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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시간 |
내용 |
장소 |
1 |
09:30~10:00 |
참가자 확인 |
서울 시청앞 광장 |
2 |
10:00~10:15 |
시청에서 <윤동주시인의언덕>으로 이동 |
서울 시청앞 광장 →윤동주시인의언덕 |
3 |
10:20~11:00 |
<윤동주시인의언덕> 탐방 |
김경식 시인 강의 |
4 |
11:00~11:10 |
자하문으로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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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1:10~11:30 |
자하문 답사 |
김경식 시인 해설 |
6 |
11:30~11:45 |
소설가 현진건의 집터로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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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1:45~12:15 |
소설가 현진건, 안평대군 집터 |
답사및 해설 |
8 |
12:30~13:10 |
윤동주언덕에서 간식및 강의 |
→ 시청 앞 광장 |
◎ 강사 소개
<김경식 시인>
- 한국시문학연구소 소장, 향기작가회 회장
- 사)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감사, 한국고서 연구회 이사
- 저서 : 시집<새벽길 떠나며><논둑길걸으며> <괴산에서> <육필시집>
단행본 <사색의향기문학기행>
- <사색의향기문학기행> 42회 진행(매월 1회)
- 서울문화재단(2009년) 문학기행 진행
- 고려대학교, 예술의전당등에서 문학과 인문학 특강 및 학생,
일반인을 위한 움직이는 학교(문학기행 250회) 이상 진행
서울 속 기록이야기/ 문학 탐방
◎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소설가 현진건의 집터 답사
--종로구 청운동과 부암동
■ 탐방 일정 : 2010년 4월 9일(금) 10:00~13:30
■ 진행과 강의 : 김경식 시인
■ 탐방 장소(1) : 윤동주시인의 언덕
봄날 오후, 자하문(紫霞門)이 있는 고개를 오른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서정적인 장소를 찾는 마음을 설레임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오르는 길>이라는 까만 흘림체 글씨가 하얀벽에 선명하다.
인왕산(仁旺山)에서 북악산(北岳山)으로 이어진 능선에는 윤동주의 시심이 일렁인다.
가난하고 서럽게 살던 서민들의 삶터 청운아파트는 몇 년전에 철거되고,
이제는 청운공원(淸雲公園)이 되었다.
아파트를 이전한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아파트를 이전하는 데는 많은 예산을 들었을 것이다. 서울시의 이런 결정은
훗날 후손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될 것이다.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만들고 시비와 정자를 세운 일은 더 잘 한 일이다.
청운공원 정자 옆으로 난 샛길을 돌아 언덕으로 오르면 <윤동주시인의 언덕>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서울 도심을 향해 서 있는 시비(詩碑)에 새겨진
‘서시’를 읽으면, 그가 추구했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 를 읽으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누군가 서시를 읽으면서도 떳떳할 수 있다면 그는 대단히 정직한 사람이다.
멀리 보이는 서울의 남산을 바라본다.
이곳 잔디밭에는 중국 용정의 윤동주 시인의 묘소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
윤동주 시인은 인왕산 자락 누상동(樓上洞)에서 하숙을 했다. 이 언덕은 그가 思索에 잠겨 시심을 가슴에 품고 당시 경성과 북악산 인왕산을 바라봤을 장소다.
이 장소가 가슴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경식 시인 답사기 중에서
■ 탐방 장소(2) : 소설가 현진건 집터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소설가 현진건 선생님의 집터를 찾았습니다.
이곳이 지금은 빈터로 있지만 몇 년 전만해도 번듯하게 현진건 선생님의 고택이 있었습니다.
허물어진 기왓장과 벽돌도 사라지고 지금은 말끔합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현진건 선생의 집은 누군가에 의해
매입되어 주인이 바뀌더니 이제는 선생의 삶터는 동네의 주차장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온전할 리 없었겠지요.
현진건 선생님의 집이 복원되길 기원합니다. 없던 <윤동주시인의 언덕>도 조성한
서울시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현진건 선생님의 집터 바로 위는 안평대군의 별장터입니다. 안평대군은 이 터에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 이야기를 화가 안견에게 하였지요. 그래서 그린 그림이 안견의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입니다.
현진건 고택과 안평대군의 별장이 복원되면, 이곳은 명실상부한 문학과 역사, 미술의 산실이 될 것입니다.
소설가 현진건 (玄鎭健, 1900~1943)은 근대 단편 소설의 선구자입니다. 대구출생이며 호는 ‘빙허’입니다.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분이지요.
그의 대표작은 <빈처>지만. <백조>, <타락자>, <운수 좋은 날>, <불> 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본 도쿄 독일어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 외국어학교에서 수학한 인텔리였습니다.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단하지요.
백조동인으로 활동하며 1921년 발표한 빈처(貧妻)로 문단과 독자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와 이상화 시인과는 절친한 친구였지만,
두 분이 모두 1943년에 세상을 떠나 아깝게도 조국해방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진건 선생님은 염상섭(廉想涉)선생님, 김동인(金東仁)선생님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1935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할 때 일장기 말살사건(日章旗抹殺事件)으로
1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해직됩니다. 그의 짧았던 생애 중에 이 집터에 살았던 삶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위해 많은 문학작품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이 집터가 복원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김경식 시인 답사기 중에서
■ 탐방장소 (3): 자하문(紫霞門)
자하문(紫霞門)은1396년(태조5)에 건립한 정면4칸, 측면 2칸의 한양의 북문(北門)
이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이 문은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창건되었다.
자하문은 양주(楊州)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다.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에 따라 통행이 조선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閉門)한다.
그러나 1506년(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당시에 능양군(陵陽君:인조)과 의군(義軍)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진입하여 창의문이란 문명(門名)을 얻는다.
문루(門樓)는 임진왜란 때 불탄다. 그러나 1740년(영조 16)에 중창하고 인조반정 당시의
공신들의 이름을 다락 판목에 새겨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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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벌써 다 마감되었더군요. 흑
당일 참여하시면, 기행 가능할 것입니다.
예전에 보면 무료기행이라 그런지 빈자리 많았습니다. 참고 하세요.
아 그래요? 5월에는 그러면 한번 도전해볼게요.
너무나 아름다운 길여행인데 하필 둘째 금요일은 동창모임이 있네요. 나의 소원이기도 한, '문학에의 심취'를 하자면 세상 일과는 간격을 두어야 할 것 같은데, 쉽지가 않네요. 좋은 여행 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