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빈 성씨 소생이다.
1782년(정조 6) 9월 7일에 태어났으며, 1784년 8월 세자에 책봉되었다.
1786년 5월 11일 창덕궁 별당에서 훙서하였고,
무덤은 효창원(孝昌園)이라 한다.
원래는 지금의 효창공원 자리에 있었으나, 1944년 경기도 고양시 원당의 서삼릉 의령원 앞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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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세자 교책문
정조 8년 갑진 1784년 8월 2일(을유)
교명문(敎命文)에 이르기를,
“왕세자는 온 나라를 바로잡는 근본이 될 뿐만 아니라, 왕세자를 미리 세우는 것은 바로 삼대(三代) 때 부터 영구한 안정을 도모하는 방도였던 것이다. 내가 등극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후사가 출생하는 경사를 보게 되었다. 너는 요람에 싸인 세 살배기인데, 이미 어른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장차 훌륭한 책문(冊文)을 더하기에 앞서 먼저 총명(寵命)의 글을 내려주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너 원자(元子)는 황천(皇天)이 내려주는 풍성한 사랑을 받고 열성조(列聖祖)에서 상서를 베풀어주는 기회를 맞이하여, 듬직하고 의젓한 자질은 참으로 모든 아름다움을 한 몸에 모을 만큼 뛰어나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온화하고 착한 덕성은 어릴 때부터 일찍이 나타났다. 이미 원량(元良)의 아름다운 칭호를 정하였으니, 마땅히 세자[儲貳]에게 성대한 의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키가 날로 자라자, 자전(慈殿)과 자궁(慈宮)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과, 도량(度量)이 자연히 이루어지자, 신민(臣民)들이 기뻐하고 축하하는 정성은 비록 마음속으로 간절하였지만, 내가 복을 아끼려고 하여 성대한 예식을 조금 늦추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의리상 명분을 바로잡는 것이 중대하고 여러 사람들의 정원(情願)이 더욱 간절한 데야 내가 어찌 하겠는가? 이에 너를 왕세자로 책봉하도록 명한 것이다.
억만 년을 내려가면서 성신(聖神)이 계승(繼承)하는 통서(統緖)를 부탁할 근심이 없어졌다[王世子億萬年聖繼神承之統付托無憂]는 16자(字)의 말로 요(堯)·순(舜)이 전수(傳受)한 모유(謨猷)를 일찌감치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너의 무거운 책임을 생각하고, 나의 깊은 기대와 바램을 몸받아서, 일찍부터 올바르게 보양(保養)시켜 이러한 습관을 익혀서 좋은 성품을 이루어야 한다. 유충(幼沖)하다고 하여 노름 놀이만을 일삼지 말며,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하여 태만하고 오만하지 말도록 하라. 오직 덕을 좋아하는 데는 홍범(洪範)의 오복(五福)에 근거를 두고, 오직 정심(正心)할 때는 《대학(大學)》의 팔조(八條)를 요령(要領)으로 삼도록 하라. 명철함과 길(吉)한 운수를 만나는 것은 초기에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성덕과 천도를 구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는 데에 달려 있다. 모름지기 훌륭한 아들의 직책에는 종묘 사직의 책임이 있고, 부모에게 침선(寢膳)을 돌봐주는 효성을 다하는 의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컨대, 하루 동안에도 현사(賢士)와 대부(大夫)를 접대하는 시간이 많고, 환관(宦官)이나 궁녀[宮妾]들을 접하는 시간을 적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 새로운 즐거운 소식이 다시 빛나게 들려오니, 어찌 나의 기쁜 마음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 드문 찬양하는 전례(典禮)를 함께 거행하는 것도 또한 너의 경사에 의한 것이다. 훌륭한 훈계를 힘써 따라서 큰 영광을 길이 누릴지어다.”
하였다.【좌의정 이복원(李福源)이 지었다.】 죽책문(竹冊文)에는 이르기를,
“원량(元良)의 훌륭한 탄생은 종묘 사직에서 내려준 무한한 경사에 힙입은 것이고, 저위(儲位)를 일찍이 정한 것은 나라의 근본을 공고히 하려는 계책을 따른 것이다. 이에 옛 전장(典章)을 상고하여 훌륭한 책봉 예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아! 너 원자(元子)의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질은 날로 성취되고, 높고 의젓한 자태는 저절로 이루어졌다. 유충(幼沖)한 나이인데도 덕과 기량은 보통 사람과 달라서 이미 아름다운 자질을 드러내었고, 키가 작은 나이 인데도 두루 일을 주선(周旋)하는 데 법도가 있어서 훈계하는 말이 필요치 않도다. 좋은 나무에 꽃이 피는 상서(祥瑞)를 드러내니, 황천(皇天)의 도우심을 가히 점칠 수 있다. 태어난 달이 선왕(先大王)이 출생한 때와 부합되니, 성조(聖祖)의 내려주신 은덕을 더욱 증험(證驗)할 수가 있다. 이에 어질고 착한 성품이 일찍이 드러나게 되니, 진실로 호(號)를 봉하는 책봉 예식을 제때에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통서(統緖)를 부탁할 데가 있게 되었으니, 정말 나의 마음은 기쁘고 신하들의 호소가 빈번하니, 또한 여정(輿情)을 알 수가 있다. 일찍이 유시하여 주(周)나라 시대를 법받으려고 생각하고, 정사에서는 모름지기 세자를 보양할 방도를 강고하고, 아름다운 규례와 법식은 명나라[皇朝]의 제도를 따르니, 어찌 왕세자를 미리 세우는 예식을 늦출 수가 있겠는가? 이에 너를 왕세자로 삼도록 명한 것이다.
너는 영원한 복을 받아 커다란 모유(謨猷)를 힘써 천명하도록 하라. 사(師)·부(傅)·빈료(賓僚)의 관직을 두어 모두 올바르게 세자를 보도하고 양육하게 하고, 이에 시(詩)·서(書)·예(禮)·악(樂)의 가르침으로 일취 월장(日就月將)하는 학문이 점점 새로와지기를 바라노라. 오직 수신(修身)할 때에는 어진이를 친근히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오직 이치를 밝힐 때에는 학문을 강론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효도와 우애가 덕행(德行)의 첫머리를 차지하지만, 실지로 어릴 때의 양지(良知)에 바탕을 두며, 성정(誠正)이 치평(治平)의 기본이 되는 만큼, 의당 정일(精一)하라는 성인(聖人)의 훈계에 힘써 따라야 할 것이다.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고계(誥誡)하는 말을 어기지 말고, 바다처럼 젖어들고 별처럼 빛나서 신인(神人)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란다.”
하였다.【대제학 오재순(吳載純)이 지었다.】
【원전】 45 집 45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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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미상, <문효세자책봉의례도(文孝世子冊封儀禮圖)>, 8첩병풍, 1784년, 견본채색(絹本彩色) , 전체 110×421
정조8년(1784) 8월 거행된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책봉의례를 기록한 그림이다.
전체 8폭중 2폭이 책봉문과 좌목이고, 나머지 6폭이 그림인데 3폭씩 연결된다.
이때 행사의 전말은 문효세자수책시책례도감의궤(文孝世子受冊時冊禮都監儀軌)(규장각 소장)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데, 의궤도를 그린 화원은 이인문, 장시흥, 허감, 신한평, 김덕성, 김득신, 박치경, 윤도행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덕궁 인정전에서의 행사장면을 화려하고 섬세하게 그린 것으로, 정조대 궁중행사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조 10년 병오(1786, 건륭 51) 5월 11일(계축)
문효세자의 졸기
왕세자가 훙서하다
왕세자가 훙서하였다. 세자의 병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자, 시약청을 설치하고 대신을 파견하여 재차 사직과 종묘에 기도하였다. 이날 미시(未時)에 창덕궁의 별당에서 훙서하였는데, 사부·빈객·춘방·계방에게 명하여 뜰 아래에 모아 서게 하였다. 임금은 흑립(黑笠)과 백포대(白布帶)를 착용하고 여러 신하들은 천담복(淺淡服) 차림으로 상(喪)을 발표하면서 검정 곤룡포를 입고 고복(皋復)하였다. 종척(宗戚)과 집사, 여러 각신(閣臣)들이 돌아가며 모시고, 오영(五營)에서는 성을 호위하고, 병조는 대궐 안의 각문을 지켰다.
*고복(皋復) : 사람이 막 죽었을 때에 죽은 사람의 옷을 가지고 지붕 위로 올라가 다시 돌아오라고 세 번 부르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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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기록된 문효세자
정조 6년 임인(1782) 9월 7일(신축) 문효 세자의 탄생을 기뻐하다
정조 8년 갑진(1784) 7월 2일(을묘) 예조 판서 김노진과 영의정의 왕세자 책봉 예식에 대한 논의
정조 8년 갑진(1784) 9월 7일(기미) 왕세자의 생일을 맞아 시임·원임 대신과 각신 등을 소견하다
정조 8년 갑진(1784) 9월 6일(무오) 왕세자의 사친 본가 증직에 대한 건의
정조 8년 갑진(1784) 8월 7일(경인) 왕세자가 사·부·빈객들과 상견례를 거행하다
정조 8년 갑진(1784) 7월 2일(을묘) 원자를 책봉하여 왕세자로 삼다
정조 8년 갑진(1784) 7월 27일(경진) 도감 도제조 서명선이 왕세자 사은에 대해 건의하다
정조 8년 갑진(1784) 7월 16일(기사) 왕비 책봉과 동궁 책봉시의 공복에 대한 논의
정조 8년 갑진(1784) 7월 6일(기미) 승지 이시수의 품신에 따라 왕세자의 이름을 결정하다
정조 8년 갑진(1784) 7월 4일(정사) 대사헌 이숭호의 6가지 경계할 것에 대한 차자
정조 8년 갑진(1784) 7월 3일(병진) 왕세자 책봉 예식을 권정례로 거행하게 하다
정조 8년 갑진(1784) 8월 2일(을유) 왕세자 책봉 예식을 거행하다
정조 8년 갑진(1784) 8월 2일(을유) 은혜를 베푸는 윤음
정조 8년 갑진(1784) 8월 2일(을유) 왕세자 책봉 교명문과 죽책문
정조 9년 을사(1785) 9월 9일(을묘) 왕세자의 서연을 열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3일(을사) 왕세자의 홍역으로 의약청을 설치하게 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10일(임자) 왕세자의 환후가 갑자기 심해져 의약청이 다시 숙직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11일(계축) 왕세자가 훙서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11일(계축) 왕세자의 제례에 대해 예조에서 아뢰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13일(을묘) 상례보편의 상복 제도에 대하여 논의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13일(을묘) 왕세자의 대렴, 성빈전을 거행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14일(병진) 빈청에서 왕세자의 시호를 정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22일(갑자) 왕세자의 시호를 ‘문효’로 개정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6월 1일(계유) 왕세자의 홍진에 삼과 부자의 약을 쓴 의관을 탄핵하는 어석령의 상소
정조 10년 병오(1786) 6월 25일(정유) 빈궁에 나아가 시호를 선포하다
정조 10년 병오(1786) 윤 7월 19일(경인) 문효 세자를 효창묘에 장사지내다
정조 11년 정미(1787) 3월 8일(병자) 경희궁에 나가 문효 세자의 혼궁에 전작례(*왕이나 왕비가 못 되고 죽은 조상이나 왕자, 왕녀의 제사를 임금이 몸소 지내던 일)를 행하다
정조 11년 정미(1787) 3월 15일(계미) 판중추부사 조경이 사직하는 이유를 말하다
정조 11년 정미(1787) 4월 3일(경자) 기제와 상복입는 예에 관해 예조에서 건의하다
정조 11년 정미(1787) 4월 29일(병인) 경희궁에 나가 문효 세자의 혼궁에 임하다
정조 11년 정미(1787) 5월 11일(정축) 문효 세자의 소상제를 행하다
[일성록]정조 10년(1786) 윤7월 16일(정해)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신주가 완성되어 경희궁(慶煕宮)의 위선당(爲善堂)에 임시로 봉안하였다.
정조 11년 정미(1787) 7월 23일(무자) 경희궁에 나가 문효 세자의 혼궁에서 전작례(*왕이나 왕비가 못 되고 죽은 조상이나 왕자, 왕녀의 제사를 임금이 몸소 지내던 일)를 행하다
정조 11년 정미(1787) 9월 7일(신미) 경희궁에 나가 문효 세자의 혼궁에서 작헌례(*임금이 몸소 왕릉, 영전(影殿), 종묘(宗廟), 문묘 따위에 참배하고 잔을 올리던 제례)를 행하다
정조 12년 무신(1788) 4월 29일(신유) 경희궁의 문효 세자의 혼궁에 아침 상식을 행하고, 효창궁에서 전작례를 행하다
정조 13년 기유(1789) 4월 25일(신해) 문희묘가 완성되다. 문효 세자 혼궁·효창묘·의빈묘에서 다례를 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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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세자(文孝世子) 진향문(進香文)
하늘이 우리 동방 돌보시사 / 天眷東方
광명하고 창성하니 / 景明靈昌
성신(聖神)으로 기르시고 / 聖造神育
인덕(仁德)으로 살찌우시네 / 德膴仁肪
백성 소망 살피시어 / 乃省群顒
탄생을 늦추지 않아 / 其降不遲
한 번 구해 진괘(震卦) 되고 / 一索成震
두 번 밝아 이괘(離卦) 되었네 / 兩明作离
영종의 증손이요 / 英宗曾孫
금왕의 세자시니 / 今王世子
나라 점(占)이 길조여서 / 國占用吉
선조를 계승하리라 하네 / 厥曰攸似
붉디붉은 궁중 대추 / 赫赫宮棗
백년 만에 다시 열리니 / 百年再實
숙조와 부합하는 영험을 / 肅祖靈符
*숙조는 공경하는 선조란 뜻으로, 여기서는 숙종(肅宗)을 가리킨다. 정조 10년 6월 판돈녕부사 김종수(金鍾秀)가 지어 올린 문효세자지문(文孝世子誌文)에 의하면, 경희궁(慶熙宮)에 있던 큰 대추나무가 한동안 시들었다가 현종(顯宗) 2년(1661)에 갑자기 꽃을 피우더니 그해 가을에 숙종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추나무가 다시 시들었다가 문효세자가 태어날 때에도 꽃을 피우는 이적(異蹟)을 나타냈으며, 정조는 대추가 익자 측근의 신하들에게 이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夢梧集 卷7 文孝世子誌文》
오늘 다시 보게 되네 / 復覩今日
탄생하던 그날 저녁 / 誕彌之夕
붉은빛이 궁에 가득 / 紅光滿宮
추성(樞星)에 번개 두른 듯 / 如樞繞電
화저(華渚)에 무지개 지듯 / 如渚流虹
이 모든 징조들이 / 凡厥庶徵
처음부터 다 후하여 / 罔不篤初
봉의 바탕에 용의 무늬 / 鳳質龍章
실로 하늘이 예비하셨네 / 實天所儲
어질고 온화함은 / 仁孝溫文
본성에서 나왔으니 / 惟性之根
임금님이 오시면은 / 天顔載臨
기뻐하며 옹알대다 / 婉愉言言
임금님이 가시면은 / 玉趾言旋
돌아보며 앙앙 우네 / 顧懷喤喤
병풍 위의 글자 분별 / 屛間辨字
걸음마도 하기 전이요 / 時未扶床
쓴 약 권해 올릴 때도 / 誘進苦劑
반드시 책을 먼저 잡으셨네 / 必先方冊
한밤중에 화재 경고하시니 / 深宵警火
하늘이 준 예지로세 / 慧智天錫
코 골던 놈 곧 깨어나 / 彼鼾方覺
연소(延燒) 아니 되었다오 / 遂不延逮
청구를 처음 열 제 / 靑邱肇闢
요 임금의 첫해와 같으니 / 叶堯初載
조정에서 세자 책봉 받으실 제 / 受冊大庭
해 빛나고 구름 상서로워라 / 日麗雲卿
쌍상투에 칠장복(七章服) / 雙髻七章
*칠장복(七章服) : 무늬가 장식된 대례(大禮) 제복(祭服), 즉 면복(冕服)을 장복(章服)이라 한다. 황제는 12종의 무늬를 장식한 12장복을 입고, 왕은 9장복을 입는다. 왕세자는 화충(華蟲) · 화(火) · 종이(宗彛) · 조(藻) · 분미(粉米) · 보(黼) · 불(黻)의 무늬를 장식한 7장복을 입는다.
차비 갖춰 맞을 적에 / 備事將迎
백관의 모자 우뚝우뚝 / 會弁嵬峨
일만 눈이 다투어 보며 / 萬眸爭瞻
목을 빼고 발끝 드니 / 延頸跂踵
수염이 길게 드리웠네 / 若若其髥
의젓하게 앉았으니 / 穆然端坐
늘 본 것같이 여기되 / 若常覿之
기대거나 한눈팔지 않고 / 不凭不惰
두려워하거나 의심 않으니 / 不攝不疑
저절로 생긴 위엄 / 不威而嚴
하마 그 위(位)에 나타났네 / 已見其位
어릴망정 대인(大人)이요 / 雖幼大人
군자의 덕 갖추셨네 / 維德不器
이날 여러 재상들이 / 是日群卿
뛸 듯이 기뻐하며 절하고 / 忭躍俯跪
사랑으로 안고 싶었으나 / 愛若進抱
두려워서 물러나 기다렸지 / 畏將退俟
이듬해 중구일(重九日)에 / 翌歲重九
《효경》 수업 시작하니 / 肇講孝經
우리 왕가 빛난 전통 / 我家徽躅
나이와 때 꼭 맞았네 / 年辰適丁
교문(橋門)에 둘러서서 귀 기울이면 / 環橋聳聽
글 읽는 소리 경종(磬鐘)을 울리는 듯 / 若出磬鍾
천년의 밝은 운수 / 千載熙運
거듭 만나 아름다워라 / 於休重逢
사백 년의 긴긴 세월 / 厥禩四百
쌓고 쌓인 경사에다 / 積慶累洽
하늘 보답 또렷하여 / 天有顯報
큰 덕으로 왕위를 얻으리라 / 大德必得
장구한 국가 사업 / 靈長之業
영원하길 비옵고 / 永祈千秋
우리 임금 근심 없어 / 吾王無憂
병만을 근심했네 / 惟疾是憂
복이 내려 이튿날 나았으니 / 慶臻翌瘳
하늘 이치 어긋나리요 / 謂理無舛
성한 의식 거행키로 / 縟儀將擧
좋은 날을 가렸는데 / 吉日載選
하룻밤 새 이게 웬일 / 云胡一夕
온 장안 놀라 뒤숭숭 / 滿城駭遑
남종 여종에다 / 丫靑隸皂
늙은이와 어린애들까지 / 叟白童黃
허둥지둥 헐떡이며 / 顚仆喘汗
가슴 헤치고 하늘에 호소 / 袒胸龥旻
세자를 부르짖으며 / 長號貳極
모두 대신 백번이라도 죽으려 하네 / 擧懷百身
제사도 지내 봤고 / 珪璧旣卒
의술도 소용없어 / 刀圭亦窮
팔도는 슬픔으로 뒤덮이고 / 哀普八域
삼궁은 비통에 잠겼네 / 痛纏三宮
*삼궁(三宮) : 왕과 대비(大妃)와 왕비를 가리킨다
종묘 제사 어디 의탁하며 / 宗器靡托
신과 사람은 뉘를 의지하리 / 神人疇依
중륜의 칭송 스러지고 / 重輪撒謠
전성의 빛 가리우니 / 前星掩輝
상자 속 사규삼(四䙆衫)은 겨우 한 자요 / 篋䙆纔尺
소반 위 활은 겨우 석 자로세 / 盤弧厪三
슬프다 이 온 나라에 / 嗟爾匝域
수많은 어린아이들 / 有萬女男
홍역 한창 치성하여 / 疹之方熾
마을 곳곳 불 지필 때 / 衖鬨爐烘
왕께선 자식인 양 여기시고 / 王無弗子
내 몸처럼 아파하여 / 若恫在躬
영약을 집집이 돌리고 / 靈丹戶遍
의원을 보내 다 같이 치료받게 하여 / 臣跗汝偕
귀신에게서 빼앗아 내어 / 奪之鬼牙
어미 품에 돌려주니 / 還厥母懷
이 누구의 덕이더뇨 / 繄誰之賜
검은 머리 백성들아 / 群黎百姓
너희가 하루라도 안정되면 / 集汝一日
바로 네 경사로다 / 尙作汝慶
복령(茯苓) 백출(白朮) 모아다가 / 阜厥苓朮
산처럼 쌓았건만 / 猶成陵岡
하늘 실로 못 믿겠고 / 天固難諶
사람 또한 어질지 못하네 / 人亦不臧
저 의원놈 잡아다가 / 願執彼醫
승냥이나 범에게 던져 주었으면 / 投畀豺虎
아 슬퍼한들 어쩌리요 / 何嗟及矣
이내 마음 씀바귀 맛 / 我心荼苦
어린 세자 지극한 효성 / 沖齡至性
저승에 간들 다름없으리 / 無閒幽明
장지를 정하니 율목의 언덕이라.〔去隧載卜 栗木之原〕
*율목은 고양군(高陽郡) 율목동으로 현재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 자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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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세자(文孝世子) 만장(輓章)
일찍이 나라에 경사 났던 일 생각하니 / 憶曾邦有慶
은근(慇懃)히 저 하늘 믿었었네 / 珍重信蒼蒼
연면한 복록 바야흐로 시작되었고 / 綿籙方伊始
순수한 상서 한량 없으리라 했네 / 純禧政未央
양조의 성탄이 부합하였으니 / 兩朝符聖誕
구월에 아름다운 상서 거듭했었네 / 九月荐休祥
하늘 뜻 이같이 지극했는데 / 天意如斯摯
어이 또 참상(慘喪)을 내린단 말가 / 云胡又降喪
갑진년 중추 팔월 초하룻날 / 甲辰秋仲朔
영조(英祖)께서 일찍이 즉위하셨네 / 英考昔光臨
다음 갑진년 팔월에 세자 책봉했으니 / 宣冊同年月
해는 일갑자(一甲子)를 순환했도다 / 循環一古今
이때 기이한 상서 나타났으니 / 是時呈異瑞
잠깐 사이 오랜 장마 개었었네 / 俄頃輟淫霖
화복이 순환하여 슬픔과 기쁨 극심하니 / 倚伏悲歡劇
하늘도 믿기 어려운가 하네 / 皇穹未易諶
조정에서 잔치 열던 날 / 肅朝開筵日
성상께서 세 차례나 기뻐하셨네 / 三回聖意欣
맑은 자품이라 문이라 이르고 / 睿姿文也謂
지극한 성품이라 효라 일컬었네 / 至性孝乎云
교양은 천품으로 숙성하였고 / 蒙養天成夙
공부도 날마다 진취하였네 / 身敎日就勤
문효(文孝)의 칭호 어찌 지나친 예찬이랴 / 徽稱寧溢美
우리 임금께서 손수 지어주셨네 / 錄示自吾君
하례를 거행하려 한 것은 / 賀禮行將擧
세자가 홍역을 앓은 다음날 나았기 때문일세 / 翌瘳毖睿躬
덕음은 온 나라에 퍼졌고 / 德音覃域內
길어는 단오(端午) 때에 미쳤었네 / 吉語屆天中
후계의 자리 갑자기 비었으니 / 匕鬯俄虛位
약석(藥石)도 마침내 효험 없었네 / 刀圭竟罔功
임금님은 슬픔을 억제하실 수 있겠으나 / 宸心雖抑譬
자전(慈殿)의 마음을 어이 위로할쏜가 / 何以慰慈宮
단정한 용모 왕자의 기상이었는데 / 端凝天日表
옛날을 추억하니 눈물 금할 길 없어라 / 緬想淚盈眸
소해에 물결 도리어 줄어들었고 / 少海波還減
중휘(重暉)는 홀연히 광채를 거두었네 / 重暉彩忽收
거룩한 명예 다섯 해 동안 드날렸고 / 令譽揚五載
끼친 한은 천추에 사무쳤네 / 遺恨亘千秋
유자들 줄을 지어 통곡했으니 / 孺子成班哭
아! 옛날에도 이런 일 있었던가 / 嗚呼古有不
백성들 복록 없을 뿐만 아니요 / 不獨民無祿
차라리 죽고 싶은 건 바로 소신이라오 / 溘然卽小臣
춘방(春坊)에 처음 숙직하던 날이 / 春坊初直日
세자께서 비로소 책봉 받은 때였네 / 震邸始封辰
몸매는 숙성하게 보였는데 / 衣尺瞻岐嶷
서연에 외람되이 발탁되었네 / 書筵被揀掄
궁중의 직함 이로부터 줄어지리니 / 宮銜從此減
만사가 다만 비통할 뿐이로다 / 萬事祈悲辛
청장관전서 제12권 아정유고 4 - 시 4
참고문헌
조선왕조정조실록
연려실기술
일성록
첫댓글 휘가 향인가요??? 순인가요?? 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