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초기 공동체 모습2 -감사미사드릴때까지.hwp
- 첫 미사이후 교육관 성당에서 감사미사 드릴 때까지 -
첫 주일 미사후 평일미사는 매주 2회 원하는 가정에서
집 축복과 함께 드리기로 하였고,
본당의 공지사항을 효율적으로 교우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본당 신부님께 허락을 받아 산남동성당 다음까페를 개설하였습니다. (2007. 5. 9)
첫 주일미사가 있던 주간부터 8월 말까지
가정 평일미사가 이어졌으며,
신부님과 함께 교우들이 함께 하며 서로 축복해주고,
음식을 함께 나누며 정이 깊어졌습니다.
5월 11일 (금) 15시에는 성전터에서 첫 삽이 떠졌고
이틀 후 주일 아침 7시부터 공사로 인한 분진과 소음을 막기 위해
성당터 주변에 팬스가 설치되고 터파기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주일 미사에는 첫 미사에 함께 할 수 없으셨던
교구청 사무국장 강희성 펠릭스 신부님께서 미사를 함께 집전해 주셨으며
참석인원 130여명이 미사 후 차와 떡을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5월 14일에는 현장 컨테이너를 설치하였으며,
이틀간에 걸쳐서 토목공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고르기 전의 성당터는 삼단으로 되어 있고 각각의 높이 차이가 2~3미터 이상 났었는데
두 번째 단의 흙을 모두 파냄으로써 성모상뒤쪽 단을 제외하고는
성당 입구에서 성모상 모셔진 곳까지 평평한 높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셋째 주일 미사에는 107명이 미사참례를 하였으며,
그 날도 역시 떡과 차가 준비되어 교우분들이
샛별초등학교 교정에 군데군데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5월 셋째 주간 화요일에는 임시성당과 사제관 건물 (현교육관)이 놓이게 될 부분에
기초공사가 시작되어 이틀 만에 기초 콘크리트가 타설되고
성당 주변에 잔디 심기까지 진행 되었습니다.
교육관 건축의 설계 및 건축공사에 관한 모든 것은
박용근 베드로 신부님이 주도적으로 진행하셨습니다.
6월 2일에는 주교좌 성당에서 앞으로 성당에서 사용하게 될 의자 320개와
탁자 30개를 가져오고 당시 실정에 가장 긴요하게 사용될
플라스틱 간이의자 100개를 안문상 바오로님께서 기증해 주셔서
조금 더 평안하게 앉아서 주일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교구 전산, 홍보 실장으로 계시던
권우현 그레고리오 신부님께서 본당 로고를 디자인하여
본당신부님께 전해주신 날도 이 날 이었습니다.
그 로고는 현재 본당의 모든 양식과 서식에 사용되고 있으며
산남동 교우 명패는 특징적으로 이 로고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튿날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에는 140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공사가 얼마간 진행되면서 현장에 컨테이너 하나를 더 설치해서
신부님께서 기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본 성당 사제관이 지어질 때까지 아파트에서 거주하시는 것을 권유받기도 하셨지만,
성당에는 사제가 거주해야만 한다고 하시며,
임시성당에 사제관을 포함시켜서 공사를 진행 하셨습니다.
교육관건물 사제관에 입주하실 때까지 3개월 이상 가장 뜨거운 여름철을
컨테이너에서 생활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드디어 7월 1일에 건축 중인 교육관 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리게 됩니다.
공사가 진행중이라 제대가 놓일 제단에는 기둥이 받쳐져 있고,
한 쪽에는 벽돌이 쌓여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대청소를 하고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놓아 신자석을 정리하고,
뒤쪽에는 유아들을 데려온 가족들이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자리를 폈습니다.
미사중에 신부님께서는 마이크를 들고 쌓여진 벽돌위로 올라가서
강론을 하시는 모습이 산상설교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이날 1차적으로 성모회와 제대회를 구성하여 발표 하였으며,
성모회장은 홍석은 카타리나, 부회장 : 정영란 율리안나, 총무 : 조경아 베네딕다,
제대회장으로는 신향진 미카엘라님 등을 각각 임명하여 공표하였습니다.
파악된 신자가 적어서 한시적으로 두 구역으로 나눠
박헌영 막달레나, 김정선 실비아님을 각각 구역장으로 발표하였으나,
두 달 만에 8개 구역으로 재편성하여 현재의 구역체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교육관 골조가 완성되고, 성가대석을 포함한 교육관 2층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모님을 모실 자리를 만드는 공사가 이뤄졌습니다.
공사기간 동안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 성모회장 책임 하에 각 구역원들이 돌아가며
공사현장 인부들에게 점심과 간식거리를 제공하였습니다.
공사현장 인부들은 지금까지 공사현장을 따라 다녔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는 곳은 처음이라고,
다음에 종교를 갖게 되면 성당을 다니겠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첫 미사후 두 달이 되어 가면서 7월 8일자로 전입가구가 100세대를 넘어섰으며,
15일 부터는 산남동성당 로고를 새긴 교우 명패가 완성되어
교우분들게 분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7월 20일에는 교육관 앞에 높은 철제 십자가가 세워졌으며
24일부터 드디어 실내 및 바닥 공사에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24일에는 청동 성모상을 모시게 되는데,
다시 돌려드리기로 하고 광혜원 성당 창고에 있던 성모상을 모셔왔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6월 둘째 주부터 평신도협의회구성을 준비하셨으나,
교우분들이 계속 전입하고 있는 상태라서 그러셨는지 늦추다가
회장이 없는 부회장 대표체제의 임시 평신도협의회를 구성하여
9월 2일 주보를 통해 발표하였으며, 그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회장 : 안문상 바오로
총무 : 이종균 요나, 기획분과 : 박대현 펠릭스
선교부:조기주 십자가요한, 행사부:김태식 안드레아, 김창국 정야고보
전례부 : 김경환 가브리엘, 재정부 : 신용석 가롤로
현재와 같은 본당관할지역의 구역편성은 9월 9일에 발표하였으며, 다음과 같습니다.
1구역-계룡 리슈빌, 2구역-현진 에버빌, 3구역-부영 사랑으로,
4구역-대우 푸르지오, 5구역-대원 칸타빌1차, 6구역-대원칸타빌2차, 7구역-영조 퀸덤,
8구역-유승 한내들, 9구역-단독 주택및 상업지구
주일미사는 7월 1일부터 교육관성당에서 시작되었으나,
두 달 예정이었던 공사가 지연되면서 평일미사는 할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전입교우들이 계속해서 가정축복 및 미사를 신청하면서
8월말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가정에서 평일미사가 이뤄졌고,
9월 9일부터 드디어 교육관 성당에서 규칙적으로 주일미사와 평일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미사 시간은 월-새벽 6시, 화,수,금-저녁 7시 30분, 목-오전 10시,
토-저녁 7시30분, 주일-10시 30분, 저녁 7시30분이었으며,
9월 9일 주일 미사에 참례한 신자 수는 196명에 이르렀습니다.
수는 적지만 9월 12일부터 수요일 저녁 미사 후 예비자 교리가 시작되었으며,
본당신부님께서 직접 교리반을 맡아 예비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9월 23일에는 각 구역별 구역장을 선별하여 임명하고 주보를 통해 발표하셨으며
초기 구역장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총구역장 : 김정선 실비아, 총 부구역장 : 박헌영 막달레나,
총무 : 황경옥 글라라
1구역-계룡 리슈빌 : 박천숙 율리안나,
2구역-현진 에버빌 : 귄길순 비비안나,
3구역-부영 사랑으로 : 김선녀 가브리엘라
4구역-대우 푸르지오 : 김미령 보나
5구역-대원 칸타빌 1차 : 정영란 율리안나
6구역-대원 칸타빌2차 : 황선자 데레사
7구역-영조 퀸덤 : 방해연 루시아
8구역-유승 한내들, 9구역-단독 주택및 상업지구는 미정
레지오 마리애는 9월 23일부터 접수를 받아서
10월 4일에 창단회합을 가졌습니다.
10월 7일 부터는 청년 교리교사 세 명으로 주일학교가 시작되었으며,
이 날 교중 미사중에 요셉피나, 요한보스코라는 세례명으로
2명의 첫 유아세례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교육관은 한시적으로 성당으로 사용될 곳이기 때문에
완공은 하였지만
봉헌식 대신 주교님을 모셔서 감사미사로 봉헌됩니다. (2007.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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