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강남 모 백화점 생선 코너에 갈치를 싣고 갔다. 백화점 직원이 독하게 욕하며 "온다던 시간보다 10분 늦게 왔으니 이런 갈치는 못 받겠다"고 했다. 수산시장 주인은 한술 더 떴다. "아저씨가 늦은 건데 내가 왜 반품을 받아요? 백화점에서 못 받은 갈치 값, 아저씨가 내세요."
결국 친한 동료 25명이 1만원씩 걷어서 갈치 값 25만원을 물어냈다. 문제의 갈치는 돈 낸 사람 수대로 토막 내 각자 집에 가지고 갔다.
◇돈, 목숨, 생선, 속도
이들은 배달 한 건당 8000~1만5000원씩 하루 10만~15만원쯤 번다. 이 돈중에서 사무실에 일비를 주고 통신료, 연료비, 식대등을 제하고 나면 수중에는 7만원~10여만원 정도, 또한 수산물은 염분이 많다보니 아무리 새 오토바이를 구입해도 일년이 넘으면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부식이 된다. 다른 일 하다 망해 이 일 시작한 사람이 많다. 김씨도 남대문시장 쌀집 사환으로 출발해 서른 전후 일식집에 식재료 납품하는 가게를 차렸다가 몇 년 못 갔다. 연탄불 가는 단칸방에 갓난아기 안은 아내가 누워 있었다. 김씨는 "2년만 하자고 시작한 일이 23년 됐다"고 했다.
이날 취재차는 툭하면 그를 놓쳤다. 간신히 따라잡았을 때, 그는 늘 초조해 보였다. 신호등 앞에서 답답한지 헬멧 뚜껑을 열고 장갑 낀 손으로 콧잔등을 훔쳤다. 신호가 떨어지면 3차선과 1차선을 휙휙 오갔다.
도로가 막히면 굳은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수시로 버스전용차로에 끼어들어 신호등 바로 앞까지 달리다 신호가 바뀌면 급하게 우회전·좌회전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받았다. 상대방 말은 정해져 있고, 늘 다그치는 어조였다. "지금 어디예요? 빨리 오세요. 언제 와요?"
와중에 갓길이나 골목에 몇 초씩 섰다. 오토바이에 검은색 고무줄로 동여맨 휴대전화를 보며 옛날 주소와 도로명 주소를 대조했다. 인사동 한정식집 갈 때는 마주 오는 흰 승용차와 거의 충돌할 뻔했다. 승용차는 멈췄지만, 김씨는 계속 갔다. "지금 10㎏에 35만원 하는 꽃게를 두 박스 싣고 있어요."
◇'빨리빨리'라는 말이 흉기
5년 전 새벽, 김씨와 절친한 동료가 부랴부랴 생선을 실었다. 김씨가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했다. 동료는 "빨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부산행 6시 20분 차에 부쳐야 해. 커피는 갔다 와서 먹을게" 했다. 그게 끝이었다. 동료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앞에서 버스와 충돌했다. 8년 전엔 또 다른 동료가 분당에서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김씨는 "그래도 차랑 부딪치는 게 덜 죄스럽다"고 했다. 이쪽은 크게 다쳐도, 저쪽은 덜 다칠 때가 많아서다. 사람을 칠 땐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 사고는 대개 새벽에 난다. "폐지 줍는 노인이 무단횡단하다 다쳤을 때 최악이지요."
하루 일이 시작되기 전 취재팀이 김씨에게 "'빨리빨리'라는 말을 온종일 몇 번이나 듣는지 세어보라"고 했다. 그가 오후에 황망한 얼굴로 "달리는 중에 자꾸 전화가 와서 세다가 까먹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