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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알이 되어 희생하면(2241.2024.3.17 사순절 5주)
요12:20-2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5주를 맞아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얻는다는 말씀으로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한알의 밀알이 되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 땅에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가장 귀한 희생이 있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바로 그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유월절 행사를 위하여 명절에 예배드리러 올라온 사람 중 헬라인 몇이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청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명절이라 함은 아마도 유월절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헬라인이라면 이방인 개종자로 볼 수도 있으나 그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없으니 그들을 이방인의 대표 격으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를 만나기를 청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뵙기를 청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당시 예루살렘에는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있던 때라서 그들 역시 호기심 때문에 예수를 뵙기를 청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의 지도자들의 분노와 적개심이 극에 다다르고 있던 때에 몇몇 이방인들이 예수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로마서 9-11장에 나오는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처럼 구원에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예수를 믿는 자를 제외하고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지만 수많은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려고 몰려드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최후의 결정적, 즉 십자가 사건의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을 던지고 그들의 존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23절‘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요 그로 인하여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요. 그 임무를 수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영광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영광의 모습이 되기 위하여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24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진실로 진실로는 예수님이 중요한 말씀을 강조하실 때에 사용하는 말로서 아멘 아멘의 뜻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다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아니하면 인류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내용으로서 한 알의 밀과 같은 성도의 존재가 이 땅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것인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신앙인으로서 가장 기본이 나를 죽이고 주님을 높이는 것인데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막상 상황에 맞닥뜨리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내 자존심과 고집과 아집만 남게 되니 이런 황망할 때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주님은 본문말씀을 통해서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또 다시 나를 죽이며 땅에 떨어져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오직 주님만 섬기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섬기며 따를 것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 시간디 되시기를 바랍니다.
1.한알의 밀알이 되어 희생하면 많은 열매를 얻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왜 밀알을 보시며 감격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밀알이 다이아몬드로 변하기 때문입니까? 십자가에 죽으실 날이 가까운 절박한 상황인데, 다행히 헬라인들이 추종하고, 유대인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왕으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밀알을 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중요한 시점에서 밀알 속에 있는 영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큰 것, 잘되는 것, 높이 들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작은 밀알 하나에서 영원한 영광을 보셨습니다. 작은 밀알 하나 이것은 가치로 따진다면 정말 미약한 것입니다.
헤롯의 영광, 가이사의 권좌에 비하면 작은 밀알 얼마나 미미한 것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밀 알이 주는 영적인 원리 때문에 가치를 대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쓸모 있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계시와 삶의 원리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예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과 마귀들이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차이가 많습니다. 떡, 영예, 세상의 영광 등 이런 것들보다는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말씀, 십자가, 예배 등이 예수님께는 소중했습니다.
밀을 땅에 심는 일은 농부가 하는 일입니다. 씨는 자기 스스로 심을 수 없습니다. 농부의 손길이 있어 심어질 때 비로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심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보내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보내심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음의 제일 원칙은 하나님이 심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시고 심으시는 한 알의 밀알들입니다. 작은 밀알입니다.
24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했습니다. 자기희생, 주님이 십자가를 지기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고, 이제 2-3일 후에는 십자가를 지셔야합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이 하신 말씀이 예언적 말씀으로 그 말씀의 무게가 클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갈 때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한 알의 밀알로 살라고 하십니다.
밀은 껍데기와 알로 구분되는데, 껍데기는 영적으로 몸을 뜻하고, 알은 영혼을 뜻합니다. 때문에 한‘알’의 밀알은 그 사람의 전체를 말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한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으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물론이고, 사도바울과 사도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한알의 밀알처럼 그런 삶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이고, 나아가 온갖 멸시와 수모를 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썩어져간 한 알의 밀알이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이 땅에 한 알의 밀알로 떨어져 수많은 생명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다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예수님처럼 이 땅에 떨어져 복음으로 삶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내는 밀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처음 밀이 생겨날 때는 씨앗으로 구실을 못합니다. 밀 몸체에 붙어서 성장하여 씨앗이 영글면 드디어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생명력을 갖게 되는데, 이 생명력을 이어받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자라나 또 다른 밀을 만들어가겠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한 알의 밀알이 되고, 그 밀알이 썩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듯이 우리도 먼저 주의 전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양육과 훈련의 과정을 거쳐서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전쟁이 급박해서 단 한명의 병사가 아쉬웠던 때도 신병을 소집하면 반드시 4주의 훈련과정을 거쳐서 전장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왜냐면 훈련하지 않고 보내면 싸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으면 썩어지는 밀알로 나를 죽이고 주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 한 알이 싹을 뜨고, 자라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과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한 알의 밀이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서기를 할 때 때로는 발에 짓밟히고, 껍질이 부서지며, 속살이 드러나는 고통과 아픔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천국백성으로 나를 죽이며 살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과 아픔이 따릅니다.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딸에 썩어지기 위해서는 나를 죽여야 하는데 이게 쉽겠냐고요. 애매한 비난도 들어야하고, 때로는 내 것 손해도 봐야하고, 왕따는 물론 인격적인 모욕까지 들을 때도 있는데 그걸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들이 내가 예수 믿는 줄 알고 있는데 세상 사람과 똑같이 해 버리면 결국 하나님을 욕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밀알로 썩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하실 것이고, 밀알 속에 있는 생명력이 작동하여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에 떨어져 썩어가는 밀알로 끝나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주를 위해 죽을 때 하나님은 그걸 통해 더 많은 것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자신을 한 알의 밀알에 비유하면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수치와 모욕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받아들이셨을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주를 위해 형제들을 위해 밀알로 죽어질 때 그걸 기억하십니다. 때문에 교회든 가정이든 사회에서든지 나를 죽이는 한 알의 밀알이 되시길르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 교회공동체는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안전하게 천국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영적생명을 보장해주는 곳입니다. 때문에 진짜 주님을 사랑하고,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그의 몸 된 전인 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일거리를 찾아서 봉사하셔야 합니다. 집에다 꿀떡을 붙여 놓았습니까? 예배 끝나면 왜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혼자만 먹지 말고 교회에 오실 때 좀 가지고 와서 성도들과도 함께 나누어드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은 이런 현상이 바로 내가 한 알의 밀알로써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내가 주장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자존심과 의를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내 자존심, 의를 앞세우고, 형제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담임목사를 옆집 아저씨 대하듯 하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는 것은 자기희생입니다. 자기희생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것이 주님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1798년에 제너는 젖소에서 우두를 발견하여 천연두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는데, 당시 영국의 학계는 시골뜨기 의사가 사람들을 현혹한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럼에도 제너는 생후 11일밖에 안 된 자기 아들에게까지 임상실험을 하여 영국의학계를 설득해냅니다. 제너는 자기 아들을 실험하는 희생을 통해 인류를 천연두에서 구하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밀알로 썩는 것은 자기희생이지만 그 희생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먼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기희생을 실천해보셔서 범사에 많은 결실을 맺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한알의 밀알이 되어 희생하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생명 없는 씨는 결코 싹을 티울 수 없습니다. 유정란과 무정란의 차이는 너무 큽니다. 왜냐하면 병아리가 될 수 있느냐 될 수 없느냐를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씨앗파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모든 농가가 사용한 씨앗이 싹을 티우지 않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씨는 죽은 씨앗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을 가져야 합니다. 생명의 씨앗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마음속에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예수생명, 예수권세, 예수능력입니다.
먼저 ‘한 알의 밀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작을 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밀알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보십니다. 작을지라도 죽어 땅에 심겨지면 30, 60, 100여개의 알이 생기지 않습니까? 또 이것들을 심으면 또 무수한 알갱이들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은 아주 미약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예수님 한 분이 이 땅에 떨어져 죽으시면 그 예수님의 생명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곧 닥칠 죽음의 고통보다도 더 다이나믹한 생명을,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생명의 능력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영광을 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같으면 ‘나라는 한 사람은 얼마나 미약한가’ 하고 절망할 것인데, 예수님은 자신속에 있는 생명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2천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사실 생명이 없는 것은 헛것입니다. 황금으로 뒤덮였던 솔로몬의 성전도 무너집니다. 헤롯의 궁전도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만들어진 작은 밀알 하나는 지금 전세계 인구의 몇 퍼센트를 먹여 살리는 생명의 능력이 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속에 생명이 있으면 그것이 가장 큰 것입니다.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잃은 양을 구하고 기뻐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기쁨은 단순하고 본질적인 기쁨입니다.
25절‘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이순신장군이 어떻게 알고 카피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주님은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한 알의 밀알로 썩어가는 자기희생을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기희생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그 희생을 자기생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물이 되어주신 주님이 이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목숨을 아까워 하지 말고 주의나라를 위해 버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은 눅14:26-27절‘자기부모와 처자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한데,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자기목숨을 미워하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하나님보다 자기목숨을 우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 것 때문에 신앙의 가치를 훼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더 사랑하면 절대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가 없습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내가 우선인데 어떻게 주님말씀에 순종이 가능하겠습니까? 당장 주일 지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출31:15절‘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데, 나를 더 사랑하면 예배가 우선이 되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는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그럼에도 작은 일만 생겨도, 조금만 피곤해도, 날이 좀 추워도 예배에 안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나를 위해 사는 것이고, 자기생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할 것 다하면서 남는 시간에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면 주님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부자청년이 그런 경우 아닙니까? 돈을 포기하라는 주님말씀에 결국 돌아섭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목숨을 미워해야합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말없이 드릴 수 있어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내 목숨을 비롯해 세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최고가 될 수밖에 없고, 그걸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는 것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제 얼마 있다가 이 땅을 떠나면 아버지 계신 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미에게서 놀라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미가 자식를 번식하는 방법입니다. 수정한 거미는 몸속에 거미 자식들을 품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식들은 어미의 몸을 갈아서 먹으며 자라납니다. 그리고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미 거미의 희생적인 죽음은 수천 마리의 거미를 낳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거름이 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한국교회는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헌신과 땀과 눈물로 오늘의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썩어져 거름이 되는 것은 거룩한 희생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포기하는 것은 새로운 것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포기, 자기희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자기부인, 십자가의 길, 자기를 미워하는 길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이 스승으로 모시러 찾아오고, 유대인들이 왕으로 모시려고 하지만, 고통스런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위대함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태어나신 유일한 분입니다.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드리셨습니다(엡 5:2).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위대함으로 승화되고 구원의 통로가 되는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식의 전환, 희망을 가져오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이룩한 놀라운 역사입니다.
3.한알의 밀알이 되어 희생하려면 주님만 섬겨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어떤 형편에서도 상주감리교회 성도로서 자부심을 갖고 ‘오직 나와 내 가정’은 하나님만 섬긴다는 믿음을 가자시기 바랍니다. 26절‘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지금까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하고, 자기목숨을 미워하며 버리며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를 죽이면 또 하나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며 따라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며 따라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질까요? 나를 죽이면 내안에 계신 성령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자동으로 이뤄주시니 그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빌2:13절‘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이 말씀은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갖게 하셨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과의 관계를 최상으로 만들어야합니다. 그러기위해서 오직 주님만 섬기며 따라야합니다. 그러면 내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주님을 섬기며 당당하게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26절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만약 우리가 구원 받았다면 당연히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겠지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도 우리를 섬기신 일이셨습니다. 마20:28절‘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은 기본이고, 교회공동체 형제들을 섬기는 것도 우리의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분들은 자기가 교회에 헌금해주니 교회가 자기를 섬기고 대접해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정말 심하게 말해서 위험한 발상입니다. 주님도 우리를 섬기러 오셨는데, 하물며 우리가 주님은 물론 형제들 섬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초대교회도 형제들 섬기라고 집사 권사직분을 줬던 것입니다. 왜 이런 발상을 할까요? 내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주님을 믿고 섬기고 따르려면 나를 먼저 죽이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주님보다 세상과 돈이 좋기 때문인데, 성경은 돈과 세상을 주님과 함께 섬기지 못한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마6:24절‘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구원받은 성도는 주님과 형제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내가 있는 모든 곳이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장소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예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직장이든 어디서든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께 하듯 일을 하면 됩니다. 골3:24절‘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께 보답하십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로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장차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자리에서 설 때 구원과 기쁨을 주는 것은 바로 이 고난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썩어져 거름이 됨으로 많은 생명을 낳아 열매 맺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썩어지는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손이 되어 섬기며 봉사하고 생명 있는 복음의 증인들로 살아야 합니다.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며 죽으셨습니다. 그 거룩한 희생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생명의 길이 되었고 셀 수 없는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썩어지는 밀알이 되신 믿음의 선배들이 계십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있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썩어지는 밀알처럼 희생적인 봉사와 헌신을 하신 분들로 인하여 부흥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헌신과 희생으로 섬겼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이제 우리가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내일의 부흥은 오늘의 헌신으로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가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섬기고 봉사할 때 내일은 영광스러운 날이 되고 많은 열매를 맺는 부흥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더 낳은 내일의 번영과 부흥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제 우리가 오늘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한알의 밀알이 되셔서 영혼을 구원하는데 내가 해야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많은 열매를 거두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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