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몇 가지 생각
(1) 우리말과 한글은 쉽고 어렵다.
한글은 일주일만 배우면 쓸 수 있는 쉬운 글이다.
한편, 우리말은 아주 어렵다. "울굿불긋"의 의태어, "짹짹", "졸졸", "뻐꾹 뻐꾹" 의성의가 세계 어느 언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어서 외국인에게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한글은 띄어쓰기에서 한국어 전문가도 틀릴 만큼 어려운 글이다.
(2) 한글 모음은 천지인의 삼수로 구성되고, 한글 자음은 글이 소리를 닮은 글이다. 한글은 천지창조와 자연의 운영원리, 과학적구성원리가 들어있다.
(3) 한글은 사이버 문자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쓸 수 있는 문자다. 상품성, 문화적 가치가 아주 높은 나라의 문화유산이다.
(4) 한글은 옛 전자를 기초로 만들었다(훈민정음 서문에서)
(5) 한글이 기초가 된 옛 전자는 아직 미확정 상태이지만, 단군 3세 가륵 재위 때(BC 2181) 창제된 "가림다"일 가능성이 높다.
(6) 한글은 소리의 첫 말 "아-ㄹ"과, 첫 글자.을 쓰고 있다. 그런데 고조선 시대 가림다는 .을 모음 첫 글자로 했고,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에도 .이 들어있다. 그러나 최근의 한글에는 이 글자.이 빠져 있다. 한글 자판에는 .를 "아래 아"라고 하여 별도로 찾아서 쓰야 한다. .은 글자가 빠지니 소리(발음, 말)도 잃어가고 있다. .은 하루라도 빨리 복원해야 할 말이고, 글자다.
(7) 인류의 언어가 나뉘어지기 전, 곧 노아 할아바지가 쓴 언어와 문자는 어떤 것일까? 한국어와 스메르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가림다 안내: 이하 인터넷에서 발췌한 내용(매일종교신문)
단군 제 3세 가륵(嘉勒) 임금 2년에 을보륵에게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하도록 하고, 3년 가을에 태수관 고설(高偰)에게 국사를 편찬하게하고 산수가림다(加臨多)라 하니 이것이 동양사의 원조로써 신계(神誡)라 칙교 유서와 도덕 정치 법률 풍속 등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다. 국문정음은 고대로부터 우리 겨레가 써오던 글인데 이것이 한글의 전신이다.
훈민정음 서문에 보면 한글이 모양은 옛글자를 모방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 옛 글자 정음(正音)은 38자다. 우리가 쓰는 한글 자음 모음 24자가 이 정음에서 근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약 4천 년 전부터 우리의 글이 있었던 놀라운 문화 민족이었던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부모를 살해하는 백성의 무지를 보시고 예와 효를 쉽게 가르쳐야 된다는 뜻을 두시고 만 백성이 모두 쉽게 배우고 알 수 있는 우리의 한글을 만드셨다고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록하고 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25년(1443년)에 완성하여 3년 동안의 시험기간을 거쳐 세종 28년(1446년)에 세상에 발표되었다
** 아래 글은 한글 창제 576돌을 맞으며 인터넷 검색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해석 중 일부 자료를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내용 정리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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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 정인지 『훈민정음 해례본』 후서 中-
제 3 절 정인지 서문
1. 천지자연의 소리와 문자
천지자연의 말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천지인 삼재(三才)의 원리를 싣게 했으니 후세 사람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2. 풍토에 따라 다른 소리와 문자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다르니 소리의 기운 또한 그에 따라 차이가 난다. 대개 중국 이외 나라의 말은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다. 따라서 중국의 글자를 빌려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모난 자루가 둥근 구멍에 들어맞지 않는 것과 같으니 어찌 막힘없이 잘 통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각각의 처지에 따라 편안해야 하니 억지로 같아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盖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以通其用 是猶枘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3. 중국어와 다른 우리말, 그리고 한자
우리 동방은 예악과 제도가 화하에 견주어 비길 만하나 사용하는 말은 중국과 같지 않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한자로 쓰인 글의 뜻을 깨닫기 어려움을 걱정하고, 재판을 담당하는 사람은 한자로 쓰인 기록을 통해 그 복잡한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움을 근심한다.
吾東方禮樂文章 侔擬華夏 但方言俚語 不與之同 學書者患
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4.우리말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설총의 이두
옛날 신라의 설총이 처음 이두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관부와 민간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려서 쓰는 것이라 사용하기에 껄끄럽기도 하고 막힘이 있기도 하다. 이두는 비루하고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다.
昔新羅薛聰 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5. 새 문자의 창제와 우수성
계해년(1443년) 겨울,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만드시고 간략히 예의를 들어 보이시며 ⟦훈민정음⟧이라 일컬으셨다. 모양을 본떠 만들되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였으며 소리에 따랐으니 그 음이 칠음(七音)과 조화를 이룬다. 천지인 삼재의 뜻과 음양 이기(二氣)의 묘리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28자로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지만 요긴하고 정밀하지만 소통이 쉽다. 그러므로 똑똑한 자는 반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우둔한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癸亥冬。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 浹旬而學
6. 새 문자의 효용
이 글자로 한자로 쓰인 책을 풀이하면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글자로 송사를 살피면 그 복잡한 사정을 알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자의 음을 적으면 소리의 청탁(淸濁)을 변별할 수 있고, 음악을 기록하면 음악의 율려를 조화롭게 할 수 있다. 사용하는 데마다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가는 곳마다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비록 바람 소리, 학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라 하더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 淸濁之能辨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
7. 해례본의 편찬 동기와 편찬자
드디어 전하께서 상세하게 해석을 더하여 모든 사람을 깨우쳐 주라고 명하셨다. 이에 내가 집현전 응교 최 항, 부교리 박 팽년과 신 숙주, 수찬 성 삼문, 돈령부 주부 강 희안,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 이 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5해(解)’와 ‘1례(例)’를 지어 그 대강(大綱)을 서술하였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근원과 정밀한 뜻의 오묘함은 감히 신하인 우리들이 펼쳐 드러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 臣崔恒 副敎理
臣朴彭年 臣申叔舟 修撰臣成三問 敦寧府 注簿臣姜希顔
行集賢殿副修撰臣李塏 臣 李善老等 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槩 庶 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 則
8. 창제자의 위대함
삼가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성인으로서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심이 모든 왕들을 초월하셨다. 정음을 지으신 것도 이전 것을 이어받지 않고 자연에서 이루어 내신 것이다. 지극한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어찌 사람이 사사로이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 오래되었으나 만물을 개발하고 모든 일을 이루어 내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도다.
恭 惟我殿下 天縱之聖制度 施爲 超 越百王 正音之無所祖述 而成
於自然豈以 其至理之 無所在 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 務之大智 盖 有待於今日也 歟
9. 해례본의 간행일과 글쓴이 정인지
정통 11년(1446년) 9월 상한에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신 정 인지가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삼가 쓰다.
正統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 禮曺判書 集賢殿大提學 知 春秋館事世子 右賓客臣鄭麟趾拜手 稽首謹書
*** 이하 글은 출처나 신눤 미상의 글을 참고 자료로 올려 놓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한 문자 설명서인 ⟦훈민정음해례본⟧은 그 학술적ㆍ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에서는 국보 70호로, 해외에서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여기에 게재한 현대어 번역은 국립한글 박물관에서 편찬한 『쉽게 읽는 훈민정음』을 옮겨 적은 것이다.
오늘날 한민족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이 추구한 철학적 가치와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자부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훈민정음창제와 관련하여,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개량하고, 현실에 맞게 바로 잡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는 앞에서 기술한 역사서인 『태백일사』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이 책에는 가륵단군(嘉勒檀君)2년(B.C 2181)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의 「가림토(加臨土)문자」를 창제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발음의 원리는 따로 만들었으나 옛글을 참고했다”고 말한 바도 있다. 또한 <신 경준>이 쓴 「훈민정음 운해(서기1750년)」에 보면, “예로부터 사용하던 속용문자가 있었다.”고 하였으니, 한문 외에도 민간에서 사용되던 문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옛글’이나 ‘속용문자’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연변대 고(故) 송 호상교수는 「동이민족 논설」에서 “세종대왕의 한글이 백지상태에서 이룩된 것이 아니고, 한글의 전신인 원시한글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원시 한글이 바로 가림다 문자이며 녹도글자”라고 하였다.
태백일사에는 ‘가림다’를 ‘加臨多’라고 표기하였고, 단군세기에는 ‘加臨土’라고 적고 있다.
사실상 가림다는 환역과 부도역에서 보았듯이, 수학에서 수를 셈하는데 사용한 숫자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를 아래 가림다문자를 보면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正音三十八字 是爲加臨土 其文曰
가림다는 총 38자이다. 이를 크게 3가지로 세분해보면, 13수의 숫자의 2종과 12수의 숫자 1종으로 나눌 수 있다.
인류문명사에서는 주로 10진법을 사용하고, 사물의 구분은 대체로 12수가 기본인데 왜 하필이면 13수로 구분했을까?
고대 마야문명의 숫자는 20진법으로서, 그림글자와 기호글자 20자로서 숫자로 구분되어 모두 합하면 40자의 문자로 구성된다. 이는 가림다의 글자 38자의 수와 거의 같다.
아무튼 고조선의 말기에 이르러 쓰였던 가림다의 글은 “언어, 뜻, 숫자”의 기능이 삼위일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부도의 역과 함께 성수-법수-체수의 수리체계와 서방세계에 널리 퍼진 「황금비의 원리」 등과 대비되는 지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제3절의 정 인지서문을 보면, 「새 문자의 창제와 우수성」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모양을 본떠 만들되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였으며 소리에 따랐으니 그 음이 칠음(七音)과 조화를 이룬다. 천지인 삼재의 뜻과 음양 이기(二氣)의 묘리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28자로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지만 요긴하고 정밀하지만 소통이 쉽다. 그러므로 똑똑한 자는 반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우둔한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그 효용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사용하는 데마다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가는 곳마다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비록 바람 소리, 학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라 하더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여기서 밝힌 바와 같이, 훈민정음 28자는 만들어진 구구한 연유와는 관계없이 한민족의 최고의 발명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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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 : 가륵단군(3세) 2년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지어 가림다加臨多라 하였다.
[출처] 한글의 원형 가림다와 후세의 자취(작성자 : 막노동하는 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