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이원수 작사/홍난파 작곡
이 노래는 일제 식민지 시절 경술국치(1910.8.29)이전의 조선을 그리워하며 조국을 떠나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잘 표현했다. 식민지 치하에서도 한민족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지식인의 심정이 잘 표현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원래 1925년에 이원수가 자기 고향을 그리며 쓴 것을 나중에 소파 방정환이 1907년에 창간한 잡지 어린이 35호 1926년 발행판에 시 문학 문예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실린 것을 보고 산토끼를 작사·작곡 한 이일래가 맨 처음 작곡하였지만, 마산 지역에서만 불리다가 홍난파가 발견하고 다시 작곡(1929)을 하여 대중들이 즐겨 부르게 되었다.
『이 곡은 한국적 정서와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하며, 이 작품은 감상적 태도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직시와 일제 식민지하의 저항의식이 엿보이고 있다』
고향의 봄 이원수 작사 / 홍난파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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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고향의 봄' 노래는 홍난파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때인 1929년 동요로 발표하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천방치축(天方地軸) 뛰 놀던 초등학교(예전에 국민 학교) 시절에 불렀던 노래다. 언제인가 TV에서 해외 동포 분들이 무슨 날에 모여 여흥을 즐기고, 함께 어깨동무 하며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화면을 통하여 보고 내 마음도 찡해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고향의 봄노래는 언제 들어도 눈시울 을 적시게 하고, 마음 속 깊은 자리 잡고 있는 향수를 불러 오는 노래이다.
아동 문학가 이원수(李元壽)(1911 - 1981)
우리나라 근대 어린이 문학과 문화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하였고, 마산에서 성장 하였다, 1926년 16세에 <고향의 봄>’이 방정환(方定煥)선생님의 <어린이>지(誌)에 실리고 이후 여러 잡지와 신문에 실려 아동 문학가로 성장 하였다. 그 무렵 <오빠 생각>의 동요 작가 12세의 최순애 와 10여 년 동안 펜팔로 마음을 주고받았고, 4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기존의 외형률 중심의 동요에서 벗어나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인 동시를 썼고, 널리 알려진 동요 〈고향의 봄〉의 작사가이다. 1926년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에 〈고향의 봄〉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고향의 봄〉은 낭만적인 향토애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뒤에 홍난파가 곡을 붙였다.
작곡가 홍난파(洪蘭坡) (1898 - 1941)
한국의 작곡가·바이올리니스트이다. 도쿄신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1927)가 되었으며 조선음악가협회 상무이사(1931)를 지냈다. 총독부의 정책에 동조하여 대동민우회(大同民友會),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단체에 가담했다. 아호는 난파(蘭坡)이며, 본명은 영후(永厚)이다.
홍난파(洪蘭坡)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유명한 작곡가다. 동요 <고향의 봄> 가곡으로 <그리움>, <금강에 살으리 랏다>, <봄 처녀>, <봉숭아>, <사 랑> <사공의 노래>,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장안사>등 주옥같은 우리 가곡을 작곡 한 우리나라 현대 음악의 선각자다. 111개의 동요와 가곡을 작곡하여, 천재 작곡가로 알려졌으며.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리기도 하였
첫댓글 어린시절로 돌아가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