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이라는 운동을 접하고 체육관장이 된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많던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일을 찾아 떠나고 마지막 까지 남아 있던 두 선수는 챔피언이 되어 군 입대를 하였습니다.
요즘 허전한 시간을 달레다가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글로 옮겨봤고 관원 여러분들이 왜 제가 정통복싱만을 고집하는지 저와 이체육관을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복싱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매력과 재미가 있는 운동인데 굳이 다른 것을 겸하거나 혼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글을 올리는 것은 못 다한 저의 선수생활의 변명이나 넋두리를 하기 위함은 절대 아니며,
제가 힘든 와중에도 얼마나 복싱을 사랑하고 내 전부라 생각했는지, 여러 번 체육관이 망하기도 하였고, 4job을 하면서도 체육관을 운영 해왔던.. 복싱을 좋아하는 그 마음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킥복싱 시작
강원도 태백의 강촌에서 자라난 나는 초등학교 때 당시 대 도시였던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고무신에 2시간을 걸어 다니며 학교를 다니던 나는 대도시가 생소했고, 말투도 다른 부산에서의 생활이 좋지만은 않았다.
시골에서 뛰어놀던 에너지를 제대로 쓰지 못해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공부는 반에서도 꼴지 수준이었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칭찬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복싱이 인기가 많던 시절이라 아이들이 모이면 권투선수 흉내를 내거나 가끔은 맨주먹으로 스파링을 하기도 했다.
문방구에서 복싱글러브 2짝을 사서 돌아다니며 흉내를 내고 복싱 스파링을 하는 게 놀이였다.
허리케인 죠, 록키등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어 허리케인죠를 수십 번을 봤던 거 같다.
이때는 장정구챔프님이 은퇴를 할 때쯤이고 유명우 챔프께서 한참의 방어전으로 인기몰이와 문성길등 세계챔피온이 많을 때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어디에 권투 체육관이 있는 줄도 몰랐고 집에서 가까운 격투기 체육관을 중 1학년에 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무에타이, 낙무아이등으로 불리지만 그때만 해도 권격도, 프로 태권도, 킥복싱 등으로 간판이 걸려 있었다.
당시 체육관에는 군대처럼 서열이 있었고 선임들 이름을 서열대로 외우기는 물론이고, 뭔가 실수를 하면 몰래 불려가서 줄 빠따를 맞던 시기였다.
체육관 청소, 홍보전단지 돌리기 등은 군기 당번이 정해준 되로 막내들 몫이었다.
이곳에서 복싱의 기본스텝을 배웠고 발차기와 유도의 낙법, 기계체조등도 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파링을 했는데 상대는 나보다 훨씬 고참이었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체육관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좋아서 학교마치면 체육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마칠때쯤 집으로 와 잠을 잤다.
한참을 재밌게 운동을 하고 있던 중에 가정 형편상 회비가 계속 밀려서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던 운동을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흥미가 없었다.
중1때부터 몸은 더 성장하였고 체육관은 못 나갔지만, 집 옥상에 샌드백을 설치해서 하루 30분식 혼자서 백을 쳤다.
이때는 주먹보다는 발차기를 더 많이 했고, 하루에 팔굽혀펴기 500회 이상과 다리찢기, 스트레칭, 복근운동등은 집에서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유도시작
고 2학년에 동네 헬스장을 다니다가 유도를 시작했다.
기초반에 낙법을 배울 때 나는 이미 배웠던 낙법이고 격투시범단에 있으면서 여러사람을 뛰어넘는 낙법을 익혀왔기 때문에 바로 기술훈련을 했었다.
시원하게 상대를 넘기는 유도가 너무 재밌었고 선수생활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렇게 유도를 하던 중에 복싱체육관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유도와 복싱을 같이 했었는데 회비도 부담이었고 어릴 때부터 복싱의 매력이 더 끌려서 이후로는 복싱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권투의 시작
내가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체육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40평 정도의 체육관에는 링과 샌드백하나가 걸려 있었고 바깥 베란다 쪽에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과 큰 고무 통에 물바가지 하나를 둔 것이 샤워실의 전부였다.
당시에 하나밖에 없던 샌드백은 선수들의 몫이 였고 선수들이 없을 때는 고참들의 것이었지 나 같은 초보자한테 빽을 칠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았다.
기초동작을 잠시 가르쳐주고는 관장님은 보이질 않았고 하루에 두 시간씩 쨉만 뻗고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나면 어깨가 너무 아파서 팔을 들 수도 없었다.
하루는 혼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배들이 2층 베란다로 가더니 밑으로 뛰어 내리며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혼자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관장님이 술에 취해서 들어오셨다.
한 많은 본인의 얘기를 나에게 해주시더니 갑자기 스파링을 하자고 제의했고 나는 겁 없이 관장님과 스파링을 했다.
아무리 관장님이 지만 술에 취한 상태였고 나는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관장님은 내 잽에 계속 맞고만 있었다.
점점 여유가 생긴 나는 느슨해져 갔고 손을 내리고 까불다가 관장님의 크로스 한방에 쌍코피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입고 있던 옷이 피범벅이 되어 버스를 탈 수도 없던 상황이라 사직동에서 안락동까지 쉐도우 복싱을 하며 걷다 뛰다를 반복하였고, 이후로도 버스타고 다니기 보다는 걷거나 뛰어 다녔다.
다음날 체육관에 가니 관장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나를 보더니 “너한테 너무 많이 맞아서 아파죽겠다”라고 하시며 저를 붙들고 다시 관장님의 boxing life 가 이어졌고 여러 명의 세계 챔피온들의 이야기를 하시며 나에게 선수생활을 하라고 권하셨다.
11시쯤 체육관이 마치는 시간이 되면 링 바닥에서 잠을 잤고, 새벽6시, 오후2, 저녁6시 하루 3차례운동을 했다.
아마츄어 시합 우승
복싱을 본격적으로 배운지 3개월 뒤인 3월 말일 부산아마츄어신인시합에서 전 ko승으로 우승을 했다.
당시에는 고등부와 일반부가 합쳐져서 시합을 했었고 지금과는 달리 하루에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결승전이 끝나고 상대선수가 인사를 건넸다.
24살의 대학생 이였고 운동은 4년 정도 했다며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했다.
“저는 고등학생이고 복싱한지 3개월 됐습니다. 라고 답했더니 상대선수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없이 친구들과 자리를 떠났다.
한달뒤 전국체전 선발전
이때는 체중조절을 못해서 계체당일에 구덕운동장 15바퀴를 뛰고서 겨우 2차 계체량에 통과했다.
상대선수는 학교 복싱부 선수로 중학교 때부터 각종대회 입상경력의 선수였다.
상대선수의 경험과 치고 빠지는 발을 잡을 수가 없었고 결국 판정으로 패했다.
이 경기 후에 관장님은 “너는 프로에서 통하는 스타일이니 프로선수를 해라”고 말씀하셨지만 왠지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얼마 후 체육관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철거가 안 된 체육관에 혼자서 운동을 몇 달 더 했다. 뉴스에서는 IMF라는 기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프로복서 준비
체육관이 망한지 몇 달이 지나서 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체육관을 다시 오픈했으니 와서 운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연락을 받고 체육관을 가보니 링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창고에서 타임 벨에 샌드백하나 걸려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너 정도 실력이면 충분하니 신인왕전에 나가봐라”하고 얘기를 하셨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프로복서들의 경기를 보면서 우습게 생각했고 “지금 내가 싸워도 저것보단 잘하겠다”.라며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체육관에 선배들이 하나같이 “넌 정말 잘한다. 너정도면 충분할거야”라는 말을 계속했고 나는 신인왕전에 나가기로 했다.
관장님은 창고 같은 체육관을 오픈하고는 뭔가 다른 사업을 하신다며 체육관에서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고.. 혼자서 달리기와 운동을 했었다.
감량을 하는 방법도 몰라서 그저 굶어가며 살을 뺏고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 체 그저 자신감만 가지고 나간 프로 데뷔전이었다.
근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은 게 없던 나는 계체하루 전부터는 완전히 굶었고, 어지러워 서있는것도 힘이 들었다.
계체후 밥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한 게 배는 부른데 소화는 되지 않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프로 데뷔전
드디어 시합당일
주심이 양선수를 링 중앙으로 불렀다.
나는 자신만만 상대선수를 보고 비웃었다.
경기시작 스텝을 뛰고 몸을 움직이며 잽을 뻗기 시작.... 나는 당황했다.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할 때는 한 번도 내 잽을 피한 사람이 없었는데.. 어찌된 건지 내 잽에 상대선수가 맞질 않았다.
신인왕 준비를 하면서 스파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너무 당황했고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라운드 쉬는 시간에 숨은 턱 끝까지 찾고 머리는 허예져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3라운드쯤 나는 ko패를 당했다.
이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때라 지금은 이기록이 남아있지 않은걸로 안다.
어쨌든 나는 알려지지 않은 1패가 더 있다.
경기가 끝난 후 허무하게 ko패 당한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친구들에게 이번에 꼭 신인왕 우승할거라고 자랑을 너무 많이 해놔서 경기결과를 묻는 전화가 계속 오고 있었고, 너무 창피해서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경기 며칠 후에 관장님을 만났고 나를 보더니 “너는 경험이 없어서 질줄 알았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너 정도면 우승은 확실하다는 분이, 질줄 알았다니..
완전 사람을 가지고 노는 구나“라는 배신감에 화가 났다.
군입대
데뷔전 패배후에 나는 바로 군 입대를 했고..
워낙에 굶어서 그런지 63키로의 체중은 군입대후 금방 80키로를 넘기더니 상병 말에는 100키로까지 쪘었다.
병장이 되고 전역을 남겨두고는 일과후 연병장 달리기로 87키로까지 빼서 전역을 했다.
다음편에 계속^^
첫댓글 흥미진진한 글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을 기대합니다. 빨리 올려 주세요.
아이고~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시고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