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삼매경 하권
7. 보살도를 행하다
7.1. 음욕이 많으면 몸을 스스로 관한다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은 3독 가운데서, 만일 음욕이 치우치게 많으면 먼저 스스로 몸을 관한다.
뼈와 살 피부ㆍ근맥(筋脈)ㆍ흐르는 피ㆍ간ㆍ폐ㆍ장ㆍ위ㆍ오줌ㆍ똥ㆍ눈물ㆍ침 등 서른여섯 가지 물건과 9상(想)의 더러움에 마음을 기울여,
안으로 관하고 생각이 벗어나지 않게 하되,
바깥으로 여러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되돌아오게 한다.
마치 사람이 촛불을 들고 잡곡 창고에 들어가서 갖가지로 분별하되 콩ㆍ보리ㆍ조 등을 모르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또한 몸을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관하니,
단단한 것은 땅의 성분이고, 축축한 것은 물의 성분이며,
뜨거운 것은 불의 성분이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의 성분이며,
구멍은 허공의 성분이고, 아는 것은 식(識)의 성분이다.
또한 도살한 소를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몸과 머리, 사지가 각각 다른 것과 같다.
몸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어서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며, 가죽주머니에는 똥이 담겨 있으니,
항상 이와 같이 관하여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하되,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되돌아오게 한다.
만일 한마음을 얻어서 마음에 싫어함이 생겨 이 몸 여의기를 구하고, 재빨리 사라져 일찍 열반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때는 마땅히 대자대비심을 일으켜서 커다란 공덕으로 중생들을 구제해야만 하니,
앞의 세 가지 서원을 일으키길,
‘모든 중생들이 부정(不淨)함을 알지 못하므로 여러 가지 잘못과 허물을 일으키니 내가 마땅히 그들을 단이슬의 땅에 올려 놓으리라.
또한 욕계의 중생들이 청정하지 못한 것에 즐겨 집착하는 것이 마치 개가 똥을 먹는 것과 같으니, 내 마땅히 제도하여 청정한 도에 이르게 하리라’고 한다.
또한, ‘나는 마땅히 일체 존재의 참다운 모습[諸法實相]은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으며,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다는 것을 배워서 찾으리라.
나는 왜 이 부정한 것에 집착하는가?
부정함을 관하는 지혜는 인연을 좇아 생기니, 나의 법과 같은 이는 마땅히 참다운 모습을 구해야만 하리라.
어떻게 몸속의 부정함을 싫어하고 열반을 취하는가?
마땅히 마치 큰 코끼리가 빠르게 흐르는 물을 건너기 위해 시내의 밑바닥 끝까지 다하듯이 참다운 존재의 모습을 얻어서 열반에 들어가야 한다.
어찌 원숭이나 토끼처럼 빨리 흐르는 것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스스로 몸을 제도할 것인가?
내 이제 마땅히 배우되 보살법과 같이 하리라.
부정관(不淨觀)을 실행하여 음욕을 제거하고, 널리 중생들을 교화하여 욕망과 근심을 여의게 하되, 부정관에 매몰되지는 않으리라.
또한 이미 깨끗하지 않음을 관하였으면 곧 생사를 싫어하여,
마땅히 정문(淨門)을 관하되 마음을 세 곳 즉 코끝ㆍ미간ㆍ이마 위에 묶어놓아야 하니,
마땅히 이 속에서 한 마디의 가죽을 열어 피와 살을 청정하게 제거하고,
마음을 백골에 묶어서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하며,
바깥으로 여러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되돌아오게 한다.
세 가지 연(緣)에 집착해서 항상 마음과 더불어 싸우나니,
마치 두 사람이 서로 씨름하는 것과 같다.
수행자가 만일 마음을 이기자면 곧 그것을 제압하여 머물게 하는 것 만함이 없으니,
이것을 한마음이라고 한다.
만일 싫어하는 것으로 크게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면, 이 빈 뼈다귀 때문에 열반을 멀리 여의고 3악도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 마땅히 부지런히 힘쓰고 여러 가지 공덕을 지어 중생들을 교화해서 신상(身相)의 공함을 이해하게 하리라.
뼈는 가죽으로 덮여 있으나 사실은 부정(不淨)한 것을 모은 것이다.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내가 마땅히 이 모든 법의 모습을 분별해야 하리라’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청정하다는 생각이 있으면 마음에 애착을 일으키고,
부정하다는 생각이 많으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니,
존재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참다운 존재를 낳는다.
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 속에는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또한 닫힘도 없고 나옴도 없어서,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관하여 무너뜨릴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이것을 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이라고 한다.
나한법에서 벗어난 것이다.
7.2. 성냄이 많으면 인자한 마음을 행해야 한다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은 만일 성냄이 치우치게 많으면 마땅히 인자한 마음을 행하고, 동쪽의 중생을 생각해야 한다.
인자한 마음으로 청정하여 원망함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넓고 커서 헤아릴 수 없으면,
모든 중생들이 눈앞에 있음을 보리니, 남쪽ㆍ서쪽ㆍ북쪽의 4유(維)와 위아래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통제하고 인자함을 행하며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하되,
바깥으로 다른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되돌아오게 하니,
마음의 눈으로 일체의 중생들을 관하면 모두가 분명하게 눈앞에 있음을 본다.
만일 한마음을 얻으면 마땅히 발원하여 말하기를,
“나는 열반의 진실하고 청정한 법으로 중생들을 제도하여 참다운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고 해야 한다.
자삼매(慈三昧)를 행하는 마음이 이와 같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도이다.
자삼매에 머물러서 일체 존재의 참다운 모습을 관하면 맑고 깨끗해서 무너지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니, 발원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이 법의 이익[法利]을 얻게 한다.
이러한 삼매로 동쪽의 일체 중생들을 인자하게 생각하여 부처님의 즐거움을 얻게 하며, 시방도 또한 그러해서 마음이 구르고 어지럽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자삼매문(慈三昧門)이라고 한다.
7.3. 질문들
[왜 총제적으로 중갱을 생각하지 않는가]
[문] 왜 일시에 총체적으로 시방의 중생들을 생각하지 않는가?
[답] 우선 한쪽을 생각하면 한마음을 얻기가 쉬우니, 그런 뒤에 점차 여러 방향으로 두루 미친다.
[원수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 사람은 원수[怨家]가 있으면 항상 서로 해치고자 하니, 어떻게 인자함을 행하여 그들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가?
[답] 인자함은 마음의 법이니 마음에서 나온다.
먼저 친한 바를 따르고, 친함이 점차 증가하여 마침내 원수에게까지 미치니,
마치 불이 장작을 태우되 활활 타오르면 습기를 태울 수 있는 것과 같다.
[중생들이 괴로움을 만나거나 지옥에 있다면]
[문] 혹 중생들이 갖가지 괴로움을 만나거나, 혹은 사람 가운데 있거나, 아니면 지옥 속에 있다면, 보살이 비록 인자하더라도 그들이 어찌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답] 먼저 즐거워하는 사람을 따라서 그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취하여, 저 괴로워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즐거움을 얻게 하니,
마치 패군(敗軍)의 장수가 두려워서 쳐다보지 못하면, 그를 바라보던 적군의 사람들이 모두 용사(勇士)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삼매의 공덕]
[문] 자삼매를 행하면 어떠한 훌륭한 이익이 있는가?
[답] 수행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집을 나오고 세속을 떠나 마땅히 인자한 마음을 행해야 한다’고 하고,
또한 사유하여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믿음으로 보시하는 것을 먹음은 마땅히 이익을 행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잠깐 동안이라도 인자함을 행하면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
곧 도에 들어가서 헛되이 보시를 받지 않는 것이다.
또한 몸에는 물들인 옷을 걸치지만 마음은 응당 물들지 않아서 자삼매의 힘이 능히 오염되지 않게 한다.
또한 나의 마음으로 인자함을 행하여 법을 파괴하는 세상에서 나는 법이 있는 사람이며,
비법(非法)의 무리들 가운데 나는 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므로 법다워서[如法] 고뇌가 없으니,
인자함의 선정이 지니는 힘 때문이다”라고 한다.
보살은 도를 행하여 감로문(甘露門)으로 향하고, 갖가지 뜨거운 번뇌를 인자함으로 시원하게 하여 즐겁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이 지독히 뜨거울 때는 맑고 시원한 연못에 들어가면 즐겁다.
또한 위대한 자비의 갑옷을 입으면 번뇌의 화살을 막아주며,
자비로 법의 약을 삼으면 원망과 번뇌의 독을 해소한다.
번뇌는 마음을 태우니, 인자함으로 능히 없앨 수 있다.
자비로 법의 사다리를 삼아 해탈의 집에 올라가며,
자비로 법의 배를 삼아 생사의 바다를 건너며,
훌륭한 법의 재물을 구할 때는 자비를 으뜸가는 보배로 삼고,
열반을 향해 가는 데는 자비를 도의 양식으로 삼는다.
자비로 준마(駿馬)를 삼아 열반으로 건너가고,
자비를 용감한 장수로 삼아서 3악도를 뛰어넘는다.
자비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뭇 악을 녹일 수 있으며,
모든 하늘의 착한 신들이 항상 따라다니며 옹호한다.
[자삼매를 잃어버리지 않고 늘리는 방법]
[문] 만일 수행하는 사람이 자삼매(慈三昧)를 얻는다면, 어떻게 해야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더욱 늘리겠는가?
[답] 계(戒)를 배워서 맑고 깨끗하며, 잘 믿고 즐거움을 의지한다.
여러 가지 선정의 한마음의 지혜를 배우고, 조용한 곳에 살기를 즐거워하며, 항상 게을리하지 않는다.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함을 알며, 행동은 인자한 가르침을 따른다.
몸을 절제하고 음식을 적게 먹으며, 잠자는 것을 줄이고, 초야(初夜)와 후야(後夜)에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
번거로운 언어를 줄여 묵묵히 고요함을 지킨다.
앉고 눕고 가고 머묾에 때를 알아서 쉰다.
법도를 잃어 피로와 괴로움이 극도에 이르지 않도록 한다.
차고 따뜻함을 조화시켜 괴롭고 어지럽지 않게 한다.
이것을 일러 ‘인자함을 더한다’고 한다.
또한 불도(佛道)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을 일체의 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크게 자비롭다고 한다.
수행자는 사유하기를,
‘현재와 미래의 위대한 사람은 인자함을 행하여 일체를 이롭게 하므로 나도 역시 은혜를 입었으니, 이것이 나의 어진 도우미[祐]이다. 나도 마땅히 인자함을 행하여 마침내 베풀어 준 은혜에 보답해야 하리라’라고 한다.
또 다시 생각하여 말하기를,
“대덕(大德)은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의 중생을 가엾게 생각하고 이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니, 나도 마땅히 그렇게 하리라.
저 중생들을 생각하여 부처님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하리니, 이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또한 인자함의 힘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쾌락을 얻게 하며,
몸은 뜨거운 고뇌를 여의고 맑고 시원한 즐거움을 얻게 하니,
인자함을 행하는 복덕을 가지고 일체를 편안하게 할 것을 생각하여 그 은혜에 보답한다.
또한 인자함에는 훌륭한 이익이 있으니,
성냄의 법을 끊고 명칭의 문을 열며,
보시하는 이의 좋은 밭이어서 범천에 태어나는 원인이다”라고 한다.
욕심을 여읜 곳에 머물러 원망과 대립 그리고 투쟁의 뿌리를 없애버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며,
능히 청정한 계율을 지녀 지혜의 밝음을 일으키고,
능히 법의 이로움을 들으며, 공덕의 제호(醍醐)로 좋은 사람을 결정한다.
출가의 용감한 힘으로 모든 악을 녹여 없애고,
욕설로 욕보이는 착하지 않음도 인자함으로 갚으면 항복시킬 수 있다.
열락(悅樂)을 묶어 모아서 정진법을 일으킨다.
부귀의 근본 원인은 지혜의 창고를 갖추는 것이니, 성실과 믿음의 창고는 여러 가지 훌륭한 법문이다.
칭찬하고 기리는 법[稱譽法]을 성취하여 근본적인 부처님의 바르고 참다운 길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
만일 사람이 악을 지니고 그것을 지향하면 도리어 스스로 그 재앙을 받는다.
다섯 가지 나쁜 말이 있으니, 때에 맞지 않는 말, 진실하지 않은 말, 이롭지 않은 말, 인자하지 않은 말, 부드럽지 않은 말이다.
이 다섯 가지 나쁜 말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고, 일체의 독해(毒害)도 역시 막을 수 없으니,
비유컨대 작은 불로 커다란 바다를 뜨겁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아래는 우전왕(優塡王)이 5백 대의 화살을 쏘았다는 것에서 나왔다.
『비라경(毘羅經)』에 나오는 우전왕의 아파타나(阿婆陀那:비유)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는 무비(無比)였고, 둘째는 사미파제(舍迷婆帝)였다.
무비가 사미파제를 비방하니, 사미파제에게는 5백 명의 시종들이 있었는데 왕이 5백 대의 화살로 한 명 한 명 쏘아 죽이고자 했다.
사미파제가 여러 시종들에게 말했다.
‘내 뒤에 서라.’
이때 사미파제는 자삼매(慈三昧)에 들어갔다.
왕이 활을 당겨 쏘았으나 화살은 발아래 떨어졌으며, 두 번째 화살은 도리어 왕의 다리 아래로 향했다.
왕이 크게 놀랐으나 다시 화살을 쏘려고 했다.
사미파제가 왕에게 아뢰었다.
‘그만두십시오, 그만두십시오. 부부의 도리는 서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화살을 쏜다면 곧바로 당신의 심장을 부술 것입니다.’
왕이 그때 두려워하며 활과 화살을 버리고 물었다.
‘그대는 어떠한 술법을 지니고 있는가?’
대답하였다.
‘저는 다른 술법이 없습니다. 저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자삼매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자삼매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세 가지 연(緣)이 있으니,
생연(生緣)과 법연(法緣)과 무연(無緣)이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한 모두를 생연이라 하며,
아라한과 벽지불은 법연이라 하고,
모든 부처님과 세존은 무연이라 하니,
그러므로 간략하게 자삼매문이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