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관령] 832m
강원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의 총연장이 13 km나 되며, 고개의 굽이가 99개소에 이른다. 서울과 영동을 잇는 관문이었으며, 구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했다. 대관령을 경계로 동쪽은 오십천이 강릉을 지나 동해로 흐르며, 서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송천이 된다. 이 일대는 황병산, 선자령, 발왕산 등에 둘러싸인 분지로, 고위평탄면 지형을 이룬다. 기후는 한랭 다우지역으로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서리가 내리는 지역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스키장이 들어서기에 좋은 조건이다. 고랭지 채소 및 씨감자의 주산지이며 목축업이 발달해 있다. 산 정상에 서면 대관령의 광활한 초원과 강릉의 맑은 동해바다,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세와 마주할 수 있다.
아흔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대굴대굴 굴러 대굴 령이라 하였으나 음절 되어 대관령이라, 또한 영서-영동 영동-영서를 넘나드는 큰관문이라 대관령이라 불리게 되었다.
고개정상의 신사임당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신사임당이 친정을 그리는思親詩가 새겨져 있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을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 대관령국사성황사(大關嶺國師城隍祠)
대관령 국사 성황당은 대관령 휴게소에서 북쪽으로 1㎞ 지점의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제당은 약 5평 규모의 목조기와 건물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범일 국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매년 음력 4월 12일 금줄을 치고 4월 15일 제사를 지낸 후 위패를 모시고 대관령 여국사 성황당에 합위(位牌)한다. 그리고 강릉 단오제가 시작되면 대관령 국사 성황신과 대관령 국사 여성황의 위패를 함께 단오장에 모시고 갔다가 단오제가 끝나면 다시 모시고 온다.
[설화]
옛날 한 처녀가 대관령 굴산사(掘山寺) 앞에 있는 석천(石泉)이라는 샘에 가서 물을 깃는데 물 깃던 바가지에 물과 함께 해가 들어 있었다. 이에 놀란 처녀는 그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떴는데 여전히 바가지에 해가 들어 있었다. 세 번째 다시 물을 떴을 때도 바가지에 해가 들어 있어 목마른 터라 하는 수 없이 그 물을 마셨다. 그 일이 있은 후 처녀의 배는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고, 달이 차서 아이를 낳아 보니 아들이었다.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아 주변의 핀잔은 물론 가족들까지 외면하자 처녀는 아이를 뒷산 학바위 밑에 버렸다.
어린아이를 버리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처녀는 아침 일찍 울면서 아이를 버린 학바위를 찾아갔다. 밤새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산짐승들이 물어가지는 않았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도착해 보니 날짐승과 산짐승들이 따뜻하게 아이를 보호해 주고 있었으며 아이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산모는 필시 하늘의 뜻에 의해 이 아이가 태어났음을 짐작하고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는 자라면서 말을 하지 못하다가 일곱 살이 되어 비로소 말을 하는데 첫 말이 “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범상치 않은 아이임을 알게 된 외할아버지는 아이를 당시의 수도인 경주로 보내어 공부를 시켰다. 그 곳에서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국사(國師)가 되었고 그 지혜와 총명함은 중국에까지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되었다.
훗날 국사는 굴산산에서 지팡이를 던져 꽂힌 자리에 사찰을 지었으며 이름을 심복사(尋福寺)라 하였다. 또 국사의 탄생은 바가지에 해가 담긴 물을 마셔 태어났다고 하여 범일(梵日)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범일 국사는 강릉에서 살게 되었는데 마침 난리가 났다. 범일은 대관령에 올라가 도술로 산천초목(山川草木)을 모두 군사로 변하게 하여 적군이 감히 근접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급기야 적군은 많은 군사를 보고 도망을 갔다. 이렇듯 강릉을 지켜온 범일 국사는 죽어서 대관령의 서낭신이 되었다.
- 생명의 축제, 강릉단오제
강릉 단오제는 지역민들이 신에게 안녕과 풍요 다산을 기원하는 공동체 의례이자 우리나라 단오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민속 축제이다. 음력 4월 5일, 신주 담기를 시작으로 4월 15일, 대관령 산신제 및 국사 성황제를 갖고 단풍나무를 신목으로 모시고 강릉으로 내려와 국사 여성황사에 합사한다. 음력 5월 3일, 제장을 남대천(南大川) 단오장 가설 제단으로 옮겨 단옷날 전후 8일간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제례, 단오굿, 관노 가면극 등 3개 부분을 중심으로 단오와 비단오 문화가 어우러지는 축제이다. 강릉 단오제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구 세계 인류 구전 및 무형 문화유산 걸작)에 등록되었다.
강릉 단오제의 기원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에 기록된 제천 의례가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5월 단옷날 시조신(始祖神)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사가 남아 있고, 고려가요 「동동(動動)」에 단오를 수릿날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명주장군 왕순식(王順式)의 대화에서 대관령에서 제사하였다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대관령 치제에 대한 첫 기록으로 ‘천년 단오’의 모티프다. 이후 허균(許筠)[1569~1618]이 1603년 강릉에 머물 때 단오제 행사를 보고 기록을 남겼고 후대에 들어 지역의 향토지인 『임영지(臨瀛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강릉 지역 어르신들은 일제 강점기나 6·25 전쟁 중에도 단오제를 보았다고 한다.
강릉 단오제는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고 있거나 고증을 통하여 원형 복원이 가능할 만큼 잘 전승되었다. 이런 덕분에 강릉 단오제는 1967년 1월 16일 중요 무형 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면서 민속 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 축제로서의 가치를 획득하였고, 2005년 11월 25일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 구전 및 무형 문화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이 명칭은 2008년 6월 제2차 무형 문화유산 보호 협약 당사국 총회의 제도 변경에 따라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바뀌었다.
[강릉 단오제의 구성]
강릉 단오제는 1967년 제례와 단오굿, 관노 가면극 등 3개 부분으로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후 재구성과 첨삭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대천에서 열리는 강릉 단오제는 단오 문화와 비단오 문화 행사가 한데 어우러진 축제이다. 단오 문화 행사로는 지정 문화재인 제례, 단오굿, 관노 가면극을 비롯, 지역 문화재인 「강릉 학산 오독떼기」, 강릉 사천 하평 답교놀이, 강릉 농악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 단오 세시 풍속은 체험 행사로 접근할 수 있으며 깃발 사진전을 비롯한 해외 공연단, 강릉 사투리 경연 대회 등 비단오 문화 행사는 단오장 각 공연장에서 연일 매시간 100여 차례 진행되고 있다
◆[선자령] 仙子嶺 1157m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선자령은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우뚝 솟아 있다. 대부분 산의 봉우리는 "산", "봉", "대"로 불리고 고개는 "령", "재", "치", "현"으로 불린다. 그런대 선자령은 산의 봉우리인데 "령"으로 이름지어져 있다. 이 지역의 지형이 완만하고 다른 길과 만나는 지점이기에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 같다. 정상석의 뒷쪽을 보면 선자령은 옛날부터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을 있는 고갯길이었고, 대관산(산경표), 보현산(동국여지지도와 사탑고적고 기록), 만월산(보현사에 관한 기록을 전하는 태고사법 기록으로, 보현사에서 보면 선자령이 떠오르는 달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됨)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선자령에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계곡이 너무 아름다워 선녀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와 목욕을 하고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하여 선자령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선자령은 해발 840m인 대관령의 북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대관령에서 약 6km밖에 되지 않아 산행이 힘들지 않고 겨울철 적설 등반지로 적합하다. 대관령 고갯길은 옛날에는 오솔길이었으나, 이 고갯길을 조선조 중종때 이 지방 사람인 고형산이 사재를 털어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혀 놓았다. 따라서 거의 평지길이나 다름없는 능선을 따라 오르게 되므로 산길은 매우 완만하다. 이 능선길은 적설기와 신록기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적설기에는 많은 눈에 덮여 은세계를 이루어 황홀하고, 신록기에는 새로 자라난 연녹색의 초원에 야생화가 만발하여 화원을 이루고 있다.
◆[나즈목이]
‘낮은 목’. 강릉 사투리로 ‘안부’라는 뜻이다.
◆[곤신봉] 1127m
곤신봉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산. 등산로 주변에는 문화재 자료 제 37호인 보현사 대웅전이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544번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공산성은 지방기념물 제 28호로 1979. 5. 30 지정되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544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으로, 일명 보현산성, 대궁산성으로 불린다. 태백산맥에서 동쪽으로 돌출한 보현산(해발 944m)에 쌓았다.
언제 처음 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설에 의하면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이 곳을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축조하였다고도 하고, 발해의 왕인 대씨(大氏) 성(姓)을 가진 사람이 쌓았다고 하여 대공산성이라 불린다고도 하나 명확한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한말 을미의병 때에는 민용호가 이끄는 의병이 이 곳 일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산성의 총 길이는 약 4㎞ 정도이며, 성벽은 크기가 다양한 성 돌을 불규칙하게 쌓았는데, 높이 2.3m~2.5m 정도 된다. 동 벽의 일부는 순수한 토성이며 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밖으로 돌출해 쌓는 치성(雉城)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성안에는 건물 터와 우물터, 성문터 등이 남아 있고, 토기 조각을 비롯하여 여러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