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매일신보, 1925년 동아일보의 신춘문예 현상 당선제가 처음 시행된 이래 오늘까지 80년――신춘문예는 이제 현대 한국 시문학사에서 시단의 주류를 이루는 주요 시인들의 모태가 되었다. 그간 우리 시문학사의 동맥으로 시단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였던 신춘문예 80년의 명암과 공과를 문학평론가 및 신춘문예 출신 주요 시인들과 함께 짚어 본다. ―― 편집자
이제 진달래 꽃 비렁 해빛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벽壁차고 나가 목메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벽壁아 1955 - 황 명(당선), 「분수噴水」 인태성(가작), 「낙화부」 신동문(가작), 「풍선기」
당선시 <전영경> 1956
정의와 미소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숙아 창을 열어라 그 곳에 우리들의 하늘이 있고. 자유自由가 있고. 조국祖國이 있다.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그 곳에 우리들의 삼월三月이 있고. 님이 있고. 봉우리, 봉우리 마다 피어 오르는 꽃 봉우리 마다 꽃이 있고. 기우러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종 소리를 따라 정의正義와 미소微笑가 있다.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숙아 창을 열어라 그 곳에 파아란 바다를 생각하는 사나이가 있고. 의미意味가 있고. 목적目的이 있고. ………………. 대추 나무와 뽀오얀 집과 교회당敎會堂의 둥그런 집웅을 따라 비둘기가 있고. 모두 다 모두가 다아, 멍이든 가슴들 끼리 울린 만세를 따라 멍멍 개가 짖고.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기우러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 날르는 그 곳에 우리, 우리들의 팔월八月이 있고. 어진 백성이 있고. 정의와 미소가 있다.
1 서투른 병정兵丁은 가늠하고 있다. 목탄木炭으로 그린 태양의 검은 크레파스의 꽃밭의 지도의 눈이 내리는 저녁 어귀에서 병정은 싸늘한 시간 위에 서 있다. 지금은 몇도度 선상線上인가. 그리고 무수히 탄우彈雨가 내리던 그 달빛의 고지는 몇도 부근이던가. 가슴에는 뜨거운 포도주, 한줄기 눈물로 새김하는 자유의 피비린 향수鄕愁에 찢긴 모자. 이슬이 맺히는 풀잎마다의 이유理由와 마냥 어둠의 표적을 노리는 병정의 가슴에 흐르는 빙하. 그것은 얼어붙은 눈동자와 시방 날개를 잃는 벽壁이었던가. 꽃이었던가.
그때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그 사람 오늘도 나는 등허리에 솜을 실은 나귀의 지혜가 되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종로로 간다. 무엇일까 잃어버린 그것은, 사랑일까 기억일까 독을 뿌린 별의 죽음일까 눈앞에서 아찔 정말 잘 죽었지 그때 젊은 친구 나사렛 피와 모래를 노래하다 나는 골수를 다친 채 종로의 어느 밝은 상점 앞에서 시방 비를 맞는데 웬일일까 자꾸 웃음이 터지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는, 어머니도 아니다 누이도 아니다 그렇지 참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자네 얼굴이 타도록 술을 마시고 납덩이보다 무거운 솜을 진 채 긴 벽을 돌아선 종로에 종로에, 가려운 피부엔 돋는 부스럼 그때 잘 죽었지 정말 한이 된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무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貨車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運搬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無邊한 세계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 작은 새가 되어 나무가지 위에 내려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번째 눈을 뜨듯.
구두끈을 매는 시간만큼 잠시 멈추어 선다. …하략…
1967 - 오탁번(당선),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조지훈·박남수·김종길) 1968 - 정재우(당선), 「선로線路여, 우리들의 평화는」 설용훈(가작), 「해빙시대解氷時代」 박 은(가작), 「성금요일聖金曜日에 죽은 병사」, (서정주·조지훈·김종길) 1969 - 석지현(당선), 「점화點火」, (서정주·박남수·김종길)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竹露茶를 달리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 바다를 건너 우두봉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저희들끼리 풀리며 쓸리어 가는 얼음장 밑 찬물 소리에는 열 손톱들이 젖어 흐느끼고 깊은 어둠의 끝을 헤치다 손톱마저 다 닳아 스러지는 적소謫所의 밤이여,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고나.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간 마음들이 지친 봉두난발蓬頭亂髮을 끌고 와 이 악문 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히 깎고 가는 바람 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하략…
다시 톱질을 한다. 언젠가 잘려나간 손마디 그 아픈 순간의 기억記憶을 잊고 나는 다시 톱질을 한다. 일상의 고단한 동작動作에서도 이빨을 번뜩이며, 나의 톱은 정확해, 허약한 시대의 급소急所를 찌르며 당당히 전진하고 살아오는 자者. 햇살은 아직 구름깃에 갇혀 있고 차고 흰 소문所聞처럼 눈이 오는 날 나는 먼지낀 창가에 서서 원목原木의 마른 내력來歷을 켜고 갖가지의 실책失策을 다듬고 있다. 자네는 아는가, 대낮에도 허물어진 목수木手들의 날림 탑塔. 그때 우리들 피부 위를 적시던 뜨거운 모정母情의 긴긴 탄식을 그러나 도처到處에 숨어 사는 기교技巧는 날마다 허기진 대팻날에 깎여서 설익은 요령要領들만 빤질빤질 하거던. 밖에는 지금 집집이 제 무게로 꺼져가는 밤, 한밤내 눈은 내리고 드디어 찬 방석에 물러 앉는 산山 내 꿈의 거대한 산山이 흰 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죽은 목수木手의 기침소리 들리는 깊은 잠의 숲속을 지나, 나는 …하략…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 일평생一平生 꺼내보던 손거울 깨뜨리고 소나기 오듯 흘리신 할머니 눈물로 밤이면 나는 홀로 첨성대가 되었다.
한단 한단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할아버지 대피리 밤새불던 그믐밤 첨성대 꼭 껴안고 눈을 감은 할머니 수놓던 첨성대의 등잔불이 되었다.
밤마다 할머니도 첨성대되어 댕기 댕대 꽃댕기 붉은댕기 흔들며 별 속으로 달아난 순네를 따라 동지冬至날 흘린 눈물 북극성北極星이 되었다.
싸락눈 같은 별들이 싸락싸락 내려와 첨성대 우물 속에 퐁당퐁당 빠지고 나는 홀로 빙 빙 첨성대를 돌면서 첨성대에 떨어지는 별을 주웠다. 별 하나 질 때마다 한방울 떨어지는 할머니 눈물 속 별들의 언덕위에 버려진 버선 한 짝 남몰래 흐느끼고 붉은 명주 옷고름도 밤새 울었다.
여우가 아기무덤 몰래 하나 파먹고 토함산 별을 따라 산을 내려와 첨성대에 던져논 할머니 은銀비녀에 밤이면 내려앉는 산여우 울음소리. …하략…
1992 - 봄 유 근, 「다시 출항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황금찬·이근배·감태준) 여름 박재유, 「내가 모음이 되어」, (오세영·이건청) 가을 원태경, 「판문점 6 외 1편」, (박제천·오규원) 겨울 배정원, 「그리운 약국」, (김종해·이탄) 1993 - 봄 한상권, 「숨은 그림 찾기 2」, (박의상·이수익) 여름 이동민, 「제비꽃」, (황동규·최동호) 가을 김 한, 「후디니의 탈출 이야기」, (이형기·신경림) 겨울 송종문, 「망해사」, (김광림·김광규) 1994 - 봄 이경호, 「가장 깊은 곳에서 외 1편」, (오세영·이건청) 여름 윤향미, 「절색에 대한 명상」, (황동규·감태준) 가을 정유용, 「콩나물의 방」, (오세영·오탁번) 겨울 이창희, 「스키어」, (김광림·박의상) 1995 - 봄 김휘영, 「맹인일기」, (김종해·김광규) 여름 박수진, 「도시인, 고향, 텔레비전」, (김광림·박의상) 가을 최성윤, 「독작」, (김종해·이건청) 겨울 박경원, 「해묵음에 대하여」, (박성룡·김광규) 1997 - 이기와, 「지하철」, (황동규·정현종) 1998 - 김명국, 「대숲이 있는 작은 마을」, (김광규·유종호) 1999 - 박명숙, 「단풍 속으로」, (황동규·감태준) 2000 - 김규진, 「집 속엔 길이 없다」, (황동규·감태준) 2001 - 고현정, 「밀란 쿤데라를 생각함」, (황동규·감태준) 2002 - 윤성학, 「감성돔을 찾아서」, (황동규·최승호)
1920년 매일신보, 1925년 동아일보의 신춘문예 현상 당선제가 처음 시행된 이래 오늘까지 80년――신춘문예는 이제 현대 한국 시문학사에서 시단의 주류를 이루는 주요 시인들의 모태가 되었다. 그간 우리 시문학사의 동맥으로 시단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였던 신춘문예 80년의 명암과 공과를 문학평론가 및 신춘문예 출신 주요 시인들과 함께 짚어 본다. ―― 편집자
이제 진달래 꽃 비렁 해빛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벽壁차고 나가 목메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벽壁아 1955 - 황 명(당선), 「분수噴水」 인태성(가작), 「낙화부」 신동문(가작), 「풍선기」
당선시 <전영경> 1956
정의와 미소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숙아 창을 열어라 그 곳에 우리들의 하늘이 있고. 자유自由가 있고. 조국祖國이 있다.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그 곳에 우리들의 삼월三月이 있고. 님이 있고. 봉우리, 봉우리 마다 피어 오르는 꽃 봉우리 마다 꽃이 있고. 기우러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종 소리를 따라 정의正義와 미소微笑가 있다.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숙아 창을 열어라 그 곳에 파아란 바다를 생각하는 사나이가 있고. 의미意味가 있고. 목적目的이 있고. ………………. 대추 나무와 뽀오얀 집과 교회당敎會堂의 둥그런 집웅을 따라 비둘기가 있고. 모두 다 모두가 다아, 멍이든 가슴들 끼리 울린 만세를 따라 멍멍 개가 짖고.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기우러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 날르는 그 곳에 우리, 우리들의 팔월八月이 있고. 어진 백성이 있고. 정의와 미소가 있다.
1 서투른 병정兵丁은 가늠하고 있다. 목탄木炭으로 그린 태양의 검은 크레파스의 꽃밭의 지도의 눈이 내리는 저녁 어귀에서 병정은 싸늘한 시간 위에 서 있다. 지금은 몇도度 선상線上인가. 그리고 무수히 탄우彈雨가 내리던 그 달빛의 고지는 몇도 부근이던가. 가슴에는 뜨거운 포도주, 한줄기 눈물로 새김하는 자유의 피비린 향수鄕愁에 찢긴 모자. 이슬이 맺히는 풀잎마다의 이유理由와 마냥 어둠의 표적을 노리는 병정의 가슴에 흐르는 빙하. 그것은 얼어붙은 눈동자와 시방 날개를 잃는 벽壁이었던가. 꽃이었던가.
그때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그 사람 오늘도 나는 등허리에 솜을 실은 나귀의 지혜가 되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종로로 간다. 무엇일까 잃어버린 그것은, 사랑일까 기억일까 독을 뿌린 별의 죽음일까 눈앞에서 아찔 정말 잘 죽었지 그때 젊은 친구 나사렛 피와 모래를 노래하다 나는 골수를 다친 채 종로의 어느 밝은 상점 앞에서 시방 비를 맞는데 웬일일까 자꾸 웃음이 터지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는, 어머니도 아니다 누이도 아니다 그렇지 참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자네 얼굴이 타도록 술을 마시고 납덩이보다 무거운 솜을 진 채 긴 벽을 돌아선 종로에 종로에, 가려운 피부엔 돋는 부스럼 그때 잘 죽었지 정말 한이 된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무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貨車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運搬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無邊한 세계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 작은 새가 되어 나무가지 위에 내려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번째 눈을 뜨듯.
구두끈을 매는 시간만큼 잠시 멈추어 선다. …하략…
1967 - 오탁번(당선),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조지훈·박남수·김종길) 1968 - 정재우(당선), 「선로線路여, 우리들의 평화는」 설용훈(가작), 「해빙시대解氷時代」 박 은(가작), 「성금요일聖金曜日에 죽은 병사」, (서정주·조지훈·김종길) 1969 - 석지현(당선), 「점화點火」, (서정주·박남수·김종길)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竹露茶를 달리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 바다를 건너 우두봉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저희들끼리 풀리며 쓸리어 가는 얼음장 밑 찬물 소리에는 열 손톱들이 젖어 흐느끼고 깊은 어둠의 끝을 헤치다 손톱마저 다 닳아 스러지는 적소謫所의 밤이여,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고나.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간 마음들이 지친 봉두난발蓬頭亂髮을 끌고 와 이 악문 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히 깎고 가는 바람 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하략…
다시 톱질을 한다. 언젠가 잘려나간 손마디 그 아픈 순간의 기억記憶을 잊고 나는 다시 톱질을 한다. 일상의 고단한 동작動作에서도 이빨을 번뜩이며, 나의 톱은 정확해, 허약한 시대의 급소急所를 찌르며 당당히 전진하고 살아오는 자者. 햇살은 아직 구름깃에 갇혀 있고 차고 흰 소문所聞처럼 눈이 오는 날 나는 먼지낀 창가에 서서 원목原木의 마른 내력來歷을 켜고 갖가지의 실책失策을 다듬고 있다. 자네는 아는가, 대낮에도 허물어진 목수木手들의 날림 탑塔. 그때 우리들 피부 위를 적시던 뜨거운 모정母情의 긴긴 탄식을 그러나 도처到處에 숨어 사는 기교技巧는 날마다 허기진 대팻날에 깎여서 설익은 요령要領들만 빤질빤질 하거던. 밖에는 지금 집집이 제 무게로 꺼져가는 밤, 한밤내 눈은 내리고 드디어 찬 방석에 물러 앉는 산山 내 꿈의 거대한 산山이 흰 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죽은 목수木手의 기침소리 들리는 깊은 잠의 숲속을 지나, 나는 …하략…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 일평생一平生 꺼내보던 손거울 깨뜨리고 소나기 오듯 흘리신 할머니 눈물로 밤이면 나는 홀로 첨성대가 되었다.
한단 한단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할아버지 대피리 밤새불던 그믐밤 첨성대 꼭 껴안고 눈을 감은 할머니 수놓던 첨성대의 등잔불이 되었다.
밤마다 할머니도 첨성대되어 댕기 댕대 꽃댕기 붉은댕기 흔들며 별 속으로 달아난 순네를 따라 동지冬至날 흘린 눈물 북극성北極星이 되었다.
싸락눈 같은 별들이 싸락싸락 내려와 첨성대 우물 속에 퐁당퐁당 빠지고 나는 홀로 빙 빙 첨성대를 돌면서 첨성대에 떨어지는 별을 주웠다. 별 하나 질 때마다 한방울 떨어지는 할머니 눈물 속 별들의 언덕위에 버려진 버선 한 짝 남몰래 흐느끼고 붉은 명주 옷고름도 밤새 울었다.
여우가 아기무덤 몰래 하나 파먹고 토함산 별을 따라 산을 내려와 첨성대에 던져논 할머니 은銀비녀에 밤이면 내려앉는 산여우 울음소리. …하략…
1992 - 봄 유 근, 「다시 출항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황금찬·이근배·감태준) 여름 박재유, 「내가 모음이 되어」, (오세영·이건청) 가을 원태경, 「판문점 6 외 1편」, (박제천·오규원) 겨울 배정원, 「그리운 약국」, (김종해·이탄) 1993 - 봄 한상권, 「숨은 그림 찾기 2」, (박의상·이수익) 여름 이동민, 「제비꽃」, (황동규·최동호) 가을 김 한, 「후디니의 탈출 이야기」, (이형기·신경림) 겨울 송종문, 「망해사」, (김광림·김광규) 1994 - 봄 이경호, 「가장 깊은 곳에서 외 1편」, (오세영·이건청) 여름 윤향미, 「절색에 대한 명상」, (황동규·감태준) 가을 정유용, 「콩나물의 방」, (오세영·오탁번) 겨울 이창희, 「스키어」, (김광림·박의상) 1995 - 봄 김휘영, 「맹인일기」, (김종해·김광규) 여름 박수진, 「도시인, 고향, 텔레비전」, (김광림·박의상) 가을 최성윤, 「독작」, (김종해·이건청) 겨울 박경원, 「해묵음에 대하여」, (박성룡·김광규) 1997 - 이기와, 「지하철」, (황동규·정현종) 1998 - 김명국, 「대숲이 있는 작은 마을」, (김광규·유종호) 1999 - 박명숙, 「단풍 속으로」, (황동규·감태준) 2000 - 김규진, 「집 속엔 길이 없다」, (황동규·감태준) 2001 - 고현정, 「밀란 쿤데라를 생각함」, (황동규·감태준) 2002 - 윤성학, 「감성돔을 찾아서」, (황동규·최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