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장,
유인화는 법원으로 나가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남편과 이렇게 이혼을 하리라고는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니, 절대로 남편과 이혼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지난 삼십 여년 가까이 참으로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수족처럼 편안하게 함께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 사람을 완전히 놓아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법원 앞에 남성민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었소?”
“당신은?
미안해요!
이렇게 당신은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다만 기준이가 마음에 걸릴 뿐이오.“
그들은 나란히 판사 앞에 앉아 이혼판결을 받는다.
이혼판결은 이삼 분 안에 끝이 나 버리는 것이다.
“함께 차라도 해요!”
유인화는 법원을 나서면서 말을 한다.
“그럽시다!”
그들은 근처의 가까운 찻집으로 들어선다.
두 잔의 차가 그들 앞에 놓이고 나서야 서로를 마주 본다.
“그동안 너무 미안했어요.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어떻게?“
“걱정하지 마오.
내 한 몸 내가 거둘 자신은 있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많은 죄를 지은 것 같아요.
이제 와서 여러 말이 필요 없겠지만...........“
“기준이를 잘 부탁하오.
물론 간간히 찾아와 보기는 하겠지만 난 제주도로 갈 생각이오.“
“........기준이가 깨어나면 뭐라고 할까요?
그리고 보내는 마당에 숨길 이유가 없겠지요?“
“...........................”
“기준이는 당신 아들이 아니었어요.”
“알고 있었소!”
“뭐라고요?
언제?
어떻게 알았어요?“
“기준이는 당신과 나와 다른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소.
당신도 기억을 할 것이오.
기준이가 초등학교 삼학년 때 오토바이에 치어서 사고를 입었을 때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을 기억을 할 것이오.
그때 난 기준이의 혈액형을 알게 되었소.“
“.........................”
“당신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었지.
그렇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따지고 든다는 것이 두려웠소.
모든 것을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지.
참으로 못난 사람이었소.
그리고 오랫동안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었소.
허지만 당신에 대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해 주는 당신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기로 했지.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난 기준이가 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소.
기준이와 난 여느 부모와 자식같이 그렇게 정을 나누곤 했지.“
“할 말이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다시는 임신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했소.
아마 당신에게 내 자식은 필요 없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었소.“
남성민은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말들을 꺼내 놓는다.
“그렇다고 고의적으로 당신을 배신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소.
나도 건강한 사내라는 것을 당신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지만.....“
“그래요!
그것은 인정해요.
사실, 당신의 배신에 내 자신이 그렇게 이성을 잃을 정도로 일을 저지를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어요.
나도 모르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싶어요.“
”고맙소!
나를 사랑한다는 당신의 그 말이 정말 고맙소.
기준이가 깨어나거든 연락이라도 해 주시오.
어디를 가든 기준이는 내 아들이오.“
“그럴게요!
기준이 역시 당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이제 자신의 생부가 누구이던 그것이 기준이에게 뭐가 달라지겠어요?
늦었지만 진정한 당신 행복을 빌어줄게요.“
“고맙구려!
당신도 더 이상은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남을 생각하는 그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가기를 바라겠소.“
“그리고 아이 태영이 말이에요.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보내주세요.
이제 당신이 맡아서 봐줄 의무와 책임은 없는 것이니까요.“
“그럽시다.
안 그래도 제주도로 가면서 그 아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소.
사람을 시켜 아이를 보내도록 하겠소.
태영 애미에게 잘 대해주기를 부탁하오.
당신의 손자를 낳아주고 당신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오.“
“노력 할게요!”
그러나 유인화는 자신이 없는 말투였다.
그들은 잠시 더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일어선다.
남성민은 마음이 착잡했다.
싫던 좋던 근 삼십 여년 가깝게 한 집에서 한 가족으로 살아온 아내였다.
처음 기준이 자신의 핏줄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마 그때부터 자신은 아내에 대해서 마음을 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기준이와는 전혀 그런 것들이 없이 부자지간으로 너무나 잘 살아왔다.
지금도 성민은 기준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는다.
기준이는 어디까지 자신의 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기준의 생부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 마음이 아파온다.
새삼스럽게 기준이가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혼서류를 들고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변호사였다.
자신이 보낸 변호사가 아니고 유인화가 선임한 변호사였던 것이다.
유인화 자신이 직접 나타나서 말을 한다면 조금은 더 좋았을 것이다.
남성민은 두 말없이 그쪽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락한다.
당장에 회사에서 손을 떼라는 그쪽의 요구조건이었다.
그리고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준다는 조건이었다.
남성민은 아무것도 요구하는 것이 없이 그대로 그쪽의 모든 조건들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기준의 문제에서는 기준이 정신이 돌아와 기준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기로 서로 합의를 한 것이다.
기준의 호적문제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준이도 이제는 가정을 가진 완전한 성인이었다.
남성민은 유인화와 헤어지고 나서 기준이가 있는 병원을 찾는다.
병실에는 정혜가 열심히 기준이를 간병하고 있었다.
“아버님!”
“어멈아!
네가 혼자서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이 일은 제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정혜는 기준이의 간병을 혼자서 맡고 나선 것이다.
“아가!
한 두 달도 아니고 벌써 육 개월이 넘은 세월이다.
너 혼자서 이렇게 간병을 하다가는 너 마저 쓰러질까 두렵구나!
이제는 그만 간병인을 두고 너는 좀 쉬었으면 좋겠구나!“
“아버님!
육 개월이 아니라 육년이라 해도 아니 육십년이라 해도 이 사람의 간병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태영아빠는 아마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혜는 절대로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 마음을 잘 알고 있다.
허지만 이제 태영이도 엄마 품에서 자라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네게는 미안한 말이다마는 이제 나도 이곳에 자주 올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네?
무슨 일이 있으세요?“
“그래!
오늘 네 어머니와 정식으로 이혼을 했다.“
“........................”
“네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허지만 그렇게 되었구나!
그래서 나도 제주도로 이사를 가야만 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태영이를 네 품에서 키우고 이곳은 간병인을 두면 어떻겠니?“
“아버님!
어디를 가시던 변함없는 아버님의 며느리입니다.
그리고 태영이는 제 친정어머님께서 돌봐주실 것입니다.
이곳 걱정은 하지 마시고 어디를 계시든지 아버님께서 건강하시게 오래오래 살아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혜는 눈물을 흘린다.
참으로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시아버님이시다.
시어머님과는 다르게 모든 정을 주시고 자상한 배려를 해 주셨던 것이다.
“아가!
나도 너를 내 며느리로 인정을 하고 있다.
어디를 가든 내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남성민은 기준을 들여다본다.
“기준아!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이 애비가 네가 이런 모습을 보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내 잘못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며 살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남성민의 얼굴에서도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아버지와 아들로서 진한 정을 느끼며 살아왔던 세월이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 이렇게 심한 것인 줄을 몰랐었다.
기준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살아 있는 것도 그렇다고 죽었다는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숨조차도 내 쉬지를 못하고 산소 호흡기를 의존해야만 하는 완전한 식물인간이었던 것이다.
“기준아!
네 처자식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눈을 뜨고 일어나 보렴!
태영이가 이제는 사람을 알아보고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보고 싶지 않니?“
정혜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눈물을 흘린다.
정혜 역시 아들 태영이의 모습이 그립다.
태영이를 마음 놓고 안아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다.
잠시 태영이의 모습만을 보고 눈으로만 아들임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렇게 성민이 기준이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성민은 이제 가야할 시간임을 느낀다.
“아가!
무슨 일이 있거든 바로 연락이도 해 주지 않으련?“
“네!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성민은 전화번호를 적어 정혜에게 준다.
“매달 생활비는 내가 대 주겠다.
기준이가 건강해 질 때까지 그것만이라도 내가 책임을 지마!“
“아버님!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병원비와 생활비를 어머님께서 꼬박꼬박 챙겨주시고 계십니다.“
“네 어머니가?”
“네!”
“그래!
네 어머니도 그리 모진 사람이 아니다.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드리실 것이다.
너도 네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모든 것을 용서해 드리거라!“
“네!
이제 이이만 아무런 탈 없이 일어나 주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
이제 나도 네 어머니의 곁에 없으니 네가 잘 해드리거라!
너만 믿고 난 이곳을 떠난다.“
“아버님!”
정혜는 무엇이라고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남성민은 병원을 떠난다.
병원을 떠나면서 남성민은 다시 돌아보고 돌아보곤 한다.
마치 마지막 기준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성민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보름 후에 남성민은 선주와 수와 수빈이를 데리고 제주도로 떠난다.
아직 제주도에 공사 중인 호텔은 완공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갈 집은 이미 완공이 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선주는 남성민의 기분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이혼을 하고 자신만의 유일한 남자가 되어 돌아온 남편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과 쓸쓸함이 깃들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선주였다.
“여보!
당신 기분이 매우 우울한 것 같아요.“
“수아 엄마!
솔직히 말을 하자면 그리 유쾌하지는 못해!
이혼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인 줄을 몰랐거든!
물론 어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그래도 삼십년 가까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얽혀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서류 한 장으로 남남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도 않고 기준이가 나를 위해 지금 저렇게 되었다는 것이 더 마음이 아파!“
“그래요!
저도 당신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그때 당신 아들이 아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온 몸이 떨려요!“
선주는 몸을 부르르 떤다.
“그러나 그 사람만을 책할 일이 아니오.
아마 그 사람도 자신도 모르게 나를 사랑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프군!“
“.........................”
“나 역시 그 사람을 미워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아마 그것이 오래 살아온 정이라는 것이겠지?“
“그럴거에요.
억지로 잊으려 하지 마세요.
그래도 당신 부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당신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미워하지 말고 억지로 잊으려 하지 마세요.“
“고마워!
나이는 어려도 당신 생각은 상당히 깊은 사람이오.
이제 내 남은 인생을 당신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오.“
“수아 아빠!
이제라도 우리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요.
이제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당신 호적에 넣어 주시고요.“
“암!
당신도 우리 수아도 수빈이도 내 호적에 떳떳하게 올라 있는 내 가족이야!
그리고 내 부모 형제들도 마음 놓고 내 집에 드나들 수 있게 할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요.
이제 부모님을 제가 모시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우리 수아와 수빈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그렇게 다복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것이 제 꿈이고 희망이에요.“
“그럽시다.
큰 며느리로서 당신은 손색이 없을 거요!“
남성민은 선주를 끌어안는다.
그동안의 모든 일들을 잊으려는 듯이 선주를 끌어안는 남성민의 팔에는 힘이 실린다.
“당신하고 멋진 결혼식도 올려야겠어!”
“결혼식을요?”
“왜?
하기 싫어?“
“무슨? 쑥스럽잖아요?”
“아니요!
당신은 아직 웨딩드레스도 입어보지 못한 처녀의 몸이 아닌가?
그러니 처녀라는 딱지를 떼고 이제 이 남성민의 아내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공포를 해야지!
그래야 아무도 당신을 눈독들이지 않을거야!“
남성민은 선주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렇게 감싸 안는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즐감
점점미로워 지네요 일향님 항상 감사드리며
새로운 삶이네요?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