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4일, 여러 논란의 거쳐서 기초학력보장법이 제정되었고,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 중이다. 1년이 지났을 뿐인 신생 법에 뭐 기대할 게 있냐고 삐딱선을 탈 수도 있겠지만 학교의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제1조 목적, 제2조 정의, 제3조 국가 등의 책무, 제4조 다른 법률과의 관계, 제5조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의 수립 등, 제6조 기초학력 보장위원회의 설치 등, 제7조 기초학력진단검사, 제8조 학습지원대상학생의 선정 및 학습지원교육, 제9조 학습지원 담당교원, 제10조 기초학력지원센터, 제11조 권한의 위임‧위탁, 이렇게 11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이 법은 한계가 명확하다. 법문을 읽다보면 이 법이 진짜 모든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보장하기 위한 법인지, 책임 전가를 하자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들은 모든 국민의 기초학력을 보장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낙관을 갖고 이 법을 만든 것인가? 실제 학교 교육을 통해 기초학력을 보장받지 못하는 학습자들이 어떤 어려움과 한계를 지지고 있는지 그 실태를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가? 이런 속울음이 나오기만 하기 때문이다.
기초학력의 문제는 정말 단순하지 않다. 모든 교사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 법조차 수많은 교육 관련 법들처럼 진부함으로 도배된, 눈가리고 아웅하는 법이다. 센터를 지정/위탁하고, 진단검사를 하고, 종합계획을 세웠으니까 법이 정한 바는 다 했어,라는 식의 관행이다.
기초학력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기초학력을“학생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최소한의 성취기준’은 동법 시행령 제2조에서“국어, 수학 등 교과의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필요한 읽기․쓰기․셈하기를 포함하는 기초적인 지식, 기능 등”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역량을 개념을 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기초학력 진단검사란 무엇인가?
이 법 제7조는 시행령(안) 제6조는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학생별 기초학력 수준 도달 여부를 진단하는 검사(이하 ‘기초학력진단검사’라 한다)를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기초학력진단검사는 지필평가, 관찰, 면담 등의 방법으로 실시한다”고 시행령 제6조에 밝히고 있다. 2021년 12월 실시되었던 동법 시행령 제정에 대한 토론회에서 나왔던 초안보다 진일보한 내용이 담긴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학교 현실은 답보상태이거나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년에 한 번, 3월에만 실시하던 지필고사 형태의 진단검사를 1년에 4회 하는 것으로 그 횟수만 늘렸다.
20년 넘게 교직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학생들을 만났지만 학습에 진전이 없고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그에 대한 개인사적 원인을 모두 갖고 있다. 그리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해결이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가족으로부터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거의 받지 못하는 아이, 경계선 지능, 불안정한 거주 형태 등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요인은 이 법이나 시행령으로는 일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다.
무엇을 보장하는가?
기초학력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요인은 학교나 담임 수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문제를 갖는 경우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진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지 비정규직 보조 인력이 우선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 들어온 여러 비정규직 보조인력들이 어떤 상황인지 실태조사를 먼저 해야한다.
기초학력지원대상 학생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거주지 분화에 따른 소득양극화, 부모의 사회경제문화적 격차, 그로인한 자녀의 학력 격차 등불평등의 문제를 이제 인정해야 한다. 기초학력지원대상 학생의 비율이 많은 지역은 단순히 학교교육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지역에 특별한 전문인력을 배치해 주거나 다른 지원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서 학습지원 담당교원을 지정하고 그 역할을 하라고 한다면 어느 교사가 소외되고 힘든 지역의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겠는가?
전담교원을 배치하는 것도 아닌 이미 하고 있는 일이 차고 넘치는 교사들에게 수업 시수와 근무조건을 우대하면서 학습지원교사를 하라고 한다는 것은 다른 교사에게 그 일이 전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원을 추가 배치할 권한이 학교장에게 없기 때문이다.
국가기초학력지원센터는 왜 필요한가?
「진로교육진흥법」에 따른 국가진로교육센터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위탁되었다. 2020년 12월에 보고된 4차년도 사업보고서를 보면 1) 초‧중등진로교육 현황조사, 2) 대학 진로취업지원 현황조사, 3) 진로교육 관계자 연수, 4) 진로교육 연계‧협력체계 구축, 네 가지 사업을 보고하고 있다. 세부 사업 내용을 아무리 살펴봐도 실제 학교에서의 진로교육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없다. 초‧중등진로교육 현황조사는 양적 설문으로 초‧중‧고등학교 만2천 여명이 응답한 것을 분석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제언을 하는 것이 전부다. 진로교육 관계자 연수는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 실무자를 1차 115명, 2차 109명 대상 연수였다.
이 보고서를 보면서 국가기초학력지원센터라고 다를까? 라는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문인력 채용 몇 명 더 하면서 예산을 얼마나 더 줄지 모르겠지만 부실한 사업에는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정도의 사업은 거창하게 ‘국가진로교육센터’를 만들지 않아도 하던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원인은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법률에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비단 진로교육진흥법, 기초학력보장법만 그렇겠는가?
진단검사의, 진단검사에 의한, 진단검사를 위한 기초학력
잘못 끼운 단추는 다 풀고 다시 끼우는 방법 밖에 없다. 애초에 법이 제정될 때 기초학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했고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보편적 학습자지원체제’라는 큰 그림, 정부 전 부처와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을 기대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진단검사의, 진단검사에 의한, 진단검사를 위한 법이 되어 버렸다. 진짜 필요한 것은 지원이다.
출처 : 실천교육교사모임(http://www.koreateachers.org)
원글 링크: https://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1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