아온다면, 아무리 내 운명이 험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일찍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이 조금 더 늦게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대로 죽는다 해도 난 행복해 할 것이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테니까. 죽음아, 올 테면 오너라, 용감하게 그대를 맞아주마…….”

 

베토벤은 이 비장한 유서에 담긴 각오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음악적으로도 1801년~1803년 사이엔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어법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그의 특징적 작법은 매우 건축적이며, 장대한 기상과 함께 강렬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들 중 하나인 [영웅 교향곡] 역시 이러한 배경 아래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베토벤은 그의 창작 시기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시기로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귓병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 ? 새로운 창작시기

 

 

물론 참담하고 비장한 분위기로 가득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처럼 베토벤이 목숨을 끊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유서에 담겨있는 예술가로서의 투쟁과 불굴의 의지는 당시 베토벤의 창작세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 무렵에 작곡한 작품들에서는 투쟁, 갈등, 대립이 화해되며 종결되는 양식이 드러난다. 특히 [영웅 교향곡]에서 나타나는 개별 악장들의 확장된 스케일, 50여 분에 이르는 긴 연주시간, 내용적 심화는 습작적인 면모를 보이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요소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나타난 비장한 각오가 [영웅 교향곡] 전 악장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02년에 작곡하기 시작하여 1804년 봄에 완성되었고 18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의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대중들은 이 곡의 거친 형식미, 광폭하고 야수적인 음향, 긴 연주시간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때부터 자신의 내면을 담은 열광적인 작품들을 미친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3번 교향곡]을 통해 비로소 베토벤만의 세계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모습
베토벤은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심으로 [교향곡 3번]의 작곡을 시작했다.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작곡을 시작한 교향곡


베토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전제 군주정치에서 비롯된 폐해를 누구보다도 깊이 실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베토벤에게 프랑스 혁명의 혼란으로부터 나라를 일으켜 세운 나폴레옹에게 강하게 이끌리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베토벤의 전기를 쓴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에 따르면 당시 빈 주재의 프랑스 공사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이런 의지를 촉발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토벤은 베르나도트 장군에게서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위대한 교향곡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화주의의 이상과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심이 이 교향곡에 대한 최초의 발상을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영웅 교향곡]의 음악적 실체는 베토벤이 이 작품의 형태를 구상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베토벤은 기존에 완성한 자신의 작품인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시골풍 무곡 WoO 14-7],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 Op.35]을 [영웅 교향곡]의 피날레 악장에 인용했다. 이 3개의 곡 중에서 [영웅 교향곡] 해석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는 작품은 1801년에 작곡한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다. 이에 관해서는 음악학자 콘스탄틴 플로로스의 주장이 다소 설득력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플로로스는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에서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은밀한 찬사가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구심점을 이루는 작품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빈첸초 몬티(Vincenzo Mont)의 서사시인 [프로메테오]이다. 베토벤은 이 서사시를 통해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를 ‘공화주의자’에 비유하면서 나폴레옹의 혁명 정신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베토벤 자신의 새로운 예술을 불멸의 프로메테우스에 빗대고 있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소식에 불같이 화를 낸 베토벤

나폴레옹에 대한 베토벤의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영웅 교향곡]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갖지도 못했고, 헌정되지도 않았다. 베토벤은 완성된 악보에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고 써넣었고, 그를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으로 비유하곤 했다. 그러나 결국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소식을 듣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도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 위에 올라서서 독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나폴레옹의 이름이 적혀있던 악보의 표지를 찢어서 내팽개친 것으로 전해진다.

 

 

베토벤이 찢어버린 악보표지에 '보나파르트'라는 타이틀이 지워진채 남아있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전기 작가인 페르난디트 리스에 의해 전해지는 이 유명한 일화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애꿎게도 당시 나폴레옹을 깎아내리고 싶어 했던 영국의 속셈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사건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에 크게 실망한 베토벤은 작품의 제목이었던 “보나파르트 교향곡”을 빼버리고 [신포니아 에로이카 ? 한 위대한 인물을 추념하기 위해]라고 제목을 수정했다. 이 흔적은 현재 사본 악보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 보존되어 있다. 한편, 이 혁신적인 교향곡에 대한 인상은 공개 연주회를 본 하이든의 전기 작가인 카를 아우구스트 그리징어가 당시 출판사에 보낸 서신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무엇이 있다. 여기 한 편의 교향시는 더 높은 대지로 다가왔다!”

 

1악장 - 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두 개의 주제에 의해 풍부한 악상을 지닌다. 1주제는 저음역의 현악기에 의해, 2주제는 온화한 클라리넷 선율로 시작되어 바이올린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 같은 음악학자는 1주제의 선율을 ‘영웅 주제’로 명명했으며 음악학자 쾨르너는 이 ‘영웅 주제’를 군대적 심상을 지닌 동기로 간주하였다. 또한 1악장에서는 반음계적인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것이 전쟁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2악장 - Agadio assai
유명한 ‘장송 행진곡’ 악장이다. 현악기에 의한 주제는 영웅의 장중한 걸음걸이를 나타내는것 처럼 느껴진다. 중간부에서 나타나는 C장조의 밝은 분위기는 생전의 영웅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나 다시 어두운 분위기의 ‘장송 행진곡’으로 마무리 된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쉼표는 절뚝거리는 영웅의 걸음걸이를 그려내고 있다.

 

3악장 - Allegro vivace
3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빠른 스타카토의 움직임을 보인다. 가벼운 악상은 점차적으로 힘을 키워가며 무거운 움직임을 보인다. 트리오에서 사용되는 코랄풍의 호른 선율은 위풍당당하며 마치 일사불란한 군대의 행진을 보는것 처럼 느껴진다.

 

4악장 - Allegro molto
이 악장의 주된 주제는 베토벤의 작품 [영국풍 시골 무곡] 선율이다. 1주제인 피치카토 주제에 이어 등장하는 2주제는 평온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며 이후 대위법적 기교들이 얽히면서 장대한 정점, 압도적인 스케일을 향해 치닫게 된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코다가 등장하며 작품을 힘차게 마무리 한다.

 

노태헌 / 음악 컬럼니스트
음악 컬럼니스트 노태헌은 클래식음악 전문지 [라 뮤지카], [그라모폰 코리아], [코다],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안단테]등에 클래식 음반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다.

 

 

교향곡 제4번

베토벤의 교향곡들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은 대개 홀수 번호의 교향곡들이다. [교향곡 제3번] ‘영웅’과 [교향곡 제5번] ‘운명’, 리듬이 강조된 [교향곡 제7번]과 성악이 들어간 [교향곡 제9번] ‘합창’은 오늘날 베토벤 교향곡들 중 가장 자주 연주되고 있으며 강하고 투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가장 베토벤다운 음악으로 여겨진다. 반면 베토벤의 짝수 번호 교향곡들 중에서 [교향곡 제6번] ‘전원’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우아함과 유머감각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베토벤의 짝수 교향곡들이 베토벤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여성적이고 서정적이며 유머러스한 점이 많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짝수 번호 교향곡들은 베토벤 음악의 색다른 모습을 담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여성적, 서정적 특성을 가진 베토벤의 짝수 교향곡

 

 

베토벤의 짝수 번호 교향곡들 중에서도 [교향곡 제4번]은 그 뛰어난 작품성에 비해 그다지 널리 연주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이 곡은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중에서도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힘으로 가득한 [교향곡 3번] ‘영웅’과 [교향곡 5번] ‘운명’ 사이에 낀 작품이기에 작곡가 슈만은 이 교향곡을 가리켜서 “두 명의 북구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스의 미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리스’라는 말은 이 작품의 고전적인 특성을 가리키고 ‘미인’이라고 한 것은 [교향곡 4번]이 [교향곡 3번]과 [5번]에 비해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베토벤 [교향곡 4번]을 ‘그리스의 미인’에 비유한다면 그 미인은 아주 활동적이고 발랄하고, 또 변덕스럽기도 한 미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그리스 미녀는 1악장에서부터 종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변덕스럽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4번]에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1악장에나 나타나는 혼란스럽고 신비로운 서주가 나오는가 하면, 하이든 풍의 활기찬 음악도 들을 수 있으며, 아다지오 악장의 숭고한 아름다움과 베토벤의 장난기와 유머도 나타나고 있어 무척 변화무쌍하다. 이는 하이든의 고전주의 교향곡의 명랑한 활기와 유머감각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베토벤이 이 곡에서 보여준 것은 하이든의 고전주의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세련된 고전주의라 할 수 있다.


슈만이 이 작품을 그리스 미인이 비유했듯이 [4번 교향곡]은 고전적 명랑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걸작이다. <출처: NGD>

 

 

이미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낭만주의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베토벤이 그 다음 교향곡을 이렇게 생기발랄한 고전적으로 작곡한 것은 다소 의외다. 아마도 베토벤은 [교향곡 4번]의 작곡을 의뢰한 프란츠 폰 오퍼스도르프 공작의 취향을 배려하여 고전주의적인 음악양식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베토벤은 1806년에 오퍼스도르프 공작의 영지인 북부 슐레지엔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곳에서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제2번]을 선보였다. 하이든도 마음에 들어했던 이 교향곡은 고전적인 정신과 우아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아마도 오퍼스도르프 공작의 마음에도 들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작품 의뢰인인 오퍼스도르프 공작을 위해 공작이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 자신의 [교향곡 제2번]의 고전적인 스타일에 준하여 새로운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고, 그 결과 베토벤의 가장 낭만적인 [교향곡 제3번]에 이어지는 [교향곡 제4번]은 고전적인 명랑함을 지니게 되었다.

 

 

 

반전과 활력, 유머와 위트 - 베토벤의 색다른 매력

1807년 3월,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이 그의 [코리올란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제4번]과 함께 프란츠 조세프 폰 로브코비츠 공작의 저택에서 초연되었을 때 대부분의 청중들을 1악장 도입부의 느린 템포와 떠도는 화성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악보에 표시된 조성 기호에 따른다면 분명 이 도입부는 B플랫 장조가 되어야 하지만 들리는 음악은 B플랫 단조이며 매우 신비롭고 어두운 색채로 가득하다. 1악장의 느린 서주가 현악기의 피치카토(현을 퉁기는 주법)가 가미된 관악기의 화음으로 시작되면 현악기들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3도 하행 선율을 연달아 연주한다. 베토벤은 이 신비로운 서주 부분에서 매우 과감한 전조를 감행해 B플랫 단조에서 갑작스럽게 B단조로 건너뛰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마치 전혀 다른 시공간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듯 기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또다시 C장조와 d단조로 정처 없이 흐르는 조바꿈이 계속되다가 팀파니와 화려한 트럼펫이 가세하면서 드디어 1악장의 악상은 확실한 윤곽을 잡기 시작한다.

 

 

 

팀파니와 트럼펫에 힘입어 곧바로 전체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빠른 알레그로 비바체 부분에 진입하면 바이올린이 경쾌한 주제를 연주하면서 1악장의 활기 찬 제1주제가 연주되는데, 신비로운 도입부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이 주제는 잠시 후 목관악기들이 릴레이를 하듯 연주하는 장난기 어린 제2주제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간결한 형식미와 위트가 돋보이는 1악장은 간결하고 명쾌한 형식으로 음악에 추진력을 더하는 베토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2악장에서 베토벤은 매우 느린 ‘아다지오’(Adagio)의 템포 기호를 사용한다. 이는 [교향곡 제9번] 3악장에 나타나는 템포로,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매우 느리고 장중한 성격을 지닌다. 제2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부점 리듬의 반주음형을 타고 흐르는 제1바이올린의 노래는 마치 천상의 음악처럼 아름답고 신성하다. 그러나 때때로 제2바이올린의 반주음형이 전면에 나타나 강박적으로 반복되며 아름다운 제1바이올린의 주제와 대비된다.


3악장은 전형적인 스케르초의 빠른 템포의 위트 넘치는 음악이지만, 형식이 크게 확장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대개의 스케르초는 리듬이 강조된 스케르초 부분에 이어 소수의 악기들로 실내악적으로 연주되는 트리오 부분이 나온 후 다시 처음의 스케르초로 되돌아가는 단순한 'ABA' 형식을 취하지만, 이 곡에서 베토벤은 이 악장 뒷부분에 스케르초와 트리오, 스케르초를 더하여 규모를 좀 더 확장했다.


1803년경의 베토벤 모습. 1806년에 완성한 [교향곡 4번]에는 유머,
고전적 미와 같은 베토벤의 색다른 모습이 나타나 있다. <출처: wikipedia>

 

 

 

베토벤의 [교향곡 4번]은 바이올린과 목관악기의 뛰어난 기교가 요구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을 주는 작품이기도 한데, 이런 특징은 4악장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제1바이올린 주자들은 마치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연주할 때처럼 매우 빠른 16분 음표들을 끊임없이 연주해야하고 바순과 클라리넷 주자 역시 중간 중간 매우 빠른 악구를 화려하게 연주해내야 하기에 4악장은 연주자들에게 꽤 부담이 되는 곡이다. 하지만 그만큼 청중에게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간과 즐거움을 전해주는 음악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시종일관 빠르게 질주하는 4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바이올린과 바순이 주제 선율을 느리게 주고받는 악구를 끼워 넣어 청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곧바로 빠르게 휘몰아치는 템포로 음악을 마무리하는데, 이는 베토벤이 구사한 음악적 유머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초연 당시 베토벤이 이 교향곡에서 선보인 유머감각과 정교한 작곡기법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811년, 독일의 <일반음악신문>은 교향곡 3번과 5번 사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이 걸작 교향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은 아직까지 그다지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위트로 가득한 작품이다.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주와 격정적이고 화려하며 임찬 알레그로, 세련되며 우아한 안단테와, 완전히 독창적이며 놀랍고 매혹적인 스케르초, 그리고 매우 효과적인 피날레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즐거우며, 이해하기 쉽고, 매우 매력 있다.

 

만일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나 [합창 교향곡]에 익숙한 청중이라면, 베토벤의 [교향곡 4번]에서는 뜻밖의 반전과 활력을 느끼며 베토벤 음악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추천음반
베토벤 [교향곡 4번]을 담은 음반으로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주립교향악단의 음반(orfeo)이 유명하다. 열정과 활기로 충만한 클라이버의 매력이 한껏 펼쳐진 연주다.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sony)의 역동적인 연주와 발터가 지휘하는 컬럼비아 심포니오케스트라(sony)의 명쾌한 연주도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노링톤이 지휘하는 런던 클래시컬 플레이어즈의 음반(EMI)도 추천할 만하다. 이외에도 다 명기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 뛰어난 명반이 곡의 명성만큼 많이 존재한다.

 

"운명의 문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 베토벤 교향곡 5번

 

베토벤 교향곡 5번, 흔히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곡이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베토벤이 한 말에서 나왔다. 어느 날 베토벤의 제자가 1악장 서두의 주제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교향곡이라는 별칭은 다른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그렇게 부른다.

 

베토벤 운명은 3번 '영웅'을 완성한 후인 1804년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곡들 때문에 작업이 미루어지다가 1807~1808년경에 집중적으로 작곡되어 완성되었다. 그때 베토벤은 6번 전원도 작곡을 병행하였다. 그래서 5번의 초연이 1808년 12월 22일에 있었는데, 같은 날 6번도 초연이 이루어졌다. 초연이 이루어지는 연주회 때 6번이 먼저 연주되어, 세상에 공개된 것은 5번이 6번보다 조금 늦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베토벤의 귀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하는 등 그가 사는 세상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니 이 교향곡을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와 환희를 그렸다고 해석하는 것도 그럴 듯하다. 곡을 들으면 1악장에서 시련과 고뇌가, 2악장에서 다시 찾은 평온함이, 3악장에서 쉼 없는 열정이, 4악장에서 도달한 자의 환희가 느껴진다.


생전에 베토벤이 사용하던 보청기

 

 

 

 

일찍이 베토벤은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커스이며 그렇게 빚은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의 [교향곡 제7번]이야말로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특히 리듬의 역동성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으로 리스트는 이 교향곡을 가리켜 “리듬의 신격화”라 표현하기도 했다. 강박적인 리듬의 반복을 통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원초적인 리듬충동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간결하며 단 한 음도 버릴 데가 없는 치밀한 구성력

이 곡은 초연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결국 클래식을 상징하는 곡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서두의 4개의 음 주제가 2차 대전 당시 BBC 뉴스의 시그널로 쓰여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 리듬이 모르스 부호 V, 즉 승리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전쟁시에는 적국의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꺼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곡이 독일과 적이었던 영국의 국영 방송의 시그널로 쓰였다는 것은, 누구나 이 곡이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전쟁 따위는 뛰어넘는 인류의 명곡을 인정했다는 것이 아닐까?

 

 

베토벤은 비슷한 시기에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들을 동시에 내놓는 경향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향곡 제5번]과 [교향곡 제6번]이다. 강한 추진력이 돋보이는 [교향곡 5번] ‘운명’과 이완된 리듬과 평화로운 멜로디가 담긴 [교향곡 6번] ‘전원’은 각기 1807년과 1808년에 연달아 작곡된 후 1808년 12월 22일에 빈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그날의 음악회는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해 밤 10시 30분까지 무려 4시간에 걸쳐 계속됐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마라톤 음악회에서 베토벤은 작곡가로서, 지휘자로서, 독주자로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교향곡 5번]과 [교향곡 6번]뿐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독주곡, 몇 곡의 아리아, 그리고 [합창 환상곡]까지 연주하고 지휘했다.

 

4시간의 마라톤 연주회 - [운명 교향곡]과 같은 날 초연

이 역사적인 연주회를 지켜본 라이하르트는 지인에게 보내는 12월 25일자 편지에 그날 연주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지독한 추위 속에서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그 곳에 앉아, 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장점과 강력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격언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가지 작은 실수들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긴 했지만, 음악회가 끝나기 전에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음악회가 워낙 길고 힘들다 보니 공연 후반부에 연주가 엉망이 되는 사고도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환상곡(합창 환상곡 작품80)이 연주되었는데, 이번에는 관현악단이 연주에 동참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합창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편성의 연주는 크게 실패하고 말았지요. 관현악단의 연주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열정으로 인해 청중과 주위사람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채 연주를 멈추고 다시 시작하라고 소리쳤습니다. 나를 비롯한 베토벤의 친구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나는 빨리 그곳을 떠날 수 있는 마차가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이 야심만만한 연주회는 결국 엉망이 되긴 했지만, 장장 4시간 동안 진행되는 베토벤의 심포니 연주가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베토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바로 그날 연주된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은 같은 날 초연되었으니 쌍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닮지 않았다. ‘운명’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교향곡 제5번]이 운명과 싸워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교향곡 제6번] ‘전원'에는 인간의 괴로움과 투쟁이 아닌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제5번이 인간을 표현한 것이라면 제6번은 자연을 다루었으며, 전자가 응집력과 추진력을 갖춘 역동적인 음악이라면 후자는 관조와 명상이 흐르는 이완된 음악이다. 초연 당시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이 먼저 연주된 후 [교향곡 제5번]은 나중에 연주됐는데, 18세기 빈 고전주의의 우아하고 균형 잡힌 음악에 길들여진 그날의 청중들은 두 곡의 교향곡 중에서 ‘전원’ 교향곡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고 전해진다.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의 표제는 작곡가 자신이 직접 붙였고 각 악장에도 표제가 붙어있다. 그러나 베토벤이 교향곡에 담아낸 전원의 모습은 단순히 전원 풍경을 묘사한 ‘음화’(音畵)는 아니며 자연에 대한 감정과 관념의 표현이다. 베토벤 자신도 [교향곡 제 6번] ‘전원’의 표제에 대해 이런 메모를 남기고 있다. “전원 교향곡은 회화적인 묘사가 아니다. 전원에서의 즐거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의 감정 표현이며, 그에 곁들여서 몇 가지의 기분을 그린 것이다.”


[전원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4시간짜리 거대한 콘서트를 열 정도로 인기있는 작곡가였다.

 

 

 

 

 

전원에서의 즐거움, 마음 속에 떠오르는 기분을 표현

베토벤은 ‘전원’ 1악장의 악보에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이라 쓰고 전원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단조로울 정도로 반복적인 음형으로 표현해냈다. 전개부에서 무려 72회나 계속되는 반복음형과 느린 화성 리듬을 통해 베토벤은 자연의 무한함과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을 담고자 했다.


2악장 ‘시냇가에서’에는 비교적 구체적인 묘사가 나타났다. 제1바이올린이 평화로운 선율을 연주하는 사이 저음 현 파트에서 물결치는 듯한 반주 음형이 나타나는데 이는 시냇물의 잔잔한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2악장 후반에는 구체적인 새소리도 들려온다.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를 표현한 플루트의 연주에 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각기 메추라기와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실감나게 묘사하며, 시냇가의 새소리에서 느껴지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베토벤은 각 악장에 표제를 붙여놓아 자연 속에서 느끼는 즐거운 기분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한 편의 교향곡으로 엮었다. <출처 : NGD>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과 ‘폭풍’, 그리고 ‘폭풍이 지난 후의 감사한 마음’을 노래한 3, 4, 5악장은 하나의 음악처럼 쭉 이어서 연주된다. 베토벤은 후반 세 악장을 연결시켜 마치 전원을 산책하며 보고 듣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엮어놓는다. 먼저 시골풍의 소박한 춤곡이 펼쳐지는 3악장에서는 평화로운 전원을 배경으로 농부들이 즐겁게 먹고 마시며 춤을 추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러나 흥겨운 음악은 갑자기 중단되고 제2바이올린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음형을 연주하면 갑자기 폭풍이 몰려오듯 음악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지고 난폭해진다. 찌르는 듯한 피콜로의 고음과 무시무시한 트롬본의 연주가 가세하여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부는 폭풍의 격렬함을 묘사한다. 짧지만 강렬한 4악장의 폭풍이 지나가면 5악장에서 폭풍이 지나간 것을 감사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갖가지 형태로 변주되며 전원 교향곡은 절정에 달한다.

 

 

추천음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에서 전원의 평화로움과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신 녹음(DG)을 추천하고 싶다. 아바도는 베토벤의 짝수 교향곡에 담긴 온화함과 유머를 잘 표현해낸 연주로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전원’ 4악장 폭풍 장면에서 팀파니의 자극적인 천둥소리를 듣고 싶다면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는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Archiv)의 생기 있는 연주를 추천하고 싶다. 그밖에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EMI)의 세심한 연주나,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DG)의 윤기 흐르는 연주도 추천할 만하다. 이외에도 베토벤 교향곡의 명성만큼 뛰어난 음반들이 많이 존재하며 다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일찍이 베토벤은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커스이며 그렇게 빚은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의 [교향곡 제7번]이야말로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특히 리듬의 역동성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으로 리스트는 이 교향곡을 가리켜 “리듬의 신격화”라 표현하기도 했다. 강박적인 리듬의 반복을 통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원초적인 리듬충동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베토벤 음악 인생에 길이 기억될 초연 연주회

 

 

베토벤이 [교향곡 제7번]을 완성한 1812년은 그의 작품 활동이 주춤하기 시작한 시기다. 1802년부터 1809년까지 7년간 베토벤은 다섯 곡의 교향곡과 현악4중주곡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 등의 걸작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1809년에도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와 현악4중주 작품74, 피아노 소나타 ‘고별’ 등 걸작들을 계속 발표하며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욕을 과시했으나 1810년부터 차츰 작곡의 속도를 늦춰갔다. 그러던 중 1812년 4월 13일에 드디어 4년간의 교향곡 공백기를 깨고 몇 곡의 음악을 다 합쳐놓은 것만큼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담은 [교향곡 제7번]을 완성해내면서 교향곡 작곡가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이루어진 [교향곡 제7]번의 초연무대는 베토벤의 경력에 있어 길이 기억될 만한 연주회였다. 연주 당시 부악장을 맡았던 작곡가 슈포어가 남긴 위의 증언을 보면 [교향곡 제7번]을 지휘할 당시 베토벤은 이미 청력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날 공연은 베토벤의 공연들 가운데도 기억에 남을 만한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연주 당일 베토벤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관객들이 환호한 작품은 [교향곡 제7번]이 아니라 그날 공연에서 함께 연주된 [웰링턴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 7번]은 춤을 추듯 리듬의 약동과 힘이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출처: NGD>

 

 

흔히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하는 [웰링턴의 승리]는 메트로놈의 발명가 멜첼이 고안한 ‘판하르모니콘’이란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으로, ‘전쟁’과 ‘승리’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팡파르, 군대의 호출, 대포소리, 전쟁장면 등이 단순하게 묘사되고 마지막 종결부의 압도적인 클라이맥스로 인해 대중들은 이 작품에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웰링턴의 승리]보다 [교향곡 제7번]이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했던 베토벤은 청중의 이런 반응에 실망했고, 빈 신문에서 [교향곡 제7번]을 가리켜 [웰링턴의 승리]의 “들러리 작품”이라 칭한 것에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 청중이 [교향곡 제7번]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특히 장송행진곡 풍의 2악장에 열광해, 베토벤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2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하기도 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 광란의 춤곡


[교향곡 제7번] 1악장은 매우 길고 복잡한 서주로 시작된다. 1악장의 서주는 그때까지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들어볼 수 없었던 가장 거대한 서주로, 신비로운 화음과 계속되는 음계, 목관악기에 의해 반복되는 단순한 모티브가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독특한 부점 리듬형이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템포는 매우 빠른 비바체로 바뀌고 마치 춤곡과도 같은 리듬형이 강박적으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대개 4/4박자로 되어있는 일반적인 교향곡의 1악장과는 달리 [교향곡 제7번]의 1악장은 바로크 춤곡 ‘지그’(Gigue)를 연상시키는 6/8박자로 되어 있어 특별하며, 여기에 팀파니까지 리듬의 향연에 가세해 집요하게 같은 리듬을 반복하면서 광포함을 더한다. 그야말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이라 할 만한 광란의 춤곡이다.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라는 애매한 템포로 설정된 2악장은 장송곡 풍의 독특한 음악으로 초연 당시 청중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이다. 2악장이 시작되면 목관악기의 불안정한 화음에 이어 저음 현악기들이 장례행진을 연상시키는 리듬 주제를 연주한다. 저음현의 어두운 음색이 침통한 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어느새 제2바이올린 파트가 끼어들어 주제를 연주하고, 저음현은 또 다른 선율을 연주하면서 제2바이올린과 조화를 이룬다. 새로운 악기들이 끼어들 때마다 감정의 깊이는 더욱 강해지며 청중을 음악 속으로 끌어들인다. 2악장 중간 부분에서 클라리넷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잠시의 위안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저음 현악기들은 계속해서 장송음악의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작품은 디오니소스적 충동, 술의 향연을 떠올리게 할 만큼 리듬의 역동성과 광란의 느낌이 가장 잘 표현된 곡이다.
그림은 디오니소스 축제를 그린 17세기 화가 니콜라 푸생의 작품. <출처: poussin at en.wikipedia.com>

 

 

 

3악장은 베토벤 음악의 역동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한 스케르초라 할 수 있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만으로 흥분을 일으키며 그 과격한 리듬은 21세기 청중에게도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준다. 때때로 강한 악센트와 제2호른의 갑작스런 돌출 등 예상치 못한 반전에서 베토벤 특유의 블랙유머도 느낄 수 있다. 반면 3악장의 중간에 등장하는 트리오 부분에선 현악기가 지속음을 연주하는 사이 목관악기들은 한층 이완된 리듬을 선보이며 역동적인 스케르초 부분과 대비된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한 트리오 부분에선 출렁이는 목관악기의 움직임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4악장은 처음부터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와 강렬한 리듬으로 충격을 준다. 마치 완벽한 기계장치가 돌아가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의 합주에서는 어느 정도 규칙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악장에선 특히 약박을 강조하는 규칙적인 악센트와 반음 모티브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저음현의 독특한 움직임에 주목해보자. 다른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거칠고 사나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4악장은 베토벤의 가장 자극적인 교향곡을 마무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압도적인 결론이다.

 

 

추천음반
옛 거장들의 역사적인 명연을 비롯해 수많은 명반이 존재하며 4개만을 꼽기엔 어려움이 많은 작품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7번]의 역동적인 리듬감을 느끼고 싶다면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반(DG)을 추천하고 싶다. 2악장의 진지함을 느끼고 싶다면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의 음반(BBC)도 추천할 만하며, 그밖에 귄터 반트가 지휘하는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음반(RCA)과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반(Teldec)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및기획홍보팀장

 

교향곡 제8번

그토록 역동적이고 열광적인 [교향곡 제7번]을 작곡한 바로 그 베토벤이 이렇게 고전적인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을 들으면서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7번]을 완성한지 6개월이 지난 1812년 10월에 내놓은 [교향곡 8번]에서 마치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기라도 한 듯 3악장에 제대로 된 미뉴에트를 써넣는가 하면 중간 중간 하이든 풍의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대체 이토록 전혀 다른 성격의 [교향곡 7번]과 [8번]을 거의 연달아 내놓은 베토벤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대중적인 인지도로 보았을 때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은 [제7번]에 비해 인기가 없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청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며 압도적인 연주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제7번]을 선택하지 옛 양식으로 되돌아간 듯한 [제8번]을 연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가 아닌 이상 베토벤 [교향곡 8번]을 일반적인 관현악 연주회에서 듣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은 베토벤 당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이 1814년 2월 27일에 초연되었을 때에도 <일반음악신문>의 평론가는 “이 작품은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해 베토벤을 화나게 했다.

 

 

과거 양식으로의 회귀를 가장한 ‘대담한 진보’

하지만 베토벤 자신은 교향곡 제8번을 더 사랑했다. 누군가 베토벤에게 [교향곡 제7번]이 [제8번]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제8번이 더 낫기 때문이야”라 답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교향곡 8번]을 자세히 들으며 이 음악의 매력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그 기막힌 반전과 풍자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이 교향곡 속에 숨어있는 어마어마한 혁명을 발견해낼 수 있는 음악애호가라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보다 [제8번]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향곡 제8번]을 완성한 후 12년 동안 교향곡 분야에서 아무런 작품을 내놓지 않은 베토벤은 1824년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어간 대작 [교향곡 제9번]을 작곡했다. 교향곡에 성악이 들어가는 [교향곡 제9번]은 교향곡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는 면에서 진정으로 혁명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교향곡 제8번]은 겉보기에도 순수한 기악 교향곡일 뿐 아니라 형식상으로도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세운 틀을 간직하고 있는 교향곡이기에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완성한 ‘정상적인’ 교향곡이며 그다지 혁명적인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교향곡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은 ‘과거회귀’를 가장한 대담한 ‘진보’다. 베토벤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교향곡 속에 앞으로 그가 추구하게 될 새로운 길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베토벤은 [교향곡 8번] 속에 유머와 대담한 풍자,
반전의 아이디어를 집어 넣었다. <출처: wikipdedia>

 

 

 

고전파 음악을 풍자하는 베토벤의 도발적 시도


베토벤은 [교향곡 8번]에서 교향곡 1악장으로서는 드물게 춤곡 풍의 3/4박자로 설정하고 서주 없이 곧바로 주제를 제시한 후 떠들썩하게 전개시킨다. 언뜻 들으면 [교향곡 제7번]만큼 광포한 느낌은 없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간혹 음악적인 희열이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발전부에서 재현부로 들어가며 다시 주제를 확신있게 재현해야하는 부분에서도 분위기가 지나치게 고조되어 중요한 제1주제의 선율이 어설프게 들린다. 그래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후에 이 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개정해 주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주제의 성격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베토벤의 본래 의도인 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고전주의 음악을 풍자하려 했으리라.


베토벤은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느린 악장에서 위대한 음악성을 드러내곤 했지만 이 교향곡에선 느린 악장을 쓰지 않았다. 느린 악장이 들어가야 할 2악장의 자리에 그는 위트 넘치는 음악적 농담을 선사했다.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에게 감사를 표하려는 듯, 목관악기들은 똑딱거리는 메트로놈의 단조로운 16분 음표 음형을 반복한다. 여기에 현악기들이 귀여운 멜로디를 연주하며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뉴에트로 대체된 스케르초 악장

베토벤은 [교향곡 제1번]에서 이름뿐인 미뉴에트를 작곡한 것을 제외하고는 교향곡의 3악장의 미뉴에트를 스케르초로 대체해왔다. 그런데 교향곡 제8번에선 그 자신에 의해 다시 미뉴에트로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베토벤은 과거 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이상하게 비틀린 악센트와 과장된 듯한 제스처로 가득한 이 음악을 들어보면 베토벤이 마치 거대한 가발을 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옛 궁정악사들을 조롱하는 듯하다. 귀족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강요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해진 자유음악가 베토벤은 이 미뉴에트를 통해 과거의 음악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4악장에서 베토벤은 빠른 속도와 거친 유머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바이올린이 벌이 윙윙거리듯 빠른 음표들을 연주하면 곧 플루트와 오보에가 맞장구를 친다. 웬일인지 주제선율은 점점 작아져 결국 매우 여린 피아니시시모(ppp)에 이른다. 그러다 돌연 엉뚱한 C#의 음이 돌출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는 곧바로 으뜸조인 F장조의 주제가 크게 연주된다. 전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연주하는 주제 선율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하게 들린다. 바로 직전의 C#의 충격적인 돌출이 주제의 단순함을 조롱하는 듯했기 때문이리라. 이것이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유머를 구사하는 방식이다.

 

베토벤의 유머는 이 악장 전체를 통해 계속된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상한 전조와 예상을 깬 전개방식이 펼쳐지며 순간순간 놀라움을 안겨준다. 이 곡은 마치 하이든 교향곡의 피날레처럼 가볍고 빠른 음악이지만 곳곳에 베토벤이 시도한 가장 위험하고 도발적인 모험이 숨어있다.


3악장 미뉴에트는 과거 궁정악사들을 조롱하는 듯 베토벤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출처 : NGD>

 

 

추천음반
재치와 풍자와 대담함이 돋보이는 베토벤 [교향곡 8번]은 특히 고악기 연주단체의 산뜻하면서도 과격한 연주로 들을 때 그 맛이 더 잘 살아난다. 존 앨리어트 가디너가 지휘하는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의 긴장감 넘치는 음반(Archiv)도 훌륭하며, 필립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로열 플레미시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산뜻한 연주(Pentatone)는 베토벤 [교향곡 8번]의 고전적이면서도 풍자적인 면을 재치 있게 표현해낸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오케스트라의 음반(Teldec)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며, 그밖에 데이비드 진만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음반(Arte Nova)도 추천할 만하다.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은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4악장에서 독일의 시인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합창이 나오는 까닭에 ‘합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은 작곡가 베토벤이 완성해낸 마지막 교향곡이자 오랜 세월에 걸쳐 작곡된 역작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완성해낸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인 1824년 2월의 일이지만 이 교향곡은 이미 1812년경부터 구상되었고, 실러의 ‘환희에 붙여’의 송가에 곡을 붙이려 생각한 것은 그가 고향 본을 떠나 빈으로 가기 이전부터였으니 베토벤은 교향곡 제9번을 30년 이상이나 구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 편성 : 피콜로1,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콘트라바순1, 호른4, 트럼펫2, 트롬본2, 팀파니,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현악5부, 소프라노 1, 알토1, 테너1, 베이스1, 혼성4부 합창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변화무쌍한 교향곡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변화무쌍한 교향곡에 청중들은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베토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위대한 교향곡이 초연되는 그 순간 단지 참관자의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음악회의 실질적인 지휘자는 미하일 움라우프(Michael Umlauf, 1781~1842)였고 악장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 1776~1830)도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베토벤은 지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중요한 부분에서 지시를 내리기도 했으나 불행히도 음악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당시 합창단의 소프라노 파트에서 노래한 그레브너 부인은 베토벤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연주에 맞추어 악보를 읽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한 악장이 이미 끝났는데도 페이지를 계속 넘기곤 했다. 공연 때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건드리고 청중석 쪽을 가리켰다. 박수 치는 손 모습과 손수건이 휘날리는 광경을 보고 그는 머리를 숙였고, 그러면 더욱 큰 함성이 일었다.”

 

 

[합창 교향단]이 연주되고 있는 영화 [카핑 베토벤]의 한 장면

 

 

 

교향곡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통의 틀을 벗어나 있다.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도입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2, 3악장의 템포를 바꿔 2악장을 빠른 스케르초로, 3악장을 느리고 가요적인 악장으로 설정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또한 피날레 악장이 전통적인 음악 형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역시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우주의 문이 열리는 듯한 1악장의 신비스러운 도입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제1악장의 신비스러운 도입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교향곡의 첫 도입부를 듣는 순간, 베토벤 교향곡이라면 으레 크고 웅장하게 시작되리라는 우리의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들릴 듯 말 듯한 호른의 지속음과 현악기의 살랑거리는 트레몰로가 슬그머니 교향곡의 시작을 알린다.

 

 

 

다이내믹은 피아니시모(pp). 10여 마디가 지나도록 들리는 음이라고는 단지 A와 E음 뿐이다. 이 텅 빈 완전 5도를 채워줄 중간 음마저 빠져있어서 대체 이 음악이 장조인지 단조인지조차 감이 안 온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도입부는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이론가들은 이 도입부를 가리켜 아무 것도 없는 혼돈 속에서 서서히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또한 어둠 속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훗날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는 거의 모든 그의 교향곡에 이러한 개시 방법을 도입해서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다’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신비로운 1악장의 도입부가 지나면 d단조의 주제가 단호한 어조로 등장한다. 쓸데없는 수사나 장식 없이 전 오케스트라가 큰 소리로 단순 명쾌한 주제를 연주하는 순간 압도적인 숭고함이 뿜어 나온다. 그러나 1악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바순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가 D에서 A로 반음계적으로 하행했다가 다시 D로 되돌아오는 선율을 반복해서 연주하며 어둡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확신에 찬 어조를 다시금 비탄의 정서를 자아내며 1악장을 마무리한다.


1악장의 애매모호한 도입부와 명쾌한 주제는 마치 혼돈 속에서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과 같다.

 

 

 

 

 

2악장에서 비극은 익살극으로 얼굴을 바꾼다


태초의 혼돈과 우주의 생성으로 시작해 비탄으로 끝난 1악장은, 이런 심각한 슬픔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활기찬 2악장으로 이어진다. 베토벤 연구가 솔로몬이 이 악장에서 비극은 갑자기 익살극으로 바뀐다고 말했듯이, 2악장의 기괴한 음악은 1악장의 고뇌를 한 순간에 하찮은 농담으로 전락시킨다. 그 농담은 유쾌하다기보다는 냉소적이며 지극히 악마적인 것이다. 여기서 팀파니는 2악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희극 배우로 활약한다. 보통 방식대로 완전 5도로 조율되지 않고 옥타브 음정으로 조율된 팀파니는 갑자기 큰 소리로 끼어들며 우리에게 섬뜩한 농담을 건넨다. 2악장의 열광적인 무곡이 끝나면 사랑으로 넘치는 3악장 아다지오가 뒤따른다. 음악학자 조세프 커먼은 베토벤의 후기 기악곡에 ‘인간의 목소리’(voice)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아다지오야말로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아다지오는 순수 기악곡이지만 여기에는 마치 성악곡과 같은 유려한 멜로디가 흐르며 천상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4악장 ‘환희의 송가’를 통해 모든 인간은 하나가 된다!

4악장이 시작되면 오케스트라의 서주를 지나 베이스 독창자가 일어나 “오, 벗이여! 이런 곡조는 아니오! 더 즐겁고 환희에 찬 곡조를 노래합시다!”라 말한다. 그러면 지극히 단순하지만 강한 설득력을 지닌 환희의 선율이 시작된다. 그 뒤를 이어 터키풍의 행진곡과 느리고 장중한 음악, 환희의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변주, 소나타와 협주곡 형식 등이 합쳐지면서 거대한 음악적 통일이 성취된다. ‘모든 인간은 한 형제’라는 환희의 송가를 통해 청중은 모두 하나가 된다.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자필 악보로 악보 중간에 'seid umschlungen, Millionen(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라고 씌어진 베토벤의 육필이 보인다.

 

 

 

기악을 마치 성악처럼 다루는 방식은 4악장에서 더욱 돋보인다. 9마디 상박부터 시작되는 첼로의 기악 레치타티보는 그 대표적인 예로, 이 멜로디는 후에 나타날 ‘오, 친구여’로 시작되는 베이스의 레치타티보에 해당된다. 4악장은 기악곡을 성악곡처럼 쓴 곡일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성악곡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시대에는 교향곡에 성악을 사용하는 예가 거의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혁명적인 시도여서 당시의 몇몇 평론가들은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넣은 것은 큰 실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애초의 계획을 그대로 고수하여 그의 마지막 교향곡을 기악과 성악을 혼합한 장엄한 대서사시로 만들어 후대의 교향곡 작곡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은규 / 음악 평론가 ,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발행일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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