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빼다 박은 재일교포의 삶>
“파친코”는 업계를 숙주로 펼쳐지는 재일교포의 처연한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일본의 파친코 업소는 17,000여개, 매출 400조원에 종업원 44만 정도이며 이용객은 3500만에 달한다. 파친코 상권은 일본의 야쿠자가 쥐고 있고, 묘하게도 그들을 재일교포가 관장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저마다는 나름의 한계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된 나날을 영위한다. 삶은 누구나에게 고통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가혹함은 말 할 나위 없었다. 조선에서도 평탄한 삶을 보내지 못했던 그들은 자식만큼은 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살기를 바랐다. 시대는 그들 소박한 꿈을 이루게 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 막내딸 양진은 몸이 성치 않은 훈이에게 팔려가듯 결혼한다. 양진은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채 남편 훈이와 하숙집을 운영하며 외동딸 선자를 키워낸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선자는 엄마 나이 또래의 한수에게 빠져들고, 유부남인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았지만 카톨릭 신자인 양진이 낙태를 못하게 막는다. 그 무렵 목사 이삭이 서울서 내려와 양진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된다. 이삭은 선자가 불행의 나락에 빠진 걸 알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둘은 결혼 후 이삭의 형 요셉 부부가 사는 일본 오사카로 향한다.
선자는 오사카에서 손위 동서 경희와 자매처럼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경희는 불임인 탓에 선자의 아이들을 더 정성껏 돌본다. 파친코 대부 격인 한수가 이삭 형제를 몰래 돌봐주고 있다는 건 뒤늦게 알게 된다. 한수는 선자 어머니 양진까지 일본으로 데려온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면서도 심신의 고됨을 드러내지 않는 담대함을 지녔다.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무시로 차별받는다. 노아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을 극복하고자 공부에 파고들고, 모자수는 조선계 일본인에 대한 경멸과 괄시에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일본인보다 훨씬 공부를 잘하고 착실하게 돈을 벌어 모아도 그들을 대하는 일본인의 시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이니치’라는 편견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올 수 없는 굴레였다.
『파친코』에는 작가 자신이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겪었던 감정과 성공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녹여냈다. 민감한 이야기지만 리얼리티를 동원해서 풀어냈기에 흡인력이 크다. 어쩌면 대하소설에 버금갈 내리티브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 대표 매체 [NPR]은 “생생하고 흡입력 높은 『파친코』는 역사가 지우려고 하는 모습을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다” 며 소설이라 믿기 힘들 만큼 리얼리티를 살려낸 게 작가를 정신적 승리로 이끌도록 했다는 평을 올렸다.
이민진 작가는 진부한 서사 대신 이민자의 정체성에 관해 천착한 게 돋보인다. 나라 잃은 설움을 바탕으로 해서 차별받는 이민자들 삶을 파고들었으니 다큐멘터리 못지않다. 정체성 분석의 뿌리를 파헤치는 동안 얻어낸 인간 승리가 그의 성과가 아닌가 싶다. ‘파친코’는 운명을 알 수 없는 도박이라는 점에서 오롯이 재일교포들의 삶을 상징한다.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야쿠자가 등장하는 탓에 폭력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나 파친코는 도박 이야기라기보다 비극으로 점철된 한국의 근현대사를 주목하라고 시선을 유도한다. 그들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말로 속앓이를 대신한다. 어려운 시기를 거쳐 오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강변이 행간에 넘실거린다. 독자들에게 절망 너머 환하게 밝아올 희망을 메시지로 던지고 있으니.
쿠바 여행 중 발견한 도박장 일화를 소개한다. 빠뜨려선 안 될 곳이 중부 지역 교통 중심지 ‘까마구에이’다. 완행과 급행으로 나뉜 두 개의 역에다 까미용 터미널도 갖춰져 있다. 열차는 장거리 여행을 위한 교통수단이고. 까미용은 도시 근교 여행을 위해 마련된 거다. 역사에 들어서면 한국의 6~70년대가 회상되는 풍경이 널려 있다. 빵이며 생선 튀김에다 빨래집게, 조잡한 학용품과 향신료가 난장을 채색하고 있다. 담장 건너편에서 까미용 엔진 숨넘어가는 소리와 호객꾼 고함이 경쟁을 벌이는 모습도 장관이다.
자전거에 실린 미나리를 파는 남자를 지나쳐 시가지를 가로지른다. 걷다보면 땡볕이며 열기 때문에 갈증이 난다. 그럴 때 아이스크림 가게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한화 150원이면 고봉으로 담긴 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으니까. 유기농 재료의 맛은 도심을 벗어날 때까지 입안에 맴돈다. 다운타운을 벗어나면 널따란 공원이 땡볕에 시달린 시선을 강탈한다. 입구에 붙은 카지노 팻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쿠바의 도박장은 과연 어떨까 싶어서다. 도박장을 찾아 여기 저기 둘러봐도 그럴싸한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터질 듯한 블라우스 단추를 간신히 잠근 채 걸어오는 여고생들에게 물어본다. 카지노가 어디에 있느냐고. 그들은 손바닥을 펼쳐 공원 주위를 가리키며 여기가 바로 ‘까시노’ 라고 설명한다. 카지노를 도박장으로 알고 있는 내가 문제였던 거다.
첫댓글 며칠전에 친정어머니로부터 일제 강점기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땀 한 땀 천 명이 수를 놓았다는 센닌바리, 일본으로 징용간 친척, 황군으로 징집되어 남양군도로 떠나기 직전 해방을 맞이한 외삼촌에 대해서요. 대하소설이더군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를, 그 판단 역시 역사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친코가 재일교포의 지난한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키워드이군요. 격동의 근대사를 몸으로 겪으면서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운명이라해도 그 순간에는 도박과도 같은 순간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신만이 알 수 있는 불안하고 암담한 미래에 도박을 걸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내면과 정체성을 작가가 성공적으로 그 리얼리티가 그려냈다고 하니, 소설에 호기심이 갑니다.
오작가님, 반갑습니다~~
방금 윤여정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재미 교포가 쓴 재일 교포의 삶을 그린 파친코를 읽은 감회가 새로운데요.
윤여정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미나리를 굳이 분류하자면 파친코와 같은 부류에 속할 것 같습니다.
울림은 썩 크지 않아도 오래 묵혔던 숙제를 해결지은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미나리며 파친코 서사 속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라면 파친코 업계를 재일 교포가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겠죠.
거기를 무대로 살아가는 야쿠자를 파친코 업자들이 관장한다는 게 특이했구요.
남들이 건드리지 않은 주제를 과감히 서사에 끌어들여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게 창작의 본질 아닌가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아 리뷰를 올렸습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시기에 방콕하시면서 건강, 건필을 빌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리얼리티.. 리얼리티..ㅎ 그게 문젭니다. ㅠ.ㅠ
최선생님의 고뇌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에서도 리얼리티가 확보되지 않은 곳을 더러 발견했거든요^^
그러기에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파고들어야한다고 앞선 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분야가 뭔지를 파악하신다면 가야할 길이 보일 거라 확신합니다.
울랄라님의 밝은 미래를 점치고 있는 1인입니다.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책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 소설이 애플TV에서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어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도 출연하기로 했다는군요. 부산에서 일본으로 간 한국인들이 일본사회의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야기와 미국으로 이주한 2세대 3세대들의 이야기,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큰 물줄기를 이루면서 함께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마당쇠님께서 이렇게 추천으로 올려주셨으니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술술 읽히는 책이어서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윈드님 만의 색다른 시선으로 읽으시고 촌평을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동시대에 엇비슷한 주제로 미나리와 파친코가 등장한 게 우연이 아닌 듯 싶습니다.
예전에는 재미교포며 재일교포가 우상이었던 시절이 있었잖습니까?
이제는 한국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니까 외국에서 고생한 동포들의 아픔이 상대적으로 부각된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아무튼 일독하신 뒤 다시 소통하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윈드님~~~~~~^^
사실은 이 이야기도 저에게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저의 시댁은 제주도인데 처음 결혼을 해서 큰댁에 갔더니 큰아버님이 안 계시더군요. 일본에 계시는데 밀항으로 갔기 때문에 돌아오시지 못한다는 것이였어요. (나중에 나라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밀항자들을 면책해줘 30년 만에 돌아오기는 하셨습니다.)왜 밀항을 했는데? 그렇게 해서 4.3 이야기를 듣게 됐고 중학생인 아버님의 제일 큰 형이 선생님의 부탁으로 벽보를 붙이 다 체포되어 죽었다는 이야기. 시간이 흐르면서 그 큰형의 빨갱이 딱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둘째 형이 이곳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그곳에서 돈을 벌어 본가로 부쳐줘서 아버님과 작은아버님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큰 아버님이 일본에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부쳤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제게 하지 않았지만 전 알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파친코에서처럼 그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일들이겠죠. 그들의 아픈 이야기들이 우리 역사의 비극으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제가 4.3문학상에 응모하려고 준비를 좀 하다가 그냥 포기했습니다. 남편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제주사람이 아니라면 제주사람들의 그 아픔과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거야.
그 말 한 마디에 전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자료를 준비한다 한들 제주인들의 깊은 내면을 그려내야 하는 리얼리티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ㅠ.ㅠ;;
참! <카리브해의 누에, 쿠바>는 몇 달 전에 샀는데도 일이 너무 바빠 시간을 못 내다가 이제야 펼쳤습니다. 지금 3분의 1 정도 읽었는데 몹시도 재미있어 손에서 놓지 못하겠네요.^^*
최형만선생님께 얘기드렸던 것처럼 윈드님께서도 자신만의 필살기를 살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런 제안을 드립니다.
선뜻 남의 경험을 빌려와서 글을 적어 나간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대가분들이야 능숙하시니 어떤 주제라도 소화를 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카리브해의 누에는 천천히 읽으셔도 좋습니다.
여행이 힘든 시기에 배낭을 길벗 삼아 쿠바 일주를 하신다 여기시며 한 꼭지씩 읽으신다면
굳이 먼 길 떠나지 않더라도 궁금증을 거의 다 해소하실수 있으리라 맏습니다.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문자나 쪽지 주십시오.
속시원히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윈드님^^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작가정신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 작가정신이 뛰어나신 분인 토지의 박경리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인에 국한되지 않고 이민자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글이라 들었습니다. 결국 글이란 특수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여야만 보다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는 것이겠지요. 누군가는 한국인으로서, 재일동포로서, 미국사회나 다른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읽어갈 수 있는 소설, 그런 글을 긴 시간의 호흡으로 써내려간 작가가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올려 주신 글들에서 전해오는 글의 촘촘한 밀도, 글을 보는 넓은 시야에 늘 감탄을 하고 갑니다. 출판하신 책도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있답니다. 좋은 소설 많이 올려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소혹성님의 말씀처럼 극히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를 인간 군상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범위를 넓혀
독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 정신이야말로 저 같은 초보 작가가 지녀야 할 기초 덕목이 아닌가 여깁니다.
올려 주신 글이 제게 이토록 큰 가르침이 됩니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이미 전세계 독자들의 호편을 받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한국에는 한 발 늦게 선보인 셈이지요.
절친이 선물한 책이어서 어느 것보다 우선 읽었기에 감명이 컸습니다.
게을러 자주 글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행간읽기 게시판을 제공하신 카페지기님께도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족한 글을 치켜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서서 지켜봐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면 부지런히 따르도록 애쓰겠습니다.
소혹성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