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춘 선생님-
갑은 강남구 신사동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의사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고객 한사람의 얼굴주름살 제거수술을 하던 중이었다. 보통 성형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혈액과 소변 38종 검사와 혈액응고검사 또는 전신마취의 경우 심전도검사까지 하도록 되어있다. 얼굴성형수술은 전신마취가 아니라서 심전도검사는 하지 안했고, 혈액 소변 등 38종 검사를 한 후 혈액응고검사를 별도로 하였다. 38종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혈액응고검사에서는 혈액종합검사결과표 종합소견란에 ‘출혈병의심 : 의사상담후 정밀검사 및 원인진단요망’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 말의 의미는 혈액응고 장애를 가진 병이 의심이 된다는 말이었다. 갑은 통보를 받고, 임상병리센타에 근무하는 임상병리 전문직원에게 물어봤다.
“이런 종합소견이 나왔는데 수술을 해도 되겠습니까?”
“혈액응고검사 자체가 예민한 검사이기 때문에 혈액을 채취할 때라든지, 운반을 할 때라든지 조그마한 착오에 의하여 검사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술환자에게 병력을 검사해본 후에 수술여부를 결정하세요.”
그래서 의사 갑은 환자에게 말했다.
“혈액응고장애의 의심이 있다고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는 수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평소에 피가 나오면 잘 안 멈추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자궁수술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로 출혈에 이상이 없었습니다.”
갑은 환자의 말을 듣고는 과연 수술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책장에서 마취과학 책자를 꺼내 필요한 부분을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수술 전에 출혈성 체질을 탐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에 수술이나 발치 치료를 받았을 때의 응고반응과 같은 과거력을 추적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과거력이나 점상출혈 또는 반상출혈과 같은 신체적 소견이 없을 경우는 관례적인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
갑은 다시 한 번 환자에게 물었다.
“혈액응고장애의 병력이 진짜 없습니까?”
“예”
그렇다면 더 이상 정밀검사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임상병리센타의 검사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문진결과와 검사결과가 다르게 나왔지만 검사결과는 오차가 많은 것이기 때문에 문진결과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혹시 만일의 사태, 출혈이 많을 것을 대비하여 수혈할 혈액을 제일 가까운 혈액원으로 가지러 갈 사람을 대기시켜놓고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환자 얼굴의 한쪽 귀밑에서 다른 한쪽 귀밑까지 두정부 쪽으로 전체를 절개하는 방법으로 주름살제거수술을 시작하였다. 먼저 환자 몸에 심전도 측정장치와 혈중산소농도측정기를 부착한 다음 신경안정제인 도미컴과 진통제인 펜타닐 및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주사하여 마취를 시키고 얼굴의 이마부위를 절개하였다. 그렇게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4시간이 지날 때쯤이었다. 갑자기 심전도측정장치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맥박이 40/min, 혈압이 90/60으로 떨어져 있었다. 혈관에 수액을 공급하기 위해 하트만 용액을 최고 속도로 주입하였다. 그러나 맥박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큰 일 났다 싶어 얼른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심장마사지를 하면서 인근의 큰 병원에 연락하여 구급팀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급팀을 보내줄 수 없다고 하였다. 할 수없이 119 구급대에 연락하였다. 구급대가 10분 후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환자는 사망에 가까운 상태였다. 맥박 등도 하나도 없고 호흡도 없었다. 구급대원이 의사 갑에게 물었다.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옮기는 순간에 죽을 것이 확실한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면 심폐소생술을 더 해봅시다.”
구급대는 이 상태에서 옮기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의사 갑과 교대로 1시간 정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가 계속하여 악화되기만 하였다. 그래서 인근 큰 병원으로 옮기기로 하고 ‘삐뽀’ ‘삐뽀’ 경적을 울리면서 급하게 옮기는데 환자는 끝내 도착하기도 전에 도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환자는 혈액응고장애가 있는 사람이라서 수술시행 도중에 절개부위 등에서 지속적으로 출혈이 이루어져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부검결과가 나왔다.
사고는 8월 초에 발생하였다. 갑은 검찰수사를 받는 한 달 동안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피해자 남편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몸져누웠다. 피해자 가족들은 화가 나 있었다. 특히 갑이 그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진료한다고 계속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 화가 났었다. 피해자 남편은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합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갑은 할 수 없이 검찰수사 받는 도중에 위자료조로 1억5000만원을 공탁하였다. 그리고 세달 후 갑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형사상 처벌을 받았다.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이었다.
여기까지는 형사책임 문제이고 조세문제는 당해 연도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서 위자료로 공탁한 1억5000만원을 필요경비로 하여 신고하였는데 세무서에선 이를 필요경비로 부인하였다. 중과실에 의한 손해배상금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사판결문 어디에도 중과실이라는 표현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무서에선 중과실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간단하였다.
환자의 사망원인이 수술 전과 그 과정에서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판시한 점, 종종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산부인과 등의 의료행위가 아닌 안면주름을 제거하는 성형외과 과정에 사망한 것이므로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조세심판원의 기각결정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하여 갑은 주장하였다.
‘시술의사의 수술 전과 그 과정에서 어떤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그것이 중대한 과실이 되며 또 성형외과 의료사고는 무조건 중대한 과실이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민형사 사건의 판결에 명백히 판시되거나 세무서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입증한 경우에만 손해배상액의 필요경비 불산입이 인정되는데 그런 입증 없이 과세근거 없이 과세한 것이므로 종합소득세 부과처분을 취소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1심 법원은 중과실로 인정하였다. 근거는 출혈병이 의심되면 재검사나 그 원인을 파악하여 보아야 하며 환자 본인은 출혈성 경향을 모를 수도 있고 출혈성 경향은 새로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전에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거나 문진만으로 그칠 것은 아니라 할 것이므로 의사로서 현저히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는 것이었다.
갑은 항소하였다.
다행히도 2심 법원은 중과실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갑에게 위와 같은 정도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채 이 사건 수술을 시술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수술을 시술하는 의사로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법원은 환자에 대한 문진을 통하여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점, 의료사고의 특성상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더라도 이를 모두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려운 점, 수술 중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는 등 상태가 악화되자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소생시키기 위하여 노력한 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하였다.
다만 갑은 사업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민형사상의 판결에 명백히 판시된 경우에만 손해배상금을 필요경비에 불산입한다는 취지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와 같이 해석하여야 할 명문의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갑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하여 과세관청 측 소송수행자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 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상고를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상고기각이었다. 이런 사건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중과실 여부는 사실관계 판단의 문제인데 굳이 법률심인 대법원까지 상고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상소를 남용하는 것이다. 판단주체마다 보는 시각이 달라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다 하더라도 과세관청도 승복할 것은 깨끗이 승복하는 게 공권력의 도덕성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